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79화 (79/508)

79. 다시 한 번!

“윤종승! 힘내라!”

“이겨라! 우리가 응원한다!”

“다시 한번 승천해라! 윤종승!”

용천관 생도들뿐만 아니라 일반 양민들조차 윤종승을 연호하며 응원했다.

이 생소한 광경에 윤종승은 가슴이 벌렁거려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이렇게 많이!’

첫 비무 때는 너무 긴장해서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었다.

한데 이제 주변의 광경이 눈에 들어오니 감회가 새롭다.

이상할 정도로 긴장은 되지 않는다.

‘그래, 지난 사흘간 나는 지옥을 겪었어!’

윤종승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그는 팔에 흑색 가죽 토시를 차고 있었다. 팔 바깥쪽으로는 운철이 덧대어져 있다고 했다.

운철은 구하기도 어려운 데다 강도가 엄청난 것이기에 굉장히 고가였다.

‘그런 걸 어떻게 남궁천이 구해온 걸까?’

오늘 아침 이 토시를 갖다 준 사람이 남궁천이었다.

“선택해라. 이 토시를 착용하고 싸울래? 아니면 네가 구한 그 싸구려 토시를 착용할래?”

“당연히 선택권이 있다면 그걸 차고 싶지.”

“이거 되게 비싼 건데?”

“얼, 얼마짜린데?”

“너도 알다시피 운철이 들어간 거야. 어지간한 무기로는 벨 수가 없지. 웬만한 전각 서너 채 값은 될 거다.”

“헉!”

“물론 하루만 빌려주는 거니까 그 정도보단 싸게 대여료를 받을 거야.”

“그래서 대여료는……?”

“일각에 은자 백 냥.”

“뭐, 뭐어엇!”

“즉, 반 시진이면 은자 사백 냥이 되는 거고, 한 시진이면 은자 팔백 냥이 되는 거지.”

“그, 그런……!”

“거기에 네가 패배하면 은자 이천 냥을 추가.”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하잖아! 차라리 그 돈이면 사고 말겠다.”

“살 거면 오천 냥.”

“됐어! 치워!”

“대신 이기면 무료다.”

“……뭐라고?”

“몇 시진이 걸리든 네가 이기면 대여료는 모두 감면. 무료란 말이지.”

“무…… 료?”

“그래.”

“정말…… 무료?”

“거참, 속고만 살았어? 그렇다니까.”

“끄음.”

“자, 어쩔 거냐? 이걸 쓸래? 아니면 그 싸구려 쓰다가 팔모가지 한 번 썰려 볼래?”

“말을 해도 꼭…….”

“현실은 정확히 알려줘야지.”

“후우…… 이기면 무료란 말이지.”

“그래, 이기면 무료.”

“좋아, 쓰겠어. 싸우기 전에 질 생각부터 할 수는 없지!”

“잘 생각했다.”

‘그렇게 대여한 토시인데…….’

윤종승이 팔 토시를 물끄러미 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마지막에 그 녀석의 웃음이 마치 걸려들었다는 듯이 느껴졌을까?’

토시를 건네주던 남궁천의 미소가 영 마음에 걸린다.

에이, 아니다.

지금 와서 생각이 복잡해져 봐야 소용없잖아.

집중!

짝! 짝!

윤종승이 제 뺨을 세차게 때리자, 마주 서 있던 백무극이 눈살을 슬쩍 구기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종승이 내심 피식거렸다.

‘저 목석같은 녀석도 생각이라는 걸 하긴 하는 모양이네.’

워낙 표정의 변화가 없는 녀석이다 보니 이런 반응 하나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한 윤종승이 고개를 들고 귀빈석 쪽을 보았다.

아버지 윤첨산이 두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들 바보인 아버지를 보니 괜히 마음이 울컥거린다.

‘아버지……! 한번 이길 각오로 해보겠습니다!’

‘아들! 무리하지 말아라!’

부자간의 눈빛 대화가 끝나자 모용신이 나직이 물었다.

“두 사람, 준비됐나?”

“준비됐습니다.”

윤종승이 다부진 표정으로 대답했고, 백무극도 무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종승이 주먹을 꽈악 말아 쥐었다.

‘좋아, 자신감을 가지고 하자! 기적은 계속된다!’

윤종승이 천천히 기수식을 취하자, 모용신이 물러나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시작하라.”

“와아아아아!”

일순 사람들의 함성이 높아졌다.

하나 윤종승도, 백무극도 섣불리 움직이진 않았다.

윤종승은 천천히 걸음을 옆으로 옮겼다. 백무극은 그 자리에 선 채로 고개만 움직이면서 윤종승을 살폈다.

너무 반응이 없으니 마치 어딘지 모자란 녀석을 상대하는 것만 같다.

윤종승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을 위해서 얼마나 고된 훈련을 했는지 넌 모르겠지. 네가 어떻게 당우기를 운 좋게 이긴 건지 모르겠지만, 내겐 그 운이 통하지 않을 거닷!’

파앗!

순간 윤종승이 바닥을 차고 날아갔다.

천지를 격동하던 함성도 이젠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윤종승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자신이 몹시 느리게 느껴졌다.

‘놈도 움직였어!’

백무극이 걸음을 뗐다.

도신을 휘두르며 마주쳐 오고 있었다.

‘저 녀석 눈을 봐선 안 돼!’

윤종승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상대의 턱만 바라보고 있었다.

굳이 눈을 보지 않아도 녀석의 움직임은 잘 보인다.

지난 사흘간 가장 신경 쓴 것이 비무 도중 남궁천의 눈을 보지 않는 것이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남궁천의 눈을 보는 순간 심지가 흔들려 계속 당하기만 했다.

그렇게 줄곧 당하다가 오늘 아침 마지막 대련에서는 거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

쒸에에엣!

도신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윤종승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무척 정직한 공격.

‘똑같다!’

윤종승의 두 눈이 커졌다.

어쩜 이리 똑같을까?

도신의 흐름뿐만 아니라 뿜어지는 기운마저 남궁천과 똑같다. 이래서야 마치 남궁천이 이 녀석과 똑같이 운기한 것 같지 않은가?

이렇게까지 비슷하면…….

‘나로선 고맙지!’

파밧!

윤종승이 오른발을 뻗어서 내디디며 몸을 급하게 회전했다.

휘리릭!

정말이지 남궁천과 손을 섞으면서 수십, 수백 번은 해왔던 동작이다.

너무 비슷한 상황이 자주 있었기 때문에 지금 백무극의 모습이 남궁천과 겹쳐 보일 정도다.

따아앙!

팽이처럼 회전한 윤종승이 주먹을 휘둘러 날아드는 도신을 쳐냈다.

묵직한 충격이 팔뚝을 타고 전해져 왔지만, 대부분의 힘은 토시가 흡수해 버린 모양이었다.

‘대, 대단하군. 진짜 좋은 토시잖아?’

이 정도로 훌륭한 기능이라면 전각 서너 채 값이라는 게 헛말은 아닐 듯하다.

백무극은 일격이 막혔음에도 별로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대신 여전히 무감한 표정으로 칼을 사선으로 휘둘러 왔다.

쒸에에엑!

‘역시 똑같아!’

윤종승이 입매를 비틀어 올리며 발끝으로 바닥을 툭 차고 물러났다.

쉬까아앙!

도신이 바닥을 때리면서 파편이 튀었다.

촤아아앗!

윤종승이 미끄러지면서 멈춰 서자 관중석에서 함성이 차올랐다.

“와아아아앗!”

“멋지다! 윤종승! 대단하다!”

“이거 너무 합이 딱딱 맞아 들어가니까 마치 짜고 싸우는 것 같다! 하하!”

관전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윤종승은 한쪽 입매를 치켜 올렸다.

그 역시 그런 기분이었다.

마치 이미 약속된 합을 이루는 느낌.

‘남궁천, 넌 정말 괴물 같은 녀석이구나!’

만약 남궁천과 사흘 동안 지옥 훈련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부상을 입고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으리라.

저벅저벅.

백무극이 무심한 발걸음으로 다가온다.

윤종승은 여전히 놈의 턱만 바라보았지만, 그 특유의 무표정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타닷!

백무극이 모처럼 바닥을 차며 빠르게 날아갔고, 윤종승이 팔을 교차했다가 기마자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와랏!”

쉬따아앙!

백무극의 도가 다시 번개처럼 떨어졌다.

역시나 정공법.

변초와 허초는 보이지 않는다.

‘식은 죽 먹기보다 쉽잖아?’

땅! 까앙! 땅땅!

백무극의 도신이 연신 토시와 부딪치면서 튕겨 나갔다.

윤종승은 끝까지 차분하게 대응했다.

너무나 익숙한 기분.

백무극의 도격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따다당! 따다당! 까가강!

그만큼 윤종승도 재빨리 움직였다.

‘겁나지 않아!’

스스로를 달래려고 한 말이 아니다.

실제로 겁이 안 난다.

왜냐하면…….

‘너보단 남궁천이 훨씬 무서웠거든!’

사실이다.

남궁천은 어딘지 살벌한 기운을 풀풀 풍겨댔으니까.

‘정말이지 손을 섞을 때마다 머리끝이 쭈뼛쭈뼛 곤두서곤 했지.’

마치 시체가 가득 널린 전장 복판에서 싸우는 기분이랄까?

그에 비하면 백무극의 도는 받아내기가 쉬운 편이다.

‘이래서야 마치 시험 문제를 미리 다 알고 푸는 기분이군!’

생각을 마친 윤종승이 빈틈을 향해 재빨리 일권을 내질렀다.

쒸이이잇!

뻐억!

파바밧, 촤아아앗!

백무극이 뒤로 밀려나면서 가까스로 멈췄다.

자신의 가슴 언저리를 매만지는 백무극의 표정이 일순 흔들렸다.

‘흐흐흐! 어떠냐? 호구의 주먹이!’

아차, 눈을 보지 말랬지?

정신이 퍼뜩 돌아온 윤종승이 얼른 백무극의 턱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편 관전자들은 감탄을 연발했다.

“우오오오! 백무극이 밀리고 있다!”

“역시 윤종승! 너는 기적을 이어가는구나!”

“원래 백무극은 십육 강에서도 운으로 올라온 녀석 아니었나?”

“하긴. 제대로 싸워서 올라온 윤종승이 더 강할 수밖에 없겠네.”

사람들이 너도나도 아는 체를 하며 떠들어댄다.

귀빈석에서 지켜보던 윤첨산도 낯빛이 밝아졌다.

“아들아! 어쩌면 네가 정말……! 어쩌면……!”

그 순간 다시 백무극이 바닥을 차고 날아갔다.

쉬따앙! 쉬이익! 쩌엉!

정공법에 이은 정공법!

그리고 또 정공법!

‘역시 전부 겪었던 방식! 그런데…….’

까아앙!

청명한 금속성과 함께 윤종승이 휘청이면서 물러났다.

힘이 조금 전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 전신이 찌르르 울리는 느낌이다.

“칫!”

윤종승이 혀를 차는데, 다시 백무극이 틈을 주지 않고 달려왔다.

쉬이익, 쩌엉! 쩡! 땅!

사선으로 떨어진 도는 다시 횡으로 치고 들어오고, 곧이어 사선으로 솟구쳐 오른다.

강맹한 물줄기가 시원하게 덮쳐오는 느낌이다.

하나 워낙 정직한 공격이기에 막아내는 것이 어렵진 않다.

‘칫, 무식할 정도로 강한 힘이지만…… 이것만 견뎌낸다면 해볼 만해!’

깡! 까강! 쩌엉!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번쩍이며 터지기 시작한다.

윤종승은 골까지 띵하게 울리는 느낌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래도 악굉과 싸울 때에 비한다면 훨씬 할 만한 수준이 아닌가?

확실히 지옥을 겪으니 견뎌낼 수 있는 강도가 세졌다고나 할까?

반면 지켜보는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었다.

“어째 조금씩 밀리는데?”

“이대로 윤종승이 계속 밀리면 안 되는데…….”

“이 사람아, 십육 강전에서도 그랬잖아. 그때도 윤종승이 이겼으니 다 노림수가 있을 걸세.”

“역시 그런가?”

한편 윤종승은 연거푸 쏟아지는 도신을 막아내면서도 백무극의 턱만 노려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무섭게 떨어지는 도신을 왼팔로 강하게 쳐올렸다.

쉬이이이익! 쩌어엉!

순간 맹렬히 달려들던 도신이 허공으로 튕겨 올랐고, 윤종승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디딤발에 힘을 주며 재빨리 오른손을 뻗어냈다.

‘받아라아앗!’

단전에서 솟구친 공력이 수태양소장경을 따라 빠르게 뻗어 나가면서 다섯 손가락에 집중됐다.

이윽고 윤종승의 손바닥이 백무극의 옆구리를 파고들었을 때!

콰아아앙!

혁련장이 작렬했다.

‘먹혔다!’

윤종승의 입매가 길게 찢어졌다.

보라, 소리부터 다르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백무극은 그대로 튕겨 날아갔다. 옆구리의 장삼은 완전히 터져 나가서 붉은 연꽃 모양의 자국을 훤히 드러냈다.

쿠당탕탕!

거칠게 바닥을 구르던 백무극이 비무대 끝까지 밀려나더니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이겼다!”

윤종승이 주먹을 불끈 쥐는데…….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관전자들이 입을 딱 벌리고는 비무대 끝을 보고 있지 않은가?

그제야 윤종승의 시야에 바닥에 박힌 칼이 들어왔다.

“뭐, 뭐야?”

윤종승이 달려가려는데, 백무극이 순식간에 비무대 위로 휙 솟구쳐 올랐다.

그가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목을 우두둑 꺾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파밧!

백무극이 귀신처럼 찢어진 눈을 하고는 윤종승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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