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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공검제-130화 (130/508)

130. 남궁세가니까요

파계승들이 몸소 무소유를 실천하고 미련 없이 돌아서자, 남궁천도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고는 돌아왔다.

남궁검이 남궁천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는 길에 묘한 소리를 들었다.”

“무슨 말씀인지요?”

“장 가주가 광승회와 결탁을 했다고?”

“아, 네. 그러잖아도 거기로 안내하려고 했습니다.”

“거기라니?”

“장 가주님을 여기 지객당에 모셔두었습니다.”

그러자 상황을 관망하던 남궁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모셔두었다고?’

하긴.

남궁천 입장에서는 장원식이 그래도 집안 어른인 만큼 함부로 대하기가 어려웠으리라.

게다가 남궁천은 정식 소가주도 아니지 않은가?

장원식에게 아무리 심각한 혐의가 있더라도 집안 어른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껄끄럽고 조심스러웠을 터.

‘아직 어리긴 어리구나. 가만, 이 기회에 차라리 저놈에게 장원식을 심문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 되겠는데?’

어려서부터 주변인의 눈치만 살피던 남궁천이다.

뭐,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긴 했다지만 집안 어른을 대할 때만큼은 몸에 배인 습관이 나오게 마련일 터.

어쩌면 잔뜩 주눅이 들어 제대로 심문조차 못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직은 한참 어린 나이.

경험이 미숙한 만큼 어설프게 심문을 한다고 해도 장원식의 입을 통해 뭔가를 얻어내기는 어려울 터.

오히려 장원식의 기세에 남궁천이 짓눌릴 수도 있으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남궁표가 조소를 숨기고는 입을 열었다.

“가주님,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남궁천에게 장 가주를 심문토록 하는 것이 어떤지요? 어차피 광승회를 이현에서 내쫓은 것도 남궁천이니 마무리도 확실히 짓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남궁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나섰다.

“그래도 천이에게는 고모부님이 집안 어른입니다. 아무래도 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남궁천이 심문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무릇 소가주가 되려고 한다면 공사 구분을 철저하게 해야 할 터. 이또한 소가주의 재목으로 검증하는 절차가 아니겠느냐?”

남궁표가 다시 강하게 주장했지만, 이번만큼은 남궁화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숙부님. 그래도 아직 소가주가 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검증하는 차원이라 하지 않느냐?”

“하지만……!”

남궁화가 다시 반박하려는데, 남궁천이 불쑥 끼어들었다.

“자자, 두 분 싸우지들 마세요. 심문이라면 이미 해봤습니다.”

“뭐라?”

남궁표와 남궁화가 동시에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남궁천이 어깨를 으쓱였다.

“심문해 봤습니다. 그런데 별로 건질 게 없더라고요.”

남궁표가 냉소를 지었다.

“그건 네가 마음이 약해서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겠지. 아니면 화의 말처럼 집안 어른이라는 생각에 공사 구분을 제대로 못해 어설프게 심문했거나.”

“흐음. 나름 열심히 해봤는데. 다시 해야 할까요?”

남궁천이 중얼거리며 머리를 긁적이자, 남궁표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집안 어른일지라도 가문에 중한 위기를 초래했다면 엄한 벌을 받는 것이 당연지사. 다소 모진 말처럼 들리더라도 죄인에게 사적인 온정이나 예의를 따지는 것은 웃긴 일이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제가 다시 심문해 보겠습니다.”

“언제 하겠느냐?”

“언제가 좋을까요?”

남궁천이 되묻자, 남궁표가 조소를 머금고는 답했다.

“멀리 미룰 것이 뭐가 있겠느냐? 오늘 가주님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진행해도 좋겠지.”

남궁표가 슬쩍 남궁검의 눈치를 살폈다.

한편 남궁화는 내심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숙부님은 천이의 경험이 부족한 걸 이용해서 소가주가 되지 못하게 하려고 작정을 하셨구나.’

무공이 강한 것과 별개로 사람과의 관계는 연륜과 경험이 중요한 법이다.

어느 정도 인생을 겪어야 상황에 맞는 처세를 보일 수 있을 텐데, 그러기엔 남궁천이 아직 너무 어렸다.

남궁표는 그런 남궁천의 단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중이었다.

과연 가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남궁천이 집안 어른을 제대로 심문할 수 있을까?

이래저래 눈치 보일 게 너무 많은 상황일 텐데.

괜히 옆에 선 남궁설희를 힐끔거렸지만, 그녀는 남궁검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의견도 내지 않았다.

남궁검이 딱히 반대하지 않자, 남궁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지금 해보겠습니다. 아, 도착했습니다. 여깁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남궁천이 지객당 입구에 서서 안쪽을 가리켰다.

남궁검이 앞장서서 지객당으로 들어섰다.

마침 방안으로 완전히 들어선 남궁검이 순간 우뚝 멈추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뒤를 바짝 뒤따르던 남궁표가 남궁검의 등에 부딪힐 뻔하다가 얼른 옆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는 곧 방 안을 돌아보고는 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리고 말았다.

뒤이어 들어오던 남궁화와 남궁설희도 마찬가지.

사람들의 눈이 주먹도 들어갈 만큼 커졌다.

방 복판에는 철제 의자에 꽁꽁 묶인 장원식이 완전히 피투성이로 곤죽이 되어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닌가?

핏물에 잔뜩 젖은 걸레처럼 축 늘어져 있던 장원식이 기척을 느끼고는 퉁퉁 부어오른 눈을 슬그머니 치떴다.

그는 순간 남궁검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힘겹게 목소리를 꺼내기 시작했다.

“가, 가주님…… 살, 살려…… 주십시오…… 제발…… 사려…… 주십시오……!”

어찌나 두들겨 맞았는지 성한 곳은 단 한 군데도 보이지 않을 지경.

앞니도 두세 개 빠진 상태라 발음도 정확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아직 살아서 움직이는 게 용한 지경.

대경실색한 남궁표가 히끗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니……! 어찌…… 이 꼴이란 말이냐?”

“말씀드렸잖아요. 심문했다고요.”

“심, 심문을…… 대체 어찌 했기에…….”

남궁표가 입을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말을 흘렸다.

남궁천이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어떻게? 더 할까요?”

“으응……? 뭐, 뭘?”

“심문이요. 더 진행할까요? 뭐가 더 나올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뭐 일단은 공사 구분하지 않고 다시 해볼까 싶기도 하고요.”

“더 하면…… 죽겠는데?”

“에이, 마음 약해지지 말라면서요. 살려는 드릴게요.”

뭘 살려는 줘? 이 미친놈아!

남궁표가 기가 차서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남궁천이 장원식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장원식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으어어어……! 살, 사려주세효오옷! 사, 사람 살려어어엇! 저, 저리 가! 이 악귀야! 가주님! 제발! 살려주십시오오옷!”

장원식은 그야말로 발작에 걸린 사람처럼 몸부림을 쳤다.

그 처절한 반응에 남궁표는 물론 실내의 모든 사람들이 서늘한 기분을 느꼈다.

‘도대체 무슨 짓을 어찌 당했기에 저런 반응을…….’

남궁표가 입을 딱 벌리는 중에도 장원식은 절망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저, 저는 아는 게 더 없습니다! 으어어! 정, 정말입니다! 매달 일정한 대가를 주겠다고 해서…… 그래서 광승회에 상권을 넘기기로 한 것뿐입니다! 제발……!”

“그건 아까 했던 말이고. 뭐, 살려는 드릴게.”

마침 바로 앞에 다가선 남궁천이 손가락을 우두둑 꺾었다.

순간 장원식의 얼굴에 해탈한 듯 미소가 피어올랐다.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잠깐.”

마침내 남궁검이 나서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를 꺼냈다. 그가 눈을 가늘게 여미고는 장원식을 쏘아보았다.

“하면 자네는 그들이 파계승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도 상권을 넘겼다는 말인가?”

“죄, 죄송합니다, 가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으흐흑!”

장원식이 참혹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한지 남궁표마저 측은지심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남궁천은 가차 없이 장원식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확 들어 젖혔다.

“용서는 무슨.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지옥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으으……! 제발…… 이제 그만……!”

장원식의 말을 무시한 채 남궁천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자, 그럼 다시 심문 시작하겠습니다.”

“계, 계속하겠다고?”

남궁표가 저도 모르게 더듬거리며 묻자, 남궁천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라면서요?”

“어어? 아…… 음…… 그게…….”

그러자 장원식이 남궁표를 보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제발…… 그만 죽여주십시오. 저는 다 말했습니다. 더 이상 아는 게 없습니다.”

“……라는데요?”

남궁천의 마지막 말에 남궁표는 마른침만 꿀꺽 삼킬 뿐이었다.

뱉어놓은 말이 있으니 거둘 수도 없고.

그때 남궁검이 모래바람처럼 삭막한 음성을 흘렸다.

“그만하면 됐다.”

“흠. 조금 아쉽지만 가주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남궁천이 고개를 숙이자, 남궁표가 기겁을 했다.

아쉽긴 뭐가 아쉬워! 인마!

사람을 저리 곤죽을 만들어놓고도 입맛을 다시는 걸 보니, 남궁천이 정말 사람인가 싶다.

남궁검이 장원식을 차갑게 일별하고는 물었다.

“더 밝혀진 것은 없는 것이냐?”

“예, 뭐 하나가 있긴 한데…….”

남궁천의 눈길이 슬쩍 남궁표에게 향한다.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낀 남궁표가 괜히 긴장하며 눈을 부릅떴다.

뭐야? 저놈이 왜 나를 봐?

남궁검이 물었다.

“무엇이냐?”

“광승회로부터 받은 자금의 일부가 공교롭게도 무한 쪽으로 흘러간 것 같습니다.”

“무한? 설마 무림맹을 말하는 것이냐?”

“아, 그건 아니고요.”

남궁천의 시선이 남궁표에게 향한다.

남궁세가 일원 중 유일하게 무한에 터를 잡은 남궁표.

순간 남궁표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남궁표가 주춤주춤 물러서며 손사래를 쳤다.

“어어……? 아닙니다! 가주님! 저는 아닙니다! 형님, 누님! 전 정말 아닙니다!”

“참 이상하네요. 분명히 저기로 자금이 이동했다던데. 안 그래요?”

남궁천이 여전히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로 묻자, 장원식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습니다. 매달 무한에 계시는 남궁표 형님께 일부 자금을 보내 드렸습니다.”

“그, 그건 네놈이 가문을 재건하기 위해 쓰라고 준 돈이 아니더냐!”

남궁표가 발악하듯 외치자, 남궁천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그러니까…… 받긴 받으셨네요?”

“뭐? 아, 아니. 그, 그거야…….”

순간 남궁검이 남궁표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사실이더냐?”

“형님!”

“사실이냐고 물었다.”

“형님, 저는 결백합니다! 정말 가문의 재건을 위해 장 가주가 아끼고 모아서 건네준 돈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내막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돈의 출처도 확인하지 않고 받았더란 말이더냐!”

남궁검이 전에 없이 엄하게 꾸짖자 남궁표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실내 분위기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을 때, 남궁천이 해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역시 이쪽을 추궁해야 할까요?”

남궁천이 장원식의 머리카락을 확 젖히면서 물었다.

“확실히 얘기해 주시죠? 이 모든 게 고모부 할아버님의 악랄하고 지독한 단독범행입니까? 아니면, 그저 여기 계신 다른 누군가와 함께 분위기에 휩쓸려 저지른 실수입니까?”

저…… 저……! 무슨 질문이 그따위야? 인마!

남궁표는 이제 입에 거품을 물기 직전이었다.

한편 장원식의 머릿속은 위기 속에서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남궁천은 눈으로 협박하고 있었다.

혼자 장렬하게 죽을 것인지, 남궁표와 죄를 나눠 가질 것인지.

장원식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차피 가문을 배신한 대가로 죽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다.

한 명이라도 끌어들인다면 운이 좋아 죄가 경감될지도 모를 일.

그렇다고 언젠가 들통이 날 수도 있는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법. 자칫 모함한 게 드러나면 그땐 정말 죽을 수도 있기에.

빠르게 고민을 끝낸 장원식이 가장 좋은 대답을 골랐다.

“그것은…… 대답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그 순간 남궁표의 표정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려 버렸다.

뭐, 뭐야? 인마! 저게 지금 누굴 물고 늘어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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