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라면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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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라면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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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라면 먹을래요?
2022.08.06.
“부모님과 연을 끊는 한이 있더라도 시은 씨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 나한테 다시 올 수 있습니까?”
시은의 눈동자가 동요했다.
가고 싶었다. 그동안 얼마나 보고 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고, 그의 향기가 그리웠던가.
그의 어머니가 싫어하든 말든 그만 바라보고 싶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부모님과 연을 끊든 말든 둘만 생각하고 싶었다.
시은의 마음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다시 가도 돼요? 다시 준호 씨에게 가고 싶어요.”
준호의 얼굴이 기쁨으로 서서히 물들었다.
시은의 눈가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준호가 시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시은의 말에 준호의 발이 멈칫했다.
“두려워요. 어머니가 날 싫어하시는데 다시 준호 씨를 잃게 될까 무서워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말하는 시은을 준호가 와락 끌어안았다.
“그거면 됐어요. 나에게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 그거면 됐어.”
준호에게 안긴 시은이 눈을 감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다른 건 생각하지 말아요. 걱정하는 건 내가 해결할 거니까.”
준호가 팔에 힘을 주어 시은을 꽉 끌어안았다.
“시은 씨 마음이 가장 중요해요.”
시은도 그리웠던 그의 품에 폭 안겼다.
준호의 허리를 껴안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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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은은 준호가 카페 앞에서 종일 기다렸다는 얘기를 듣고 그를 데리고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갔다.
직장을 옮기면서 카페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시은의 새 보금자리로 들어선 준호가 집 안을 둘러보았다.
“훨씬 넓어졌죠? 서울 오피스텔 전셋값으로 여기서는 20평대 아파트에 살 수도 있더라고요.”
시은은 준호가 마실 차를 준비했다.
전기 포트에 물이 펄펄 끓기 시작하고 시은이 찻잔을 꺼내며 물었다.
“차로 괜찮겠어요? 혹시 저녁은 먹었어요?”
생각해 보니 저녁을 먹지 못했다.
결혼식장에서 스테이크를 절반쯤 먹고 시은의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신 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저녁 안 먹었습니다.”
시은이 찻물을 따르다가 그를 쳐다보았다.
시은이 점장과 함께 늦은 시각 저녁 식사하러 가는 모습까지 보면서 정작 자신은 아직 저녁을 못 먹었다고 하니 미안해졌다.
“라면이라도 드시겠어요?”
지금 준비할 수 있는 게 라면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준호의 대답이 떨어지자 시은이 얼른 냄비를 꺼냈다.
“지금까지 저녁도 안 먹었다니 배고프겠어요. 빨리 끓여 줄게요.”
시은이 냄비에 물을 받고 인덕션 위에 올렸다.
라면을 꺼내려고 수납장을 열었다.
“어머. 라면이 떨어졌네.”
‘늘 있던 라면이 하필 오늘 같은 날 떨어질 건 뭐야.’
인상을 쓰며 시은이 지갑을 챙기고 현관으로 향했다.
“빨리 나가서 사 올게요.”
“시은 씨.”
준호가 일어나며 시은을 가로막았다.
“괜찮습니다. 안 먹어도 됩니다.”
“아니에요. 아파트 상가에 편의점 있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준호가 나가려는 시은의 손목을 잡아서 돌려세웠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를 팔로 감아 당겼다.
순식간에 훅 딸려간 몸.
시은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와 배가 닿아 놀란 시은은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준호는 시은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그녀의 허리를 단단하게 고정했다.
“나 원래 음흉한 사람은 아닌데.”
준호가 시은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라면 먹을 거냐고 묻는 말에 딴생각이 나버렸습니다.”
“…….”
“그게 무슨 의미로 쓰이는지 시은 씨도 알죠?”
시은도 알고 있었다.
“그, 그 뜻으로 물은 거 아니었는데요. 순수한 의미였어요.”
“알아요. 시은 씨는 순수하게 물었는데 제가 불순하게 받아들였어요.”
시은이 긴장한 얼굴로 준호를 보았다.
처음이었다. 준호가 이렇게 박력 있게 행동한 것이.
시은도 준호가 생각하는 그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르고 가슴이 쿵쿵 뛰었다.
시은과 준호는 3개월의 짧은 연애 동안 키스 몇 번 말고는 진한 스킨십도 나누지 못했다.
준호의 시선이 시은의 입술에 머물렀다.
‘키스할 타이밍인가. 라면 사러 가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시은도 준호의 입술로 시선을 내렸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이 비스듬히 기울어지며 다가왔다.
그의 입술이 닿자 시은은 눈을 스르르 감았다.
몇 개월 만에 닿는 입술이라 전해지는 전율이 강렬했다.
준호의 숨결이 입술을 파고들자 시은은 온몸이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짧게 끝내지는 않겠다는 듯 준호는 시은의 허리를 더욱 당겨 안으며 입술을 파고들었다.
시은은 눈을 감고 숨을 참아내며 그의 입술을 느꼈다.
잠시 입술이 떨어지자 둘 다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준호의 눈동자가 뜨겁게 일렁이며 시은을 응시했다.
“침실이 어딥니까?”
시은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대답 대신 침실 문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준호가 시은을 이끌고 침실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간 준호가 시은의 허리를 껴안고 다시 입술을 겹쳤다.
아까보다 더 집요하게 입술을 찾아 물었다.
어느새 침대 가까이 간 준호가 시은을 조심스레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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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공기가 침실을 가득 메웠다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준호는 시은을 품에 안고 차올랐던 숨을 천천히 골랐다.
“시은 씨.”
“네.”
“그거 압니까?”
“뭐요?”
“우리 헤어지던 그 날, 나 청혼하려고 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얘기에 시은이 시선을 들어 그를 보았다.
“반지까지 준비해 갔었는데.”
결혼이란 단어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기에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몰랐다.
시은은 그 얘기를 들으니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배가 되었다.
“정말이에요?”
“네. 꺼내지도 못하고 주머니에 그냥 넣어두었죠.”
준호가 안고 있던 시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말했다.
“시은 씨한테 청혼하고 시은 씨 마음만 확인하면 부모님을 어떻게든 설득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때는 시은 씨 마음에 확신이 없었기에 부모님께 소개도 할 수 없었죠.”
준호가 시은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우리 어머니한테 상처 되는 말 듣게 해서 미안해요.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준호 씨가 사과하지 말아요. 나 괜찮아요. 그렇게 상처 안 받았어요.”
준호가 확고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책임질게요. 시은 씨는 다른 걱정하지 말아요.”
시은은 진지한 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믿고 따라가고 싶었다.
다시는 그를 잃고 싶지 않아 시은이 준호의 품으로 더 파고들며 얼굴을 묻었다.
준호가 시은을 더 끌어안고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다시는 헤어지는 일 없을 겁니다.”
*
며칠 후.
“엄마, 이번 주 토요일, 태풍이 좀 봐줄 수 있어? 베이비시터가 쉬는 날이라서. 괜찮아? 응. 아침에 태풍이 데려다줄게.”
늦게 퇴근해 늦은 저녁 식사를 하던 민후가 장모님과 통화를 하는 은조를 빤히 쳐다보았다.
전화를 끊자 곧바로 물었다.
“태풍이는 왜?”
“이번 주 금토 엠티 가잖아요. 전에 얘기했죠?”
한창 바쁠 때 통화했던 거라 민후는 잊고 있었다.
“그게 이번 주야?”
“네.”
“엠티 지난번에 갔는데 또 가?”
“그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고 이건 우리 과에서 가는 엠티예요. 직속 선배들과 같이 가는.”
민후는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표정으로 의자에 등을 기댔다.
“모든 엠티를 다 참가할 생각이야?”
“그건 아닌데 이번은 가고 싶어요. 이번엔 교수님들도 같이 가거든요. 세부 전공에 대해 설명회도 한다니까 꼭 가야 할 것 같아요.”
은조가 물컵을 들어 물을 마시는 민후를 쳐다보며 말했다.
“왜요? 싫어요? 나 엠티 가게 해 준다고 약속했잖아요.”
“그래. 약속했어.”
그의 얼굴에 싫은 티가 팍팍 나서 은조가 입을 삐죽였다.
“저번에 약속해놓고 이렇게 싫은 티 내면 내가 가면서도 마음이 불편하잖아요.”
“그냥 불안해서 그래. 아내가 다른 남자들도 있는 공간에서 늦게까지 술 마시고 자는 것 자체가 불안해. 한 잔만 마셔도 취하잖아.”
“술 못 마신다고 얘기하고 안 마실 거예요.”
“그런 곳에서는 강요하는 분위기도 있어서.”
민후가 어떤 걸 걱정하는지 알기에 은조가 민후의 무릎 위에 앉으며 그의 목을 안고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어린 나이도 아니고 그런 거 대처 못 할까 봐서요?”
민후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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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티 간다고 은조는 전날부터 가방을 싸며 들떠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며 짐을 싸는 은조를 민후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은조가 가져갈 옷을 두고 고민했다.
“티셔츠, 이게 나아요, 이게 나아요?”
둘 다 같은 하얀색 티셔츠였다.
“오른쪽.”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은조가 티셔츠를 몸에 대어보며 말했다.
“이건 좀 소매가 너무 넓지 않아요? 왼쪽 거로 가져갈래.”
“그럴 거면 왜 물어봤어?”
“히히.”
은조가 키득대며 웃었다.
“내 앞에서 너무 신나 하는 거 아니야? 남편이 내일 혼자 자는 건 걱정 안 돼?”
아내가 엠티를 간다는 것 자체가 못마땅한 민후는 아까부터 툴툴댔다.
“다 큰 어른이 혼자 자는 게 무슨 걱정이에요? 혼자 자는 거 무서워요?”
“응. 무서워.”
“에? 무섭다고? 그 덩치에?”
“외로움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은조가 눈을 흘기며 웃었다.
“아, 그럼 나 없을 때 이거 안고 자요.”
은조가 장롱을 열어 예전에 안고 자던 바디필로우 인형을 꺼냈다.
“허전할 때는 이거 안고 자면 훨씬 잠이 잘 와요.”
은조가 뿌루퉁해 있는 민후에게 인형을 안겨 주었다.
근육질 어깨로 인형을 안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어 은조가 웃었다.
“잘 어울리네.”
“이딴 거로 내 불안감과 외로움을 달랠 수는 없어.”
민후가 인형을 툭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을 싸는 은조에게 다가가 뒤에서 안았다.
“다시 한번만 생각해 봐. 안 가면 안 돼?”
“이러지 말아요. 보내주기로 해놓고.”
“그럼 잠은 집에 와서 자는 거 어때? 밤에 내가 데리러 갈게.”
“어떻게 그래요? 그리고 섬으로 가는데 밤에 거기까지 어떻게 와요? 배 끊기면 못 나가거든요?”
아무리 애원해도 안 먹히자 민후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술 마시지 말고 나 외로우니까 30분마다 영상통화 해야 해.”
“알았어요. 어휴, 누가 보면 엠티를 무슨 해외로 한 달쯤 가는 줄 알겠네.”
“나한테는 당신 없는 1박 2일이 한 달 같을 거야.”
은조가 뒤를 돌아 민후의 양 볼을 장난스레 꼬집었다.
“회장님이 이렇게 엄살이 심해선 안 되죠.”
민후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신 오늘은 마음껏 당신 안을 거야.”
은조가 보상이라도 해 준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오늘은 당신 하고 싶은 거 다 해.”
순간 민후의 눈동자가 반짝 빛이 났다.
“정말이지? 후회하지 않겠어?”
“네?”
민후가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은조를 번쩍 안아 들었다.
“어머!”
민후가 은조를 안고 곧장 침대로 갔다.
침대에 풀썩 쓰러지듯 눕히자 은조가 말했다.
“자, 잠깐만. 아까 한 말 정정하고 싶은데요.”
민후가 손가락을 세워 좌우로 흔들었다.
“노노. 낙장불입. 물릴 수 없어.”
민후가 고개를 숙여 은조의 몸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었다.
“밤새 나 시달리게 해서 내일 아침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하려는 거 아니에요?”
은조가 말하자 민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오, 좋은 방법이군. 그거라면 자신 있어.”
민후의 손이 은조의 옷 속을 거칠게 파고들었다.
“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