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장모님 만났어
(63/100)
66. 장모님 만났어
(63/100)
66. 장모님 만났어
2022.04.19.
민후는 장모님에게서 받은 들깨 수제비를 가지고 집으로 갔다.
어릴 때 먹던 들깨 수제비를 먹고 놀랄 아내의 표정이 벌써 기대가 됐다.
흐뭇한 얼굴로 운전하며 가는 길에 비서실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실장님.”
[전무님. 명신제지 압수수색영장 나왔습니다.]
비서의 목소리가 한껏 들떠 있었다.
[전무님 예상대로 수색영장이 윤 회장님 자택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면 한약에 관련해 통화한 명세까지 같이 증거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민후가 제출한 증거자료면 영장이 나오고도 남았다.
[윤 회장도 자택까지 수색영장이 나올 거라고는 아마 예상 못 했을 겁니다. 출국 금지 명령도 내려졌습니다.]
민후는 운전하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수색해서 혐의가 나오면 윤 회장은 곧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겠죠?]
“그렇게 돼야죠.”
이번에 제대로 수사해 윤 회장의 추악한 가면을 벗겨내야만 한다.
“한의원은 어떻게 됐습니까?”
[한의사가 발뺌하고 있습니다. 열처리 제대로 안 한 것은 고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약재 납품하는 쪽으로도 다 각도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택 압수수색에 윤 회장 개인 핸드폰도 포함되기 때문에 포렌식을 하면 증거가 나올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윤 회장 쪽 동향 계속 파악해주세요.”
[네.]
“아, 그리고 제주도 여행 예약은 했습니까?”
[아, 그럼요. 특급리조트 스위트룸으로 예약했습니다. 진작 말씀드린다는 게 수색영장 나왔다는 소식에 들떠서 깜빡했습니다. 항공권과 리조트 예약 건은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주도에 아버지 소유의 요트가 있을 건데, 그거 한번 알아보세요.”
[요트요?]
“네. 요트 관리하시는 분이 따로 계실 겁니다. 그날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얘기해 놓으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민후는 장모님이 싸주신 들깨 수제비 밀키트를 들고 집으로 갔다.
.
.
.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조금만 기다려.”
“뭐 만들 건데요? 나도 도와줄게요.”
“안 도와줘도 돼. 20분이면 돼. 다 할 때까지 당신은 주방에 들어오지 마. 짜잔, 하고 완성된 음식 맛보여주고 싶으니까.”
민후는 은조를 침실로 데려가 방에서 나오지 말라 부탁했다.
“어떤 요리를 해주려고 이래요? 이러면 나 너무 기대된다고요.”
“기대해도 좋아.”
자신 있다는 듯 민후가 눈을 찡긋했다.
은조는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해준다는 민후가 귀여워 웃었다.
이렇게 노력하는 남편이 고마워 감동적이기도 했다.
“다 됐어. 나와 봐.”
얼마 후 민후가 요리가 다 되었다며 은조를 불렀다.
침실문이 열리자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음, 맛있는 냄새.”
잔뜩 기대한 얼굴로 은조가 주방으로 갔다.
식탁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본 은조가 놀라 입을 벌렸다.
들깨 수제비였다.
오늘 낮에 들깨 수제비 먹고 싶다고 했는데 못 먹고 다른 걸 먹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수제비 하나 못 먹은 게 뭐 대수라고 이렇게까지 준비한 걸까?
은조는 자신을 생각해주는 민후의 마음이 무척 감동이었다.
감격한 얼굴로 민후를 바라보았다.
“들깨 수제비잖아요. 이걸 민후 씨가 만들었어요?”
“자, 어서 먹어 봐.”
의자에 앉아 음식을 보는 은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건 어렸을 때 먹었던 그 수제비랑 빛깔이나 냄새가 비슷했다.
은조가 숟가락을 들어 수제비 국물을 한술 떠먹었다.
“……!!”
맛을 본 은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릴 때 먹던 그 수제비 맛이 났다.
수제비 국물을 휘저으니 씻어서 넣은 김치도 보이고 엄마가 해주셨던 그 수제비랑 똑같았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민후를 바라보았다.
민후는 놀라는 은조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맛이 어때?”
“…….”
은조는 그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은조가 숟가락으로 수제비를 떠먹어 보았다.
수제비의 식감까지 어릴 때 먹던 그 맛이었다.
“어떻게 했어요? 나 어릴 때 먹던 맛이랑 똑같아요.”
민후가 씩 웃었다.
일단 아내가 만족하니 기분은 좋은데 장난기도 발동했다.
이대로 아내를 속일까, 사실대로 털어놓을까 고민이 됐다.
“내가 또 뭐든 잘하잖아.”
민후가 장난스레 으스댔다.
“그래도 그렇지. 이 맛은 잘 못 낸다고요. 어떻게 엄마가 해주셨던 그 맛이랑 똑같지?”
은조는 신기해하며 수제비를 폭풍 흡입하기 시작했다.
민후는 그 앞에서 턱을 괴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한 그릇을 다 비운 은조가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같이 먹자는 말도 안 하고 나 혼자 다 먹어버렸네.”
어릴 때 먹던 그 맛에 정신없이 먹어댔다.
“괜찮아. 냄비에 더 있어. 더 줄까?”
“아뇨. 배불러서 나중에 먹을래요.”
은조는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했다.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요? 나도 민후 씨한테 배울래요. 어렸을 때 먹었던 그 맛이에요.”
민후가 온화한 얼굴로 은조를 바라보았다.
이제 장모님을 따로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얘기할 때가 온 것 같았다.
민후가 조용히 말했다.
“내가 아는 들깨 수제비 장인님께 부탁드렸지.”
“들깨 수제비 장인님이요? 그분이 우리 엄마랑 하는 방식이 비슷한가 봐요.”
“그런가 봐.”
“유명한 분이에요? 누구예요?”
“그 장인님 존함이 최, 송 자, 화 자 쓰시는 분이야.”
“……!”
은조의 눈이 아까보다 더 커다래졌다.
“들깨 수제비에는 알아주는 장인이신가 봐.”
은조는 엄마의 이름과 같은 동명이인인가 생각하며 민후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분이 별내동에서 꽃집을 운영하시거든. 꽃다발 만드는 솜씨도 아주 좋으셔.”
은조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신한테 가끔 줬던 꽃다발, 그분이 만들어주신 거였어.”
그가 엄마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엄마를 만난 건가? 아니면 엄마인 줄 모르고 얘기하는 건가?
놀란 얼굴로 바라보는 은조를 보며 민후가 말했다.
“나, 장모님 만났어.”
“……!”
은조는 그동안 민후가 꽃다발을 가지고 들어왔던 날을 떠올렸다.
엄마를 만난 지 꽤 되었다는 얘기다.
“……민후 씨.”
“미안해. 당신이 윤 회장님 때문에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내 방식으로 만나게 되었어. 장모님도 내 정체를 모르게 만나고 싶어서 꽃집이 있는 건물을 내가 샀어.”
은조가 놀라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 그럼 그 새로운 건물주가…….”
‘이번에 건물주가 바뀌었는데 너무 좋으신 분이야. 월세를 반으로 깎아주셨어.’
‘그뿐이 아니야. 건물주가 대기업에 다니는데 거기에 정기적으로 납품도 하게 해줬어.’
‘엄마가 착한 건물주님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바로 민후 씨였다니!’
“장모님도 한동안은 내가 누군지 모르고 만났어. 얼마 전에 알게 되셨어.”
은조의 눈동자가 한없이 떨리고 있었다.
엄마를 그동안 몰래 도와주었다니…….
은조는 남편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글썽거렸다.
“민후 씨…….”
민후가 은조의 손을 살며시 잡고 말했다.
“그리고 곧 당신도 장모님과 만나게 될 거야.”
“……네?”
은조가 불안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 어떻게요? 할머니가…….”
“당신이 뭘 걱정하는지 알아. 윤 회장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해줄게.”
수년간 윤 회장에게 시달려온 은조는 쉽게 불안함을 떨치지 못했다.
“윤 회장, 곧 검찰에서 조사받을 거야.”
“조사요?”
“당신한테 준 한약에 아기를 유산시키는 약재가 들어갔어.”
“네?”
은조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독성물질도 들어갔고. 그것 때문에 아주머니가 위험해지신 거였어.”
“유, 유산하는 약이 들어갔다고요?”
민후가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그 약 안 먹길 천만다행이야.”
할머니가 그 약을 전해 주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래도 할미가 되어서 임신한 손녀 나 몰라라 하기도 그래서 약 좀 지었어. 이런 할머니가 세상에 또 어디 있니? 말도 하나도 안 듣는 손녀 걱정되어서 약까지 지어주고.’
어쩐지 갑자기 잘해주는 것이 이상했었다.
은조는 소름이 끼치는지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그것 말고도 경제범죄 건도 있어서 곧 소환될 거야.”
은조가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무혐의 받으면요? 아니면 집행 유예받으면요?”
얼마 전 예지도 검찰에 가 조사를 받았지만 친정 쪽에서 손을 써서 풀려나지 않았었나.
은조는 할머니도 또 그렇게 될까 봐 불안했다.
“그렇게는 안 될 거야.”
민후가 불안해하는 은조의 손을 꼭 잡았다.
“내가 그렇게 되도록 할게.”
예지가 저지른 갑질 사건과는 사이즈가 달랐다.
“당신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좋은 생각만 해. 태교에 안 좋아.”
은조가 인상을 쓰고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자 민후가 은조의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다음 주 제주도 여행에서 즐겁게 지낼 생각만 해.”
민후가 손을 뻗어 은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가서 요트도 탈 거야.”
한약에 유산시키는 약재가 들어갔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이라 은조는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렸다.
“아버지 요트인데 나 어릴 때 몇 번 탔던 기억이 있어. 중학생 때 선상에서 낚시했었는데 재미있었어.”
민후는 임신한 은조가 여러 가지로 불안한 기분을 느낄까 봐 염려되었다.
“내 서재에 큰 물고기 들고 사진 찍은 거 있지? 그게 요트 위에서 낚시하다 잡은 거야.”
은조가 좋은 생각만 하도록 민후는 노력했다.
“또 요트에서 바라보는 노을 지는 바다는 얼마나 장관인데. 바다 한가운데서 온통 붉게 물든 바다를 보는 거야. 당신도 분명 좋아할 거야.”
자신을 안심시키려 애쓰는 민후를 보며 은조가 옅게 웃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행복한 생각만 해.”
*
예지는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서방님이 요트를 사용하신다고?”
네. 다음 주 주말에 사용하시겠다고 하셨답니다.
예지 부부도 제주도에 갔을 때 언젠가 사용했던 강 회장 소유의 요트였다.
“확실히 부부만 이용하는 거죠?”
[예.]
전화를 끊은 예지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둘이 제주도 여행을 간다고?”
‘물가로 데려가. 그러면 일이 잘 풀릴 거야.’
무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예지가 윤 회장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사돈.]
윤 회장이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 서방님하고 동서가 제주도로 여행을 간대요. 자기들이 알아서 물가로 가는데요?”
예지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제주도요?]
“네. 그런데 서방님이 옆에 계속 붙어 있을 텐데 뭘 할 수 있을까요?”
*
윤 회장은 민후와 은조가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간다는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유정이가 받아야 할 상속권을 가진 은조만 제거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어제 자신의 회사로 찾아와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갔던 민후를 떠올렸다.
처음엔 쓸모있는 사업파트너일 줄 알았는데 사사건건 자신을 방해하는 민후가 눈엣가시였다.
민후도 이참에 제거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떡하죠? 좋은 생각이 있어요?]
예지가 안달 난 목소리로 물었다.
[서방님을 떼어놓을 방법이 있을까요?]
예지는 민후를 은조에게서 떼어놓을 생각만 했다.
윤 회장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둘이 여행을 갔으니 둘이 한 번에 사고를 당하는 게 더 그림이 낫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