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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공검제-60화 (60/508)

60. 등하불명(燈下不明)

목 줄기까지 닿아 있던 살기가 이젠 폐부를 뚫고 들어올 기세다.

남궁천은 네 고수를 차례로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집안 꼴 잘 돌아간다. 손님이 찾아왔는데 주인은 대낮부터 침대에서 벌거벗은 채로 뒹굴고 자빠졌고, 이 병신 같은 것들은 칼이나 들이밀고. 이래서 장사 제대로 되겠어? 너도 점소이 좀 붙여주랴?”

거침없이 말이 튀어나가니 속이 시원하다.

주렴 너머의 인간 돼지가 킬킬거리며 웃더니 손을 저으며 호위들에게 명했다.

“물러나 있어라.”

“회주님.”

“물러나.”

단호한 목소리가 이어지자 네 명의 고수들이 두어 걸음 멀어진다.

남궁천이 눈썹을 성큼 치켜 올리고는 따졌다.

“이 새끼들아. 그게 물러난 거야? 발모가지 걷어차기 전에 더 물러나라.”

“……!”

호위들이 당장에라도 쳐 죽일 듯이 남궁천을 노려보았다.

하나 주렴 너머의 그림자가 다시 더 물러나라고 말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대여섯 걸음을 또 물러났다.

회주가 손짓을 하니 나신의 여인들 중 두 명이 일어나더니 주렴 옆으로 가서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주렴이 양 갈래로 스르르 밀려났다.

‘아, 씨발 내 눈…….’

주렴이 갈라지면서 거대한 살덩어리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가히 눈 뜨고 봐주기 힘든 광경이었다.

“역시 돼지 새끼라서 부끄러움이 없는 거냐?”

남궁천이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지만, 회주는 별말 없이 침상에서 일어나 한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대범한 척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 기어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 소추(小錘)를 가지고 있으면 쪽팔려서라도 가려야 하지 않겠어?”

이번엔 좀 통한 것인지 경장 하나를 가볍게 걸치던 회주가 멈칫했다.

“소추?”

“뭐 작디작은 무게라는 뜻이지. 몸은 참 비대한데 거기는…… 쯧쯧.”

남궁천이 최대한 안쓰러운 표정으로 혀를 차자, 회주의 이마에 핏대가 살짝 솟았다.

하나 곧 노련한 태도로 감정을 추스르고는 돌아섰다.

“그래, 어디서 오신 고인이신지?”

남궁천이 곁눈질로 나신의 여인들을 힐끔거리자, 회주가 끌끌 웃었다.

“신경 쓸 것 없소. 어차피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년들이니까.”

“네가 한 짓이냐?”

“뭘? 저년들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거?”

“그래.”

“그렇소. 약을 먹여서 영구적으로 장애를 만들었지. 킬킬. 그러니 안심하시오.”

남궁천이 헛웃음을 지었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약간 갈등을 했다.

닭을 훔칠지, 달걀을 사 올지.

한데 이걸로 갈등이 끝났다.

나신의 여인들은 대략 남궁천 또래였다.

‘한마디로 내 아들 또래의 아이들에게 잘도 그런 짓을 했단 거군.’

이게 자식 가진 부모의 마음인가?

전생이었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저 악랄함에 치가 떨린다.

남궁천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역시 달걀을 사는 것보단 닭을 훔치는 쪽이 맞는 거였어.”

“응? 그건 무슨 소린지?”

돼지 회주가 미간을 잔뜩 모으고는 터벅터벅 걸어왔다.

남궁천이 턱짓으로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그래, 좀 와서 앉아라. 손님이 왔으면 접대를 해야지.”

회주가 우뚝 멈추더니 이맛살을 슬쩍 구겼다.

더 이상은 참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가 남궁천을 가만히 노려보며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대단한 걸 가져오셨는데?”

“이거.”

휘리리릭!

남궁천이 검은 천을 잡아당기자, 벽라검이 허공으로 떠올라 빠르게 회전하다가 다시 탁자로 툭 떨어졌다.

돼지 회주가 눈에 힘을 주었다.

“벽라검인가?”

“용케도 알아보는구나. 어때? 이만하면 괜찮은 걸 줄 수 있겠지?”

“물론. 하나…… 그게 진품인지는 확인해야겠지.”

과연 벽라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처리할 능력이 된다는 걸까?

벽라검이 남궁세가의 가보라는 것을 알 텐데도 회주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지. 얼마든지 확인해도 좋다.”

“그래서 원하는 건?”

“네 목숨.”

“…….”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회주 뒤에서 귀신처럼 나타난 호신위였다.

회주 다음으로 강한 자!

그의 단전에서 솟구친 기운이 빠른 속도로 혈로를 따라 이동하더니 손끝에서 비도를 타고 날아들었다.

남궁천이 재빨리 벽라검을 뽑아 들면서 비도를 쳐냈다.

쉬따앙!

푹!

“컥!”

그대로 튕겨 나간 비도가 좌측에 서 있던 호위의 목을 뚫어버렸고, 발검과 동시에 벽라검이 우측 호위의 목을 그었다.

슈칵!

츄아아아아!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

이렇게 둘을 잡고!

탁, 휙!

남궁천이 재빨리 탁자를 손으로 짚고 넘어가자, 두 방향에서 동시에 도기가 날아들었다.

쒸쒸아앙!

찰나지간 남궁천이 어기신풍을 펼치자, 그의 몸이 금리도천파(金鯉倒千波)의 묘리로 튕기듯이 날아갔다.

파앙!

만약 팽수혁이 지금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기가 차서 입을 다물지도 못했으리라.

남의 가전무공을 저리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다니.

어쨌거나 남궁천은 그렇게 빛살처럼 이동하는 것과 동시에 벽라검을 손에서 날려 보냈다.

쒸아아앙!

퍼억!

화살처럼 날아간 벽라검이 그대로 회주의 이마를 뚫으며 박혔다.

쿠웅!

회주가 뻣뻣한 통나무처럼 넘어갔다.

정말이지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모든 상황이 거짓말 같았다.

도기로 허공을 벤 호위 두 명은 돌처럼 굳어서 그 모습을 보았고, 남궁천을 향해 달려들던 측근 호위 둘은 눈을 부릅뜬 채로 목석이 되어버렸다.

호위의 목적은 언제나 단 하나다.

주인을 지키는 것.

한데 그 지켜야 할 주인을 방금 잃었으니 머릿속이 혼란할 수밖에.

남궁천이 뻣뻣하게 선 절정고수 둘을 지나쳐 그대로 절명한 회주에게 다가갔다.

대자로 뻗은 회주는 경장이 풀어져서 양물을 훤히 드러내놓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봐도 소추 맞네, 이 새끼.”

남궁천이 무심히 중얼거리고는 회주의 목을 밟고선 벽라검을 뽑아냈다.

“이 정도면 진검인 건 알았을 테고. 그 대가로 목숨은 잘 받아가마.”

뚝…… 뚝……!

검첨에서 피가 떨어지는 소리.

곧이어 침상에서 비명을 지르는 여인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말은 하지 못하지만 비명은 지를 수 있나 보다.

이제 네 명의 호위들이 진득한 살기를 피워 올리면서 남궁천을 에워쌌다.

남궁천이 그들을 둘러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난 떼싸움 싫어한다. 소싯적에 징글징글하게 싸워대서 이젠 하나만 처리하고 싶다. 네놈들은 방금 주인을 잃었으니, 나를 공격할 이유도 없어. 그런데도 굳이 목숨을 버리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닥쳐라!”

파밧!

역시 안 통하나?

네 명의 호위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남궁천은 운공이 제일 느린 자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상대의 단전에서 솟구친 기운이 혈맥을 따라 오른손으로 향하는 걸 보면서 벽라검으로 복부를 정확히 찔렀다.

푸욱!

내기의 흐름상 방어하기 가장 취약한 부분.

“커억!”

피를 토하는 호위의 머리를 꺾어 쥐고는 휙 돌려세우자, 세 자루의 도검이 쏟아졌다.

촤촤촤아악!

“크아악!”

전신을 난자당한 호위는 동료들을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더니 이내 스르르 허물어졌다.

찰나,

쉬이이이잇!

남궁천이 검을 횡으로 휘두르자, 호위들이 멀찍이 물러났다.

“이 미친 새끼가!”

호위 하나가 욕지거리를 쏟아내면서 비도 두 자루를 다시 날려 왔다.

따다앙!

공력의 흐름을 미리 봐둔 남궁천이 벽라검을 올려치면서 비도를 튕겨내자, 한 자루는 다른 호위의 눈을 찢으며 지나갔고, 한 자루는 또 다른 호위의 허벅지에 박혔다.

“크아악!”

“아악!”

남궁천이 이죽거리며 비도를 던진 호위에게 달려들었다.

타닷!

“자꾸 동료들만 찔러대서 어쩌냐?”

“이…… 개새……!”

퍽!

이번에도 공력의 흐름을 보면서 가장 취약한 턱을 검두로 올려쳤다.

호위가 말을 채 잇지도 못한 채 뒤로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찰나지간 남궁천이 바짝 따라붙더니 호위의 품에서 비도를 뽑아내고는 그대로 배와 가슴, 목을 빠르게 찔렀다.

푹푹푹!

“커억!”

호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뭐가 이리 빠른……!’

정말이지 대처하기에는 남궁천이 너무 빨랐다.

털썩!

그대로 무릎을 꿇은 호위가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며 겨우 물었다.

“너…… 뭐야……?”

“저승사자.”

쉬컥!

벽라검이 횡으로 스쳤고, 호위의 목이 허공으로 솟구치며 피를 뿌렸다.

이제 남은 부상자 둘.

허벅지에 비도를 박은 호위가 기합성을 터뜨리며 달려든다.

하나 그도 알고 있으리라.

자신의 죽음을.

쒜에엑! 푹!

남궁천의 손에서 눈 깜빡할 사이에 날아간 비도가 호우의 목을 뚫었다.

쿠당탕탕!

달려오던 관성을 이기지 못한 녀석이 그대로 한참을 굴렀다. 남궁천은 발아래까지 밀려온 녀석의 머리를 슬그머니 밀어냈다.

이제 남은 무인은 하나.

눈을 다친 호위가 검을 앞세운 채 청력에 모든 주의를 기울였다.

“검이 목적을 잃으면 방향도 잃는 법. 그러게 주인이 뒈지면 네 갈 길을 가지 왜 그러고 서 있었어?”

“노오옴!”

휙! 휙! 휙!

무인이 연이어 검을 세 번 휘둘러왔다.

하나 멀쩡한 눈을 가지고도 남궁천의 움직임을 쫓기 힘든데,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공격이 통할 리가 없다.

“혹시 가족 있나?”

남궁천의 목소리에 호위가 움찔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남궁천이 냉랭하게 중얼거리더니 일순 벽라검을 사선으로 베었다.

촤아아악!

“커윽!”

그때였다.

“회주님! 괜찮으십……!”

문이 벌컥 열리더니 중년의 사내가 달려 들어오다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눈앞에서 상반신이 사선으로 갈라지는 호위를 보곤 입을 쩍 벌렸다.

쿠웅!

호위가 쓰러지자, 남궁천이 벽라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내고는 의자로 저벅저벅 걸어가서는 털썩 앉았다.

남궁천이 중년 사내를 보며 물었다.

“누구?”

중년 사내가 두 눈에 힘을 잔뜩 주며 대답했다.

“부회주다. 지금 네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알지. 그런 넌 내가 이제부터 무슨 짓을 할지는 알고?”

“……!”

“목마른데 마실 물 좀 있어?”

“네놈은 지금 불명회를 건드렸다. 모든 흑도인들이 널 잡아 죽이려고 할 것이다.”

“내가 누군지는 알고?”

“곧 알게 되겠지.”

“그럼 넌 죽게 되겠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냐? 무림맹에서 보낸 놈이냐?”

“그건 아니고. 아, 그런데 물 있냐고, 이 새끼야.”

“없어, 이 미친놈아.”

“아니, 여긴 왜 마실 물도 없어? 뭐, 이래? 이거?”

“미친 새끼.”

“자, 그럼 목이 마른 관계로 길게 얘기 안 한다.”

“……?”

남궁천은 생각을 정리한 다음 귀왕채 녀석들에게 썼던 방법을 다시 꺼냈다.

“왕이 있었다. 그런데 적국의 장수가 쳐들어와서 왕을 죽였다. 그럼 이제 그 나라의 왕은 누구냐?”

“왕의…… 아들?”

음……? 이게 아닌데…….

“저 돼지 새끼한테 아들이 있었냐?”

“없다.”

“그럼 다시. 아들이 없는 왕이 숙적의 손에 죽었다. 그럼 이제 왕은 누구냐?”

“뭔, 개 쌈 싸 먹는 소리냐!”

파밧!

순간 부회주가 일갈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남궁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안 통하네.

귀왕채만 한 놈들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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