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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공검제-141화 (141/508)

141.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계두식이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는 남궁천을 노려보았다.

“넌 뭐야?”

“저요? 보시다시피 견습생입니다.”

“견습생 주제에 나설 때와 닥치고 있을 때를 구분도 못 하고 떠들어대는 거냐?”

“아, 떠들면 안 되는 거였군요?”

“뭐?”

“아뇨, 뭐…… 대주님이 막 당주님께 명령 불복도 하고 큰소리로 따지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이 정도 말하는 건 괜찮은 줄 알았죠.”

그 순간 듣고 있던 당주가 ‘풉!’ 웃음을 터뜨린다.

옆에 있던 팽수혁과 윤종승은 내심 통쾌한 표정으로 입매를 슬쩍 말아 올린다.

반면 계두식은 이제 이마 끝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뭐, 이런 애송이 새끼가……!”

“자자,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아직 어린 생도 아닙니까? 하하.”

비량이 얼른 나서서 계두식을 말린다.

그러자 계두식이 비량을 아래위로 훑더니 툭 쏘듯 물어보았다.

“당신은 또 뭐요?”

“여기 견습생들 지도 교관인 비량이라고 합니다.”

“비량……?”

그제야 흠칫거린 계두식이 비량과 당주를 번갈아 보았다.

당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중요한 임무라고. 비량 교관이 함께 갈 걸세. 정검대에 큰 힘이 될 게야.”

그제야 계두식은 대략의 사정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도 당주는 이번 임무에 비량을 끌어들이기 위해 저 애송이들까지 불러들인 것이리라.

“이러나저러나 불쾌하군요. 당주님은 본 대를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믿지. 내 누구보다 자네를 믿지. 하나 조심하자는 걸세.”

“그게 못 믿는 거죠!”

“거, 사람 참! 자네도 알잖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비량 교관일세. 이젠 돌이킬 수도 없네.”

정검당주는 더 이상 대화를 이을 필요도 없다는 듯 눈을 꾹 감아 버렸다.

결국 저 혼자 씨근거리던 계두식이 욕지거리를 뱉어내고는 비량에게 다가갔다.

“잘 들으시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임무를 함께 하겠지만, 본 대의 주인은 바로 나요! 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업적을 쌓았는지 관심도 없고 상관도 하지 않소. 단지 본 대에 합류하는 이상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지시에 따라야 하오.”

비량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지요, 계 대주님.”

“그리고 너. 이름이 뭐냐?”

계두식이 남궁천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남궁천이 씨익 웃으며 답한다.

“남궁천입니다.”

“남궁천……? 이제 보니 네놈이 요즘 떠오른다는 그 신룡이니 뭐니 하는 놈이었군. 하나 애들 노닥거리는 무연회에서 우승했다고 기고만장하지 마라. 강호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냉정한 곳이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내 눈 밖에 나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임무를 내려주마.”

“오오, 개 멋진 척.”

“뭐…… 뭐?”

계두식이 눈매를 파르르 떠는데, 남궁천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두식의 목소리를 따라한다.

“내 눈 밖에 나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임무를 내려주마. 크으으! 역시 대주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네요. 이렇게 갑질도 좀 할 줄 알아야 조직을 이끄는 거겠죠?”

계두식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남궁천을 보았다.

뭐 이딴 애새끼가 다 있지?

뭣도 모르는 애가 한 말을 물고 늘어지자니, 본인이 치졸한 인간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자니 바보가 된 기분.

“지금 내 말을 장난처럼 여기는 것이냐?”

“에이, 그럴 리가요. 솔직히 처음에는 정검대로 배정받아서 실망했지만 지금은 대주님의 박력에 감동 중입니다.”

“내…… 박력? 아니, 그보다 정검대에 배정을 받고 실망했다고?”

“어? 모르셨어요?”

“뭘 말이냐?”

“생도들 중에는 정검대 따위 배정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요.”

이쯤 되자 지켜보는 이들도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었다.

신중함과는 거리가 먼 팽수혁조차도 뜨끔한 기분이 들어서 남궁천을 힐끔 보았다.

인마, 말 좀 가려서 해!

하지만 남궁천은 주변인의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하게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정검대가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뇌옥 감시나 하고 법 집행할 때 병풍 역할이나 하는 거잖아요?”

이제 다른 생도들은 아예 입을 딱 벌리고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마치 지금의 남궁천은 비탈길을 달려 내려가는 수레 같다고나 할까?

‘저, 저놈 말려야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검대주 계두식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물들어갔다.

그는 한낱 애들 앞에서 차오르는 분을 터뜨릴 수 없어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병…… 풍……! 병풍이라고…… 했느냐?”

“예. 병풍이라고 하던데요?”

“대체 어떤 새끼들이 그딴 망발을 지껄인단 말이냐!”

결국 계두식이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남궁천이 손가락으로 팽수혁을 가리켰다.

“쟤가 그러던데요?”

“어……?”

순간 팽수혁이 멍한 표정으로 남궁천과 계두식을 번갈아 보았다.

저, 저 미친놈이 왜 날 물고 늘어져!

계두식이 팽수혁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저 녀석 말이 사실이냐?”

“하하…… 그게 그러니까…… 제가 그걸 공개적으로 한 말은 아니고…… 그냥 혼잣말을 중얼거린 건데…….”

“그러니까 하긴 했다는 거군.”

이제 계두식의 전신에서는 살기에 가까운 기운의 격랑이 일어나고 있었다.

팽수혁이 남궁천을 향해 눈알을 부라렸다.

인마! 뭐라고 말 좀 해봐! 이게 무슨 상황이야?

하지만 남궁천은 전혀 도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예, 분명히 그랬죠. 제가 바로 옆에서 똑똑히 들었으니까요.”

저, 저…… 새끼! 아까 기습에 대한 보복이냐!

팽수혁이 난감한 표정으로 어설픈 미소를 짓는데, 지켜보던 비량이 불쑥 나섰다.

“철모르는 아이들 생각일 뿐입니다. 대주님께서는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나 계두식은 물러나는 대신 비량을 빤히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얽혔다.

결국 계두식이 침음을 흘리고는 물러섰다.

“끄음. 천지 분간도 못하는 놈들인 것 같은데, 교관께서도 주의해 주시오. 이번 임무는 맹에서도 신경을 쓰는 중이니.”

“명심하지요.”

비량이 생글거리며 대꾸하자, 계두식은 영 미덥지 못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 * *

귀주의 무림맹 태강(台江) 분타.

분타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 모두 한곳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저기 갇힌 놈이 도절귀(盜竊鬼)라지? 말로만 듣던 놈이라 얼굴 좀 보려나 했더니.”

“어허, 조용히 말하게. 듣겠네.”

“흥! 들으면 어떤가? 어차피 꼼짝없이 갇혀서 맹으로 이송될 처지인데. 얼굴도 안 보이고.”

“그렇긴 하지만 저 도절귀가 흑도인들 사이에서는 인맥이 워낙 넓어서 호송 중에 탈주를 돕는 자들이 나타날 거라더군.”

“나도 들었네. 아니, 도대체 왜 저런 놈을 도와준다는 거야? 저놈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긴. 의뢰한 물건이면 뭐든 다 훔쳐준다지? 심지어 처자식도 훔쳐준다니 말 다 했지, 뭐.”

“쳐 죽여도 쌀 놈이지.”

“아무튼 저놈을 구하려고 흑도인들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어. 오죽하면 분타에서 호송대 꾸리길 포기했을까?”

“하긴. 저놈을 이송하려고 본 단에서 정검대가 파견됐다지?”

“그렇다는군. 그래도 본 단에서 파견된 정검대니까 분타에서 꾸린 호송대보다야 믿을 만하겠지.”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는 호송 수레가 한 대 놓여 있었는데, 쇠창살로 이루어진 뇌옥은 검은 천으로 덮여 있어서 정작 죄수의 얼굴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는 죄수가 이송 중에라도 자세한 위치를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 이곳에 모인 자들은 창살 안에 갇힌 남자가 누군지 다 알고 있었다.

도절귀라는 별호로 불리는 남자.

그가 노리는 물건이라면 이미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떠돌 정도.

오죽하면 하오문에서 요직을 주고 데려가려고 할 정도였을까?

하나 그의 운도 다했는지 얼마 전 청랑단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태강 분타에서 무림맹 본 단으로 이송되기 전.

때마침 한쪽에 모인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으로 한 무리의 무인들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바로 무림맹에서 파견한 정검대였다.

물론 그 무리 속에는 남궁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귀주 지역은 오랜만이네.’

이번 임무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전해 들었다.

죄수를 호송하는 임무.

다만 그 죄수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전해 들은 바가 없다.

괜히 견습 생도들이 죄수의 별호를 듣고 긴장해서 자칫 실수라도 저지를까 봐 염려한 탓이라나?

‘뭐, 이해 못 할 말은 아니지.’

남궁천이 옆에서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걸어가는 윤종승을 힐끔거렸다. 윤종승은 아까부터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호송 중에 탈주하진 않겠지? 죄수와 눈이 마주치면 밤새 악몽을 꾼다던데. 혹시 호송 중에 기습을 당하면 어쩌지? 아니면 바람이 불어서 덮어둔 천이 날아가면…… 중얼중얼…….”

‘이런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확실히 이해 못 할 일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역시 정검대가 견습생을 대놓고 무시한다는 것만은 사실.

최소한 누굴 호송하는지는 알려줘야 할 것 아닌가?

‘사람 궁금하게 말이야.’

마침 곁으로 다가온 팽수혁이 윤종승의 등짝을 세차게 후려쳤다.

“덩칫값 좀 해! 이러니까 정검대가 우리를 애송이 취급하는 것 아니냐!”

“억! 미, 미안.”

윤종승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는 사이 정검대는 인파를 헤치고 태강 분타 정문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인수인계가 이뤄졌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바로 떠나신다고요?”

태강 분타주가 예를 다하자, 정검대주 계두식도 포권하며 답했다.

“예, 분타주님. 맹에서 지체 없이 이송하라는 명이 있어서 급히 돌아가야 합니다.”

“예, 그럼 대주님만 믿겠습니다. 이송 중에 죄수가 위치를 알 수 없도록 뇌옥을 천으로 덮었습니다. 워낙 신출귀몰한 녀석이라 천이 벗겨지지 않도록 조심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본 대가 호송 임무만 수백 번입니다. 걱정 마시고 저희한테 맡기시면 되는데 거기 뭐 하는 거야, 이 새끼야!”

순간 계두식이 수레 쪽을 보며 버럭 소리 질렀다.

어느새 수레 쪽에 다가가서 쪼그려 앉은 남궁천이 천을 들어 올리고는 구경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아, 너구나. 난 또 누군가 했네.”

천진하게 중얼거리는 남궁천 뒤로 정검대원 하나가 얼른 달려왔다.

“이놈! 뭐 하는 짓이냐!”

정검대원이 얼른 천을 덮어 버리자, 남궁천이 천진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보면 안 되는 거였나요?”

“네놈이 보는 건 상관없지만, 저놈이 밖을 봐선 안 되지!”

“에이, 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요, 뭐. 융통성 있게 삽시다. 융통성 있게.”

남궁천이 해맑게 대꾸하는데, 계두식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지금 호송 임무가 장난으로 보여?”

“너무 궁금해서 죄수 얼굴만 확인해봤어요. 그러게 그냥 가르쳐 주시지.”

“그게 다 네놈들을 위해서…….”

“에이, 말은 바로 하시죠. 그냥 대놓고 무시하는 거 다 보이는데요.”

“뭐?”

“막말로 임무 수행을 제대로 하려면 정보도 공유해야죠. 견습생이라고 온실 속 화초 취급하다가 태풍이라도 불어닥치면 그땐 어쩌시려고요?”

하나하나 뱉는 말에 일리가 있다 보니 계두식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짜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아직 약관도 채우지 않은 애송이가 언행만 놓고 보면 능글맞은 중년인 같지 않은가?

그나저나…….

“저놈을 네가 안다고 했느냐?”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도절귀잖아요.”

“네놈이 도절귀를 어찌 아느냐?”

순간 남궁천이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아,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네.

사실 도절귀를 본 순간 본능적으로 흘러나온 말이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전생에 인연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남궁천이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대충 얼버무렸다.

“딱 봐도…… 도둑놈처럼 생겼잖아요?”

“뭐?”

“남의 것 훔쳐서 제 배나 채우게 생겼으니 도절귀라고 생각했죠.”

“그게…… 다냐?”

“제가 감이 좋은 편이거든요.”

남궁천이 씨익 웃자, 계두식이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 이번 여정이 생각보다 피곤할지도 모르겠다는 건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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