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75화 (75/508)

75. 운인가, 실력인가?

사흘의 휴식기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남궁천과 윤종승은 매일같이 수련에 임했고, 팽수혁과 진소홍은 남궁천의 조언에 따라 무공을 점검하며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무한의 모든 사람들이 고대하고 기다리던 팔 강 비무 대회 날이 마침내 밝았다.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줄을 서서 대기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더구나 오늘 첫 비무는 소문도 자자한 남궁천이 출전하지 않던가? 게다가 상대는 그 이름도 유명한 모용강!

강호제일세가로 우뚝 선 모용세가의 차남이 정협관의 일인자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정보였다.

용천관에서 떠오른 영웅과 정협관 일인자의 대결.

그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기에는 충분했다.

“자, 자! 공식호구와 일인자의 대결! 그 어디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세기의 비무! 걸자, 걸어! 너도 나도 걸고 걸어서 집도 사고, 땅도 사고, 서방도 바꾸고, 마누라도 바꾸자!”

도박꾼이 좌판을 목에 걸고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듯 호객행위를 해댄다.

그 말이 재미있어서 유심히 듣다가 웃는 아이들도 있고, 어른들 중 몇몇은 실제로 판돈을 걸기도 한다.

“자아! 과연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공식 호구에서 예선전 일 위의 위업을 달성한 남궁천이냐! 아니면 천하제일세가의 차남이자 정협관 일 인자, 모용강이냐! 한 판에 인생을 가르고, 신분 상승과 함께 어여쁜 처자와 잘생긴 남자가 생긴다! 날씨도 쌀쌀해지는데 시린 옆구리 데우기에는 최고의 기회! 걸고, 걸고, 걸자! 마구 걸자!”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은근히 만년 꼴찌의 인생역전기를 응원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판돈은 두 사람에게 고루 나뉘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도박을 하는 자들은 모용강의 승리를 조금 더 높게 점쳤다.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인 법.

남궁천이 지금까지 기적처럼 잘해오긴 했지만, 이제는 슬슬 한계점이 오리라 여기는 것이다.

사람이 어찌 기적만 계속 일으키겠나?

게다가 상대는 모용강!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되리라.

한마디로 도박인들 사이에서 이상을 꿈꾸는 자와 현실을 보는 자들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된 셈.

그러다 보니 남궁천의 승리를 점친 사람들은 머릿수가 많지만 적은 돈을 걸었고, 모용강의 승리를 점친 사람들은 머릿수가 적지만 큰돈을 걸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너도나도 도박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면서 남궁화가 옆에 앉은 금왕을 힐끔 보았다.

지난 대회 때부터 금왕의 오지랖에 가까운 도움으로 계속해서 귀빈석보다 좋은 자리에서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얼음처럼 무뚝뚝한 아버지가 따로 감사 인사를 전할 일이 없었기에 남궁화가 대신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금왕께선 도박을 하지 않으신가 봅니다.”

“네, 도박은 하지 않습니다. 저는 투자만 합니다.”

“차이점이 뭘까요?”

“도박은 찍는 거고, 투자는 계산하는 것이지요.”

남궁화가 알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금왕이 그런 남궁화를 힐끔거리고는 물었다.

“사흘 전보다는 한층 편해 보이십니다.”

“아…… 네.”

“혹시 조카분을 만나보셨는지요?”

“아뇨. 괜히 마음을 어지럽힐까 찾아가지 않았어요.”

“역시 생각이 깊으시군요.”

“아니에요. 그보단…… 그 아이를 믿어보려고요. 왠지 제가 그동안 그 아이를 너무 몰랐다는 생각에 조금 자책하게 되네요.”

“저 역시 남궁천 소협을 믿어보렵니다. 제가 도박은 하지 않지만, 만약 판돈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남궁 소협의 승리에 걸 겁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남궁화가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시선을 돌렸다.

마침 관람석에서 열띤 함성이 차올랐다.

“와아아아아아!”

시선을 내려 보니 대연무장 안으로 남궁천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남궁천! 이겨라!”

“오늘도 기적을 보여라!”

“응원한다, 남궁천!”

“넌 용천관의 영웅, 아니, 무한의 영웅이다!”

너도나도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남궁화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잠시 사이에 너는 한참이나 나아가고 있었구나.’

괜히 뭉클해지는 기분이다.

지금 아버지는 어떤 기분이실까?

슬쩍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지만, 역시 목석같은 아버지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읽기 어려웠다.

단지 남궁천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전처럼 냉랭하지만은 않았다.

잠시 후 다시 천지를 울릴 것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맞은편에서 모용강이 등장한 것이다.

비무대로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모용강! 정협관의 자존심을 세워줘!”

“모용강! 너만 믿는다!”

“기적이라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줘라!”

대체로 모용강을 응원하는 이들은 정협관 관계자이거나, 그에게 판돈을 건 도박꾼들이었다.

마침내 두 사람이 비무대에 올라서 나란히 마주 섰다.

모용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남궁천……!’

자신에게 수모를 안긴 유일한 생도!

금혈서 사건을 다시 떠올리면 정말이지 치가 떨린다.

무엇보다 그날 자신이 남궁천에게 열패감을 느꼈다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 이후로 얼마나 수련에만 집중했을까?

모용강이 손바닥을 펼치고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단단하게 박힌 굳은살.

하나 그 굳은살마저 군데군데 찢어져 피가 맺혀 있다.

지난 사흘간 검을 몇 번이나 휘둘렀는지 알 수가 없다.

정협관 생도들을 죄다 불러다가 진검승부를 펼쳤다.

그 바람에 몇몇 생도는 꽤 심각한 부상을 입고 의원에게 치료받는 중이기도 했다.

그만큼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에게 이런 심정을 안긴 사람은 남궁천이 처음이었다.

유현?

차라리 유현이었다면 인정이라도 하지! 아니, 유현도 자신을 이렇게까지 조급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한데…… 도대체 이 새끼는 정체가 뭐기에……!

콱 말아 쥔 주먹이 바르르 떨린다.

남궁천이 그런 모용강을 물끄러미 보다가 힐끔 시선을 돌리고는 모용신을 응시했다.

그 시선이 묘하게 느껴져 모용신이 눈살을 슬쩍 구겼다.

“뭐지?”

남궁천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뇨. 뭐, 별건 아닌데…… 좀 찜찜해서…….”

“말해라.”

“심사관님은 저 녀석의 친형이시죠?”

“그렇다.”

“그럼 제가 불리한 것 아닙니까? 두 사람이 짜고 제게 불리한 판정을 내리면…….”

순간 모용강이 불쑥 나섰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그만.”

모용신이 손을 들고는 제지했다.

그는 예의 그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남궁천을 보더니 차갑게 웃었다.

“남궁천. 네가 대단한 기적을 써 내려가는 중이라는 건 잘 알겠다. 하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

“죄송합니다. 혹시나 해서 말해 봤어요.”

“만인이 지켜보는 자리다. 부정행위가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 터.”

“예에, 예.”

남궁천이 귀를 후비며 건성으로 대꾸하자 모용강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후우. 저 쓰레기 녀석, 상종하지 말자. 대살성의 자식이니 그 인성이 오죽하랴. 격장지계일지도 모르지.’

가까스로 마음을 다스린 모용강이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불현듯 머릿속에 그간의 고된 수련 과정이 스쳐 지나갔다.

오늘을 위한 훈련.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목적을 가지고 수련에 집중했던 적이 없다.

반드시 이긴다…… 반드시!

모용신이 남궁천을 보았다.

벽라검을 한 손에 들고서는 태연히 서 있는 남궁천.

“준비는 된 건가?”

“예, 시작하시죠.”

기수식도 취하지 않고 대충 대답하는 모습에 모용신과 모용강은 어이가 없었다.

모용신이 모용강을 슬쩍 돌아보았다.

‘저 건방진 콧대를 납작하게 찍어 눌러라. 뭣하면 선을 넘어도 좋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반 죽여 놓을…… 아니, 확실히 죽여 놓을 작정입니다.’

무언의 대화가 눈빛으로 오갔다.

마침내 모용신이 성큼 물러나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시작하라.”

팟!

신호가 떨어지는 것과 모용강이 바닥을 차고 번개처럼 날아갔다.

방심은 없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

쉬이이이잇!

검봉이 곧장 유성처럼 날아가면서 남궁천의 심장을 노렸다.

찰나지간 남궁천이 검을 내리쳤다.

따앙!

청명한 금속성이 터지고 묵직한 힘에 떠밀린 모용강이 휘리릭 돌아서면서 다시 검을 사선으로 베어 올렸다.

쒸이이익!

쩡!

다시 한번 금속성이 터지면서 남궁천이 검을 막아냈다.

모용강은 연거푸 검격을 펼쳤다.

모용세가의 절기인 건곤추섬검(乾坤追閃劍)이 정신없이 펼쳐졌다.

건곤추섬검은 상대로 하여금 달아날 곳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특징이 있다.

하여 정신없이 검격을 맞다 보면 어느새 차가운 날붙이에 요혈이 뚫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데…….

땅! 따당! 팅! 깡! 쩡!

어째서…….

챙챙! 캉!

왜…….

따앙!

촤아아악!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냐!

오른발로 반원을 그리며 미끄러진 모용강이 숨을 몰아쉬고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정말이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었다.

한데…….

‘어째서 저렇게 멀쩡하냔 말이야!’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저절로 생긴다.

남궁천은 정말 순수하게 창궁무애검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더한 것도 없고, 뺀 것도 없이 아주 수수하게.

그야말로 정공법.

너무 정직하게 펼치니 기교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한데도 모든 검로가 막혀서 뚫지를 못한다.

쾌검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건곤추섬검이 이렇게 맥을 못 추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검격을 퍼부으면 퍼부을수록 이상하게 답답하다.

게다가 저 여유가 흘러넘치는 표정은 또 뭔가?

한편 남궁천은 벽라검을 한 차례 훑어보다가 고개를 들어 귀빈석 쪽을 힐끔 살폈다.

맹주는 이쪽을 보지도 않고 옆 사람과 얘기 중이었다.

‘한눈팔 때가 아닐 텐데, 맹주.’

두고 봐야 하지 않겠나?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차근차근 다가가는지. 그 과정을 말이야.

희미한 냉소를 지은 남궁천이 다시 시선을 돌려 모용강을 응시했다.

“이제 슬슬 끝내지.”

“뭐……?”

“한 수 배울 게 있을까 했지만, 역시 그 정도는 아닌 듯해서.”

“너 이 새끼…… 지금 감히 날 무시하는 거냐?”

모용강이 부글부글 끓는 눈으로 남궁천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모용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심한 녀석. 고작 저런 말에 넘어가다니.’

그나저나 남궁천이 이리도 대단한 실력을 지녔을 줄이야.

막상 비무를 시작하니 진가가 더욱 드러나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맹주께서 불편하실 듯한데…….’

모용신의 시선이 맹주에게 한 번 향했다가 관람석에 앉은 남궁검에게도 향했다.

남궁검은 시종 냉랭한 표정으로 남궁천의 비무를 지켜보고 있었다.

겉으로는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지만, 그 역시 사람인지라 내심 놀라는 중이었다.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남궁검이 눈을 가늘게 뜨는데 마침 남궁천의 시선이 날아와 부딪쳤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남궁천의 눈빛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잘 지켜보십시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여어어업!”

모용강이 전에 없이 단단한 기합성을 터뜨리며 빛살처럼 뻗어왔다.

쒸이이이잉!

검기가 휘날리면서 남궁천의 단전을 파고들었다.

목석같던 남궁검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살초!’

분명 상대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펼치는 살초다.

파밧!

남궁천이 뒤로 훌쩍 물러나는 걸 본 남궁검이 내심 혀를 찼다.

‘저런!’

남궁천은 지금 실수를 한 거다.

모용세가의 건곤추섬검은 회피보다는 막기를 이용해야 한다. 회피 중에서도 제일 안 좋은 게 물러섬이다.

한데 남궁천은 지금 물러나는 것을 택했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상황!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음?”

아주 찰나간에 모용강이 멈칫하는 것 같더니 보법이 흐트러져 버린 것이다.

그 틈을 타서 남궁검이 벽라검을 검집째로 휘둘렀다.

쉬이이익, 꽈앙!

검집에 정수리를 얻어맞은 모용강이 그대로 의식을 잃은 채 거품을 물고 고꾸라졌다.

“……!”

장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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