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93화 (93/508)

93. 호구(虎口)

모용신이 수하들을 이끌고 동혈 안으로 들어간 직후였다.

유현이 문득 미간을 좁히고는 폭포수 안쪽 정면을 유심히 노려보았다.

‘방금 전에 분명…….’

폭포수 안쪽 정면 동굴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하지만 저곳은 빈 동굴이 아니던가? 남궁천이 함정일 거라고 말했던.

한데 어째서 저곳에 기척이……?

‘설마!’

불현듯 한 가지 가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만약 적들이 부단주의 팔을 잘라서 물웅덩이로 던진 후, 청랑단의 시선이 집중된 사이에 도피처를 나와 정면의 동굴로 숨어든 것이라면?

은신술이 뛰어난 자들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게다가 폭포수 때문에 들키지 않고 이동하기가 더욱 쉬웠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함정이 뒤바뀐 셈이야!’

타닷!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유현이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순간 사 대주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너 뭐야? 멈춰!”

“뭔가 이상합니다!”

“돌아와! 명령이다!”

하지만 유현은 이미 수상비를 펼치며 폭포수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팽수혁과 주연화도 놀라서 바위 위로 뛰어 올라왔다.

“뭐야? 저 녀석 원래 저렇게 진취적이었어?”

“사형…….”

주연화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그 순간, 폭포수에 거의 다다른 유현은 측면 출입로에서 뛰쳐나오는 모용신을 보고는 눈을 크게 부릅떴다.

“……!”

그리고 모용신이 뭐라고 소리 지르려는 순간,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음이 들리더니 동혈이 먼지를 뿜어내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크읏!”

유현이 그대로 태풍에 떠밀리듯 날아가 버렸고, 동혈 안에서 달려 나오던 청랑단원들이 저마다 물웅덩이로 날아와 마구 떨어졌다.

첨벙! 첨벙, 첨벙!

그나마 사지육신이 멀쩡하게 빠져나온 자들은 다행이었다.

어떤 이는 팔이 잘려 나가고, 어떤 이는 다리를 잃었다.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는 물웅덩이는 순식간에 벌건 핏물로 번졌고, 여기저기에서 비명과 신음이 터져 나왔다.

“끄으윽……!”

“아으으!”

폭포수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청랑단원들이 우르르 달려와 부상자들을 부축했다.

“단주님!”

이 대주는 수하들을 이끌고 제일 먼저 모용신에게 달려왔다.

“나는 괜찮다! 다른 이들을!”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일 대주는…….”

하나 이 대주가 말을 더 잇기도 전에 이번엔 폭포수 안쪽 정면 입구에서 흑의 무인 두 명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뒈져라앗! 정파 나부랭이들아!”

“지옥에 가자꾸나!”

촤아악! 촤아악!

“크아악!”

“으악!”

섬뜩한 파육음에 이어 비명 소리와 물장구 소리가 마구 터져 나왔다.

이 대주가 이를 부득 갈고는 노호성을 터뜨렸다.

“이 개 같은 것들이!”

하지만 모용신이 얼른 이 대주의 등을 쳐냈다.

퍽!

“허억!”

비교적 부드러운 힘에 떠밀린 이 대주가 허공을 가르며 멀찍이 날아갔다.

어리둥절한 이 대주를 뒤로 한 채 모용신이 사자후를 터뜨렸다.

“맞서지 말고 물러나라! 폭약이다!”

“폭약……!”

모용신의 경고에 정신을 차린 청랑단원들이 일제히 부상자를 부축하고는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나 이미 적의 복판으로 뛰어든 흑의 무인들은 최후의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

“크하하하! 지옥에 함께 가자꾸나!”

“끝이다앗!”

꽈꽈아아앙!

“크아악!”

“으아아악!”

두 사람이 들고 나온 두 개의 벽력탄이 터져 버리자 수십 명의 청랑단원들이 비명과 함께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물웅덩이는 아예 시뻘건 핏물로 변해 버렸고, 찢어지고 떨어져 나간 살점들이 물 위에 둥둥 떠다녔다.

뿐만 아니라 강맹한 폭발 때문에 물안개와 연기가 뒤섞이면서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

팽수혁과 주연화는 눈이 찢어질 듯 부릅뜨고는 반사적으로 도검을 뽑아 들었다.

“사형!”

“젠장!”

두 사람이 누가 말릴 겨를도 없이 물웅덩이로 뛰어들었다.

이따금씩 자욱한 물안개 안에서 쇳소리와 비명이 솟구쳐 올라왔다.

여전히 적이 남아 있다는 뜻!

벽력탄이 터진 복판에서 살아남았을 리는 없고, 분명 동혈 안쪽에서 더 튀어나온 것이리라.

물웅덩이 안에 남은 청랑단원은 대부분 부상자였기에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울 터.

사 단주가 이를 뿌득 갈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물안개가 너무 짙은 데다 적보다 아군이 많으니 무턱대고 화살을 쏠 수 없는 상황.

결국 그가 접근전을 지시했다.

“궁을 내려놓고 아군을 구하는 데 집중한다! 적이 보이면 가차 없이 처리해라!”

“존명!”

샤샤샤샥!

사 대주와 청랑단원들이 일제히 물웅덩이로 뛰어들었다.

한편 그보다 먼저 뛰어든 팽수혁은 물웅덩이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에 어금니를 꽉 씹었다.

“끄으윽……! 도, 도와줘……!”

“살, 살려줘!”

배가 터져서 내장이 흘러나온 무인, 다리가 잘려 나가서 둥둥 떠 있는 무인, 얼굴 절반이 사라져 즉사한 무인.

그야말로 수라지옥이 따로 없다.

마침 누군가 팽수혁의 다리를 붙들었다.

“나, 날…… 구해줘……!”

옆구리가 길게 찢어진 무인이었다.

팽수혁이 얼른 윗옷을 벗어서 무인의 허리에 둘러서 동여맨 다음 안아들었다.

파밧!

팽수혁이 재빨리 안개 밖으로 몸을 날려 부상자를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주연화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유현을 찾아 헤맸다.

“사형! 사형! 대답해요!”

“화야!”

문득 뒤에서 들린 소리에 주연화가 화들짝 놀라며 돌아서자, 다행히 유현이 가벼운 부상만 입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사형! 괜찮아요?”

“나는 괜찮다. 그보다 부상자들을!”

“네!”

주연화가 대답과 동시에 돌아서려는 순간이었다.

“위험!”

창졸지간 유현이 주연화를 손바닥으로 밀어내더니 곧장 검을 뽑으며 강하게 휘둘렀다.

쩌까앙!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유현이 뒤로 촤르르륵 밀려났다.

“크읍!”

상당한 압력에 놀란 유현이 미간을 팍 구긴 채 전방을 노려보았다.

검은 안대를 착용한 애꾸 무인이 물안개에서 스며 나오듯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생도……? 요즘 무림맹은 아동 학대가 취미인가?”

무심히 말을 뱉은 애꾸가 검을 한 차례 휘둘러 검신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이자가……!’

다친 곳은 없는데 전신에 혈흔이 가득하다.

즉, 타인의 피라는 뜻이다.

물안개 속에서 터져 나오던 비명은 이자가 만들어낸 것이리라.

애꾸가 한쪽 눈알을 뒤룩 굴리더니 옆에서 바짝 긴장한 채 검을 내밀고 있는 주연화를 슬쩍 보았다.

그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라면 애들은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라고 타이르겠다만…….”

다음 순간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오늘만큼은 애새끼라면 딱 질색이어서 말이지.”

“……!”

“헛……!”

유현과 주연화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애꾸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살기가 숨이 막히도록 짙었기에.

유현이 주연화를 슬쩍 보았다.

‘화야. 침착하게! 평소처럼 선공은 내가 맡을 테니 틈을 보고 협공해라!’

‘네, 사형!’

두 사람의 눈빛이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그때,

“그 애새끼 맛 좀 봐라! 이 어른 새끼야!”

슈우우욱!

물안개를 뚫으면서 그림자 하나가 혜성처럼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애꾸가 순간 검을 들어 막았다.

쩌어어엉!

요란한 금속성에 이어 애꾸가 세 걸음이나 물속에서 물러났다.

촤촤촤아악!

핏물이 사방으로 튀면서 애꾸의 몸이 허벅지까지 물에 잠겼다.

대도를 어깨에 척 걸친 팽수혁이 턱을 치켜들고 으르렁거렸다.

“나도 평소라면 어른은 그냥 개무시하지만, 오늘만큼은 어른 새끼가 딱 질색이라서 말이야!”

그러면서도 내심 조금 전의 일격에 스스로 감탄했다.

‘남궁천, 이 자식 말대로 하니까 정말 되잖아? 확실히 도격에 힘이 실린다.’

자신감이 차오른 팽수혁이 호기롭게 소리쳤다.

“여긴 나한테 맡기고, 두 사람은 부상자들이나 구하……!”

하나 팽수혁은 말을 마저 잇지 못하고 흠칫거렸다.

애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도가 예사롭지 않다.

우우우웅……!

수면에 파문이 묘하게 일어나기 시작한다.

마치 하늘에서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는 것처럼 둥근 파문이 애꾸를 중심으로 곳곳에 퍼져 나간다.

뿐만 아니라 그가 들고 있는 검이 윙윙 울음을 터뜨리면서 당장에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위압감!

팽수혁이 저도 모르게 반 보 물러났다.

뭔가…… 예상과 다르다.

그때 유현이 곁으로 다가와서는 검을 앞세웠다.

“저자의 기도가 심상치 않습니다. 돕겠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니 동요하던 마음도 가라앉는다.

첨벙.

왼쪽으로는 주연화가 다가와 검을 겨눈다.

“사형이 싸우면 나도 싸울 거예요.”

팽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정 그렇다면 두 분의 뜻을 매우 존중하겠소.”

그 모습에 애꾸가 피식 웃더니 목을 우두둑 꺾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어지간히 내가 우습게 보였나 보군.”

“갑시다!”

팽수혁이 버럭 소리치면서 어기신풍을 펼쳐 달려 나갔다.

‘확실히 빠르다!’

아주 짧은 구간을 수상비로 날아간 팽수혁이 일도를 후려치는 순간, 유현과 주연화도 양측에서 날아들었다.

“하아앗!”

특히 주연화는 마지막으로 남궁천과 비무를 펼쳤을 때 깨달았던 것을 응용하여 검초를 펼쳤다.

습관적으로 구부러지던 팔꿈치를 곧게 펴면서 공력을 단번에 검봉까지 쭉 뻗어낸 것이다.

그랬더니 군더더기가 사라지고 검봉이 깔끔하게 적의 요혈로 날아가는 게 아닌가?

‘미세한 자세의 변화가 검의 쓸모를 가른다더니……!’

확실히 단순한 자세 변화가 아니다. 검법의 묘리가 살아나고 있지 않나? 그 작은 변화가 공력의 흐름을 바꾸고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다른 동작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연화가 내심 감탄하는 사이, 애꾸는 얼른 몸을 회전하면서 물러났다.

따다다당!

세 사람이 튕겨 나가면서 다시 경계 태세를 갖췄다.

비록 합격술이 통하진 않았으나 팽수혁과 주연화는 묘한 희열마저 느끼며 애꾸를 노려보았다.

남궁천이 이곳에 없는데도 마치 함께 싸우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길 수 있을지도!’

앞서 일어났던 두려움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 * *

“무슨 일이지?”

진소홍이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쿠르르릉……!

잔잔한 진동과 함께 천장에서 흙부스러기가 떨어졌다.

남궁천이 어두컴컴한 통로를 돌아보고는 중얼거렸다.

“일단 좀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왜?”

진소홍의 불안한 물음에 남궁천이 말없이 손가락으로 통로 안쪽 천장을 가리켰다.

눈을 가늘게 뜬 진소홍이 뒤늦게 쩍쩍 갈라지는 천장을 확인하고는 소리쳤다.

“무, 무너지잖아!”

“뛰어.”

“말 안 해도 이미 뛰고 있어!”

진소홍이 버럭 소리치며 경공을 펼쳤다.

그 뒤를 남궁천이 바짝 쫓아갔다.

마침내,

쩌적……! 쩌억!

쿠구구구궁……!

통로 안쪽부터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꺄아악!”

진소홍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비명을 내질렀다.

적어도 이렇게 어두컴컴한 곳에서 빛도 보지 못하고 깔려 죽긴 싫었다.

기껏 잠룡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잠룡과 하늘을 날아보지도 못하고 땅 밑에 깔려 죽다니!

쿠구구궁! 쿠쿠웅……!

동굴이 무너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천장에서 떨어진 돌덩이가 뒤꿈치에 닿을 것만 같을 때, 기적처럼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출구다!”

진소홍이 반색하며 달려가다가 기겁을 하며 멈췄다.

휘이이이잉!

세찬 바람이 그녀의 뺨에 마구 부딪쳤다.

“절…… 벽……!”

동굴 끝은 그야말로 까마득한 절벽.

저만치 아래로 계곡이 지렁이처럼 구불구불 흘러간다. 남궁천이 버럭 소리쳤다.

“뭐 해? 안 뛰고! 들어올 수 없는 탈출구라고 했잖아!”

그래, 확실히 이런 곳으론 들어올 수 없겠지.

하지만 이건 나갈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남궁천이 대답도 듣기 전에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뛰어!”

“헉! 야!”

그러나 남궁천은 이미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쿠구구구궁……!

그 와중에도 무너지는 돌 더미가 뒤통수까지 쫓아왔다.

결국 진소홍이 비명처럼 소리 지르며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이대로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라도 널 저주할 거야!!”

그렇게 진소홍은 원하던 대로 잠룡과 하늘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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