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115화 (115/508)

115. 집에 갈 시간이다

이건 미친놈인가?

문지기 하나가 실소를 터뜨렸다.

어디서 새파랗게 어린놈이 찾아와서는 요즘 무관에서 제일 잘나가는 차무진 사범을 찾다니?

게다가 뭐? 우리 애?

문지기가 눈썹을 성큼 치켜 올리고는 한 걸음 나섰다.

“꼬마야, 낮술이라도 처마신 거냐?”

“어? 어떻게 알았지? 조금 전까지 마셨는데. 술 냄새가 나나?”

“뭐? 아니, 어디서 이런 미친놈이…….”

“말조심하게.”

지켜만 보던 손우곤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한 걸음 나섰다.

하지만 남궁천이 곧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제야 문지기도 남궁천의 신분이 보통은 아니라고 판단하고는 나름의 예를 갖췄다.

“어디서 오신 공자님인지는 모르겠으나, 차무진 사범을 찾으시는 거면 정식으로…….”

“남궁세가에서 왔다.”

“남궁…….”

“남궁천이다.”

“남궁천?”

문지기가 서로를 보았다.

남궁천이라면 분명 남궁세가를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대살성의 사생아가 아닌가?

남궁세가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송백관에 나타나서 다짜고짜 차무진 사범을 찾는다고?

정말로 미쳐 돌아 버린 건가?

가만, 그러고 보니 무연회 우승했다는 소문이 돌긴 하던데…….

그걸 믿고 지금 여길 찾아와서 횡포를 부리는 건가?

그렇다면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 할 터.

문지기 하나가 인상을 구기며 한 걸음 더 나섰다.

“차무진 사범은 본 관 소속이오. 남궁세가에서 찾아올 일이 없을 것 같소만.”

“뭔 헛소리야? 차무진은 원래 본 가의 창응대 소속이야. 잠깐 소일거리를 찾았던 모양인데 이젠 집에 갈 시간이라니까.”

“거, 말이 안 통하는군. 운 좋게 무연회에서 우승했다고 기고만장하는 꼴이라니. 더 이상 횡포 부리지 말고 썩 돌아가시오.”

“우리 애만 데리고 나온다니까.”

“물러나라니까!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행패를 부리는 거요?”

문지기가 성큼 나서면서 남궁천의 가슴팍을 떠밀었다.

두어 걸음 밀려난 남궁천의 입매가 슬쩍 치켜 올라가더니 손우곤과 복성을 돌아보았다.

“다들 봤지? 쟤들이 먼저 밀었다?”

“예? 아, 예. 그렇긴 한데 어쩌시려고…….”

퍼억!

복성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남궁천이 문지기의 복부를 향해 발을 내질렀다.

* * *

“멀리 나오실 필요 없습니다, 관주님.”

정문을 향해 걷는 차무진이 극구 만류하는데도 송백관주 이세적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겨우 정문까지 배웅하는 것일 뿐인데 뭘 그리 부담스러워하는가?”

“아무튼 오늘 하신 말씀은 전혀 염려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송백관 소속으로 사범의 역할에 충실할…….”

콰당탕!

순간 정문이 벌컥 열리더니 거구의 문지기가 추풍낙엽처럼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바닥을 한참이나 구른 문지기가 이세적과 차무진의 발치에 겨우 멈췄다.

“끄으으!”

“이, 이게 무슨 일이냐?”

깜짝 놀란 이세적이 고개를 휙 돌렸다. 곁에 있던 차무진은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들고는 활짝 열린 정문을 노려보았다.

마침 약관도 지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무진아! 차무진! 집에 가자, 무진아!”

다짜고짜 소리치는 남자아이를 보고는 차무진은 물론, 이세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입만 척 벌렸다.

이세적이 뻣뻣한 자세로 차무진을 돌아보았다.

“자네가 아는 아이인가?”

“모릅니다. 가만…….”

순간 차무진이 눈살을 가늘게 여몄다.

그러고 보니 분명…….

“대살성의 사생아?”

“뭐라?”

이세적이 눈썹을 성큼 치켜 올리며 되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래고래 소리치던 남궁천이 앞에 선 두 사람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진? 너냐?”

이 미친놈이 감히 어디서……!

차무진이 어이가 없어서 뭐라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열린 문으로 두 명의 사내가 잇따라 들어왔다.

한 명은 복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손우곤이었다.

손우곤을 알아본 차무진은 긴가민가하던 사실을 확신했다.

“남궁세가에서 온 모양입니다.”

이세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뭐야? 남궁세가라니! 자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남궁가에서 찾아올 일은 없을 거라고!”

“걱정 마십시오. 얌전히 돌려보내겠습니다.”

차무진이 말을 마치자마자 소란을 들은 것인지 중년인이 한 무리의 무인들을 우르르 이끌고 나타났다.

중년인은 일대 사범인 전황이었다.

“관주님! 무슨 일입니까?”

“저 아이가 남궁가에서 왔다는군!”

“남궁가에서요?”

전황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네놈은 뭔데 감히 송백관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행패라니요? 폭력은 그쪽에서 먼저 사용했습니다. 선량한 나로선 정당한 방어를 했을 뿐. 안 그래?”

남궁천이 옆을 돌아보며 묻자, 복성과 손우곤이 어딘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뭐…… 그랬지요.”

“보셨죠? 오히려 사과를 받아야 하는 건 접니다만.”

“뭣이? 어린 새끼가 건방지……!”

“전황 사범님,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차무진이 얼른 나서며 말리자, 전황이 미간을 팍 구기고는 돌아보았다.

“차 사범! 보아하니 자네 때문에 일어난 일 같은데, 어찌 일을 이렇게밖에 처리 못하는가?”

“죄송합니다. 곧 정리하겠습니다.”

차무진이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남궁천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그가 남궁천 옆에 선 손우곤을 힐끔 보고는 물었다.

“대주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한데 손우곤이 대답 대신 눈짓으로 남궁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남궁천이 입을 열었다.

“어딜 보고 말하고 있어? 주인이 앞에 있는데.”

“주인?”

“그래. 이제 방황은 그만하고 집에 가자. 때가 됐다.”

“이런 미친놈이……! 대살성의 사생아 주제에 남궁의 성씨를 물려받았다고 뭐라도 된 줄 아는 거냐?”

“그건 뭐 너희들끼리 공유하는 대사 같은 거냐? 어쩜 그렇게 한결같이 말하는 거지? 뭐, 일단 내가 아직은 뭐가 안 됐는데, 곧 될 거야.”

“뭐야?”

“조만간 소가주가 될 거야. 그러니 너의 예비 주인인 셈이지.”

이쯤 되자 차무진은 남궁천이 정말 미쳐 버린 건 아닌지 의심될 지경이었다.

하나 그러기엔 손우곤이 이곳에 나타난 게 이상하지 않나?

결국 다시 손우곤에게 질문을 던졌다.

“형님, 도대체 뭡니까? 형님은 왜 이런 녀석과 여기까지 오셔서…….”

“무진, 말조심해라. 네 주인이 되실 분이다.”

“형님! 형님마저 왜 이러십니까!”

“소리치지 않아도 들린다.”

차무진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집단으로 미치기라도 한 건가?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뭐가 어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남궁세가가 이젠 아예 막 나가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오. 살다 살다 별…… 나참.”

“봉급 때문이냐?”

“뭐요?”

“여기 있는 게 봉급 때문이냐고. 송백관에서 얼마나 받나?”

“왜? 부르면 그만큼 줄 수는 있소?”

“줄 수도 있지.”

“도대체 무슨 똥배짱인지 모르겠군.”

“똥배짱인지 근거 있는 자신감인지는 두고 보면 알 테고. 부르라니까?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관둡시다. 나는 남궁세가로 돌아갈 생각이 없소. 그러니 이만 가시오. 여기서 부린 행패는 어떻게든 수습해 볼 테니.”

“아, 비싼 척 오지네.”

뭘 비싼 척이야, 이 미친놈아!

차무진이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남궁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안 돼. 폭력을 먼저 쓴 것도 저 문지기야. 나는 아직 사과도 못 받았고.”

“거, 좀! 적당히 하고 돌아가시라니까!”

차무진이 버럭 소리치는데, 묵묵히 지켜보던 전황이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정리가 안 되는 모양이군. 물러나게, 차 사범!”

“전황 사범님,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제가 좋은 말로…….”

“좋은 말? 자네, 그럼 지금까지 좋은 말로 이 사태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나?”

“예?”

“본 관의 문지기가 두 명이나 얻어터졌어. 한데 좋은 말로 마무리라니? 피해 보상은? 자네가 할 생각인가?”

“…….”

“비키게. 어차피 저 개망나니는 말로 통할 것 같지도 않군. 대살성의 사생아 주제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온 게야?”

“사범님, 그러지 마시고 제가 일단 얘기를 해보…….”

짜악!

순간 차무진의 뺨이 휙 돌아갔다.

균형을 잃은 차무진이 휘청거리다가 간신히 균형을 잡고 멈춰 섰다.

지켜보던 손우곤이 주먹을 콱 말아 쥐는데, 전황이 살벌한 표정으로 차무진을 힐난했다.

“자네, 이렇게 둔한 사내였나? 실망이 크군. 더 이상 방해하지 말고 썩 비키게!”

“…….”

“안 비켜?”

차무진이 뺨을 쓰다듬으면서 한숨을 내쉬자, 전황의 미간에 주름이 팍 새겨졌다.

그가 다시 손을 휙 들어 올릴 때였다.

“어이.”

노기가 실린 나직한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전황이 눈가를 꿈틀거리고는 고개를 휙 돌리자, 남궁천이 서늘한 얼굴로 저벅저벅 다가왔다.

“네가 뭔데 내 새끼를 때려?”

“……뭐?”

“뒈지고 싶냐?”

“이런 미친 개 호로……!”

짜아악!

휘리리릭, 콰다앙!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

남궁천의 손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뺨을 얻어맞은 전황이 제 자리에서 팽이처럼 회전하다가 쓰러지는 게 아닌가?

이세적은 물론, 다른 무인들과 손우곤, 복성까지 입을 딱 벌리고는 바위처럼 굳어 버렸다.

단 한 번의 손찌검으로 전황을 저리 만들어 버리다니!

꿀꺽……!

이세적이 마른침을 삼키고는 한 걸음 물러났다.

다른 무인들 역시 전황이 단 일수에 당해 버리니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궁천이 차무진을 돌아보고는 미간을 구겼다.

“왜 약한 놈한테 가만히 처맞고 있어? 네가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어?”

“아, 아니…… 대체 어쩌자고 이런 짓을…….”

차무진이 어벙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데, 손우곤이 저벅저벅 다가오더니 어깨에 손을 척 올렸다.

“무진아. 가자, 집으로.”

“형님……?”

“나는 결심했다. 저분과 다시 시작하기로. 이 길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만, 가보기로 작정했다.”

“진심입니까, 형님?”

“그래. 넌 저분에게서 보이는 게 없냐?”

“글쎄요. 그냥 미친놈 같은데요?”

“끄응. 뭐,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지. 원래 이 강호가 반쯤 미쳐야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니.”

“형님. 진심이군요?”

“그래.”

“하지만 전…….”

그때였다.

“야이, 미친놈아!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차무진이 여기서 나가면 위약금이 얼마인지나 알아? 그리고 본 관 뒤에 누가 있는 줄 알기나 아는 것이냐? 이딴 짓을 벌이고도 네놈이 무사할 줄 알아?”

“불만 있으면 나와.”

“뭣?”

“불만 있으면 나오라고. 나도 불만이 많으니까.”

남궁천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눈빛에 이세적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고 물러났다.

‘뭔 놈의 애새끼 눈빛이 저렇게나……!’

시체더미가 쌓인 전장을 한평생 누비다가 나타난 사람 같지 않은가?

그때였다.

“뭐가 이렇게 어수선한 거야?”

마침 정문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리더니 한 사내가 성큼성큼 들어서고 있었다.

동시에 관주 이세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셨구나! 넌 이제 뒈진 줄 알아라!’

그가 반색하며 정문으로 들어서는 사내에게 달려갔다.

“공자님, 오셨습니까!”

그곳에는 이세적에게 격한 환영을 받는 윤종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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