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137화 (137/508)

137. 드루와, 드루와!

“끄으읍. 으으으…….”

신입 생도가 배를 움켜쥐고는 끙끙 앓자, 송원교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진작 꿇었으면 좋았잖아. 꼭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나?”

이쯤 되자 다른 신입생들도 바짝 긴장한 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송원교가 한 걸음 성큼 다가가자, 남은 두 명의 신입생이 반사적으로 무릎을 털썩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용서라…….”

송원교가 말을 뱉은 신입 생도 앞으로 저벅저벅 다가갔다.

“너 모르는구나?”

“예……?”

“응징보다 더 어렵고 힘든 게 용서라는 걸 말이야.”

짜아악!

순간 신입 생도의 뺨이 휙 돌아갔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몸까지 튕겨나간 그가 의자를 밀어내며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송원교 뒤에 앉은 다른 생도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킬킬거렸다.

“빨리 안 기어와?”

송원교가 나직이 으르렁거리자, 튕겨나갔던 생도가 엉금엉금 기어와서는 다시 무릎을 꿇는다.

송원교가 그 앞에 쪼그려 앉더니 머리카락을 와락 움켜쥐었다.

“크윽!”

목이 꺾인 신입 생도가 신음을 삼키며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인상 펴, 이 새끼야.”

“…….”

“어쭈? 내 말 씹냐?”

“죄, 죄송…… 합니다.”

“사과할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엉?”

“…….”

“남궁천이 그렇게 대단한 것 같아? 기대해라. 내가 남궁천을 어떻게 키웠는지 알게 해줄 테니까.”

송원교의 표정에 사악한 미소가 깃든다.

그러잖아도 심기가 불편한 그였다.

오랜만에 무한에 왔더니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남궁천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이제 남궁천은 무림맹으로 간다.

그 악마 새끼 같던 남궁천을 더 이상 학관에서 보지 않아도 된단 소리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삼 년생으로 최고 선배의 위치.

학관에서만큼은 진정한 왕이 된 셈이다.

송원교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시 알아? 너희들도 내 밑에서 지옥을 겪다 보면 무연회 우승할 실력을 갖게 될지?”

몸을 일으킨 송원교가 신입 생도들의 뒤통수를 거칠게 후려쳤다.

따악! 딱! 딱!

“끄윽……!”

“참아, 이 새끼들아. 이 정도도 못 참으면서 어찌 신룡이 되려고 하느냐? 하하!”

따악! 따악! 따악……!

신입 생도들은 뒤통수에 불이 나는 걸 느끼면서도 차마 대항하지 못했다.

그들은 내심 후회하고 있었다.

‘용천관이…… 괜히 무한 꼴찌가 아니었구나.’

‘한 명의 영웅을 배출했다고 학관 분위기가 달라진 건 아니구나.’

‘앞으로 삼 년을 이런 곳에서 지내야 한다니…….’

정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모두에게 알려서 절대 가지 말아야 할 학관이라고 소문이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끝없이 머리를 내려칠 것 같던 손바닥이 어느 순간 뚝 멈췄다.

신입 생도들이 겨우 한숨 돌리면서 고개를 드는데, 웬 낯선 사내가 송원교의 손목을 떡하니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송원교가 눈알을 부라렸다.

“이건 또 뭐야?”

그러자 체격이 건장한 사내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혀를 찬다.

“너는 아직도 이러고 노냐?”

“너…… 윤종승……?”

송원교가 눈을 부릅떴다.

처음에는 몰라봤다.

윤종승은 늘 어딘지 어수룩하고 눈치를 살피는 표정을 짓곤 했으니까.

한데 지금은 골격이 비교적 탄탄해지고, 얼굴은 조금 더 투실하게 살이 올랐고, 앳된 모습을 조금 벗어던진 인상이다.

윤종승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넌 언제 철들 거냐? 학관 망신은 혼자 다 시키네.”

“너 이 새끼…… 뒈지고 싶어?”

송원교는 기가 찼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발아래에서 발 받침대 역할에 충실하던 녀석이 뭐? 언제 철들 거냐고?

하! 이 개새끼가 뒈지고 싶어서 환장을 하지 않고서야!

송원교가 눈알이 빠져 버릴 듯 부라리는데, 윤종승이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피식 웃어 버린다.

“야, 그래도 오랜만에 봤는데 인사치고는 서운하네.”

“어이, 윤종승. 남궁천 똥구멍 핥으면서 졸졸 따라다니다 보니, 너도 뭐가 된 것 같아? 처돌았어?”

“되긴 뭐가 되겠어. 난 그냥 윤종승이지.”

“그걸 아는 새끼가 이래? 확……!”

손을 빼내려던 송원교가 움찔거리고는 표정을 굳혔다.

뭐야, 이거?

윤종승한테 잡힌 손목이 빠지질 않는다. 빠지기는커녕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 새끼가 원래 이렇게 힘이 셌나?’

당황한 송원교와 달리 윤종승의 표정은 편안하기만 하다.

“놔라.”

“…….”

“안 놔?”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백리향을 비롯한 다른 생도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손을 빼버리면 될 것을 왜 놔달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러거나 말거나 윤종승은 송원교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신입 생도들을 보며 말했다.

“다들 일어나.”

“아…….”

신입 생도들이 송원교의 눈치를 슬쩍 살핀다.

윤종승이 혀를 차고는 말을 이었다.

“일어나. 무인은 함부로 무릎을 꿇는 게 아니다.”

“감, 감사합니다.”

그제야 엉거주춤 일어난 세 명의 생도들이 얼른 포권을 하며 예를 갖췄다.

그중 한 명이 송원교의 눈치를 한 번 더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윤종승 선배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무연회 팔 강에 오르신 기적을 일으킨 분이시죠.”

갑자기 쏟아진 칭찬에 윤종승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바보처럼 웃었다.

“에헤이, 뭘 또 그렇게까지. 하하하. 내가 뭐라고. 흐흐흐.”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냐, 아냐. 다 운이 좋았지 뭐.”

“겸손하기까지 하시군요.”

“에이참, 아니라니까. 흐흐흐.”

이쯤 되자 상황을 지켜만 보던 송원교가 들개처럼 으르렁거렸다.

“이 새끼들이 지금 장난해? 윤종승 넌 오늘 뒈졌어!”

파밧! 쉬이이이잇!

찰나지간 송원교가 부러진 젓가락을 손에 쥐고는 휘둘러왔다.

그대로 젓가락을 어깨에 박으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젓가락이 날아드는데!

뽀각!

음? 뽀각……?

움찔거린 송원교의 눈알이 천천히 돌아간다.

곧이어 윤종승 손에 붙들린 손목이 기이하게 꺾인 채 너덜거리는 게 보인다.

“크읍, 끄아아아아아악!”

일순간 송원교의 비명 소리가 이 층 객실에 가득 차올랐다.

그대로 주저앉아서 손목을 쥔 채 처절하게 울부짖는 송원교.

기괴하게 꺾인 채 덜렁거리는 손목은 누가 보더라도 부러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흐으윽! 끄으으윽! 아으아으윽!”

상황이 엉뚱하게 흘러가자 백리향이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윤종승! 이게 무슨 짓이야! 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어…… 음…… 이게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오해는 무슨 오해!”

“그게……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하하…….”

“미친놈.”

백리향이 표독스럽게 쏘아본다.

한편 윤종승은 정말로 당황해서 해쓱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와, 진짜 난감하네.

실제로 윤종승은 손목을 부러뜨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힘 조절이 안 된 거다. 그게 아니면…….

“혹시 송 형은 원래 손목이 좀 약한가?”

“뭐? 이 개새끼야!”

정말 궁금해서 묻는다는 것이 오히려 성질을 돋우고 말았다.

윤종승이 머쓱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휴관기 동안 수련한 게 나름 효과를 보긴 하는 모양이다.

남궁천이 해준 조언을 떠올리면서 항상 운기하려고 노력했다.

그 덕에 이제는 혁련장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펼칠 수 있게 됐다. 그와 동시에 부가적인 효과를 또 얻게 됐는데, 바로 악력이 말도 못 하게 강해졌다는 것.

그래도 이젠 나름 조절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그게 그렇게 똑 부러질 줄이야.’

윤종승이 내심 혀를 차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린 송원교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윤종승, 너 이 개새끼! 죽여 버리겠어!”

“음…… 손목은 미안하게 됐다. 치료비는…….”

“닥쳐! 뭣들 해? 저 새끼 밟아!”

송원교가 악귀 같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윤종승이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나?

윤종승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송원교와 같이 앉아 있던 세 명을 보았다.

백리향과 이 두 사람의 졸개나 다름없는 생도 두 명.

‘셋 정도라면 뭐 어떻게든…….’

셈을 마친 윤종승이 신입 생도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은 그만 가라.”

“예? 그, 그럼 국수는…….”

순간 윤종승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아니, 뭐 이런 나 같은 새끼들이 다 있지?

“국수로 제사상 차리고 싶어?”

“지,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렇게 세 사람이 떠나자, 윤종승이 서서히 기운을 끌어 올렸다.

‘뭐, 차라리 잘된 건지도. 이 녀석들을 상대로 그동안 수련한 성과를 확인해 볼…….’

그때였다.

드르륵. 드르르륵.

순간 이 층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의자를 빼고 일어나면서 윤종승을 향해 돌아서는 게 아닌가?

하나같이 흉흉한 투기를 드러내고선.

어…… 이건 아닌데? 뭐지?

윤종승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춤 물러나는데, 주저앉아 있던 송원교가 여전히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잔뜩 쉰 소리를 내뱉었다.

“말했지? 이 새끼야. 넌 이제 뒈졌다고.”

“…….”

“올해 입관할 정주문의 무인들이다.”

“이게…… 다?”

“그래. 정주문에서 관할하는 무관만 해도 열 군데가 넘지. 아무튼 넌 이제 뒈진 거야, 이 개새끼야.”

“으음.”

대체 이게 다 몇 명이야? 이 새끼, 용천관을 혼자 다 먹여 살릴 생각인가?

윤종승의 표정이 천천히 일그러진다.

이건 확실히 예상 밖이다.

‘내 계산에 없는 경우란 말이지. 이렇게 된 이상…….’

윤종승이 돌연 자세를 풀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과연 정주문이다. 본 가가 정주문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구나. 올해 입관할 후배들! 잘 들어라. 이 선배가 너희들에게 따끔한 훈계를 내리고 싶지만, 내가 좀 바빠서 말이야.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그럼 입관을 축하한다!”

타닷!

말을 마친 윤종승이 눈 깜빡할 사이에 몸을 날리더니 난간을 훌쩍 뛰어넘고는 사라지는 게 아닌가?

송원교가 악에 받쳐 고함을 내질렀다.

“뭣들 해! 저 새끼 잡아서 족쳐!”

“옛!”

대답과 동시에 스무 명에 가까운 무인들이 일제히 몸을 날려 뒤를 쫓기 시작했다.

* * *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무한의 막다른 골목길.

벽에 등을 대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윤종승.

찢어지고 퉁퉁 부어오른 눈두덩이에서는 핏물이 자꾸만 흘러내린다.

머리카락 역시 피에 젖어서 눅눅하다. 입술도 찢어져 이가 벌겋게 물들었다.

하나 그의 주변에는 더 처참한 몰골로 널브러져 있는 신입 생도들이 너댓 명이나 된다.

뼈가 부러졌거나, 깊은 내상을 입어 움직일 수 없는 자들이다.

그래도 아직 윤종승을 에워싼 자들은 열댓 명.

생도 하나가 윤종승을 노려보며 이를 빠득 갈았다.

“저 지독한 새끼……!”

“헉, 헉……! 내가…… 남궁천에게 한 가지 배운 게 있거든. 그게 뭐냐면…….”

윤종승이 말을 하는 사이, 신입 생도 하나가 번개처럼 달려갔다.

퍼억!

그가 내지른 일권이 그대로 윤종승의 안면을 때렸다.

하나 한 차례 휘청거리던 윤종승이 곧장 중심을 잡더니 튕기듯이 반격한다.

뻐어억!

“크어어억!”

그대로 명치를 얻어맞은 신입 생도가 그 자리에 고꾸라지면서 피를 토해낸다.

“쿠웨에에엑!”

“헉, 헉…… 말하고 있는데, 씹새끼가…… 그게 뭐냐면…… 처맞을수록 더 잘 싸우는 법이었지.”

말을 마친 윤종승이 씨익 웃자, 핏물이 스며든 이가 섬뜩하게 드러난다.

윤종승을 에워싼 이들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윤종승이 피식 웃었다.

“왜? 쫄리냐? 그래도 나라서 다행인 줄 알아라. 남궁천한테 걸렸으면 네놈들 진작 시체 신세니까.”

“이익, 쳐라!”

순간 십수 명이 기세를 끌어 올리자, 윤종승이 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드루와! 드루와! 이 씨부랄 것들아! 드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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