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81화 (81/508)

81. 진짜 이변

백무극이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남궁천을 보았다.

남궁천이 피식 웃으며 다가왔다.

“왜? 기분 나쁘냐?”

“…….”

백무극은 반응이 없다.

남궁천이 바로 앞에 다가와 서며 미간을 슬쩍 모았다.

“왜 그래? 아까처럼 처 웃어봐. 미친놈처럼 낄낄거려 보라고.”

“용무라도?”

백무극이 언제 웃었냐는 듯 무감한 시선으로 묻는다.

정말이지 다른 사람이 보면 남궁천이 괜히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 시비 거는 것처럼만 보인다.

남궁천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대꾸했다.

“용무? 당연히 있지. 네가 내 호구를 망가뜨렸으니까.”

“……?”

“윤종승이 나한테 줘야 할 돈이 꽤 되거든. 어디 보자, 일각에 백 냥씩이었으니까…… 일단 삼백 냥은 기본이고. 거기에 졌으니까 이천 냥까지 더하면 은자 이천삼백 냥이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백무극이 무뚝뚝하게 대꾸하고는 돌아서려는데, 남궁천이 어깨를 탁 잡았다.

순간 백무극이 움찔거리고는 천천히 돌아보자, 남궁천이 입매를 치켜 올렸다.

“자세가 틀려먹었잖아. 모르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물어봐야지. 어딜 그냥 가려고? 이봐, 남의 호구를 저리 만들어 놓고 그냥 도망가면 만사형통인 줄 알았어? 절대 아니지. 넌 일말의 책임감도 없냐?”

“책임감?”

“그래. 내가 받을 이천삼백 냥이 지금 너 때문에 날아가게 생겼다니까?”

“…….”

“뭐, 간단히 말해서 저 녀석이 죽으면 내 돈도 날아가니까, 원인 제공자인 네가 그 절반 정도는 보증금으로 내줘야겠다는 말이야.”

“원인 제공…… 보증금…….”

“그래. 다시 말해서 천삼백 냥을 내게 주면 모든 게 깔끔해지지.”

백무극은 한마디도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남궁천이 씨알도 먹히지 않을 논리를 내세운다는 것만큼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대화를 섞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남궁천이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미리 경고한다. 돈 안 내면 너는 나한테 호구의 두 배 값인 사천육백 냥치 얻어터질 줄 알아.”

백무극이 모퉁이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자 남궁천도 몸을 돌렸다.

사실 이렇게 일부러 시비를 건 이유는 단 하나.

‘생각보다 내공은 단순한데…….’

백무극의 기운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다.

멀리서 지켜본 것이기에 정확하진 않지만, 백무극은 오늘 두 종류의 내공을 운기했다.

처음 정공법을 펼칠 때, 백무극의 내공은 금계의 기운을 운용했다.

하지만 윤종승을 매섭게 몰아붙이면서 변화무쌍한 초식을 펼칠 때만큼은 화계의 기운을 운용했던 것이다.

대체로 고수의 영역에 다다를수록 오행의 기운을 고루 섞어서 운기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저 녀석이 그 정도는 아닌데…….’

일단 색안으로 오행의 기운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건 백무극이 초절정의 영역에는 들어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정도로 고수였다면 색안으로 파악할 수가 없었을 테니.’

한데도 두 가지 기운을 섞어서 사용한다?

그것도 저렇게 능수능란하게?

이래서야 마치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각기 다른 무공을 펼친 것 같지 않은가?

혹시 멀어서 잘못 본 걸까 싶어서 일부러 말을 걸어 어깨까지 잡아서 확인해봤다.

한데도 특별한 점이 없다.

‘부딪쳐 보면 알겠지. 경고한 대로 윤종승이 당한 딱 두 배만큼은 받아내 주지.’

남궁천의 눈빛이 깊어졌다.

* * *

대연무장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조금씩 정리되어갈 때쯤 남궁천이 관전석으로 돌아왔다.

몇몇 생도들이 남궁천을 보고는 다가왔다.

“저기…… 윤종승은 좀 어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아…… 그야 뭐, 네가 윤종승과 평소에 친했으니까. 지금도 윤종승보고 온 것 아니었어?”

“아닌데.”

남궁천이 눈살을 슬쩍 구기자, 생도들이 괜히 자라목을 하고는 얼버무리며 물러났다.

남궁천이 가볍게 혀를 차고는 비무대로 시선을 옮겼다.

‘꼭 평소엔 관심도 없던 것들이 이럴 때만 생각하는 척은…….’

어디 관심만 없었나?

몰려온 이들 중에는 평소에 윤종승을 벌레 보듯 하던 인간들도 있었다.

“그나저나 그 녀석이 해줄 만큼은 해줬는데. 결과가 아쉽게 됐군. 뭐, 이만하면 대여료를 반만 받을까?”

하여튼 나는 마음이 너무 약해서 탈이다.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파손된 비무대도 대략 정리가 끝나고 약천당으로 갔던 의원들도 돌아와 자리를 잡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오늘의 마지막 비무를 장식할 진소홍과 유현이 등장하고 있었다.

“오오! 시작됐다!”

“진소홍! 아직 용천관은 죽지 않았다! 진소홍, 힘내라!”

“아무리 그래도 화산파의 유현이다! 무맹관 일인자, 유현이 용천관 생도에게 질까 보냐?”

이번만큼은 진소홍을 응원하는 목소리만큼이나 유현을 응원하는 자들도 꽤 많았다.

평소 유현의 덕망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했다.

남궁천은 진소홍을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금왕에게 시선을 옮겼다.

금왕은 뿌듯한 표정이면서도 어딘지 긴장한 얼굴로 진소홍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엔 가까이에서 지켜볼까?’

남궁천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데 누군가 옆을 지나치며 어깨를 툭 부딪쳤다.

“…….”

남궁천이 멈칫했다.

‘이 감각……?’

여느 때 같았으면 어깨 부딪친 건 신경도 쓰지 않았으리라. 관전석에 사람도 많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데 어깨를 부딪치면서 받은 미묘한 감각이 남궁천의 발길을 붙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생에 많이 느꼈던 감각이다.

특히 자신을 죽이려고 소리 없이 접근하던 수많은 자들이 품고 있던 희미한 기운.

‘은신에 능한 놈! 청부업자? 살수?’

이는 초견파공안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초월적 감각이다. 수십 년 동안 생존 본능에 따라 발달한 오감을 넘어선 육감!

그 감각이 방금 어깨를 스친 사내가 은신에 능수능란한 자라는 걸 얘기하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 그런 놈이?

남궁천이 몸을 휙 돌리고 조금 전에 지나쳐 간 사내를 찾았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상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열띤 함성을 내지르는 관전자들과 당과를 들고 다니면서 파는 장수들, 판돈을 거는 양민들만 보일 뿐.

‘날 노리는 게 아닌가?’

하긴 생각해 보면 자신을 노릴 이유가 없다.

아니, 대살성의 사생아가 우승후보가 되었으니 노릴 이유가 생겼나?

그렇다고 한창 대회가 진행될 이런 시기에 굳이 제거하겠다고?

남궁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귀빈석의 맹주로 향했다.

맹주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비무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맹주에게 총관이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했고, 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맹주. 당신은 아니겠지?’

아마 아닐 거다.

굳이 자신을 제거하려면 따로 조용한 시기를 고르겠지.

하면 누가?

아니, 만약 노리는 게 내가 아니라면……?

남궁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환호성을 지르는 관전자들, 열띤 응원을 펼치는 용천관 생도들, 묵묵히 지켜보는 비량, 기대와 우려가 섞인 금왕의 시선, 비무대에 막 올라 선 진소홍과 유현.

남궁천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설마…….”

하나 그는 이미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일단 확인을 해둬서 나쁠 건 없겠지.”

* * *

“소저, 모쪼록 잘 부탁드리오.”

유현이 포권하며 정중히 말하자, 진소홍이 웃으며 답례했다.

“한 수 가르침을 부탁드려요.”

간단한 인사를 마친 진소홍이 뒤로 물러나면서 관전석을 힐끔 보았다.

남궁검과 나란히 앉은 금왕이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마 속으로는 근심이 많으시겠지. 행여나 딸이 다치지는 않을까?

평생을 딸 바보로 사신 아버지인데 왜 안 그러실까?

그럼에도 저렇게 든든한 미소를 지어 보여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진소홍도 마주 웃어 보이고는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마침내 심사관인 모용신이 손을 들어 올리며 비무 시작을 알렸다.

“와아아아아!”

오늘의 마지막 비무를 향해 사람들이 열띤 함성을 보내왔다.

진소홍은 천천히 걸음을 옆으로 옮겼다.

윙윙윙……!

그녀의 무기는 유성추.

‘공력의 흐름을 손목에 집중시키고, 어깨는 힘을 빼도록.’

진소홍은 남궁천이 일러준 조언을 곱씹으며 그렇게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유현 역시 걸음을 천천히 옮기면서 기회를 엿봤다.

유성추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근거리로 좁혀야 유리한 상황이었기에 유현은 지속적으로 비무대 중심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삐잉!

진소홍의 손에 든 비도가 은잠사를 이끌며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쉬따앙!

유현이 깔끔한 발검술로 날아드는 비도를 쳐낸 뒤에 곧장 진소홍의 품으로 달려갔다.

타다다닷!

“우오오오!”

“빠르다!”

관전자들의 탄성처럼 유현은 바람처럼 빨랐다.

하나 진소홍도 당하지만은 않았다.

삐비잉!

허공을 날아갔던 비도가 줄이 팽팽해지기도 전에 회전하면서 방향을 틀어 버린 것이다.

“유성추의 최대 장점이라면 은잠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거야. 사용하기에 따라 은잠사를 직접적으로 무기처럼 부릴 수도 있고, 간접적으로 도구처럼 이용할 수도 있지. 은잠사에 공력을 흘려 넣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해. 이기어검은 요원한 경지지만, 은잠사를 이용하면 이기어검 흉내는 낼 수 있을 테니.”

남궁천이 해준 조언이었다.

그 후 남궁천은 실제로 어느 혈에서 공력을 폭발시키면 되는지, 또 어떤 손가락을 집중적으로 이용하면 되는지 몸소 재현해 주었다.

‘도대체 남궁천, 넌 어쩜 그렇게 모든 무공을 다 잘 아는 걸까?’

어쨌거나 그 덕에 진소홍은 지금 지난 며칠간 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이었다.

때문에 유현이 무섭게 파고들어 와도 내심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히려 당황한 쪽은 유현이었다.

“헛!”

휘리릭!

배후에서 비도가 날아든다는 것을 깨달은 유현이 얼른 몸을 뒤집으면서 검을 후려쳤다.

쉬따앙!

묵직한 충격이 팔목과 어깨까지 전해져온다.

한데 진소홍의 반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쉬이이잇!

‘이번엔 전방!’

놀랍게도 진소홍이 이번엔 정을 던져온 것이다.

날카롭고 길쭉한 쇠뭉치가 무섭게 날아드니 유현도 바짝 긴장한 채 검을 앞세웠다.

쉬카앙!

순간 불꽃이 터지면서 정이 코앞에서 튕겨 나갔다.

‘진 소저! 생각보다 훨씬 유성추에 대한 이해가 깊구나!’

하나 유현은 이 모든 것이 남궁천의 안배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사실 진소홍조차도 지금 놀라운 심경이었으니까.

‘이거구나. 비도나 정에 무게를 싣지 말고, 은잠사에 무게를 실으라는 게……!’

다시금 남궁천의 조언이 귓가에 닿는 듯하다.

“모든 공력을 비도나 정에 쏟아붓지 마. 무게 중심은 언제나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모두를 자유롭게 두는 대신 은잠사를 이용하도록 해. 자칫 은잠사에 손이 베지 않도록 공력 일부를 손아귀에 남겨두고 보호하도록 하고.”

연습할 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한데 실전에 응용하니 남궁천의 조언이 명확히 이해된다.

자신감이 붙으니 유성추가 절로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다.

비무가 이렇게 즐거운 거였다니!

비도와 정이 번갈아 가며 유현을 괴롭혔고, 그럴 때마다 불꽃이 터지며 유현이 연신 검을 후려쳤다.

“박빙이잖아?”

“대단하다! 생도들의 비무에서 이런 광경을 볼 줄이야!”

“오늘 눈이 호강하는구나!”

관전자들의 만족도도 크게 올라갔다.

그만큼 두 사람의 비무는 높은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쒸쒸쒸쒸에에엑!

관전석 어디선가 시커먼 비수가 비무대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누구냐!”

순간 심사관 모용신이 몸을 날려 검을 후리자, 세 자루의 비수가 튕겨 날아갔다.

따다다앙!

하지만 네 자루의 비수가 그대로 비무대 동서남북으로 박혔다.

퍼퍼퍼퍽!

한데 비수가 박히자마자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푸슈우우우욱!

순간 관전자들의 표정이 사색이 됐다. 동시에 누군가 비명처럼 외쳤다.

“독, 독무다아앗!”

“우아아아아앗!”

대연무장은 그렇게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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