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94화 (94/508)

94. 운도 실력이다

구구우웅……!

진동과 함께 나직한 천둥소리가 동혈에서 울려 나왔다.

도피처 비상출구에서 대기하던 질풍대주 초립표가 미간을 팍 구겼다.

“뭐지?”

그렇잖아도 조금 전 폭포수 쪽에서 폭음이 들린 것 같아서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던 상황.

그때 먼발치에서 황색 신호탄이 하늘을 가르며 솟구쳐 올랐다.

“대주! 지원 신호입니다!”

부대주가 새처럼 날아와 보고했다.

“아무래도 일이 생긴 모양이군. 일 조장!”

“예, 대주!”

“조 원을 이끌고 진입하도록! 나머지는 나와 함께 폭포수로 돌아가 청랑단을 지원한다!”

“존명!”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 조장이 조 원들을 이끌고 비상출입로로 진입했다.

초립표는 나머지 대원들을 이끌고 폭포수 쪽으로 몸을 날렸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 * *

파파파팟!

츄아앙! 츄아아!

연신 물보라가 일어나고 파공성과 함께 기파가 사방으로 터져 나간다.

팽수혁이 어기신풍을 펼치면서 대도를 이끌고 매섭게 몰아붙이면, 유현이 빈틈을 귀신처럼 찾아내 공략한다.

그럼에도 애꾸는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그는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도검을 이리저리 피해냈다.

그러다 보면 성가신 검이 불쑥불쑥 날아드는데, 바로 주연화가 휘두르는 것이었다.

“칫!”

애꾸가 혀를 차고는 수상비를 펼치며 물러났다.

파파파팟!

촤르르륵!

물가까지 물러난 애꾸가 한쪽 눈을 살벌하게 일그러뜨리며 이를 갈았다.

“애새끼들이 제법이구나!”

“어른 새끼도 제법이오.”

팽수혁이 어깨를 들먹이면서 맞받아쳤다.

약 올리듯 응수했지만 그 내용만큼은 진심이었다.

남궁천의 조언대로 어기신풍을 더욱 빠르게 가져가면서 파격적인 도법을 구사할 때만 해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게다가 의외로 유현과 주연화와 함께 펼치는 합격술이 제법 잘 맞아 들어갔다.

한데 확실히 어른 새끼는 다른 모양이다.

강호에서 가장 강한 자는 무공이 센 자가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자라고 했다.

그 말은 강해서 오래 살아남는다는 역설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경험치가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현은 유현대로 놀랐다.

다만 그는 애꾸에게 놀란 것이 아니었다.

비교적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유현은 처음부터 그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팽수혁과 주연화의 무공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대체 요 며칠 사이에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분명 팽수혁의 무공이 몰라보게 늘었고, 주연화 역시 군더더기가 줄어든 움직임이었다.

‘그렇다곤 하나…… 저자 또한 강하긴 강하구나.’

벌써 수십 합을 겨뤘다.

한데 애꾸는 전혀 지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애꾸가 자신들의 합격술을 파악하고 조금씩 압도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 사람이 애꾸를 상대하는 동안 물안개 속에서 고통받던 청랑단 무인들 다수가 구조받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물안개 역시 서서히 옅어지는 중이었다.

“남궁천 어떻게 했어?”

팽수혁이 성난 이리처럼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남궁천……?”

잠깐 눈을 찌푸리던 애꾸가 곧 ‘아!’ 하는 탄성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안에 깔려 뒈진 녀석이 네놈들 친구였더냐?”

“뭐……?”

“걱정 마라. 저승에서 곧 만나게 해줄 테니.”

애꾸의 말에 팽수혁이 미간을 팍 좁혔다.

“지금 뭐라고……? 남궁천이 죽었다고?”

“절친한 사이였다면 미안하군.”

애꾸가 냉소를 지으며 답하자 팽수혁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개소리하지 마라앗!”

순간 질풍처럼 달려 나간 팽수혁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맹한 일도를 휘둘렀다.

쑤아아앙!

사선으로 휘둘러지는 도신에 안개마저 갈라선다.

쩌어엉!

애꾸가 검을 들어 막자 육중한 충격이 전신에 전해진다.

츄아아앙!

물방울이 사방에서 수직으로 솟구쳐 오른다.

‘뭔 놈의 애새끼가 이리도 힘이……!’

애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흐아아압!”

팽수혁은 그대로 몸을 회전하면서 철혈회풍(鐵血回風) 초식을 펼쳤다.

쏴아아아아!

수면이 도신에 이끌리듯이 솟구치면서 파도를 만들어냈다.

“건방진 애새끼!”

애꾸가 혀를 차면서 경공을 펼쳐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려고 했다.

한데 놀랍게도 팽수혁이 바짝 따라붙는 것이 아닌가?

대도를 휘두르면서 강공을 퍼붓는 생도답지 않게 몹시나 민첩한 움직임!

‘어찌 한낱 생도 주제에 이런 움직임을……!’

애꾸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검을 앞세웠다.

사실 그는 두 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나는 팽수혁이 하북팽가의 자제라는 사실.

하북팽가의 무공은 실전에서 파생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그들은 격전 속에서 점점 패도적으로 변하는 것과 동시에 섬세함과 예리함도 가다듬어진다.

한마디로 감정이 격해지면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것과 달리, 오히려 무아지경에 가까워지면서 본연의 무공 이치에 다가서는 것이 하북팽가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둘째로 팽수혁은 남궁천을 만난 후 비약적으로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더 빨라지기만 했다.

한데 이번 비무 대회를 통해서 더 강맹해지는 방법까지 깨달았다.

그런데 이제 남궁천이 없단다.

뭐? 절친한 사이라면 미안하다고?

쩌어어엉!

츄파아아!

도검을 맞댄 팽수혁이 사자후처럼 외쳤다.

“개소리하지 마! 절친한 게 아니라 그놈은 원수였다!”

“……?”

애꾸가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절친한 사이가 아니라 원수라니?

그럼 이 녀석도 남궁천이 죽기를 바랐던 놈 아닌가? 대체 왜 이렇게 흥분해서 난리를 치는 거지?

그 와중에도 팽수혁의 힘이 워낙 강맹하여 내공을 끌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칫, 수중전으로 셋을 동시에 상대하느라 내공 소모가……!’

그러거나 말거나 팽수혁이 입을 쩍쩍 벌리며 외쳐댔다.

“알아들었냐고! 그놈은 나와 절친한 사이가 아니라 가문의 원수였단 말이다! 반드시 내 손으로 죽였어야 할 놈을……! 네놈들이……! 네깟 놈들이 죽인 거다아앗!”

순간 팽수혁의 팔뚝에 힘줄이 불거지면서 애꾸가 뒤로 떠밀렸다.

파아앙!

“크읏!”

황소 같은 힘에 애꾸가 놀라서 눈을 부릅떴지만, 팽수혁은 더 이상 달려들지 않았다.

‘저 녀석……! 남은 공력을 한 번에 쏟아부었구나!’

거의 탈진 직전으로 보였다.

다만 문제는 팽수혁이 아니다.

“하아앗!”

오른쪽에서 기합성이 터지면서 유현이 현란한 검초를 뿌리며 날아들었다.

촤촤촤촤촤!

변초와 허초가 난무하자 기풍에 휩쓸린 수면에서 물방울이 연신 튀어 오르며 눈을 어지럽힌다.

은은한 붉은 기운이 꽃잎처럼 휘날리고 물방울이 사방에서 튀어오르니, 마치 수정 알갱이 사이에서 매화가 흩날리는 듯하다.

‘화산인가!’

팽수혁을 상대하느라 잠시 집중이 흐트러진 틈을 타서 유현이 악착같이 애꾸를 몰아붙여갔다.

‘제길, 내가 이따위 애새끼들한테……!’

주변에서 더 이상 비명 소리가 터지지 않는다.

아마 마지막 남은 수하도 죽었으리라.

그때,

쉬이이잇!

마치 한 마리 뱀처럼 은빛 줄기가 요혈로 파고든다.

주연화의 검이었다.

“까불지 마랏!”

애꾸가 얼른 검을 후려치면서 소리 질렀다.

한데 은빛 뱀이 거짓말처럼 검신을 휘감아오더니 그대로 어깨를 내지르는 것이 아닌가?

푸욱!

“크윽!”

촤촤촤!

고통을 느낀 애꾸가 얼른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하지만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유현과 주연화가 검을 후리며 애꾸에게 달려들었다.

파밧!

거기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남아 있었는지 팽수혁이 목청이 찢어져라 기합성을 터뜨리며 달려왔다.

“흐아아아압!”

쩌정!

세 자루의 도검 중 두 자루가 애꾸의 검에 막혔다.

하나 유현이 뿌린 검은 애꾸의 옆구리를 피로 물들이고 있었다.

“크읍……!”

애꾸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물론 이 정도 부상으로 죽진 않으리라.

다만 서서히 옅어지는 물안개 너머로 다수의 기척이 느껴진 탓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수십 명의 그림자가 안개를 헤치고 나타나더니 초립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노오옴! 꼼짝 마라!”

“쿠쿡. 빨리도 오셨군.”

애꾸가 입매를 비틀더니 왼손을 품에 넣고는 뭔가를 꺼내 들었다.

“벽력탄!”

초립표가 기겁을 하고는 외쳤다.

“다들 물러낫!”

하지만 벽력탄 심지에는 이미 불이 붙은 상황.

애초에 품에서 꺼낼 때부터 삼매진화의 수법으로 심지에 불을 붙인 것이다.

벽력탄의 폭발 범위를 생각한다면 물웅덩이에 있는 누구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

때마침 희미한 안개를 뚫으며 화살 떼가 쏟아졌다.

쒸쒸쒸에엑……!

푸푸푸푸푹……!

순식간에 온몸이 고슴도치가 된 애꾸가 비틀거리며 한 걸음 물러났다.

하나 그 와중에도 애꾸는 물에 빠지지 않았다.

“지, 지독한……!”

팽수혁이 눈자위를 꿈틀거렸다.

그러는 사이 심지는 모두 타들어갔다.

애꾸가 히죽 웃었다.

“다 같이 가자. 지옥으로…….”

“크읏!”

팽수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유현과 주연화 역시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최후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음……?”

팽수혁이 실눈을 뜨면서 여전히 애꾸의 손에 들린 벽력탄을 보았다.

터질 거였다면 진작 터졌어야 했다.

당황하긴 애꾸도 마찬가지.

‘불발인가……? 하필……!’

그의 표정이 와락 구겨지더니 이내 모든 걸 내려놓은 듯 피식 웃어 버렸다.

“애새끼들…… 운도 좋구나.”

첨벙!

말을 마친 애꾸가 고목처럼 스르르 쓰러지더니 이내 물속에 잠겨들었다.

그제야 팽수혁도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흐아아아.”

“사, 사형……! 우리 살았죠?”

“그런 것 같구나.”

유현과 주연화 역시 서로를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뒤늦게 초립표가 세 사람에게 다가와 다그쳤다.

“너희들은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냐!”

“부상자들 옮기고 저 나쁜 어른 새끼 혼내주고 있었지요.”

팽수혁이 따박따박 대꾸하자, 초립표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차갑게 일렀다.

“그래도 조심했어야지. 강호는 너희들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남궁천과 진소홍은 어디 있느냐?”

그 말에 세 사람의 표정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초립표가 조바심에 다그쳤다.

“남궁천과 진소홍은 어디……!”

“죽었다.”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초립표가 눈을 부릅뜨고 돌아보았다.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입은 모용신이 씁쓸한 표정으로 무너진 동굴 입구를 보았다.

“두 사람은 죽었다. 청랑단에도 사상자가 제법 나왔다.”

“그런……!”

초립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자, 모용신이 간단히 명을 내렸다.

“사상자 파악되는 대로 최대한 발 빠른 자를 맹에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초립표가 물러가자 모용신이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결국 앓던 이는 뽑았는데…… 생니도 뽑혀 버린 셈이 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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