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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사랑해, 아가야 (83/100)


83. 사랑해, 아가야
2022.06.18.



“응애애애!”

드디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민후의 얼굴이 감격과 기쁨으로 물들었다.

아기가 태어났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그보다 은조가 이제 더는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앞섰다.

민후는 은조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고 말했다.


“고생했어. 정말 수고 많았어.”

“한은조 산모님, ○월 ○일 10시 30분 남자아이 출산하셨습니다.”

의사가 방금 엄마 몸에서 나온 아기를 그대로 은조의 가슴 위에 올려주었다.

아기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교감하게 되면 빠르게 안정을 찾는다고 했다.

처음 아기를 마주하는 순간이라 민후도, 은조도 감격스러웠다.


“……리은아.”

아기의 태명을 부르는 은조는 눈물이 왈칵 났다.

열 달 동안 배 속에 있던 아기를 만난 감격의 눈물이 쏟아졌다.


“민후 씨, 우리 리은이 좀 봐요.”

입을 오물거리는 아기의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우리 리은이 너무 예쁘죠.”

온몸이 빨갛고 퉁퉁 불어 있는 모습에 아직 태지가 붙어 있었지만 은조 눈에는 천사로 보였다.

아기를 내려다보는 민후도 감격해 눈가가 빨개져 있었다.

민후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기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세상에 나오느라 수고했다. 엄마, 아빠가 사랑한다. 사랑으로 키울게.”

민후가 막 태어난 아기에게 다짐하듯 사랑을 맹세하자 은조도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당신, 너무 수고했어. 정말 대단해.”

민후가 은조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아기를 낳기 위해 산통을 견뎌낸 은조가 너무 대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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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조는 VIP 병실로 옮겨졌고 민후는 그녀 곁을 지켰다.

몇 시간 동안 산고를 겪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손을 잡아 주었다.


“이제 한숨 푹 자. 너무 고생했어.”

새벽부터 8시간 넘게 진통을 하느라 은조는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못 잘 것 같아요. 아직도 가슴이 벅차올라요.”

은조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던 순간과 처음 얼굴을 마주 본 감격스러운 순간이 잊히지 않았다.

민후가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래. 아직도 리은이 첫 울음소리 생각하면 감정이 복받쳐 올라.”

미소를 짓고는 있지만 은조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신통을 참느라 입술을 얼마나 짓이겼는지 입술에 상처도 나 있었다.

민후가 마음이 아파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우리, 아기 그만 낳자. 당신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거 두 번 다시는 못 볼 것 같아.”

“세 명은 낳고 싶다고 했잖아요.”

민후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거 취소야. 더는 안 낳아도 돼.”

민후는 아내가 산통을 견뎌내는 모습을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은조가 입을 삐죽이며 웃었다.


“치, 무슨 가족계획을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어요?”

“그땐 당신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몰랐으니까. 내가 너무 무지했어. 그렇게 함부로 얘기할 게 아니었어. 내가 대신 낳을 수 있으면 열 명이라도 낳겠어.”

“선배 엄마들이 그러는데 낳을 때 고통은 아기 예쁜 모습 보면 금방 잊어버린대요. 그러고는 또 낳고 그런다던데요. 나도 아마 그러지 않을까요?”

 

*

강 회장이 수행비서와 함께 헐레벌떡 병원으로 왔다.

VIP 병실로 달려온 강 회장이 은조를 찾았다.


“우리 며늘아기 어디 있어? 새아가!”

민후가 강 회장에게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지금 막 잠들었습니다.”

“순산했어? 새아가도, 아기도 다 건강하지?”

강 회장도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물었다.


“네. 다 건강합니다.”

강 회장이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기는? 아기는 봤어? 아들 맞지? 어떻게 생겼어? 누구 닮았어?”

손자가 궁금한 강 회장의 폭풍 질문에 민후가 웃었다.


“아기 보러 갈 건데 같이 가시죠.”

강 회장이 금방 들뜬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첫 손자를 곧 보게 되는 설렘이 얼굴에 가득했다.

강 회장과 민후는 신생아실 유리창을 통해 신기한 눈으로 아기를 보았다.

눈을 감고 잠든 모습일 뿐인데도 경이로운 듯이 바라보았다.


“누굴 닮은 게냐? 하관은 널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반반씩 닮은 것 같습니다.”

제 유전자를 가진 핏줄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민후가 말했다.


“이름 지어 주세요. 아버지.”

강 회장이 기쁜 얼굴을 숨기고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그렇게 손주 바라셨으니까 손주 이름 직접 지어 주세요. 은조도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이름이라…… 한번 생각해 보마. 이름도 아무렇게나 지으면 안 되는데. 으흠.”

강 회장이 설렌 마음을 애써 숨기고 뒤돌아서자 뒤에 있던 수행비서가 민후에게 다가왔다.


“이미 회장님께서 아기 이름 여러 개 지어 놓으셨습니다. 작명 책을 보며 열심히 공부도 하셨습니다.”

수행비서의 귀띔에 민후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

시은과 준호는 한창 설레는 연애 두 달째가 되었다.

그동안 시은은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매니저로 취직했다.

박물관 내 커피숍과 달리 24시간 영업하다 보니 퇴근 시간이 많이 늦는 편이었다.

그래서 준호와의 데이트 시간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준호는 늘 시은을 기다려야 했고 밤 10시 이후에 만나 짧은 데이트를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오늘도 두 사람은 밤 10시에 만나 시은의 늦은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차 한잔을 마시니 벌써 자정이 지났다.

더 함께 있고 싶지만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준호를 배려해 자정쯤에는 늘 헤어졌다.

마지막은 항상 준호가 시은의 오피스텔까지 데려다주었다.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집까지 느릿하게 걸었다.

1분 1초가 아쉬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은조, 오늘 아기 낳았대요.”

“저도 직원한테 전해 들었습니다.”

“내일 병원에 들르려고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

“네. 안 그래도 저도 축하 인사하려고 했습니다.”

점점 시은의 집이 가까워지자 준호는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다음 주는 언제 쉽니까?”

“화요일이요.”

매주 휴일에 쉬는 준호와 쉬는 날도 맞지 않았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바쁜 매장이라 시은은 그날 쉴 수가 없었다.

준호가 주로 시은의 휴일에 맞추어 휴가를 썼다.


“괜히 계약 종료한 것 같습니다. 그냥 박물관에 있었다면 휴일을 맞출 필요는 없었을 텐데.”

준호는 이럴 때 시은이 관내 시설 운영자로 있었다면 같은 날 쉬고 같은 시각에 퇴근했을 텐데, 하고 아쉬워했다.

시은의 집 앞에 다다라 두 사람이 섰다.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벌써 다 왔네. 헤어지기 싫다.’

둘 다 이런 생각은 늘 했지만, 누구 하나 선뜻 더 같이 있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다.

준호는 자신이 늑대로 보일까 봐였고 시은은 내일 아침 출근해야 하는 준호를 배려해서였다.

이랬던 탓에 두 사람은 아직 첫 키스도 못 한 상태였다.

집 앞에서 헤어지기 전에 다들 첫 키스를 한다고 하는데 두 사람에겐 그게 참 어려웠다.


“들어가요. 피곤할 텐데.”

준호가 시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시은이 아쉬운 표정으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네. 준호 씨도 조심해서 가요. 도착하면 문자 줘요.”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하고 시은이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돌아서는 시은의 손목을 준호가 잡았다.

시은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준호가 짧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진짜 헤어지기 싫다.”

준호를 바라보는 시은의 눈에 설렘이 가득했다.

이렇게 붙잡은 적은 처음이었다.


“이래서 결혼이란 걸 하나 봅니다.”

그 말에 시은의 눈이 커졌다.


“헤어지는 게 싫으니까 하나 봅니다.”

‘결혼’이라는 단어를 꺼낸 준호를 보며 시은은 가슴이 두근댔다.


‘설마, 이게 결혼하고 싶다는 말? 에이, 아니겠지? 이제 연애 2개월 차인데…… 아직 키스도 못 했는데…… 단계를 훌쩍 뛰어넘잖아.’

시은은 준호가 신호를 준 것 같아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잠깐 차 한잔하고 가실래요?”

준호가 대답했다.


“그 말 듣고 싶었던 건 맞는데…… 나 너무 엉큼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준호가 조금 웃어 보이며 말했다.


“지금 헤어지기 싫어서 그런 겁니다.”

시은이 웃으며 뒤돌아 도어락을 열었다.

시은의 집은 두 달 전 밤새 기다렸던 그 날 이후로 처음 들어왔다.

시은은 들어오자마자 집을 빠르게 스캔했다.

집 안이 지저분하게 어질러져 있는 건 아닌지 살폈다.

그에게 깔끔하지 못한 여자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에겐 항상 잘 보이고 싶었다.

다행히 오늘은 집 안이 깨끗했다.

지난번처럼 빨래건조대에 속옷들이 널려 있지도 않았다.

시은은 가방을 내려두고 곧바로 주방으로 갔다.

주방이라고 해봤자 소파 있는 곳에서 세 발짝만 가면 되었다.


“허브차가 좋아요? 홍차가 좋아요?”

“전 아무거나 좋습니다.”

“소파에 앉아 계세요. TV 켜고 보시든지요.”

시은이 찻잔 세트를 꺼내려고 싱크대 상부장을 열었다.

아까워서 잘 사용하지 않던 예쁜 찻잔에 차를 주고 싶었다.

손이 닿지 않아 시은이 까치발을 하자 준호가 성큼 뒤로 다가왔다.


“제가 도와줄까요?”

준호가 시은의 뒤에서 팔을 뻗었다.

순간 시은의 등에 준호의 가슴이 닿았다.

등에 느껴지는 따뜻한 준호의 체온에 온몸에 전율이 퍼지는 듯했다.

준호는 큰 키 덕분에 너무나 쉽게 찻잔을 꺼냈다.

그와 몸이 닿아 흠칫 놀란 시은은 눈에 띄게 경직되어 있었다.

허브차를 꺼내 티포트에 담는 시은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시은이 차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준호는 옆에 계속 서 있었다.

방금 몸이 닿았던 것 때문에 둘 사이에는 미세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은은 준호가 옆에서 쳐다보고 있어 긴장감과 어색을 참을 수 없었다.


“이건 라벤더인데요. 밤에 마시기에 좋대요.”

어색함을 무마하려 괜한 잡담을 늘어놓는데 준호가 뒤에서 시은을 안았다.


“몸을 릴렉스하고……!.”

시은이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준호의 품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 시은은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숨까지 멈추었다.


“예전부터 이렇게 안고 싶었습니다.”

두 달간 데이트하면서도 준호는 스킨십에는 조심성을 보였다.

그게 조금 서운했던 시은은 자신이 매력이 좀 떨어지나 내심 고민스럽기도 했다.


“솔직히 처음부터 이러고 싶었어요.”

그동안 참고 있었다는 말에 시은은 가슴이 쿵쿵 뛰었다.


“너무 빨리 다가가면 시은 씨가 날 이상하게 생각할까 걱정됐어요.”

시은은 참았던 숨을 천천히 내쉬고 고개를 준호 쪽으로 돌렸다.

그가 뒤에서 안고 있었기에 그와 얼굴이 가까워졌다.

바로 코가 닿을 듯이 가까웠다.


“저도요. 저도 처음부터 이러고 싶었어요.”

솔직한 시은의 말에 준호의 시선이 시은의 입술에 닿았다.

시은도 그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준호가 손으로 시은의 턱을 잡고 고정한 뒤 제 입술을 가져갔다.

시은은 눈을 감았다.

그가 입술을 지그시 누르며 입을 맞추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준호가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시은의 입술을 베어 물었다.

촉촉하게 그의 숨결이 입술에 스며들었다.

첫 키스의 느낌은 감미로운 초콜릿을 음미하며 먹는 느낌이었다.

시은은 등줄기로 전율이 일고 심장이 간질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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