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일촉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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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일촉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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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일촉즉발
2022.05.03.
강 형사는 윤 회장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왔다.
검사의 예상대로 윤 회장은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도 공항에 도착한 강 형사는 윤 회장의 뒤를 몰래 쫓아갔다.
아직 영장이 없는 상태라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윤 회장은 도착하자마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예요. 지금 상황이 어때요?”
강 형사는 티 나지 않게 따라붙으며 통화하는 것을 들었다.
“무조건 먼바다로 나가요. 파도가 센 방향으로 가라고 하세요. 그래야 확실하게 익사로 처리할 수 있어요. 둘 다 구명조끼 안 입은 거 확실하죠?”
강 형사는 함께 온 다른 형사와 눈을 마주쳤다.
살인음모를 하는 것이 포착된 것이다.
윤 회장은 통화를 계속하며 택시 승차장으로 걸었다.
형사들도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던 중 서울에 있는 검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윤혜란 체포영장 발부되었습니다. 긴급체포하세요.]
전화를 끊은 강 형사가 택시를 타려고 기다리던 윤 회장에게 다가갔다.
윤 회장이 형사들을 아니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뭐예요?”
“경찰입니다.”
형사가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경찰이라는 말에 윤 회장이 불안한 얼굴로 주춤거렸다.
이미 지은 죄들도 있지만 지금 음모를 꾸미고 있어 가슴이 철렁했다,
형사가 뒷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냈다.
“윤혜란 회장님. 당신을 기업어음 부정발행 건과 분식회계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뭐, 뭐?”
윤 회장이 두려운 얼굴로 뒷걸음을 쳤다.
이렇게 빨리 체포가 될 줄은 몰랐다.
곧 검찰에 가서 조사를 받을 줄은 알았지만 벌써 체포라고?
“그 외 약물 이용한 존속학대 혐의 등 한두 건이 아니네요.”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살인예비음모혐의도 추가.”
윤 회장이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강 형사를 보았다.
“뭐, 뭐라고? 사, 살인이라니?”
윤 회장은 일단 무조건 발뺌했다.
“당신 핸드폰에 이예지 씨와 주고받은 메시지와 통화한 녹음이 증거로 고스란히 있습니다.”
윤 회장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모든 통화가 녹음되도록 기능을 설정해둔 것을 떠올렸다.
다른 이의 약점을 잡으려고 설정해 둔 기능이 오히려 자신의 약점이 되어버렸다.
윤 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형사가 수갑을 쥐고 윤 회장의 팔을 잡았다.
“이거 놔! 당신들 영장 있어?”
형사는 검사가 보내준 체포영장 사진을 보여주었다.
“여기 있습니다. 실물을 원하시면 팩스로 받아서 보여드릴까요?”
윤 회장이 입술을 짓이기며 형사를 노려보았다.
착!
형사가 윤 회장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두꺼운 은색 수갑이 윤 회장 손목에 있던 값비싼 순금 팔찌를 가려버렸다.
양손이 수갑에 묶인 굴욕을 당했음에도 윤 회장은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
체포당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본 사람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며 수군댔다.
형사가 윤 회장을 양쪽에서 잡고 연행하며 물었다.
“오늘 출항하는 요트 승선자 확인하니 한주 그룹 강민후 전무 부부가 있던데, 이 사람들 어디 있습니까?”
윤 회장은 움찔하며 형사를 쳐다보았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방금 통화한 거 다 들었어요! 이예지 씨랑 통화했죠? 익사로 처리하려면 먼바다로 나가야 한다면서요!”
윤 회장의 눈이 동요하듯 흔들렸다.
형사가 소리쳤다.
“지금 요트 탄 사람들 어디에 있습니까!”
*
“아저씨!”
민후가 대답이 없는 최 씨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왜 갑자기 출발하는 거냐니까요? 무슨 문제 있습니까?”
최 씨는 민후가 말을 거는데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배의 속도를 더 올렸다.
“아저씨!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최 씨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배의 속도를 올리는 데에만 열중했다.
민후는 순간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민후가 최 씨의 어깨를 잡아채며 소리쳤다.
“당장 멈춰요!”
민후는 최 씨를 제압해서라도 배를 멈추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 씨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배가 달리니 중심을 잡기가 힘들 정도였다.
뭔가 위태로운 느낌에 고개를 돌려 은조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배 난간에 서 있는 은조 뒤로 누군가 다가가고 있었다.
난간 손잡이를 꽉 잡은 은조 뒤로 서빙을 해주던 여자 직원이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두 팔을 뻗은 모습이 왠지 불길했다.
‘설마…….’
민후는 은조를 먼저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조가 있는 곳으로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배가 많이 흔들렸기에 속도를 내기가 힘들었다.
“은조야!”
민후가 크게 불렀으나 바람 소리와 모터 소리 때문에 은조가 듣지 못했다.
여자가 은조의 등을 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민후가 뛰어가 여자의 어깨를 잡았다.
“당신 뭐 하는 거야!”
민후가 등장하자 예지는 더 마음이 급해졌다.
이대로 실패할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성공해야 해! 지금 실패하면 끝이야!’
일단 은조를 밀어버리면 민후가 빠진 은조를 구하려고 뛰어들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예지가 은조를 요트 밖으로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예지가 젖먹던 힘을 쥐어짜 은조의 몸을 안아 위로 들려고 했다.
“이봐, 당신 뭐야!”
여자를 제지하고 말리려는 민후의 손에 예지의 모자와 가발이 벗겨졌다.
손에 잡힌 가발을 보며 민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자의 정체를 알아챈 민후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형수?”
은조도 놀라 입을 크게 벌렸다.
“헉!”
민후는 와중에 은조의 어깨를 감싸 안고 보호했다.
모든 게 들켜버린 예지는 혼이 나간듯한 얼굴이었다.
모든 게 끝났다.
성공할 줄 알았는데.
이대로 들켜버린 이상 막다른 골목이었다.
두 사람을 제거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거다.
예지가 민후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죽어.”
예지는 급기야 흰자위를 보이며 광기를 보였다.
“죽어!”
민후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너만 없으면 돼! 너만 없으면!”
예지가 민후의 멱살을 잡고 민후를 배 밖으로 밀려고 애썼다.
하지만 힘으로는 민후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민후의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민후는 예지가 은조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은조를 팔로 감싸 보호하며 광기 어린 예지를 놀란 얼굴로 보았다.
그 순간 속도를 높여 항해하던 배가 파도를 만나 순간 위로 붕 떴다가 쿵 내려앉았다.
그 반동에 예지가 중심을 잃고 난간 밖으로 튕겨 나갔다.
“아악!”
가까스로 난간 끝을 잡고 바다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몸은 요트 바깥으로 완전히 나가 있었다.
“아악! 살려 줘!”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으로 난간을 잡고 매달린 예지가 애원했다.
“사, 살려 줘!”
두 사람을 바다에 빠트리려고 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빠지게 생겼다.
민후가 난감한 얼굴로 예지를 내려다보았다.
“서, 서방님. 살려 주세요! 잡아 주세요!”
절박하게 애원하는 예지의 얼굴 아래로 짙은 푸른색의 바다가 보였다.
예지를 삼킬 듯이 크게 파도가 일렁였다.
민후는 손을 뻗었다.
망설임도 없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했어도 이대로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떤 계획을 세웠든 간에 예지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민후가 팔을 뻗어 난간을 잡은 예지의 손목을 가까스로 잡았다.
민후의 상체가 아래로 많이 쏠렸다.
이 광경을 불안하게 보던 은조가 민후를 붙잡았다.
“조심해요, 민후 씨.”
그 순간 다시 한번 배가 파도 때문에 크게 요동쳤다.
배가 크게 기울어지면서 민후와 예지가 그대로 같이 바다에 떨어졌다.
“꺅! 민후 씨!”
은조가 비명을 질렀다.
요트 밖으로 머리를 빼고 바다를 보았다.
출렁이는 파도만 보이고 민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은조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선실로 뛰어 들어갔다.
이 순간은 임신한 사실도 잊고 뛰었다.
“사람이 떨어졌어요!”
조종석에만 있던 최 씨는 바깥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아저씨! 사람이 떨어졌어요!”
최 씨가 놀라 쳐다보았다
“누가요?”
“저희 남편이요! 민후 씨가! 민후 씨가 바다로 떨어졌어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조는 이 순간 민후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예지와 같이 떨어졌지만 그 생각은 나지도 않았다.
“아저씨, 어서요! 어서!”
애타게 말하던 은조가 최 씨를 바라보았다.
도움을 청할 사람은 최 씨밖에 없었다.
요트의 책임자이니 어딘가로 연락해 도움을 청할 것이라 여겼다.
“일단 경찰에 신고, 아니 119요!”
그러고는 요트에 갖춰진 구명 장비를 꺼낼 것으로 여겼다.
“구명 튜브나 보트요! 아저씨 빨리요!”
그런데 최 씨가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빤히 쳐다만 보는 것이었다.
그는 발을 동동 구르는 은조를 심각한 얼굴로 보고만 있었다.
최 씨는 예지에게서 민후 부부를 사고사로 위장하는 데 도움을 주면 아들을 대기업에 취업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전무님이 바다에 빠졌으니 사모님만 빠트리면 되는데…….’
최 씨가 조종석에서 일어나 은조에게로 다가갔다.
절박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은조에게 다가가던 최 씨가 멈칫했다.
그의 눈에 은조의 불룩한 배가 들어왔다.
‘이, 임신부?’
*
서울 검찰에서 첩보를 받고 제주 해양경찰은 순찰을 강화하고 있었다.
사고를 위장한 살인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첩보에 요트가 항해하는 방향으로 이동 중이었다.
경비함정에서 망원경으로 살피던 해경 한 명이 말했다.
“저기 포, 글로리아 호입니다.”
“상황 어때 보이나?”
“선상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가까이 가 봐.”
해경의 경비함정이 요트 가까이 항해하는데 누군가 소리쳤다.
“저기 사람이 빠진 것 같습니다.”
망원경으로 관찰하던 해경이 바다에 빠진 사람을 발견했다.
사람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빠졌다가를 반복했다.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구조 시행해!”
경비함정에서 구조 보트가 미끄러지듯이 내려가고 해경 몇 명이 익수자에게 다가갔다.
구명 튜브를 던지고 직접 바다에 들어가 익수자를 구조했다.
보트에 끌어 올려진 사람은 여자였다.
해경이 예지의 얼굴을 때리며 의식을 확인했다.
“선생님! 정신 차리세요! 선생님!”
쿨럭거리며 의식을 찾은 예지가 눈을 떴다.
“정신이 듭니까?”
예지는 경찰들을 둘러보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 살았다. 살았어.’
울컥해 눈물이 솟구치려고 했다.
그 와중에 예지는 구명보트 주변을 보았다.
민후도 구조가 되었는지 확인하는 거였다.
구명보트에는 민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같이 떨어졌는데…….’
의식이 몽롱한 와중에도 민후와 같이 떨어졌던 것은 확실히 기억났다.
‘먼저 구조가 된 건가? 그러면 안 되는데…….’
“선생님. 포, 글로리아 호에서 떨어지신 겁니까?”
해경이 예지에게 물었다.
“혼자 떨어지신 겁니까? 누구 또 있습니까?”
예지가 해경을 쳐다보았다.
‘응? 이렇게 묻는 건 서방님은 아직 구조가 안 되었다는 얘기인가?’
예지는 죽다 살아난 급박한 상황에도 머리를 굴렸다.
“저 혼자요.”
물에 빠진 사람이 한 사람이라고 하면 경찰은 더는 구조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저 혼자 빠졌어요.”
민후가 구조되지 못하도록 예지는 거짓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