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135화 (135/508)

135. 허황된 생각이 용을 잡는다

현란하다.

살벌한데 아름답다.

담백한데 다채롭고, 묵직한데 빠르다.

분명 그 특징만 놓고 본다면 그 어디보다 남궁세가 무공답다.

한데 처음 본다.

낯설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실전형이라서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느낌이 강하다.

그럼에도 완벽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인가?

남궁화는 점점 두 사람의 대련에 빠져들었다.

십 합? 아니, 오 합.

그래, 남궁천이 오 합만 받아내도 정말 대견하다고 생각했을 터다.

그런데 지금 수십 합을 겨루고 있지 않나?

언뜻 보면 남궁천이 받아내는 게 아니라, 남궁검이 쏟아지는 폭격을 받아내느라 급급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버지…… 즐기시는구나.’

아버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하나 두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단하게 빛나고 있다.

즐기시는 거다.

온전히 대련에만 몰두하고 계시는 거다.

이 정도 된 이상 대련이 아니라 비무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미묘한 차이지만, 지금 남궁검은 즐기는 것이 틀림없다.

‘실망하셨다면 벌써 얼굴에 드러났을 테지.’

남궁화의 추측대로 남궁검의 정신은 오롯이 대련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다르면서도 닮았구나.’

언뜻 보면 전쟁터에서 구르고 구르다가 변질된 남궁세가의 무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많은 모습을 담았다는 뜻이리라.

‘이것이 창벽공. 창벽검인가?’

남궁천이 펼친 무한보다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분명 같은 보법으로 움직이지만 느낌은 달랐다.

아마도 창벽공을 운용하면서 펼쳤기 때문이리라.

‘하면 본 가의 모든 무공을 창벽공으로 펼칠 수 있단 말인가?’

이상할 건 없다.

창벽공 역시 본 가의 절대고수가 만든 무공이라고 전해졌으니까.

어쨌거나 혀를 내두를 만한 무공이다.

이런 기분을 느낀 게 언제던가?

그러고 보니 참 오래되었다.

남궁선이 마지막이었으니.

언뜻 그리움에 빠져드는데, 벽라검이 눈앞으로 파고들면서 단상을 깨버렸다.

쉬이이잇!

스팟!

허리를 젖히자 벽라검이 남궁검의 수염 몇 가닥을 잘라내며 눈앞으로 지나간다.

남궁검이 곧장 허리를 비틀며 검을 횡으로 후려쳤다.

쒸에에엑!

타앙!

‘또?’

남궁천이 이번에도 검집으로 막아냈다.

검술에서 검집을 활용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기에 남궁검은 다소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검집을 들고 자칫 양손을 함부로 사용하다간 초식이 꼬일 수 있다.

그렇기에 하나의 검에만 집중하는 게 정석이다.

한데 검집을 사용하면서도 남궁천의 보법이나 검로는 조금도 꼬이지 않는다.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리라.

언뜻 언뜻 남궁천의 표정을 보면 지금 이 순간도 뭔가를 깨닫고 있는 표정이다.

즉, 창벽공이나 창벽검이 대성한 경지에 이르지는 않았다는 뜻.

‘그럼 어디 한번……!’

남궁검의 눈매가 가늘어지더니, 그가 발끝으로 바닥을 툭 찍어 차면서 바람처럼 날아갔다.

휘리리리링!

검신이 춤을 추면서 남궁천의 심장을 향해 굽이치듯 파고든다.

남궁천이 미간을 모으고는 마주쳐온다.

‘곧장 파고든다?’

남궁검은 내심 황당한 마음이었다.

뒤로 물러나면서 받아야 힘을 분산시킬 수 있는 법이거늘.

대체 어쩌자고?

쉬이이잇!

검봉이 화살처럼 날아든다.

내공대결로?

남궁검의 눈빛에 아쉬움이 스치는 순간,

스슷!

날아들던 검봉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궁천이 검봉을 거둬들이는 것과 동시에 왼손에 든 검집을 있는 힘껏 후려치는 게 아닌가?

꽈아앙!

폭음 같은 소리가 울리면서 남궁검의 검이 튕겨 나갔다.

‘이, 뭔……!’

촤아앗!

발이 미끄러지면서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남궁검을 향해 남궁천이 미끄러지듯 날아들었다.

슈슈슈슈슉!

검신이 하나에서 두 개로, 두 개에서 네 개로 다시 여덟 개로 무수히 쪼개진다.

쾌검의 묘리를 담았으면서도 묵직한 검격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놀랍구나. 놀라워!’

이제 남궁검의 눈빛은 순수한 감탄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남궁천의 두 눈을 마주 보면서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이 아이의 눈은 마치…….’

대살성으로 내몰렸던 진천랑이 떠오른다.

제 아비를 꼭 닮지 않았는가?

짙푸른 기운에 죽음의 기운까지 더해지니 등골마저 서늘할 정도로 음산하다.

당장 목숨을 내던지고 필살의 의지만을 담은 채 펼쳐지는 패도적인 검격은 영락없이 제 아비의 모습을 빼박았다.

한데 거짓말처럼 유연해지며 변화무쌍하면서도 재빠른 몸놀림을 보면 제 어미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이래서야 숫제 괴물이 아닌가?

천하제일룡이 되겠다고?

어쩌면…… 어쩌면 너는…….

‘그마저 뛰어넘을지도 모르겠군.’

다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창벽공이 너무 막강해서인가? 아니면 거친 인생을 살아온 제 아비의 피를 이었기 때문인가?

대련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남궁천이 무공에 잡아먹힐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한마디로 무공을 제어하는 게 아니라, 무공의 흐름에 따라 몸이 절로 움직인다는 뜻.

이는 검신합일의 경지와 다른 의미다.

의지가 본인에게 있느냐, 무공에 맡겼느냐의 차이다.

지금 남궁천은 그 의지를 조금씩 무공에 맡겨가는 중.

‘아직은 완전한 제어가 안 되는군.’

그래도 이만한 게 어딘가?

난해하기만 하고 쓸모없다고 여긴 창벽공과 창벽검을 이만큼 해석해낸 것도 대단하다.

파바바바밧!

어지럽게 공방이 오가던 중, 남궁검이 디딤발을 딛고는 매섭게 일장을 뻗어냈다.

마침 날아들던 검집이 그의 일장에 부딪치면서 폭음이 터졌다.

콰아아앙!

촤아아앗!

츠츠츠츳!

두 사람이 순간 멀찍이 멀어졌다.

다르르르.

응축된 기가 폭발하면서 전각의 기와가 떨리는 소리를 내지른다.

“훅, 훅, 훅……!”

남궁천이 어깨를 들먹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에 반해 비교적 내공이 견고한 남궁검은 길게 숨을 내쉴 뿐이었다.

“후우우우.”

하나 그 역시 얼굴은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남궁검이 검을 검집에 갈무리했다.

“여기까지 하자꾸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남궁천이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남궁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가르친 게 없다. 모두 너 홀로 터득한 것이다.”

“아닙니다. 부족한 점을 깨달았습니다.”

남궁검의 눈자위가 꿈틀거린다.

부족한 점을 깨달았다고?

허참. 지금쯤 자신을 상대로 이만큼 버텼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져도 모자랄 판이건만.

‘이미 잠룡이로구나.’

남궁검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생각을 떨쳐내고는 말을 이었다.

“삼 개월간의 수련이 헛되진 않은 듯하다.”

“과찬이십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보아하니 창벽공은 꽤나 패도적인 듯하다. 잘 다스려야 할 것이다. 유혹이 강할수록 함정도 큰 법.”

자칫 강한 힘에 도취되어 자아를 잃으면 그게 바로 주화입마의 지름길이 된다.

남궁천 역시 그 뜻을 잘 알았기에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내일 떠난다고 했느냐?”

“예.”

“곧장 무림맹으로 가는 것이냐?”

“예, 그리 들었습니다.”

남궁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래전, 그 역시 무연회에서 우승하고 무림맹 견습생으로 시작한 적이 있었다.

떠올려보면 엊그제 같은 일인데 벌써 자신의 손자가 무림맹 견습생이 되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

“조심해라.”

“예, 가주님.”

남궁천이 포권을 하고는 돌아서는데, 남궁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보아라.”

“예?”

남궁천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돌아서니, 남궁화가 봉목을 부릅뜨고선 입을 가리고 있었다.

왜 저렇게 놀라는 거야?

한데 이상한 태도는 남궁화만이 아니다.

남궁검이 거칠게 헛기침을 하더니 뒷짐을 지고는 먼 산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뭐라고 하셨습니까?”

“커흠! 불러 보라고 했다.”

“예? 뭘요?”

“거, 녀석. 커흠! 흠! 할아비라고…… 불러 보라고 했다.”

“아…….”

남궁천이 그제야 말귀를 알아듣고는 굳었다.

뭐야? 이 영감! 갑자기 낯간지럽게?

은근히 손자 정이 고팠던 거야?

뭐, 그거야 어려운 일은…….

“커흠! 흠!”

어려운 일이군.

막상 부르려니 입이 잘 안 떨어진다. 손발이 오글거린다고나 할까?

두 사람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남궁화가 고개를 돌리고는 풋 웃었다.

누군가 보았다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될 광경.

남궁화는 고개 돌려서 웃음을 참고 있고, 남궁검은 등진 채로 먼 산을 바라본다. 그리고 남궁천은 우물쭈물거리면서 입을 금붕어처럼 뻐끔거린다.

그 어색하고도 길고 긴 침묵 끝에 참다못한 남궁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됐다. 그만 가보…….”

“다녀오겠습니다, 할아버지.”

“……!”

순간 남궁검이 흠칫거렸다.

한참 후에야 남궁검의 입에서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밥 잘 챙겨 먹어라.”

“예, 할아버지.”

남궁천이 다시 한번 포권을 하고는 돌아섰다.

남궁천이 후원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남궁검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괜히 두 사람을 지켜보는 남궁화만 눈가를 소매로 찍을 뿐이었다.

그리고 전각을 돌아 나온 남궁천.

아오! 내 손발! 어떡할 거야?

그 자리에 주저앉은 남궁천이 오그라든 손발을 펴느라 잔뜩 힘을 주었다.

* * *

다음 날, 복성은 남궁천을 배웅하기 위해 마을 어귀까지 따라 나왔다.

복성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잔뜩 젖은 목소리를 꺼냈다.

“흑…… 부디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밥 잘 챙겨 드시고요.”

“내가 애냐? 다들 왜 이렇게 밥 챙겨 먹으라고 난리야?”

남궁천이 투덜거리면서도 내심 미소를 지었다.

수십 년을 살면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밥 챙겨 먹으라는 한마디에 온갖 정이 다 들어갔다는 걸 이제 알 것 같다.

“뵌 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이별이네요. 보고 싶을 겁니다, 소가주님.”

“그래. 걱정하지 말고. 너도 잘 지내라.”

“네, 공자…… 아니, 소가주님.”

“그냥 공자님이라고 불러.”

“싫어요. 소가주님.”

복성은 연신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훌쩍였다.

남궁천이 피식 웃어넘겼다.

언덕에 올라서자 호화스러운 마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한데 윤종승이 보이지 않았다.

“윤종승이 안 보이네?”

그러자 마부석에 앉은 시종이 얼른 달려와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공자님, 윤 공자님은 열흘 전에 먼저 맹으로 떠나셨습니다요.”

“뭐?”

“폐관수련을 방해할 수 없으니 제게 말씀을 전달해달라고 하시고는 먼저 맹으로 가셨습니다요. 이 마차는 공자님을 모실 마차입니다요. 윤 공자님이 준비한 것이지요.”

“흐음. 이것 봐라. 이젠 대가리를 굴리네.”

남궁천이 어딘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뭐, 할 수 없지. 그럼 갈까?”

남궁천이 입을 열자, 바로 곁으로 손우곤이 다가왔다.

“예, 그럼 가시지요. 주군.”

“응? 너는 왜?”

“예?”

“넌 어딜 가는데?”

“저도 가야죠?”

“그러니까 어딜?”

“그거야…… 주군이 가시는 학관? 무림맹?”

남궁천은 왠지 피곤함을 느끼면서 되물었다.

“네가 거길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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