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80화 (80/508)

80. 다시 한 번!

“으헉!”

헛바람을 삼킨 윤종승이 얼른 팔을 들어 올렸다.

쩌엉!

“크읍!”

팔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

어지간한 충격을 흡수하던 토시도 이젠 소용이 없다.

뼈가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다.

하지만 아파하고 있을 시간도 없다.

뀌아아아앙!

도신이 비명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또다시 떨어진다.

마치 수리가 먹이를 노리고 날아드는 것만 같다.

“이익!”

윤종승은 얼른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도 막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꽈아아앙!

“끄아아악!”

윤종승이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다.

쿠당탕탕!

바닥에 쓰러진 윤종승이 한참이나 굴러갔다.

윤종승을 응원하던 관전자들이 이젠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저벅저벅……!

백무극이 무감한 표정으로 걸어갔다.

윤종승이 부들부들 떨면서 겨우 일어났다. 팔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제멋대로 떨리고 있었다.

바로 앞에 멈춰 선 백무극은 다시 천천히 칼을 들어 올렸다.

마치 이번에도 한 번 막아보라는 듯이.

쉬이이이잇!

마침내 도신이 또 떨어져 내린다.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아주 느리지도 않다.

하나 윤종승에게는 그 찰나의 순간이 억겁의 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막아? 말아?

원래대로라면 토시 낀 부분으로 막아야 한다.

하지만 너무 아프니까 막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또 한 번 막았다간 뼈가 부러지고 말 거야!’

공포가 머리를 지배하는 순간, 윤종승은 얼른 바닥을 차고는 물러났다.

꽈자앙!

도신이 바닥을 때리자 파편이 다시 사방으로 터져 올랐다.

키기긱……!

백무극이 도를 질질 끌면서 윤종승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윤종승은 여전히 백무극의 턱만 노려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어차피 정공법만 펼치는 녀석이다. 막지 못하면 피하면 그만이다. 피하는 게 어렵지도 않잖아!’

그러다가 기회를 봐서 아까처럼 혁련장을 날리면 된다!

다시 생각해도 조금 전에는 정말 아까웠다.

‘칫! 다 이긴 비무인데!’

규칙상 비무대에서 완전히 떨어져 장외에 신체가 닿아야 실격 처리된다.

하지만 백무극은 떨어지는 순간 칼을 비무대에 찔러 넣고 매달려 있었다.

어쨌거나 이미 지나간 일.

한 번 그렇게 궁지로 몰았으니 두 번 못할 것도 없지 않나?

힘은 강할지라도 고집스럽게도 정공법만 펼치는 녀석이다.

게다가 눈만 보지 않으면 그 묘한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다.

‘좋아, 와랏! 얼마든지 내가 상대해…… 엉?’

스스슷!

순간 윤종승이 눈을 크게 끔뻑였다.

관중석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엇! 저건 뭐지?”

“뭐야? 저런 것도 할 수 있는 녀석이었어?”

“정공법하곤 완전히 다르잖아?”

사람들 말대로였다.

백무극이 갑자기 갈지자로 짓쳐 들면서 칼을 부리더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현란하게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쉭! 쉬쉬쉭! 쉭쉭!

한 자루의 칼이 두 자루가 되고, 두 자루는 다시 네 자루로, 여덟 자루로 마구 늘어났다.

“헉!”

윤종승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떤 것을 막아야 하나?

변초와 허초가 난무한다.

이 녀석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집스러울 정도로 정공법만 펼치던 녀석이 맞나 싶다.

아까와 전혀 다른 사람과 싸우는 기분.

땅!

“큭!”

따당!

“윽!”

어지러운 와중에도 용케 도를 막아내는 윤종승이었다.

한데…….

‘방금 웃었나?’

눈을 보지 않아서 제대로 확인하진 못했다. 다만…….

‘분명 입매를 길게 찢고 혀까지 빼물고 있었던 것 같은데…….’

섬뜩!

그 무감한 표정의 백무극이 그런 엽기적인 표정을 지으며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게다가 눈을 볼 수 없으니 더욱 궁금하면서도 공포심이 밀려온다.

“키하앗!”

순간 요상한 기합성이 터져 나오면서 칼이 초승달처럼 휘며 날아들었다.

실제로 휜 것은 아니지만 워낙 빨리 쇄도하니 착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쩌어엉!

토시와 부딪치면서 윤종승이 그대로 고꾸라질 뻔했다.

“끄으으읍!”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하지만 백무극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뀌아아아앙!

또 한 번 귀신같은 포효가 일어나면서 도신이 활처럼 휘어 떨어져 내린다.

‘이, 이건 못 막아……!’

윤종승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가 얼른 바닥을 차고 물러나자,

꽈아앙!

그대로 바닥을 때린 도신이 파편을 사방으로 튕겼다.

그 위력이 어찌나 센지 관전자들이 나직이 탄성을 터뜨렸다.

윤종승이 얼른 팔을 교차하면서 날아드는 파편을 막아냈다.

타타타타탕!

파밧!

백무극은 다시 그 파편에 섞여들면서 윤종승을 향해 칼을 휘둘러왔다.

“으으으!”

무섭다. 너무 무섭다.

이 녀석이 정말 당우기를 운으로 이긴 게 맞나?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이 녀석이 당우기보다 훨씬 무서운 존재가 됐다.

녀석이 내뿜는 광기에 가까운 살기가 전신을 파고든다.

“젠자앙!”

윤종승이 욕지거리를 뱉어내며 백무극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렇게 계속 피하다가는 답이 없을 것 같았기에.

하지만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후회했다.

“크헉!”

샤샤샤샤샤샷!

수십 자루의 도신이 허공을 빼곡하게 채우며 덮쳐오는 것이 아닌가?

‘난, 난자당한다……!’

아니나 다를까, 수십 자루의 도신이 윤종승을 그대로 썰어 버렸다.

“끄아아아아악!”

윤종승이 그 자리에 멈춰 서 허리를 활처럼 휘며 비명을 터뜨렸다.

지켜보던 관전자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 뭐야? 왜 저래?”

귀빈석에서 보던 윤첨산도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승, 승아!”

그가 두 눈에 힘을 잔뜩 주었다.

백무극이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윤종승이 죽을 것처럼 비명을 내질러 대는 것이 아닌가?

뒤늦게 백무극의 도신이 윤종승의 가슴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안 돼!”

윤첨산이 소리 질렀지만 도신은 가차 없이 윤종승의 가슴을 갈랐다.

촤아아아악!

순간 윤종승의 신형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한참이나 날아가 쓰러졌다.

콰당탕탕!

백무극은 그러고도 멈추지 않고는 돌풍처럼 달려가더니 윤종승을 향해 필살의 기세로 칼을 후려쳤다.

창졸지간!

번쩍! 쩌엉!

한 줄기 빛이 끼어들면서 백무극의 칼을 막아냈다.

검을 뻗어 막은 자는 다름 아닌 모용신.

“여기까지다.”

모용신이 냉랭한 얼굴로 말하자, 어딘지 광기에 젖어 눈을 희번덕거리던 백무극이 곧 거짓말처럼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후우우.”

길게 숨을 내쉰 백무극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저벅저벅 돌아갔다.

관중들은 이제 완전히 침묵에 빠져 버렸다.

그들 사이에 섞여서 묵묵히 지켜보던 남궁천도 미간에 힘을 주고는 팔짱을 풀었다.

‘백무극……!’

잠깐 백무극이 남궁천을 힐끔 보는 것 같았지만, 그는 곧 비무대 끝으로 다가가 돌아섰다.

모용신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의원!”

그러잖아도 당장 뛰어올 준비를 하던 의원들과 의생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의원이 민첩하게 소독 용액을 들이붓고는 상처 부위를 깨끗하게 닦아냈다.

“끄으으윽……!”

가슴이 길게 찢어진 윤종승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려냈다.

의원들 중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척 보기에도 무척 심각한 부상임이 틀림없었다.

모용신도 상태가 어떠냐고 묻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의원들의 표정이 워낙 어두웠으므로.

이 사태의 원인이 된 백무극은 고개를 깊이 숙이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는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에 큰 책임을 느끼고 반성 중인 듯했다.

상처 부위를 봉합한 의원이 얼른 소리쳤다.

“들것!”

의생들이 냉큼 들것을 들고 올라왔다.

“곧장 보정각으로 옮기겠네! 사태가 심각해!”

“얼마나 심각합니까?”

“늦으면 죽을 수도 있네!”

모용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자, 의생들이 서둘러 윤종승을 옮겼다.

윤종승은 가물가물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백무극을 지나치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

순간 윤종승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피를 울컥 토해내는 것이 아닌가?

의원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이런! 안정을 취하게!”

하지만 윤종승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각혈을 멈추지 않았다.

“쿠웨에엑! 크웨엑!”

아무래도 심경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인 듯했다.

탁탁탁!

의원이 마지못해 훈혈을 점해서 윤종승을 재워 버렸다.

사실 이런 환자에게 훈혈을 잘못 점하다간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위독한 상태에서 계속 피를 쏟아내고 있으니 극약처방을 한 것이다.

“서둘러라! 너는 먼저 달려가서 약천당주님께 상황을 알려드려라!”

“예, 의원님!”

의생 하나가 빠르게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던 관전자들이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윤종승의 무운을 빌었다.

남궁천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백무극을 쏘아보았다.

백무극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윤종승에게 무리였나……? 그나저나 저 새끼…… 진짜 미안해서 고개 숙인 것 맞아?’

들것에 실린 윤종승이 하필 저놈 곁을 지나칠 때 안색이 변하면서 각혈을 했다.

아무래도 고개 숙인 백무극의 얼굴을 본 것 같은데…….

‘설마…… 저 새끼, 웃고 있나?’

까득……!

남궁천이 어금니를 씹는데, 모용신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선언을 했다.

“백무극, 승!”

하나 관중에서는 어떠한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축하의 목소리도, 응원의 목소리도, 그렇다고 힐난이나 비난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침묵만 이어졌다.

백무극은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저리 후회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더욱 그를 비난할 수 없었다.

그렇게 비무대를 벗어난 백무극은 동문을 통해 대연무장을 벗어났다.

한적한 뒷길로 들어선 그가 비틀거리면서 벽에 손을 짚더니 손으로 입가를 틀어막았다.

“쿱! 킥킥킥……!”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놀랍게도 그는 입가를 길게 찢으며 광기에 찬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크크큭. 그렇게 설쳐 대더니…… 결국…… 키키키킥……! 꼴좋잖아?”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뚝 멈추더니 눈알을 뒤룩 굴렸다.

그가 예의 그 무감한 표정으로 돌아서자, 언제 다가온 것인지 남궁천이 한쪽 입매를 치켜 올리며 서 있었다.

“그렇게 좋냐? 이 씹새끼야? 이거 이제 보니 완전 미친 꼴통 새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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