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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공검제-51화 (51/508)

51. 탈출은 지능 순

남궁천은 팔이 부러져 끙끙 앓는 송원교와 백리향을 보며 혀를 찼다.

무인이란 인간들을 가만 보면 참 희한하다.

온종일 벽만 보고 수련하다 보니 머리가 돌아 버린 건 아닌지, 칼만 휘두르다 보니 돌대가리가 된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가끔 있다.

지금 송원교와 백리향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 당했으면 대충 눈치채고 꼬랑지를 말 때도 되었건만.

어찌 이렇게 한결같이 멍청한 짓만 골라서 할까?

남궁천이 다시 독고진을 바라보았다.

“어쩔 거지? 한 번 놀아볼까?”

독고진이 가만히 어금니를 씹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객점 내부에 흘렀다.

무맹관 생도들 역시 숨도 쉬지 않고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과장 좀 보태자면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

꿀꺽.

마른침을 삼킨 독고진이 눈살을 가늘게 여몄다.

‘남궁천……!’

내일 함께 시험을 치르게 될 자.

그는 이미 내일 치를 시험 내용을 알고 있었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입수한 정보였다.

남궁천을 쉽게 보면 안 된다는 충고는 이미 모용강으로부터 들었지만…….

‘생각보다 다른 느낌이군.’

이자가 정말 용천관 호구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 눈앞에 선 남궁천은 어느 모로 보나 장군의 면모를 풍기고 있었다.

섣불리 다가설 수 없는 위엄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동시에 패도적이면서도 거친 기운이 느껴진다.

‘하나 여기서 물러날 정도는 아니야.’

당우기가 처참하게 깨졌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내심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지금 보니 그 정도는 아니다.

분명 단단한 바위를 보는 기분이긴 하지만,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호승심을 자극하고 있달까? 굳이 따지자면 남궁천보다 그 뒤에 선 팽수혁이 더 신경 쓰인다.

남궁천이 피식 웃으며 다시 말했다.

“왜 대답이 없어? 귓구멍이 처막혔어?”

남궁천이 노골적인 비웃음을 띤다.

이는 숫제 싸움을 거는 행위나 진배없었다.

실제로 남궁천이 바라던 바였고.

자, 들어와. 그 검을 들고 덤벼. 난 지금 황금 기운을 확인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리니까.

지난 열흘간 수련하면서 금혈서의 내단으로 얻은 기운에 어느 정도 적응을 완료한 상태였다.

평소보다 빨라진 내공을 실전에서도 잘 쓰려면 한 번쯤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뭐, 무난할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 외에도 또 한 가지 진척된 부분이 있다.

바로 초견파공안이 색안(色眼)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 지금까지는 모든 상대의 내공이 붉은빛으로 보였다면, 이젠 상대의 내공 성질에 따라 그 기운의 색이 다르게 보인다.

금혈서의 경우에는 워낙 그 성질이 선명해서 황금빛으로 보였는데, 이젠 웬만한 무인을 상대로도 기운의 색을 구분할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선 것이다.

‘이 또한 금혈서 내단 덕분이겠지.’

전생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내공이 심후해지고 경험이 쌓일수록 이능인 초견파공안도 단계적으로 성장했으니까.

물론 고수일수록 색안으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수련을 오래 하다 보면 오행의 기운이 가려지거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이 있기에.

굳이 비유를 하자면 초보일수록 초식이 분명한 것과 같달까?

어쨌거나 아직 약관도 지나지 않은 생도들의 수준이라면 색안으로도 충분히 내공의 질을 판단할 수 있었다.

독고진의 경우는 흑빛. 이는 그가 익힌 내공의 성질이 오행 중에서도 금계(金系)에 속한다는 것.

남궁천은 금계의 상극인 목계의 기운을 운용했다.

우웅.

단전에서 솟아오른 목계 기운이 혈맥을 따라 질주하는 게 느껴진다.

남궁세가 가전 무공이 목계는 아니나, 전생의 온갖 잡다한 내공심법을 두루 익힌 덕택에 기운의 성질을 살짝 비트는 정도는 일도 아니다.

찰나, 독고진의 단전에서도 한 줄기 공력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독고진이 날카롭게 외쳤다.

“흥! 사과할 생각이 없다면 네 말대로 무인답게 책임을 져야겠지!”

독고진은 재빨리 보법을 밟더니 순식간에 남궁천 앞에 다다라 검을 내리쳤다.

“옳은 말이다.”

남궁천이 대꾸하면서 벽라검을 뽑아 들었다.

차까아앙!

“크읏!”

검과 검이 부딪친 순간 독고진은 저도 모르게 나직이 비명을 터뜨렸다.

한 줄기 뇌전이 손바닥을 통해 팔뚝을 타고 전신으로 흘러가는 기분이다.

금계와 상극을 이루는 목계의 기운이 온 뼈마디를 들쑤시니 찰나지간이었지만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었다.

결국 독고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놓고 말았다. 아니, 손을 놓기 전에 이미 손바닥이 찢어져 나갔다.

휘리릭, 콰작!

그대로 튕겨 나간 독고진의 검이 벽에 깊숙이 꽂혔다.

찢어진 손바닥에서는 피가 배어나왔다.

너무나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주변 생도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방금 어떻게 한 거지?’

‘발검술인가?’

‘남궁세가가 쾌검도 중요하게 여긴다고는 들었지만 저렇게 빨랐어?’

한데 남궁천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파밧!

쉬이이잇!

벽라검이 곧장 허공을 가로지르며 독고진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헛!”

창졸지간 독고진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그는 벽라검을 뻗어오는 남궁천의 두 눈에 사로잡혀 어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전신이 뻣뻣하게 굳어버리는 공포였다.

그렇게 두 눈 뜨고 멍하니 당할 순간,

쩌어엉!

느닷없이 터진 금속성에 독고진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누군가 검을 내밀어 벽라검을 막고 있었다.

‘모용강……?’

흠칫거리고 돌아본 그는 상대가 전혀 뜻밖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벽라검을 뻗었던 남궁천 역시 눈을 가늘게 뜨고는 갑자기 나타난 방해꾼을 보았다.

“뭐야?”

“아아, 여기서 더 하다간 우리 모두 위험해질 수 있어서 말이오. 괜히 삼차 시를 치르기도 전에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실격 처리되면 억울하니까.”

도복을 단정하게 갖춰 입은 사내가 희미하게 웃으며 답했다. 하나 그가 손에 든 검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남궁천이 내지른 힘이 워낙 강한 탓이었다.

‘무슨 힘이 이렇게나……!’

본능적으로 끼어들긴 했지만, 사내의 생각보다도 남궁천의 힘이 더 강했다.

사내가 짐짓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끙……! 여기서 그만 정리하는 게 어떻소? 괜히 다른 생도들에게 피해가는 것도 보기 좋지 않고.”

잠시 사내를 노려보던 남궁천이 한숨을 내쉬고는 검을 거두었다.

“미안하게 됐군.”

“후우, 괜찮소. 그래도 내 뜻을 받아들여 줘서 고맙소.”

사내가 포권을 하며 남궁천을 힐끔 보았다.

남궁천 역시 포권하면서 답례했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끼쳤소.”

“뭐, 생도들끼리 모인 객점에서 이 정도 문제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그래도 더 심각해지기 전에 자제해주셔서 고맙소. 독고 형도 내 뜻을 받아줘서 고맙구려.”

사내가 독고진에게도 말을 건넸다.

자연스럽게 그를 끼워 넣음으로써 독고진의 명예도 나름 보호한 것이다.

남궁천이 물끄러미 보고 있자, 사내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말을 붙였다.

“아, 나는 무맹관 운경이라 하오. 종남파에서 왔소.”

그러자 정협관 생도 몇몇이 나직이 탄성을 터뜨렸다.

종남파 운경이라면 화산파 유현과 더불어 무맹관에서 이름을 떨치는 생도 중 한 명이었다.

한데 남궁천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몸을 휙 돌렸다.

“그럼 즐기고 가시오.”

“에? 그게 끝이오?”

“하면? 내가 누군지는 알 거고. 더 할 말 있소?”

운경이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남궁천을 보았다.

더 할 말이라…….

’없지.

누군지도 알긴 알고.

그래도 뭔가 예의상 통성명이라도 할 줄 알았더니.

운경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오. 언제 시간 되면 술이나 한잔 나눕시다.”

“그러시든가.”

남궁천이 대충 대꾸하고는 걸어가자, 운경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용천관 공식 호구 남궁천이라. 재미있는 녀석이네.’

그가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쾌검과 중검이라.

‘제법이야.’

그때 독고진이 쭈뼛거리며 다가와서는 포권했다.

“적당한 때에 말려줘서 고맙소. 덕분에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소.”

“독고 형은 상대를 가려내는 눈부터 길러야겠소.”

“그게 무슨……?”

“무슨 뜻인지는 빤히 알면서 뭘 물어보시오?”

운경이 피식 웃으며 걸어가 버리자, 독고진이 어금니를 뿌득 갈았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날 도대체 뭐로 보고……!’

* * *

다음 날, 삼차 시에 참가할 여든 명의 생도들이 이른 아침부터 대연무장에 집합했다.

단상에 오른 당예설은 생도들의 면면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

부상을 입은 생도들은 무림맹 최고 의원들에게 진료를 받으면서 꽤나 회복한 상태였다.

한데 그중에서도 유독 상태가 심각한 생도도 있었다.

‘저 아이들은 어쩌다 다친 거지?’

송원교는 입이 완전히 망가져서 퉁퉁 부어 있었고, 팔도 하나 부러졌는지 부목을 댄 채로 붕대를 감고 있었다.

백리향 역시 팔에 부목을 댄 걸 보면 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설마 저 둘이 싸운 건 아닐 테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남궁천에게 눈길이 향한다.

여자로서의 직감일 수도 있고, 그저 올해 가장 큰 이변의 존재로 떠올라서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요즘은 뭔가 이해되지 않는 일이 발생하면 자꾸만 남궁천을 쳐다보게 된다.

‘뭐, 더 지켜보면 알겠지.’

당예설이 시선을 거두고는 소리쳤다.

“지금부터 삼차 시를 치르도록 하겠다. 삼차 시 역시 조별대항전이다. 다섯 조가 서로 겨루게 될 텐데, 가장 먼저 임무를 수행한 조가 승리. 임무는 특정한 기관에 갇힌 인질을 구해오는 것! 조원 중 한 명이라도 시간 내에 돌아오면 합격! 지금부터 나눠주는 지도를 보고 인질의 위치를 파악해 각 조가 구해오면 된다, 이상!”

그녀가 말을 마치자 적랑단 수하들이 나서서 다섯 조씩 네 무리로 나누었다.

공교롭게도 남궁천이 속한 무리에는 모두 정협관 생도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같은 학관에서 통과자가 너무 많이 배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는 했으나, 어딘지 찜찜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손을 잠시 섞었던 독고진도 같은 무리에 속해 있었는데, 녀석이 다른 조 생도들과도 은밀히 눈짓을 주고받았다.

뭔가 심상찮은 낌새를 챈 윤종승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것들 뭔가 꾸미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

“일차 시도 운으로 통과한 놈이 떨어지면 어때서?”

“그,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욕심이 난다.

더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남궁천이 그 속내를 읽기라도 한 것인지 피식 웃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익숙해져라. 내가 조금이라도 잘나게 되면 사방이 적으로 변하는 게 강호다. 그게 무림이고, 세상이지.”

“그게 무림…….”

“무서운 건 음모를 꾸며대는 저놈들이 아냐. 거기에 흔들리는 너 자신이지.”

“……!”

“흔들리지 말고 네 길을 가라. 네가 잘나갈수록 저런 것들이 많아질 거다. 이젠 익숙해져야 할 거다.”

윤종승이 입을 꾹 다물면서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래, 그것이야말로 진정 강해지는 비법일지도.’

“고맙다, 남궁천.”

윤종승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남궁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건 큰 소리로 알아듣게 말해.”

“고맙다, 남궁천!”

“알면 됐어.”

그러는 사이 당예설이 남궁천이 속한 무리에게 다가왔다.

사인 일조가 모두 다섯. 총 스무 명.

“다들 준비됐나?”

“예!”

“그럼 달려.”

말을 마친 당예설이 허공에 지도 다섯 장을 뿌렸다.

파바바밧!

생도들이 일제히 지도를 낚아채기 위해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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