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이상한 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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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이상한 한약
2022.04.09.
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늦잠을 잤다.
잠결인데 목덜미에 남편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음.”
은조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눈을 감은 채 그에게로 돌아누웠다.
“잘 잤어?”
“네.”
눈을 감은 채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답하면서 팔로 남편의 허리를 껴안았다.
“언제까지 잘 거야? 나 심심한데.”
민후는 은조의 이마와 볼에 입을 맞추며 놀아달라고 보챘다.
임신 후 잠이 많아진 은조는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아 더 자고 싶은 마음과 눈을 떠 남편을 보고 남편과 놀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많이 졸려?”
“응. 나 잠꾸러기가 됐나 봐요.”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은조가 대답했다.
“리은이 녀석이 많이 잠꾸러기인가 봐.”
민후가 고개를 아래로 내려 은조의 볼록한 배에 입을 맞추었다.
촉.
“리은이 이 잠꾸러기야. 엄마 그만 일어나게 해줘. 오늘 휴일이라서 아빠랑 놀아야 한단 말이야.”
민후가 배에 대고 여기저기 뽀뽀를 해댔다.
“간지러워요.”
은조가 간지럽다며 배를 가리자 민후의 입술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입맞춤을 지속할수록 은조 입에서 달뜬 숨이 쏟아졌다.
“아…… 민후 씨, 잠깐…… 아.”
잠 깨우는 데 이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민후는 집요하게 키스를 퍼부었다.
몸에 키스하면서 민후의 손이 은조의 발목부터 종아리를 감싸며 올라갔다.
“아침부터……흣, 이러기 있어요?”
은조는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민후의 어깨를 잡았다.
“그거 알아?”
“하아,…… 뭘요?”
“당신, 몸이 더 풍만해졌어.”
민후의 손이 은조의 잠옷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래서 더 미치겠다고.”
.
.
.
뜨거운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누웠다.
행복감이 충만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민후의 손가락 끝이 은조의 이마부터 코끝까지 천천히 선을 긋듯 내려갔다.
“눈, 코, 입 어느 곳 하나 안 예쁜 곳이 없다.”
손끝이 입술에 닿았고 은조가 웃으며 입술을 쭉 내밀어 그의 손가락에 입을 맞추었다.
“이러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
민후의 말에 은조가 물었다.
“언제부터 나 좋아했어요?”
민후가 기억을 더듬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호감은 첫 만남 때.”
“진짜요?”
“응. 윤 회장님이 계약 결혼을 제시했지만, 신부가 마음에 안 들었다면 아마 거절했을 거야.”
은조는 다소 놀랐다. 처음부터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는 건 의외였다.
“그러다가 언제 복지기관에서 같이 봉사했을 때 있었지? 그때 당신이 행복한 얼굴로 아이들 돌보는데 천사처럼 보였어.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도 처음 보았고 그때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처음 느꼈지.”
은조는 자신보다 훨씬 먼저 자신을 좋아한 사실을 알고는 놀랐다.
“그날 이후로는 집에서 당신을 마주치거나 스치고 지나갈 때 나는 샴푸 향기에도 가슴이 설렜어.”
“그런데 어떻게 티도 하나 안 냈어요?”
민후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지금 생각하면 왜 감정을 꼭꼭 숨겼었나, 후회돼. 일찍 표현했더라면 좋았을걸.”
그랬다면 이렇게 아내를 안고 있는 행복한 시간을 더 누릴 수 있었을 텐데.
띠띠띠띠.
그때 현관 도어락 소리가 났다.
민후가 눈을 크게 뜨자 은조가 말했다.
“도우미 아주머니 오셨나 봐요. 오늘까지 쉬시라고 했는데 많이 좋아졌다고 반찬이랑 빨래만 하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셨어요.”
“더 쉬시지. 오늘은 내가 청소하려고 했는데.”
“그러게요. 오늘까지 쉬셔도 되는데.”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며칠 휴가를 주었더니 집안이 도우미 없는 티가 확연히 났다.
둘 다 직장을 다니다 보니 집안일을 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은조가 임신 중이라 민후가 집안일을 하지 못하게 해서 더 심해졌다.
도우미가 밖에서 은조를 찾았다.
“사모님, 혹시 주무시는 중이에요?”
“아니에요.”
도우미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안 주무시면 청소기 좀 돌릴게요. 어머나!”
아직 침대에 누워 있는 부부를 보고는 도우미가 화들짝 놀라 문을 닫았다.
“죄송합니다.”
이불을 덮고 있었지만 이불 속에는 둘 다 벗은 채였다.
은조가 부끄러운 듯이 민후를 보고 웃었다.
민후가 벗은 몸으로 은조를 끌어안았다.
“좀 이따가 오시지. 나 아직 우리 예쁜 아내랑 더 놀아야 하는데.”
민후가 고개를 숙여 은조의 목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방에는 이제 안 오시겠지? 문 잠글까?”
“어휴, 또 하게요? 방금 했잖아요.”
“난 아직 허기져. 당신 몸이.”
민후가 입술을 더 내려 키스를 퍼부었다.
“앗, 안 돼, 안 돼. 그만. 나 불안해서 못 해요.”
“왠지 더 짜릿할 것 같아.”
은조는 민후의 어깨를 밀어냈다.
하지만 바위 같은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
.
.
은조와 민후가 방에서 나왔을 때는 집 안 청소가 깨끗하게 되어 있었다.
빨래까지 돌렸는지 도우미가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왔다.
은조도 빨래 개는 것을 도우려고 다가갔다.
그런데 바구니에 빨래를 한가득 가져오는 도우미가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아직 몸이 안 좋으신가 봐요.”
도우미가 허리를 세우면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아뇨. 괜찮…… 아.”
가슴을 잡으며 도우미가 쿵 쓰러졌다.
“아주머니!”
은조가 놀라서 다가가 도우미를 흔들었다.
“아주머니, 정신 차리세요!”
놀란 은조 목소리에 서재에 있던 민후도 놀라서 나왔다.
“무슨 일이야?”
“민후 씨, 아주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은조가 겁을 먹은 얼굴로 소리쳤다.
민후가 달려와서 쓰러진 도우미의 의식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빨리 119에 전화해.”
그러고는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은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 응급환자가 있다고 신고했다.
민후가 두 손을 포개어 가슴을 강하게 압박하며 CPR을 했다.
은조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옆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다행히 구급대가 재빠르게 도착해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했다.
은조와 민후도 보호자 자격으로 같이 구급차에 탔다.
병원에 도착해 곧바로 응급실로 옮겨졌다.
이동 베드에 실려 온 도우미가 침상에 눕혀졌다.
민후와 은조는 응급실에는 들어갈 수 없어 출입문 주변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응급실 안쪽에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도우미가 누운 베드를 의료진이 둘러싸고 응급처치를 했다.
심장마비가 왔는지 심장 충격기를 사용했다.
숨 가쁘게 응급처치를 한 덕에 의료기기에 신호가 떴다.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의료진들은 한시름 놓은 듯한 표정들이었다.
간호사는 손목에 주삿바늘을 꽂고 의사는 몇 가지 지시를 했다.
의사가 나와서 민후와 은조를 보며 물었다.
“보호자세요?”
“가족은 아니고요. 우리 집에서 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심정지 상태로 왔었는데 다행히 맥박은 다시 돌아왔어요.”
은조가 감격한 얼굴로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 다행이다.’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는데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밀 검사하고 기다려 보죠.”
“네. 감사합니다.”
얼마 후 다행히도 도우미는 의식을 되찾았다.
치료를 위해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아주머니, 정말 다행이에요. 큰일 날뻔하셨어요.”
은조가 도우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도우미가 은조와 민후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두 분이 절 병원에 데려오신 거예요? 저 때문에 지금까지 기다리신 거고요?”
“이분들 아니었으면 돌아가셨을 겁니다. 심장마비가 왔었거든요. 응급처치를 빠르게 한 덕에 살아 계신 겁니다.”
의료진이 말하자 도우미의 눈에 감격한 눈물이 글썽였다.
“세상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별일 없어 정말 다행입니다. 아주머니 핸드폰으로 따님께 연락드렸어요. 지금쯤 오고 있을 겁니다.”
민후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전무님.”
의사가 도우미에게 물었다.
“며칠간 뭐 다른 거 드신 거 있어요? 피검사에서 독성물질이 발견됐습니다.”
“예? 독성물질이요?”
“아코니틴계열 독성물질인데 이거 중독되는 물질이거든요. 부정맥에는 치명적입니다. 평소 드시던 부정맥약 말고 다른 약 드신 거 있습니까?”
“다른 약이요?”
도우미가 한약을 생각해내고는 대답했다.
“한약 먹는 게 하나 있긴 한데…….”
“약물 치료 중에 한약 같은 거 함부로 드시면 안 됩니다. 중독성 강한 성분이니 한약은 중단하세요.”
“중독이요?”
“부정맥을 더 유발하는 성분입니다. 당분간 입원 치료받으시면서 경과를 지켜봅시다.”
의사가 나가고 은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갔다.
“아주머니. 그거 제가 드린 약이죠? 그 약 드시고 지병이 더 악화하신 거예요?”
“사모님 약을 제가 함부로 가져가서 그런가 봐요. 잘 알아보지도 않고.”
듣고 있던 민후가 물었다.
“그게 무슨 얘기야? 한약이라니?”
“사실은.”
은조가 민후에게 얘기하지 않았던 한약 얘기를 꺼냈다.
“할머니가 얼마 전에 임신부에 좋은 약을 지었다고 주셨어요. 제가 한약도 싫어하는 데다가 할머니가 주신 거 왠지 먹고 싶지 않아서 버리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아주머니가 버리는 거 아깝다고 가져가서 드셨어요.”
민후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윤 회장님이 한약을 지어 줬다고?”
‘얼마 전까지도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윤 회장이 아내를 위해 약을 지어줘?’
민후는 그 한약을 지은 의도부터 의심이 갔다.
“그 약, 혹시 지금 있습니까?”
도우미가 가방에서 한약 파우치 하나를 꺼내서 주었다.
민후가 손에 들고 은조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 약 먹었어?”
“아뇨. 전 하나도 안 먹었어요.”
“이건 내가 성분 검사를 좀 해봐야겠어.”
윤 회장이 지어준 약은 어딘지 께름칙했다.
우연히 도우미의 지병에 안 좋은 약재가 들어갔을 수도 있지만 어떤 약재가 들어갔는지 알아봐야겠다.
민후가 걱정스럽게 도우미를 쳐다보았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도우미에게 피해를 주게 된 상황이다.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니에요. 사모님은 그거 버리라고 하셨는데 제가 아까워서 가져간걸요.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좋은 약이라 생각하고 먹었던 제가 멍청한 거죠.”
도우미의 보호자인 딸이 병원에 도착해 민후와 은조는 병원을 나왔다.
*
민후는 비서에게 한약 성분을 알아보라고 지시한 후 다음날 충격적인 결과를 들었다.
“전무님, 한약 성분 검사결과가 나왔는데요. 좀 놀랍습니다.”
비서가 검사결과지를 책상에 올리며 말했다.
민후가 시선을 들어 비서를 쳐다보고는 결과지를 보았다.
“도우미분은 한약에 들어간 ‘부자’라는 약재 때문에 악화한 겁니다. ‘부자’는 심각한 부정맥 유발에 의한 사망의 위험이 따르는 약재라고 합니다.”
“이게 임신부가 먹을 한약에 왜 들어간 겁니까?”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임신부에게 치명적인 ‘유향’과 ‘반하’도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민후가 눈썹 끝을 추켜올리며 비서를 보았다.
“유산율을 높이는 약재라고 합니다.”
“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