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3화 (43/508)

43. 쫄리면 말고

당우기가 바닥에 쓰러진 황보승을 보고는 콧잔등을 씰룩였다.

“저 병신 같은 새끼…….”

호구의 호구 새끼도 잡지 못해서 저렇게 널브러져 있다니.

열불이 뻗친다.

그러면서도 연이은 변수가 생기니 정말 저 녀석들에게 뭔가 있는 게 아닌지 경계심도 든다.

뭐가 어찌 됐든 이젠 자신이 나설 차례.

저놈들을 여기서 절대 보내줄 수는 없다.

모용강이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당우기를 돌아보았다.

“우기야, 시간 없다.”

“칫! 알고 있다고.”

혀를 찬 당우기가 앞으로 성큼성큼 나서며 악굉을 보고 턱짓했다.

휘리릭.

악굉이 창을 현란하게 휘두르며 당우기와 함께 앞장섰다.

두 사람이 나서자 남궁천이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계속하자고?”

“운 좋게 이긴 걸 가지고 우쭐대지 마라.”

당우기의 말에 남궁천이 피식 웃었다.

“운 좋게라. 너희들 말 대로면 우리는 아주 하늘이 돕는 자들이군. 이쯤 되면 그게 더 겁날 것 같은데? 괜찮겠어? 하늘이 돕는 자들을 건드려도?”

“시끄럽다. 곧 바닥에 드러누워서 그 하늘 보며 원망하게 될 거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두 명이 나오네.”

그러자 이번엔 악굉이 창을 휘돌리며 대꾸했다.

“쫄리면 그쪽도 두 명 나오시오.”

그러자 뜻밖에도 진소홍이 나섰다.

그녀의 등장에 당우기와 악굉이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진소홍은 다리 한쪽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피에 젖은 것을 보니 부상을 입은 게 틀림없었다.

이건 자신들을 얕봐도 한참 얕보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당우기가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소저, 지금 장난하는 걸로 보이오?”

“그럴 리가요. 한 번쯤 겨뤄보고 싶었어요.”

“겨루고 싶었다니. 누구와?”

“당신 같은 당가 사람들과.”

진소홍의 대답에 당우기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고, 남궁천은 의외라는 듯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당우기가 헛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이유라도?”

“뭐 딱히. 그냥 비슷한 무기를 사용하니까 한 수 배울 겸?”

진소홍이 배시시 웃더니 허리춤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진소홍이 사용하는 무기를 처음 보는 순간이었기에 팽수혁과 윤종승도 눈을 끔뻑이며 집중했다.

“저건…… 유성추?”

팽수혁이 중얼거렸고,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성추가 맞다.

한데 추(錘)라고 부르기에는 정(釘)에 가깝게 생겼고, 다른 하나는 꽤나 큰 비도로 이어져 있다.

본래 유성추라면 두 개의 추를 천잠사 따위로 이은 무기를 말한다.

그러니 진소홍의 무기는 어딘지 좀 특이한 구석이 있다.

비도 때문에 얼핏 승표(繩鏢)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비도와 정을 잇고 있는 천잠사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가늘다.

마치 거미줄 같다.

‘은잠사(銀蠶絲)로군.’

영물인 은잠에게서 뽑은 실. 천잠사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질긴 실이다.

한마디로 어지간한 칼질로는 끊어지지도 않는다는 뜻.

역시 이를 알아본 팽수혁이 입을 딱 벌리고는 중얼거렸다.

“저 귀한 걸 어디서 얻었대?”

그러고 보니 진소홍이 어디 출신이었더라.

그의 상념을 깨면서 당우기의 목소리가 불쑥 들렸다.

“어디서 요상한 장난감 하나 들고 왔구려. 하나 그깟 유성추 좀 다룬다고 본 가의 암기술을 당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죠. 그깟 유성추인지 아닌지 한 번 확인해 보시죠? 제가 지면 한 수 배우는 셈 치면 되니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고요.”

당우기의 표정이 슬쩍 굳었다.

당돌하면서도 짜증 날 정도로 말 잘하는 여자다.

하여튼 이놈이나 저놈이나 세 치 혀에 전부 기름을 처발라 놓은 건지.

당우기가 비수를 꽉 움켜쥐었다.

“그렇다곤 해도 우리 둘을 홀로 상다해긴 어려울 텐데.”

당우기의 시선이 남궁천에게 향했다.

어쨌든 이번 목표는 남궁천이다.

남궁천이 나서지 않으면 괜히 힘을 뺄 필요조차 없다.

한데 남궁천이 엉뚱하게도 팽수혁의 등을 떠밀었다.

“뭐 해? 어서 나가.”

“뭐? 너는?”

팽수혁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돌아보자, 남궁천이 어깨를 으쓱였다.

“응원하고 있을게.”

“이런 미친…… 네놈이 나서라! 난 네놈 부하가 아니란 말이다!”

팽수혁이 씨근거리자 남궁천이 할 수 없다는 듯 나섰다.

“이 녀석이 쫄았으니까 내가 직접 너희들을 상대해주마.”

“이 새끼야! 쫄긴 누가 쫄았다고 그래?”

팽수혁이 발끈해서 소리치자 남궁천이 손을 훠이훠이 내저었다.

“괜찮아, 괜찮아. 상대는 오대세가 자제들이잖아. 이해한다. 여기서 쫄았다고 널 욕할 사람 아무도 없어. 날 믿어라. 안전하게 지켜줄 테니. 혹시라도 휘말리면 다치니까 멀찍이 떨어져서 얌전히 구경만…….”

“닥쳐, 이 새끼야! 나와! 내가 싸운다! 남궁천, 너 이 새끼. 이것들 묵사발 만들고 두고 보자!”

“흐음. 괜찮겠어?”

“시끄러워! 난 너희들처럼 호구 출신이 아니란 말이다!”

“오오, 든든한데?”

남궁천이 박수까지 치자 팽수혁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넌…… 좋은 말을 해도 왜 칭찬으로 안 들리지?”

“흐음. 그러게.”

남궁천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도 그랬다.

진심으로 칭찬해 주면 다들 얼굴 시뻘게져서 화를 내곤 했지.

아무래도 난 칭찬과 동시에 상대를 엿 먹이는 재주까지 가진 모양이다.

도대체 안 가진 게 뭐지.

이렇게 재주 많은 내가 평생 도망만 다니다가 생을 마감했다는 게 새삼 분하고 열받는다.

이게 다 그 맹주 새끼 때문이지.

두고 봐라, 맹주.

네놈 옆에 설 날이 멀지 않았다. 아니, 멀다고 해도 언젠간 반드시 그 자리까지 간다.

남궁천이 새삼 다짐을 하는 사이, 팽수혁이 대도를 뽑아 들고는 소리쳤다.

“곧 해 뜬다, 이 새끼들아. 빨리빨리 끝내자!”

한편 벼르고 있던 남궁천이 나오지 않자 당우기와 악굉은 조금 당황한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보다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악굉부터 자세를 잡았다.

“당 형, 빨리 끝내고 저 호구도 손봅시다.”

“그러지.”

두 사람이 기수식을 취했다.

마침 팽수혁이 기합성을 내지르면서 달려가려는데 남궁천이 불쑥 끼어들었다.

“잠깐!”

“뭐야?”

팽수혁 뿐만 아니라 당우기와 악굉도 도끼눈을 하고는 홱 돌아보았다.

남궁천이 손을 들어 올렸다.

“워어, 워어. 다들 진정하고. 이왕 싸우는 것, 아까 하던 말은 마저 하자고.”

“뭔 소리냐?”

당우기가 묻자 남궁천이 뭔가를 휙 던졌다.

털썩.

황보승 옆에 떨어진 것은 다름 아닌 금혈서의 사체.

당우기가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돌아보자, 남궁천이 턱짓으로 적묘설아를 가리켰다.

“그쪽도 걸어야지. 이긴 사람이 둘 중 하나를 먼저 고르는 걸로 하자고.”

“뭐? 누구 맘대로 영물을 바꾸자는 거냐? 아니, 애초에 네놈들이 잡은 쥐새끼가 영물이라는 증거가 있어?”

“거, 사람 말을 너무 못 믿네. 영물 중에서도 특급 영물이라니까.”

“개소리 하지 마라! 누가 봐도 그냥 쥐새끼가 분명한데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그래, 백번 양보해서 영물이 아니라고 치자. 그래도 너희들이 이기면 되는 것 아냐? 왜? 쫄려?”

“이 새끼가 누가 쫄린다고…….”

“그럼 내기를 하시든가. 혹시 쫄리면 말고. 아, 충분히 쫄릴 수 있어. 상대는 대하북팽가의 직계니까.”

남궁천의 말에 팽수혁이 어깨를 쫙 펴고는 속없이 입매를 비틀었다.

하여튼 저 단순한 녀석.

내가 이렇게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재주까지 있다.

마침 지켜보던 모용강이 싸늘하게 말한다.

“우기, 시간 없다.”

당우기가 힐끔 동녘을 바라보았다.

머지않아 해가 뜬다.

이딴 일로 옥신각신할 때가 아니다.

남궁천 말대로 이겨 버리면 그만이다.

당우기가 줄을 잡아당겨서는 쓰러진 황보승의 손목에 묶었다.

이렇게 적묘설아와 금혈서의 사체가 황보승 옆에 나란히 남았다.

당우기가 남궁천을 돌아보며 으르렁거렸다.

“됐냐?”

“좋아. 그럼 시작.”

남궁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팽수혁이 잔뜩 성난 표정으로 달려 나가며 소리쳤다.

“남궁천! 나한테 시작이니 뭐니 명령하지 마라앗!”

쉬이이잇, 쩌어엉!

팽수혁의 일격을 가까스로 받아낸 악굉이 굳은 표정으로 빠르게 물러섰다.

파바밧!

‘강, 강하다!’

악굉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분명 지난번 골목길에서 손을 섞었을 때보다도 한층 더 강해진 느낌이 든다.

기분 탓인가.

악굉이 현란한 동작으로 날렵하게 휘돌면서 팽수혁을 향해 짓쳐들었다.

파바밧.

창이 뱀처럼 휘어지면서 팽수혁의 품을 파고드는 것만 같다.

팽수혁이 코웃음을 치며 창대를 쳐냈다.

“흥!”

까앙.

사사삿.

놀랍게도 팽수혁의 신형이 창대를 타고 미끄러지듯이 안쪽으로 파고든다.

“엇!”

악굉이 당황하며 물러났다.

“하찮은 눈속임이군!”

팽수혁이 고함을 버럭 지르면서 대도를 횡으로 그어왔다.

어기신풍에 이은 철혈섬패의 변초다.

악굉이 서둘러 창을 거꾸로 세우며 간신히 도신을 막아냈다.

따아앙.

촤르르르르륵.

고막을 찌르는 소리와 함께 악굉의 몸이 두어 장 미끄러졌다.

마침 옆에서 유성추를 튕겨내던 당우기가 악굉과 부딪치면서 밀려났다.

“뭐야!”

당우기가 신경질적으로 돌아보자, 악굉이 얼른 자세를 바로잡으며 사과했다.

“당, 당 형. 미안하게 됐소. 방심하는 바람에 그만.”

방심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스스로 회의감을 품었다.

정말 방심이었나.

모르겠다.

팽수혁의 무공이 달라졌다.

지난번에는 단순무식하면서 거칠기만 했다면, 이번엔 정교하면서도 빨라진 느낌이다.

‘기분 탓이 아니라면…… 성취가 있었다는 걸까?’

잠깐 생각에 빠졌는데, 뒤에서 섬뜩한 예기가 매섭게 날아들었다.

“헛!”

반사적으로 몸을 눕히자 은잠사에 엮인 비도가 눈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파라라라! 탁.

몸을 회전하면서 가까스로 물러난 악굉이 안도의 숨을 내쉬자, 옆에 있던 당우기가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왜 멍청하게 한눈팔고 자빠졌어? 상대가 둘이라는 걸 몰라!”

“미안하오.”

“병신 같이 사과만 하지 말고 제대로 싸우란 말이야!”

“아, 알겠소.”

악굉이 창을 바로잡고는 대답했다.

마주 선 팽수혁이 피식 웃는다.

“아무래도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가봐?”

“헛소리. 잡담 그만하고 싸우시오.”

“싸우는 중이잖아? 지금!”

파밧.

이번에도 팽수혁이 바닥을 차고 날아든다.

‘역시 빠르다!’

악굉이 얼른 물러나면서 창을 부렸다.

확실히 빨라졌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대해야만 한다.

따다다다당! 따당!

생각을 바꾸니 악굉 역시 쉽게 밀리진 않았다.

팽수혁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새끼……!’

까가가강! 따앙.

도와 창이 부딪치면서 두 사람이 두 걸음씩 물러났다.

거리가 벌어지면 창이 유리해진다.

일순 악굉이 기합성을 내지르면서 창을 곧게 내질렀다.

“하아앗!”

창기를 머금은 창이 화살처럼 날아간다.

악가창법 가문 절기인 섬전창법(閃電槍法), 섬광뇌기(閃光牢氣) 초식.

팽수혁의 눈동자가 팽팽해지면서 기합성 같은 고함

소리가 터졌다.

“어딜!”

쩌어어엉.

다시 한번 도와 창이 부딪치면서 두 사람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그 순간이었다.

쒸에에에엑.

암기 한 자루가 팽수혁을 향해 빠르게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왠지 모르게 유난히 반짝이면서도 약간 커 보이는 암기.

찰나지간 남궁천이 불쑥 끼어들면서 소리쳤다.

“물러나라, 팽수혁!”

“누굴 보고 물러나라 마라 하는……!”

퍽.

허공을 가로지르며 나타난 남궁천이 팽수혁의 어깨를 발로 차면서 뒤로 떠밀었다.

동시에 앞으로 쏘아지듯 날아간 남궁천이 그대로 벽라검을 휘둘러 암기를 쳐냈다.

퍼억.

암기를 쳐냈는데 마치 모래주머니 터지는 소리가 난다. 동시에 뿌연 가루가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파라라라라라.

남궁천이 돌개바람처럼 회전하자 허공에서 내려앉던 가루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날아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현란한지 모두가 싸움도 잊은 채 넋을 놓고 보았다.

촤아아악.

미끄러지듯 바닥에 착지한 남궁천이 넋 나간 표정으로 서 있는 당우기를 쏘아보았다.

남궁천의 표정이 마치 염라처럼 섬뜩했다.

“이 새끼가…… 맹독을 사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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