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금혈서(金血鼠)
샤샤샤샷!
금혈서가 수풀 사이로 숨어들었다.
금혈서는 눈이 마주친 자의 배꼽을 노린다.
녀석이 배꼽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단전에서 가장 가깝고, 피부 중에서도 제일 얇기 때문이다.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내공의 냄새를 금혈서는 배꼽을 통해 맡는다.
그렇기에 오히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양민이라면 금혈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두 눈이 마주친다고 해도 단전이 없는 자에게는 덤벼들지 않는다.
어쨌거나 녀석의 배꼽 집착은 질릴 정도로 대단하다.
그게 어느 정도냐.
가령 배꼽을 가리기 위해서 바닥에 엎드렸을 땐 땅을 파고들어가서 엎드린 자의 배꼽까지 날아간다.
땅속에서 날아간다니.
표현이 우습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금혈서가 땅속에서 이동하는 속도를 알게 되면 코웃음조차 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빠르다.
땅속에서도 날아간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러니 절대로 엎드리면 안 된다.
공포에 질려 본능적으로 엎드리게 되면 방어할 수단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진소홍 역시 본능적으로 엎드릴 뻔했다.
남궁천이 소리치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배꼽에 구멍이 뚫렸겠지.
진소홍이 몸서리를 치며 차분히 호흡을 내뱉는다.
샤샤샤샤샷.
바람이 수풀에 스친다.
하나 바람이 아니다.
금혈서다.
주춤거리며 물러나려는데, 남궁천의 목소리가 발길을 붙든다.
“움직이지 마.”
숨소리조차 죽인다.
샤샤샤샷.
샤샤샤샤샷.
금혈서가 주변을 어찌나 빠르게 맴돌고 있는지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상처 입은 오른쪽 종아리가 화끈거린다.
‘독은 없겠지? 금혈서가 독까지 있단 소리는 못 들어봤으니까.’
진소홍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남궁천은 벽라검을 앞세운 채로 돌이 되어버렸다.
마치 그가 이곳에 없는 것만 같다.
어느 순간 남궁천의 눈동자가 우측으로 향했다.
‘곧……!’
탐색전이 끝나가고 있다.
금혈서의 움직임이 멈췄다.
‘아슬아슬하겠어.’
이미 아슬아슬했는데 또 고비를 넘겨야 한다.
마침 근방에 있던 남궁천의 귀에 진소홍의 비명이 들린 건 천만 다행이었다.
‘자, 와라!’
남궁천의 벽라검을 콱 움켜쥐는 것과 동시에 금혈서의 몸에서 공력이 움직인다.
녀석의 내단에서 일어난 황금빛 공력이 네 발로 천천히 뻗어간다.
원래 모든 공력은 행동보다 빠른 법. 게다가 금혈서도 움직이기 직전까지는 운공 속도에서 차이가 없다.
다만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금혈서를 인간이 쫓을 방법은 없다.
그 어떤 인간도 금혈서보다 빠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면 다르지!’
물론 남궁천 역시 금혈서보다는 느리다.
하나 지금처럼 초견파공안으로 미리 읽을 수 있다.
즉, 먼저 움직이면 된다.
게다가 금혈서의 움직임은 단순하다.
변초나 허초를 부릴 수 있는 무인이 아니다.
한 번 방향을 정하면 목적지까지 직선으로 움직인다.
파앗.
남궁천이 먼저 몸을 날렸다.
진소홍이 움찔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지?’
금혈서는 보이지도 않는데 남궁천이 먼저 움직였다.
찰나.
슈까아아앙!
청명한 금속성이 터지면서 남궁천이 튕겨 나간다.
그제야 저만치 어둠을 가르며 멀어져가는 금혈서가 보인다.
진소홍이 입을 딱 벌렸다.
‘막, 막았어……!’
말도 안 돼.
금혈서를 막았다.
금혈서보다 빠른 인간이 나타났다.
이게 가능해?
진소홍은 남궁천의 등을 보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지나치게 흥분해서 그릇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진소홍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금혈서가 배꼽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눈을 감고 심호흡이라니.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가능하다.
남궁천의 등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안도감이 생긴다.
그래 봐야 같은 생도일 뿐인데. 이 신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앞을 막아선 한 사람의 등이 마치 거대하고 두터운 암벽처럼 든든하다.
마음이 진정되니 생각도 정리가 된다.
‘그래, 남궁천이 금혈서보다 빠른 게 아니야.’
그건 확실하다.
남궁천이 금혈서보다 빠르다면 곤륜파 장문인이 찾아와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막았나.
‘먼저 움직였어!’
하지만 어떻게.
금혈서의 행동 습관이라도 알고 있는 걸까.
하긴 처음부터 금혈서를 노렸다면 어느 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으리라.
‘그렇다곤 해도…….’
역시 남궁천이 어떻게 금혈서를 막아낸 것인지 파악이 안 된다.
마치 시간을 앞서 달리는 자 같지 않았던가.
그러는 사이.
슈파앗.
다시 한번 파공성과 함께 금혈서가 날아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남궁천이 한 발짝 먼저 움직였다.
쉬이이잇! 쩌어어엉!
퀴이이익!!
금혈서가 듣기 싫은 비명을 터뜨리면서 물러난다.
상처라도 입은 것일까.
움직이는 소리가 아까처럼 깔끔하진 못하다.
남궁천이 다시 한 차례 검을 휘젓고는 허공을 빤히 응시한다.
‘이번에도 또!’
진소홍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남궁천을 빤히 보았다.
놀랍게도 남궁천은 또 한 번 금혈서를 막아냈다.
그것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먼저 움직여서.
이래서야 마치 남궁천이 검을 내밀고 있으면 금혈서가 와서 부딪치는 꼴이 아닌가.
미래를 읽는 자…….
그게 가능해.
분명한 건 조금 전의 일격으로 금혈서가 상처를 입은 모양이다.
벽라검 한쪽에 누런 액체가 묻었다.
‘금혈(金血)……!’
어쩌면 여기서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싹튼다.
남궁천이 천천히 한 걸음을 뒤로 뺀다.
하나 아까처럼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남궁천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다시 탐색전에 들어간 모양이군.”
번번이 실패하니 신중해진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지금 두 눈으로 보는 진소홍도 믿기지 않는 현상인데.
금혈서 입장에서는 오죽하겠나.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겠지.
바로 저 앞에 맛있는 단전이 있는데 파고들어 갈 수가 없다.
자꾸만 뭔가 막힌다.
아마 모르긴 해도 금혈서 생에 이런 적은 처음이 아닐까.
남궁천이 나직이 이른다.
“천천히 물러서다가 세 걸음을 내디딜 때 저 바위 위로 도약해.”
꿀꺽…….
진소홍이 보이지도 않을 텐데 고개만 끄덕였다.
“가라.”
남궁천의 말에 진소홍이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한 걸음…….
두 걸음…….
셋.
파앗!
쉬팟!!
진소홍이 도약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남궁천이 솟구쳐 오른다.
쉬이이이잇!
창졸지간 어디선가 나타난 금혈서가 남궁천의 검에 날아가 부딪친다.
그렇다.
이번에도 진소홍은 똑똑히 보았다.
앞을 막아선 남궁천의 벽라검을 향해 금혈서가 자살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부딪쳐 가는 것을.
슈카악!
금혈서가 단단한 이빨로 벽라검을 깨물었다.
카가각!!
일순 불꽃이 튄다.
만약 보통 검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두 동강이 났을 터다.
특급 영물의 날카로운 이에 물린 날붙이는 보통 부러지게 마련이다.
하나 벽라검은 보통 검이 아니다.
남궁세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보검.
카가각!
팔뚝만 한 쥐가 검에 매달려서 버둥거리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아무래도 칼날이 녀석의 이빨에 끼어버린 모양이다.
‘설마…… 남궁천이 저것까지 의도한 건 아니겠지?’
바위 위에 안착한 진소홍이 몸서리를 쳤다.
그러는 사이 남궁천은 재빨리 검신을 검집에 갈무리하며 닫았다.
“하앗!”
철퍼억.
기합성과 함께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검신과 검집이 맞물리는 곳에 금혈서가 끼어서 ‘캐앵!’ 소리를 내더니 몸을 축 늘어뜨렸다.
진소홍이 입을 딱 벌렸다.
세상에.
누가 알았을까.
금혈서가 검신에 이가 끼인 채로 기절할 줄.
진짜로…… 진짜로 잡았어.
그 금혈서를.
남궁천이 금혈서의 목을 움켜쥐고는 말했다.
“후우. 한시름 놨네. 한 번 잡은 녀석은 그리 위협이 되진 않으니까 안심해. 지금은 기절한 상태니까 더 괜찮고.”
“아…… 응…….”
“다리는?”
“괜, 괜찮아.”
“다행이군. 독은 없는 녀석이니까 너무 걱정 말고.”
“으, 응…….”
“가자.”
“그래…….”
진소홍이 멍하니 대답하고는 남궁천의 뒤를 따랐다.
이봐, 금혈서잖아.
네가 잡은 게 특급 영물 금혈서라고.
너무 차분한 태도 아니니.
하나 짧은 시간 내에 너무나 아찔한 경험을 한 그녀는 단 한마디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를 벗어난 후 한참이 지났을 때, 흑립에 피풍의를 두른 두 사람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다가 멈췄다.
“헉, 헉, 헉……!”
“후우, 후우……!”
두 사람은 무릎을 쥐고 연신 헐떡였다.
“제길! 어디로 간 거지?”
“놓친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혹시 다시 수면에 든 게 아닐까요?”
수하의 말에 다른 사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축시초가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럼 다행이지만.”
숨을 돌린 사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사람은 금혈서를 지켜보던 추영단원들이었다.
그들은 자정이 지날 때만 해도 느긋한 마음이었다.
금혈서를 관찰하기만 하면 되니 목란산에 투입된 다른 단원들에 비하면 할 일이 없는 셈.
그야말로 꿀 빠는 임무.
한데 축시초가 되었을 때 그들의 생각은 완전히 무너졌다.
잠에서 깨어난 금혈서가 땅을 파고 나오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질주하는 게 아닌가.
금혈서가 그렇게 빨리 달릴 때는 단 하나의 이유뿐이다.
공력이 스며든 노루 뿔을 누군가 태우고 있다.
헐레벌떡 금혈서를 쫓았지만 그들의 경공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금혈서를 찾지 못했다.
수하가 안심시키듯 말했다.
“별일 없을 겁니다. 다시 수면에 들어갔을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래야지.”
사내는 그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몸을 돌렸다.
하나 그들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금빛 액체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 * *
“이건……!”
윤종승이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면서 흠칫거렸다.
선명한 연꽃.
아픔을 되새기다 보면 길이 보일 지도 모른다는 건 이런 뜻이었던가.
남궁천이 자신에게 날린 일장은 분명 혁련장이다.
하나 공력을 많이 실은 것은 아니다.
아니, 공력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배에 선명한 연꽃이 피었다.
‘내가 어떻게 처맞았더라?’
기억을 되새겨야 한다.
그 순간, 그 아픔을.
말 그대로 아픔을 되새기면 혁련장의 묘리를 터득할지도 모른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생각! 아니,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 내가 배를 맞았을 때는 장법이 아니라 지공(指功)에 당한 것 같았어.’
분명 그랬다.
넓은 손바닥으로 얻어맞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다섯 손가락이 살을 파고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혹시 혁련장의 묘리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어디 한 번 해 볼까?’
윤종승이 기수식을 취하면서 나무기둥을 노려볼 때였다.
부스럭. 부스럭…….
마침 수풀이 흔들리더니 남궁천과 진소홍이 나타났다.
진소홍은 어딘지 기진맥진한 모습이었고, 남궁천은 한손에 팔뚝만 한 쥐를 들고 있었다.
윤종승의 입이 딱 벌어졌다.
“헉! 설마…… 진짜 잡은 거야? 금혈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