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천살성이 남궁세가로 환생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공간을 가른다.
마치 말 몇 마디로 공기를 베는 것만 같다.
남궁검(南宮劍)의 표정은 냉엄하기 짝이 없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은 인상.
실제 일흔이 훌쩍 넘은 그였지만, 워낙 정정한 외모 탓에 중년의 나이로 보였다.
그는 어디 한 번 대답해보라는 듯 통진의(通眞醫) 사율도를 빤히 응시했다.
통진의는 적당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 진땀을 뺐다.
그래도 안휘성에서는 손에 꼽히는 명의로 알려진 그였지만, 남궁검 앞에서는 위축이 되는지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기실 그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상황이긴 했다.
다시 한번 남궁검이 사막에서 부는 바람만큼이나 삭막한 음성을 흘려냈다.
“초혼례(招魂禮)가 통한 것 같다니…… 그것도 죽은 지 사흘이 지나서. 그게 의원으로서 할 말인가? 아니, 그런 예가 있기나 했던가?”
“그것은…….”
통진의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초혼례가 무엇인가?
사람이 죽으면 지붕에 올라가서 죽은 이의 혼을 부르는 관례다.
혹여 죽은 자의 혼이 돌아와 되살아날까 해서.
물론 그런다고 죽은 이가 되살아나진 않는다.
그저 장례 관습일 뿐이다.
그런데…… 살아났다!
그것도 사흘이나 지나서.
분명 숨이 멈추고 맥이 끊어졌었는데 사흘이 지나 입관 절차를 앞두고 부활한 것이다.
이걸 어찌 설명해야 하나?
“달리 설명할 방법이…… 송구합니다.”
통진의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남궁검은 더 이상 그를 추궁하지 않았다. 통진의도 오죽 답답하면 초혼례까지 들먹였을까?
대신 얕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현 상태는 어떤가?”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상의 몸으로 회복했으니 더는 심려하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누가 심려한다던가?”
남궁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통진의가 흠칫거리고는 그저 고개만 조아렸다.
하기야 외손자라고는 하지만 대살성의 자식이 아니던가?
남궁 가주에게는 쉽게 마음을 주기 힘든 아이리라.
그럼에도 사후양자로 들여 ‘남궁’의 성씨를 물려준 것을 보면 아주 미움만 가진 것 같진 않지만.
얼음장 같은 저 가주의 속을 어찌 알까?
곧 남궁검의 입에서 칼로 자른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간 수고했네.”
“딱히 제가 한 게 없습니다.”
겸양이 아닌 사실이었다.
죽은 자가 스스로 부활했고, 그저 건강하게 제 몸 돌보는 걸 지켜만 봤으니.
“그만 가보시게.”
“그럼.”
통진의는 혹여나 또 난감한 질문이 나올까 싶어 얼른 가주실을 나섰다.
홀로 남은 남궁검은 눈을 가늘게 여미고는 나직이 혼잣말을 흘렸다.
“못난 놈.”
* * *
“사당에 가보고 싶다고?”
남궁화(南宮花)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확실히 다시 살아난 남궁천(南宮天)은 이전과 다른 분위기였다.
늘 음울하고 의기소침하던 모습과 달리 지금은 왠지 심지가 단단해진 느낌이랄까?
물론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이 온전하게 돌아오지 않아 조금 혼란스러워하고 있지만.
“예, 어머니를 뵙고 싶습니다.”
“그렇구나. 큰일을 겪었으니 언니를 찾아뵙는 게 예의겠지. 하지만 그 전에 가주전에…….”
말끝을 흐린 남궁화가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따라오너라.”
남궁화가 몸을 돌리고 앞장섰다.
태연하게 행동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내심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남궁천은 평소 죽은 언니를 원망만 하며 살았다.
당연히 위패를 모신 사당을 찾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스스로 언니를 만나보고 싶다니.
‘죽음을 겪으면 사람이 변한다더니…….’
사당에 들어선 남궁화가 남궁선의 위패 앞에 멈춰 섰다.
“여기다.”
남궁천이 고개를 들어 위패를 보았다.
그의 표정에 격정이 서리는 것과 동시에 눈빛이 깊어졌다.
남궁화는 남궁천을 힐끔 보고는 내심 동요했다.
‘무슨 아이의 눈동자가 저리도…….’
거칠면서도 깊다.
마치 수십 년을 살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듯한 눈빛을 품고 있지 않은가?
남궁천의 눈동자는 수많은 말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한 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은 단 한마디도 꺼내 보이지 않았다.
무언의 대화.
무슨 말을 저리 하는 걸까?
문득 언니와 남궁천의 대화 내용이 궁금해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남궁천이 돌아보았다.
“잠시 혼자 있어도 되겠습니까?”
이번에도 남궁화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일전에는 자신과 눈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던 아이였다.
한데 이젠 당당히 원하는 바를 요구하고 있다.
“그래, 편한 대로 머물도록 해라.”
딱딱한 음성이지만 온기가 묻어 있었다.
남궁화가 나가자 홀로 남은 진천랑이 위패를 보며 더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을 꼭 닮아서 놀랐어.”
남궁화를 두고 한 말이다.
그녀는 정말 남궁선을 닮았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는 남궁선이 아닌가 착각했을 정도였으니까.
한데 말로만 들었던 여동생이었을 줄이야.
지난 보름 동안 진천랑은 많은 사실을 알아냈다.
어째서인지 죽었어야 할 자신이 남궁천의 몸으로 되살아났다.
한데 더 기가 막힌 것은 남궁천이 바로 자신보다 사흘 먼저 죽었던 친아들이라는 점이다.
사인은 자결이었다.
손목에 짙게 새겨진 상처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남궁선과 헤어진 후로 일부러 이쪽 소식을 전혀 듣지 않고 피했던 것도 후회됐다.
또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서 하늘이 내린 벌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어쩌면 날 여기로 부른 게 당신과 우리 아들이 아닐까?”
남궁천의 모습을 한 진천랑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왜 내게 말하지 않았지? 혹시 그때 날 떠났던 것은 이 아이 때문이었나?”
그렇다면 잘한 일이다.
천하대살성을 따라다니면서 자식을 낳아 키울 수는 없었을 테니까.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지언정 남궁세가에 머무는 것이 훨씬 안전했을 테니까.
하지만 역시 세상은 생각보다 더 잔인했던 거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여기에 있는 이유.
아마도 그 세상을 향해 복수해달라는 염원이 아닐까?
중원제일가문으로 우뚝 섰던 남궁세가가 지금은 무림을 배신한 가문으로 낙인찍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관리하던 상단이 하나둘 이탈하면서 거래가 끊어진 지는 오래됐고, 세력은 급격히 위축되어 지방 중소 방파만도 못할 지경이다.
세상이 한 번 등을 돌리면 얼마나 비열해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모든 것이 나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다를 것이다.
“나 진천랑이 남궁천의 이름으로 모든 걸 되돌려놓겠어. 당신과 아들이 준 기회를 살려서 기울어진 남궁세가를 바로 세우고 이 강호를 휘어잡을 테니 지켜봐 줘.”
특히 이 모든 상황의 근원인 맹주, 그 영감탱이만큼은 확실히 짓밟으리라.
후우우웅!
남궁천의 전신에서 격랑의 기운이 일어났다.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분명 지독한 분노가 서린 기운.
그런데 그 순간, 따뜻한 무언가가 전신을 감싸는 것만 같았다.
마치 죽은 이들의 혼이 자신을 감싸 안는 것만 같달까?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남궁천은 곧 차분한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 * *
초여름의 후덥지근한 날씨임에도 장내의 분위기는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남궁검의 표정은 냉정하다 못해 매정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그는 기적처럼 되살아난 외손자를 보름 만에 마주하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남궁천은 그런 남궁검을 보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 영감은 여전하네.’
남궁검과는 전생에 일면식이 있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충분히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았던 최초의 사람이니까.
아마 열아홉 살 때였을 거다.
자신의 목에 시퍼런 검신을 겨눈 남궁검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을 흘렸다.
“넌 대살성이 아니로구나. 하나 세상이 널 가만두지 않을 터. 앞으론 경공만을 익혀 죽기 살기로 도망쳐라. 네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니라.”
하지만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세상에 지기 싫었으니까.
이 비열한 세상과 맞서 싸워서 이기고 싶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참패했지만.
한데 수십 년이 지나 이렇게 인연이 이어질 줄이야.
‘그때 얻어터졌던 걸 생각하면 썩 좋은 감정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은 장인어른…… 아니, 외조부로 대해야 하니까.’
마음을 정리한 남궁천이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하시지요.”
“뭐라?”
남궁검이 미간을 슬쩍 구겼다.
동석한 남궁화가 흠칫거리고는 눈치를 살폈다.
남궁검은 둘째 딸에게서 외손자의 성격이 변한 것 같다는 말을 진작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흘려들었다.
제 운명도 감당하지 못해 자결을 선택한 못난 녀석이 아니던가?
한데 지금 보니 딸의 반응이 이해될 만하다.
감히 자신 앞에서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던 녀석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뭐라고?
할 말 있으면 하라고?
저승을 겪으면 인격도 변한다던가?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남궁천이 재차 물었다.
“하실 말씀이 있어 부른 것 아닙니까?”
남궁천의 당돌한 질문에 남궁검이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어조로 일렀다.
“부르기 전에 먼저 찾아왔어야 할 일이다.”
“불편하실 줄 알았습니다.”
“불편?”
남궁화는 이제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몸을 들썩였다.
정작 이 자리에서 가장 불편한 사람은 그녀인 듯했다.
어쩌자고 그런 대답을 하느냐고 눈치를 한 바가지 던졌지만 남궁천은 거침이 없었다.
한평생 거칠게 살아온 진천랑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대살성의 자식이라 거리를 두고 싶으실 줄 알았습니다.”
남궁화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저 아이가 도대체 어쩌자고!’
남궁검은 여전히 얼음장 같은 얼굴로 물었다.
“누가 그러더냐?”
“뭐가 말입니까?”
“내가 거리를 두고 싶을 거라고 누가 그러더냔 말이다.”
“…….”
“타인의 속내를 함부로 재단하지 마라. 관계에 있어 실수하는 첫걸음이다.”
“죄송합니다.”
남궁천이 고개를 숙이며 사죄한다.
확실히 묘한 변화가 느껴진다.
남궁검이 남궁천의 두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게 불편했다면 네게 ‘남궁’의 성을 물려주지 않았을 거다.”
“하면 어째서 그간 저에게 거리를 두신 겁니까?”
“기억이 돌아온 것이냐?”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남궁검이 남궁화에게 잠깐 시선을 던졌다.
남궁화의 표정에 당혹감이 살짝 스며들었다.
그러는 사이 남궁천이 말을 이었다.
“남궁의 성을 물려주긴 하였으나, 대살성의 피를 이은 자식. 딸을 죽음으로 내몬 손자라는 원망을 심연에서 지우긴 어려우셨을 겁니다.”
“……!”
“제 말이 틀렸습니까?”
“해서 그리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것이냐?”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선 감당하기 어려운 나이니까요.”
“지금은 다 큰 것처럼 말하는구나.”
“죽음을 겪으니 성숙해진 모양입니다.”
“해서 앞으로 어찌할 것이냐? 또 그런 선택을 할 생각이더냐?”
“두 번은 실수하지 않을 겁니다.”
남궁천이 남궁검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며 답했다.
그 눈빛을 한참이나 응시한 남궁검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만 가보아라.”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남궁천이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가주실을 막 벗어나기 직전이었다.
“틀렸다.”
남궁천이 멈칫하고 돌아보았다.
남궁검은 그에게 시선조차 던지지 않은 채 서책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하나가 틀렸으니 네 말은 모두 틀렸다.”
“뭐가 틀렸습니까?”
사락.
남궁검이 책장을 넘기며 무심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아비는 대살성이 아니었다.”
“……!”
남궁천은 물론, 남궁화도 상기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이윽고 남궁검이 고개를 들고 남궁천과 두 눈을 마주했다.
“세상이 뭐라 해도 그 말은 믿어도 된다. 내가 직접 보았으니.”
“……감사합니다.”
남궁천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영감, 막판에 감동 먹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