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호구의 호구 새끼
윤종승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남궁천과 황보승을 한 번씩 번갈아보았다.
황보승은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목을 비틀어버리겠다는 듯 콧김을 식식 뿜어대고 있었다.
윤종승도 덩치라면 결코 적지 않은데, 황보승은 그보다 더 컸다.
그 위압감에 눌린 윤종승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음…… 아직 아픔을 완전히 되새기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남궁천이 뒷말을 더 듣지도 않고 윤종승의 등짝을 후려쳤다.
짜악!
“윽!”
손찌검에 떠밀린 윤종승이 앞으로 서너 걸음을 걸어갔다.
“병신 같은 소리 그만하고. 싸워라. 언제까지 호구 소리 들으면서 살 거냐?”
호구라는 말이 윤종승의 신경을 건드린 것일까.
윤종승이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두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황보승이 그런 윤종승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헛웃음을 쳤다.
“하. 살다 살다 별 개 같은 경우가…… 어이, 내가 우습게 보여?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 기어 나와서는…… 카악, 퉤!”
윤종승이 뚝 떨어지는 가래침을 보고는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들 왜 이리 자신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일까.
그렇게 내가 우습나.
보아하니 부상도 입은 것 같은데, 한 치의 긴장도 없이 날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저 시선.
“좆같네, 진짜.”
“뭐……?”
황보승의 눈자위가 꿈틀댄다.
반면 남궁천의 눈빛에는 이채가 서린다.
‘호오, 발동이 걸린 건가?’
윤종승이 먼저 욕을 했다.
좋은 현상이다.
지옥을 견디다 보면 언젠간 오기라는 게 생기는 순간도 있다.
하나 대부분의 오기는 내재된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금방 사그라지고 만다.
하지만 여기서 약간의 용기가 더해진다면 오기가 이길 때도 있다.
지금 윤종승이 그런 순간이다.
용기와 오기가 더해져서 공포를 넘어선 순간.
이럴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남궁천이 흥미롭게 지켜보는 가운데 황보승이 뺨을 부들거리며 묻는다.
“이 애송이 새끼, 방금 뭐라고 씨불였어?”
“좆같다고 했다, 이 병신 새끼야.”
이미 선을 넘었다고 생각한 윤종승은 거침이 없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지만, 그 바람에 더욱 거친 언행이 계속됐다.
황보승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 이제 보니 용천관은 죄다 미친놈만 다니나 보군. 너 내가 누군지는 알고…….”
“알 게 뭐냐? 돼지 새끼가 멱따는 소리나 질러대는데.”
“이 호구의 호구 새끼가…….”
황보승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듯 두 주먹에 기운을 집중했다. 양팔에 끼고 있는 토시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남궁천이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았다.
‘호구의 호구 새끼라…… 참신한 표현이네.’
하지만 윤종승은 남궁천처럼 여유롭게 생각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호구’라는 단어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지긋지긋했다.
한데 호구의 호구라니.
“이 병신 돼지 새끼가 누굴 보고……!”
퍼억.
“크억!”
윤종승은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황보승이 문답무용의 태도로 곧장 주먹을 내질러왔기 때문이다.
딱히 초식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눈앞에 선 윤종승에게 달려들어 복부에 주먹을 올려치듯 꽂았다.
윤종승이 이물질이 섞인 침을 울컥 토해내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어찌나 강력한 한 방인지 의식이 그대로 끊어질 것만 같았다.
황보승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달려가서 추락하는 윤종승의 옆구리에 발차기를 날렸다.
빠아악.
“아아악!”
쿠당탕탕!
윤종승이 그대로 바닥에 튕기듯 구르면서 한참이나 미끄러졌다.
황보승이 씨근거리면서 쓰러진 윤종승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이 새끼가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목숨 내놓고 미치고 지랄이야. 넌 오늘 뒈진 줄 알아라.”
“크읍!”
황보승이 윤종승의 머리채를 낚아채더니 그대로 들어 올렸다.
“끄으으…….”
너무 고통스러워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윤종승이 희미한 신음만 흘려댔다.
“다시 말해 봐, 이 새끼야!”
빠악.
“컥!”
빠악.
“윽!”
빠악.
“쿠악!”
왼손으로 머리채를 쥔 채로 오른손으로 연이어 주먹을 날려대는 황보승.
팔 하나가 부러진 인간이라고는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의 완력과 권력이었다.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윤종승은 이내 전신이 축 늘어졌다.
“살, 살려…….”
윤종승의 입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걸 본 팽수혁이 어금니를 빠득 갈고 나서려는데, 남궁천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뭐야? 그래도 같은 조인데 저 새끼 진짜 내버려 둘 거냐?”
“기다려보자고.”
남궁천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팽수혁이 한마디 더 하려다가 남궁천의 표정을 힐끔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분위기가 느껴진 탓이다. 그리고 자칫 끼어들다가 윤종승의 자존심을 짓밟을 수도 있어서 참았다.
한편 황보승은 윤종승의 머리채를 잡은 채 얼굴에 귀를 가져다 대며 물었다.
“뭐라고? 안 들려, 이 새끼야. 큰 소리로 말해.”
“살, 살려주세…….”
“안 들린다니까? 뭐라는 거야?”
황보승이 더 가까이 귀를 갖다 대며 약 올리는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윤종승이 입을 쩍 벌리더니 황보승의 귀를 물어뜯는 것이 아닌가.
콰작.
“끄아아악!”
황보승이 반사적으로 윤종승을 아무렇게나 부리고는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윤종승이 뜯겨 나간 귓불을 뱉어냈다.
피범벅이 된 살점이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렀다.
황보승이 한쪽 귀를 부여쥐고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질러댔다.
“저 개새끼가 내 귀를 씹었어! 이 씨발 놈! 넌 오늘 진짜 뒈졌어! 이 좆같은 새끼야!”
격분한 황보승이 황소처럼 돌진하며 마구잡이로 주먹을 날려댔다.
퍽! 퍼퍽! 퍽! 빠악! 퍽.
“컥, 큭! 끄악!”
연타를 얻어맞은 윤종승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사방팔방에서 주먹이 무수히 날아든다.
이게 정말 한 사람이 쏟아내는 주먹인가? 그 덩치 크고 둔해 보이던 황보승이 뻗는 주먹이란 말인가.
도저히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하긴, 강호칠대세가, 아니, 오대세가에도 드는 황보세가의 직계가 아닌가? 더구나 권법이라면 그 어떤 문파나 세가보다도 우월한 가문이 아니던가.
그런 상대를 자신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주먹이 나가기는커녕 온몸이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는다.
퍼퍼퍼퍽.
쉼 없이 날아드는 주먹 끝에 황보승이 가문절기 중 하나인 적성명권(赤星鳴拳)을 내질렀다.
적갈색으로 물든 주먹이 무거운 소리를 이끌며 날아간다.
우우우웅.
빠아악!
둔탁한 타격음에 이어 윤종승이 허공을 붕 날아서 저만치 떨어졌다.
쿠당탕탕!
바닥에 쓰러지고도 한참이나 미끄러진 윤종승은 죽어버린 것처럼 미동이 없었다.
지켜보던 팽수혁의 눈썹이 사납게 꿈틀거렸고, 진소홍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앙 다물었다.
남궁천도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무리였나?’
그래도 근성이 있어서 뭐라도 깨우쳤을 줄 알았는데.
하긴 깨우쳤다고 해도 상대가 너무 강했다. 반격의 기회조차 없을 정도로 일방적이었으니까.
황보승이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더니 남궁천을 향해 돌아섰다.
“흥! 호구의 호구 새끼는 처리한 것 같으니, 이제 호구 새끼가 나와 보실까?”
남궁천이 황보승을 가만히 보았다.
이를 지켜보던 당우기가 입매를 치켜 올렸다.
‘병신 같은 것들. 황보승이 진짜로 화나면 얼마나 감당이 안 되는지 몰랐던 모양이군. 너희들은 이제 전부 뒈졌다. 뭐,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
그때였다.
부스럭…… 부스럭…….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윤종승이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당우기가 눈을 휘둥그레 떴고, 팽수혁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입매를 비틀었다.
남궁천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안 끝난 모양인데, 돼지 새끼야?”
“이……!”
황보승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홱 돌아서니 윤종승이 겨우 일어나서는 어깨를 들먹였다.
“하아, 하아, 돼지 새끼…… 아직 안 끝났다…….”
황보승의 뺨이 부들부들 떨렸다.
“너 이 새끼, 진짜 뒈지고 싶은 거냐? 더 이상 하다간 넌 진짜…….”
“닥치고 덤벼! 이 돼지 새끼야!”
“후회하지 마라.”
“넌 입으로 싸우냐? 병신 머저리 새끼야.”
“노오오옴!”
일순 황보승이 바닥을 차며 달려갔다.
정말이지 성난 황소가 따로 없다.
질풍처럼 달려드는 위압감.
처척.
순간 윤종승이 오른발과 오른손을 뒤로 빼면서 기수식을 취했다.
남궁천이 눈을 가늘게 떴다.
윤종승의 단전에서 일어나는 붉은 기운이 수태양소장경을 따라 빠르게 뻗어나간다.
그 순간 윤종승은 남궁천에게 배를 처맞았던 감각을 선명하게 떠올렸다.
온몸을 너무 얻어맞았기 때문일까.
전신의 감각이 따끔따끔하면서 내공의 흐름이 여실히 느껴진다.
마침내 앞에 다다른 황보승이 일권을 내지를 때.
파밧!
윤종승의 발이 좌측으로 한 뼘 정도 빠져나갔다.
후우우우웅.
거센 바람을 이끌고 황보승의 주먹이 윤종승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됐다!’
윤종승이 이를 악물며 손을 뻗어냈다.
수태양소장경을 따라 뻗은 기운이 손목까지 다다랐을 때, 윤종승은 마지막 순간 깨달았던 것을 떠올렸다.
‘무조건 강하게 하는 것보다는 분명한 연꽃을!’
일순 손목의 양곡혈에 내공이 집중되었을 때, 윤종승은 다섯 손가락에 강한 힘을 실었다. 그리고 내공은 손바닥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출되도록 흐름에 내맡기며 소리쳤다.
“난 호구 아니야! 이 개새끼들아아아!”
뻐어어엉!!
폭음이 터져 나오면서 혁련장이 황보승의 복부에 작렬했다.
황보승의 몸이 일순간 활처럼 휘었다가 포탄처럼 튕겨 날아갔다.
허공을 붕 가로지른 황보승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한참이나 굴러갔다.
바위에 걸터앉아 있던 당우기가 벌떡 일어났고, 연신 창을 휘돌리던 악굉이 돌처럼 굳었으며, 모용강이 미간을 좁혔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는 자가 없었다.
정적이 흐르고 나서 황보승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 새끼……! 운 좋게…… 한 방을……! 크윽!”
겨우 몸을 일으킨 황보승이 걸음을 옮겼다.
연신 숨을 헐떡이던 윤종승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황보승을 보았다.
마침내 윤종승 앞에 다가선 황보승이 주먹을 들어 올린 순간.
“쿨럭!”
돌연 피를 한 움큼 토한 그가 눈을 허옇게 까뒤집는 게 아닌가.
쿠웅.
그대로 넘어간 황보승이 대자로 뻗더니 입에 거품을 물고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장삼이 터져 나간 복부에는 선명한 연꽃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얼굴이 퉁퉁 부어 만신창이가 된 윤종승이 황보승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이겼다…… 내가 이겼다……!”
오대세가의 직계인 황보승을 이겼다.
새삼 눈물이 줄줄 흐른다.
억눌린 한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다.
“으아아아! 내가 이겼다아앗!”
마침내 윤종승이 승리를 선언하며 그 자리에 무릎 꿇더니 하늘을 우러러 보며 오열했다.
“으흐흑! 이겼다아아!”
패한 자는 말이 없었고, 이긴 자는 목 놓아 울고 있는 이상한 광경. 남궁천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가지가지 한다.”
반면 모용강을 비롯한 정협관 생도들의 표정은 더 없이 차갑게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