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116화 (116/508)

116. 집에 갈 시간이다

“분위기가 왜 이리 어수선해요? 문도 열려 있고…… 응? 저기 쓰러진 사람은 우리 사범 아니에요?”

아직 남궁천을 발견하지 못한 윤종승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전황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문지기 하나가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달려와 소리쳤다.

“맞습니다, 공자님! 웬 미친놈이 나타나서 다짜고짜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좀 시끄러운 상황입니다! 죄송합니다!”

“미친놈? 아니, 감히 어떤 미친놈이 송백관에서 행패를 부린단 말이야?”

“저기 저놈입니다!”

문지기가 씨근거리며 남궁천의 등을 손으로 가리켰다.

남궁천이 천천히 돌아서자, 윤종승도 그제야 알아보고는 흠칫거렸다.

“어……? 남궁천?”

“그래, 나다. 종승아.”

“네가 여긴…… 왜?”

윤종승이 살짝 얼어붙은 표정으로 묻는데, 눈치 없는 문지기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글쎄, 저 미친놈이 다짜고짜 찾아와서 차무진 사범을 데려가겠다지 뭡니까? 게다가 저희들이 방심한 틈에 무력까지 쓴 악질입니다!”

“차무진 사범이라니?”

“저기 서 있는 잡니다.”

이세적이 끼어들어 가리키자, 차무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사드립니다, 공자님. 차무진입니다.”

윤종승이 설명을 바라는 눈치로 돌아보자, 이세적이 어깨를 쫙 펴고는 자랑스럽다는 듯 떠들어댔다.

“원래 남궁가 창응대 부대주입니다. 하나 어차피 몰락한 남궁가 아니겠습니까? 언제 정해질지도 모르는 소가주를 기다리면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느니, 본 관에 와서 사범을 맡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했지요.”

“그래서?”

“흔쾌히 응해서 계약까지 했습니다.”

이세적이 뿌듯한 표정으로 윤종승을 보았다. 마치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표정이다.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남궁세가에서 부대주 자리까지 오른 인재를 고용했으니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 아닌가?

한데 어째 윤종승의 표정이 똥 마려운 강아지 같다.

평소 같았으면 엉덩이라도 두드려줄 판일 텐데.

이세적이 묘한 위화감을 느끼는데, 남궁천이 윤종승에게 말을 걸었다.

“마침 잘 왔어. 여기가 너희 가문 관할이었나?”

그러자 윤종승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문지기가 다시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저, 저! 미친놈! 감히 어느 앞이라고 혓바닥을 놀려대는 거냐! 당장 무릎 꿇고 사죄를 해도 용서할까 말까 하거늘!”

“그쪽은 좀 닥치고.”

“뭐, 뭣이? 대살성의 사생아 주제에 무연회 우승했다고 기고만장하는 꼴이라니! 우리 공자님이 작심하고 대회에 임했다면 그깟 우승이 네놈에게 갔을 것 같으냐? 그렇지 않습니까? 공자님.”

“커험! 그만해라.”

“아닙니다, 공자님! 저런 놈에게는 현실을 확실히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공자님께서도 그러셨잖아요? 작심하고 대회에 임했다면 우승을 하셨을 거라고요.”

“커흠흠! 글쎄, 그만하라니까.”

“공자님! 겸손이 지나치면 미친놈에겐 만만해 보일 수 있습니다! 저 주제 파악도 못하는 미친 사생아 놈에게 확실히 각인시켜야 합니다!”

이 미친놈아!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 그만하라고! 좀!

하지만 윤종승을 옆에 둔 문지기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다는 듯 기세등등해져서는 침까지 튀며 말을 이어갔다.

“이노오옴! 당장 무릎을 꿇지 못할까! 감히 우리 공자님 앞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눈을 부라리다니! 지옥 구경을 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그 눈깔을 확 뽑아……!”

퍽!

결국 참다못한 윤종승이 문지기의 뒤통수를 세차게 후려쳤다.

이어서 그대로 고꾸라진 문지기를 사정없이 발로 밟아댔다.

“그만하라고 했지? 이 미친놈아! 눈알을 왜 뽑아! 징그럽게! 엉? 뒷일은 네가 책임질 거야?”

퍽! 퍽! 퍽……!

“크윽! 공, 공자님……? 갑자기 왜…… 컥!”

“시끄러워, 이 새끼야! 뭐? 지옥을 구경해? 네가 진짜 지옥을 겪어봤어? 지옥을 아냐고!”

퍽! 퍽! 퍽……!

느닷없이 윤종승이 문지기를 두드려 패기 시작하자, 관주는 물론 다른 무인들도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서 주춤주춤 물러났다.

보다 못한 이세적이 나섰다.

“공, 공자님? 고정하시지요. 이러다 죽겠습니다.”

“아니, 그러게 왜 말을 안 들어!”

이세적이 눈치껏 고개를 조아렸다.

기실 무공도 약한 그가 송백관주의 자리에 앉아 있는 건 눈치가 빠른 덕이기도 했다.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공자님.”

“제길!”

그제야 윤종승은 욕지거리를 뱉어내고는 돌아섰다. 분위기가 묘한 걸 눈치챈 그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커흠! 남궁천은 내 친구다! 내 친구를 무시하는 것은 나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한참을 씨근거린 윤종승이 심호흡을 하고는 남궁천을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네 말대로 여긴 우리 가문이 운영하는 무관이야. 미안하게 됐다.”

“그래? 그럼 얘기가 빨라지겠네. 들었다시피 차무진은 본 가의 창응대 부대주야. 잠시 소일거리가 필요해서 사범 일을 맡았나 본데, 이젠 내가 데려가야겠다. 듣자 하니 계약서에 독소조항이 있어서 위약금도 터무니없이 비싼 모양이던데 이 일을 어찌 생각하냐? 참고로 나는 지금 몹시 기분이 나쁘다.”

그러자 윤종승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물들어갔다.

그가 살벌한 표정으로 돌아보자, 이세적이 자라목이 되어서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 그것이…… 인재를 영입하려는 과욕이 앞서다 보니…….”

“관주께선 어찌 그리 생각이 못돼 처먹었소?”

“예?”

“이웃 가문의 형편이 어려워졌으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진 못할망정 그 틈을 타서 인재를 빼 와? 그걸 자랑이라고 떠들어대고? 누구 맞아 죽는 꼴 보고 싶소?”

아니, 진짜 이게 뭘 잘못 처먹었나?

왜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착한 척이야? 게다가 맞아 죽는 건 또 뭔 소리람?

평소 같았으면 쓰담쓰담이라도 받을 일이건만, 이래서야 뒤통수 맞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 아닌가?

이세적이 얕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내게 죄송할 문제가 아니지 않소?”

“끄음. 남궁 공자, 죄송하게 됐소.”

이세적이 포권을 취하며 고개까지 숙이는 걸 본 윤종승이 남궁천에게 말했다.

“미안하게 됐다. 우리 쪽에서 실수한 모양이야. 이번 일은 이 정도로 좀 봐주라.”

“우리 애가 귀싸대기를 맞았어.”

“뭐……?”

윤종승이 눈꼬리를 파르르 떨면서 이세적을 돌아보았다.

‘이 망할 영감탱이가 진짜 누구 죽는 꼴 보려고 그러나?’

‘히익!’

오싹한 기분을 느낀 이세적이 제 뺨을 철썩철썩 후려쳤다.

윤종승이 혀를 차고는 다시 돌아섰다.

“이걸로 퉁 치면 안 될까?”

“기분이 안 풀리는데.”

“내 얼굴을 봐서라도 봐주라.”

“네 얼굴 보니까 더 안 풀리는데.”

“끄응.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아, 금전적으로 보상하면 어떨까?”

그야말로 이상한 상황.

계약을 어기게 만든 것도 남궁천이고, 먼저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것도 남궁천인데, 윤종승이 절절매고 있지 않은가?

지켜만 보던 차무진이 손우곤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형님. 대체 이게 어찌 된 겁니까?”

“나라고 알겠느냐? 다만,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형님 눈은 뭘 봤는데요?”

손우곤이 남궁천을 물끄러미 보다가 나직이 읊조렸다.

“잠룡.”

“……!”

그러는 사이 남궁천이 팔짱을 끼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내가 거지 새끼로 보여?”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돈은 됐고. 당장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럼?”

“내가 필요할 때 너희 가문의 힘을 한 번 빌리도록 하자.”

“뭐?”

“그게 언제가 될지 몰라. 다만 내가 필요할 때 한 번은 너희 가문이 날 돕도록. 어때?”

“하지만 그건 아버지가…….”

“그건 네 사정이고.”

남궁천이 냉정하게 말허리를 자르자, 윤종승이 입술을 꾹 씹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시선이 마침 양팔에 차고 있는 토시로 향했다.

남궁천이 특별히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준 토시.

윤종승이 결심을 굳힌 듯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다들 들었지? 황산윤가의 소공자가 약속한 것?”

“들었습니다.”

복성과 손우곤이 동시에 대답했다.

남궁천이 차무진의 등짝을 짝 소리 나게 후려쳤다.

“자, 가자. 감사 인사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아, 아니. 잠깐만…….”

“뭐, 작별 인사라도 나누고 싶으면 천천히 와. 먼저 가 있을 테니까.”

남궁천이 휙 돌아서 성큼성큼 걸어가자, 차무진이 어쩔 줄을 모르다가 이내 뒤를 따라나섰다.

남궁천이 사라질 때까지 서 있던 윤종승이 마침내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못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와씨, 지릴 뻔했네.’

남궁천이 미쳐 날뛰면 어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한편 이세적이 윤종승에게 얼른 다가와 부축했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관주!”

“예?”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은 거요?”

“예?”

“대체 어쩌자고 그런 짓을 저지른 거요!”

“그, 그게 저는 그저 무관을 위해서…….”

“닥치시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따로 묻겠소!”

화가 잔뜩 난 윤종승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남궁천이 다시 찾아올까 싶어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 *

“귀소본능이란 은근히 무시할 수 없는 법이지.”

남궁천이 차무진의 술잔을 채우며 말을 이었다.

“부대주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그 귀소본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속 한구석에는 본 가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단 말이지.”

“그런 건 없습니다.”

차무진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남궁천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젠장, 소속감? 정체성? 그따위가 다 뭐요? 당장 입에 풀칠도 못하게 생겼는데!”

“봉급은 준다니까.”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못 믿겠으면 다시 가던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십니까? 송백관에서 그 난리를 쳤는데, 저보고 다시 돌아가라고요?”

“왜?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무슨 짓인들 못 해? 아직 배가 덜 고팠나 보네.”

“허! 언제는 돈 때문에 자존심 버리지 말라더니!”

“당연히 돈 때문에 자존심을 버리면 안 되지. 하지만 살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는 건 용기야.”

“허!”

차무진은 기가 차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하나 남궁천이 하는 말을 곱씹어보긴 했다.

무슨 나이도 젊은 사람이 인생 다 살아본 것처럼 얘기를 하나?

“보름.”

“……?”

“보름 안에 일을 끝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소가주가 될 기회가 생기지.”

“뭡니까? 그럼 보름 안에 일을 못 끝내면 소가주는 물 건너가는 겁니까? 게다가 일을 끝내도 소가주가 되는 게 아니라 고작 기회가 생긴다니요?”

“알다시피 내가 대살성의 사생아라서.”

“…….”

“반대가 심할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나는 소가주가 될 거야. 그러니 협조해. 이틀 후까지 애들 다 불러 모아. 그리고 우린 이현의 상권을 수복하러 간다.”

“뭐라고요? 이현으로 간다고요? 거기가 지금 어떤 지경인지 알고나 하는 소립니까?”

“모르고 하는 소리로 들려?”

“허!”

남궁천이 차무진을 물끄러미 보았다.

“자신 없으면 빠지고.”

“아니, 자신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버럭 소리친 차무진이 술잔을 집어 들었다.

남궁천이 불쑥 말했다.

“그 술 마시면 오늘부터 1일이다.”

“뭔……!”

“마시든지, 돌아가든지. 선택해.”

남궁천과 차무진의 시선이 허공에서 복잡하게 얽혔다.

이내 차무진은 옆에 묵묵히 앉은 손우곤을 힐끔 보더니 눈을 질끈 감고 혀를 찼다.

“젠장! 일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돌아가래! 쯧!”

결국 차무진이 거칠게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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