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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나 질투 되게 많아요 (58/100)

60. 나 질투 되게 많아요2022.03.29.

16551895179018.png“그럼 뭔데요?”

16551895179025.png“그냥 동기였어. 같은 한인 학생회여서 가끔 만났지.”

민후는 좀처럼 볼 수 없던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사귀었던 사람은 아니지만 다른 여자와 팔짱 끼고 찍은 사진을 아내가 보는 것만으로도 긴장되었다. 아내에게 어떤 흠도 없이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16551895179018.png“그냥 여사친이라고 하기엔 팔짱도 끼고 되게 다정한데요?”

16551895179025.png“난 감정이 전혀 없었어.”

은조가 쳐다보자 민후가 해명하듯이 말했다.

16551895179025.png“진짜야.”

16551895179018.png“아, 그럼 저쪽에서는 감정이 있었다는 얘기네요. 썸탄 사이?”

16551895179025.png“아냐! 그런 것도 없었어!”

민후가 정색하며 단호하게 답했다. 은조는 민후를 보며 픽 웃었다.

16551895179018.png‘뭘 저렇게 정색하면서 말할까. 전여친이라고 해도 다 이해할 수 있는데.’

16551895179018.png“알겠어요. 그 인물로 민후 씨를 좋아했던 여학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 내가 그 학교 학생이어도 좋아했겠다.”

학창시절 민후의 주변에는 항상 자신을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많았다.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지만. 사진 찍었던 그 여학생도 민후를 좋아했고 고백까지 했다. 고백을 거절한 후로는 민후가 거리를 두며 일부러 멀어졌다.

16551895179025.png“진짜 아무 사이 아니야 그냥 한인 학생회 모임에서 몇 번 만난 것뿐이야. 이 사진도 한인 학생회 송년 파티에서 찍은 거야.”

은조는 이렇게 당황한 티를 팍팍 내는 민후가 귀여워 보였다. 그런 민후를 놀리고 싶은 마음에 은조가 장난을 쳤다.

16551895179018.png“아, 송년 파티면 같이 춤도 췄겠네요. 영화 보니까 미국 파티에서는 춤도 추고 그러던데.”

민후의 동공이 흔들렸다.

16551895179025.png“아, 안 췄을걸?”

은조가 눈을 가늘게 떴다.

16551895179018.png“당황하는 거 보니 췄는데?”

16551895179025.png“안 췄다니까!”

은조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었다.

16551895179018.png“하하. 진짜 웃기다.”

자신한테 책잡힐까 긴장하는 민후의 모습이 왠지 기분이 좋았다. 아내의 눈치를 보는 남편 모습이 여느 부부의 모습 같아 설레었다.

16551895179018.png“괜찮아요. 민후 씨 좋아했던 여자들 많았을 거로 생각해요. 이렇게 멋지게 태어난 걸 어쩌라고.”

은조가 고개를 민후에게 기울이며 덧붙였다.

16551895179018.png“그래도 지금은 내 남편이잖아요. 이렇게 멋진 남자가 내 남편인 게 흐뭇하죠.”

은조는 사진 속 여자를 다시 보았다. 세련되고 귀티나게 생겼다. 유학 시절 남편을 좋아했던 여자.

16551895179018.png“되게 예쁘네요.”

16551895179025.png“난 당신이 더 예뻐.”

은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16551895179018.png“빈말이래도 지금은 이렇게 얘기해야지 살아남는 길이라 그렇겠죠?”

16551895179025.png“빈말 아닌데. 진짜야.”

민후의 얼굴이 다가왔다. 입술을 쭉 내밀며 다가온 민후에게 은조가 쪽, 입술을 맞추었다. 서로를 보며 행복하게 웃었다. 은조가 여자와 찍은 사진을 다시 사진첩에 넣으면서 뒤집어 버렸다.

16551895179018.png“으, 그래도 보기 싫다.”

일단 보고 싶지 않아서 뒷면이 나오도록 엎어놓으니 민후가 작게 웃었다.

16551895179025.png“혹시 이거 질투 같은 거야?”

16551895179018.png“네.”

은조가 입을 삐죽이며 대답하자 민후가 웃었다.

16551895179025.png“당신이 질투하니 은근히 기분 좋다.”

16551895179018.png“나 질투심 되게 많아요. 몰랐죠?”

16551895179025.png“응.”

16551895179018.png“그러니까 이성을 만날 일이 있거든 행동 조심해주세요. 내가 항상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은조가 손가락 두 개를 눈앞에 가져다 댔다.

16551895179025.png“어떻게 조심해야 하는데? 사업상 여자분들도 많이 만나는데.”

16551895179018.png“일만 하면 문제가 없어요. 일만.”

민후는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일만 하지 더 뭘 한다는 말인가.

16551895179018.png“그 왜 있잖아요. 매너가 너무 넘쳐서 투머치한 경우. 의자를 빼준다든가. 춥다고 겉옷을 벗어준다든가.”

민후가 쿡쿡 소리 내어 웃었다.

16551895179025.png“비즈니스로 만나서 누가 옷을 벗어 줘?”

16551895179018.png“업무적인 용건 외로 단둘이 만나 식사나 차를 마신다거나. 개인적으로 사사롭게 문자를 주고받는다거나.”

은조가 장난스레 눈을 매섭게 뜨고 말했다.

16551895179018.png“그러면 다 외도로 간주할 거니까 알아서 잘해요.”

민후는 아내가 이렇게 질투하고 단속하는 게 기분이 좋았다. 자신을 독점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사실 민후는 평생 독점 당하고 싶은데.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16551895179025.png“알았어. 그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은조가 웃으며 사진첩 책장을 더 넘겼다.

16551895179018.png“민후 씨 사진 더 볼래요.”

함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사진 속 상황에 대해 민후와 대화를 나누었다. 몰랐던 그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어린 시절 사진들 속에 젊은 여인과 찍은 사진들이 몇 개 있었다.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일 것이다. 이목구비가 좀 닮았다.

16551895179018.png“어머니죠?”

16551895179025.png“응.”

16551895179018.png“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16551895179025.png“…….”

그는 오래된 사진 속 어머니를 보며 말이 없었다. 아마도 사진 속 그 시간으로 돌아가 그때의 후각, 촉각 등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16551895179018.png“언제 돌아가셨어요?”

16551895179025.png“중학교 때.”

중학생이라면 그도 어린 나이였다. 어머니 사진을 본 후로는 웃던 그의 표정이 조금 무거워졌다. 아픈 상처 괜히 들추었나 싶어 은조가 그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16551895179018.png“미안해요.”

16551895179025.png“미안하긴 뭐가. 괜찮아.”

은조는 자신보다 커다란 덩치의 민후 등을 쓰다듬었다. 마치 어린아이 달래듯이. 민후가 은조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자신을 이렇게 위로해주는 이가 있었던가? 이런 위로, 참으로 오랜만에 받아보았다. 성인이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가 간혹 떠오를 때면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이렇게 위로의 쓰담쓰담을 받으니 가슴이 따뜻해졌다. 남자라서, 성인이라서 슬퍼도 꾹꾹 눌러 참으며 티 내지 않으려 애썼다. 아내의 쓰담쓰담이 ‘괜찮아요. 내 앞에서는 슬퍼해도 돼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위로받는 기분 정말 오랜만이었다. 민후는 사진첩을 접어 테이블에 올렸다.

16551895179025.png“나 당신 무릎 베고 누워도 돼?”

민후가 물었다.

16551895179018.png“그럼요.”

민후가 소파에 앉은 은조의 무릎을 베고 옆으로 누웠다. 은조는 민후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민후는 아내의 무릎을 베고 누워 눈을 감았다. 머리카락을 만져주는 아내의 손길이 따뜻했다.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민후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항상 아내를 보호하고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민후도 오늘 하루쯤은 아내에게 실컷 위로받고 싶었다.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 오늘은 산부인과에 정기진료 가는 날이다.

16551895179018.png[민후 씨 바쁘면 저 혼자 가도 돼요.]

16551895179025.png[아니야. 함께 가야지. 예약시간 30분 정도만 늦춰줘. 최대한 시간 맞춰볼게.]

진료가 평일에 예약되어 은조는 민후가 바쁘면 혼자 갈 생각이었다. 민후는 최대한 시간을 빼서 산부인과 진료는 빠지지 않고 함께 가겠다고 했다. 민후는 급하게 회의를 끝내고 박물관까지 데리러 왔다.

16551895179025.png“김 기사, 최대한 안전운전하면서 빨리 가 주세요.”

16551895294458.jpg“예. 전무님.”

예약시간에 늦어 민후는 서둘렀다.

16551895179018.png“민후 씨 바쁜데 시간 뺏는 거 아니에요?”

16551895179025.png“아무리 바빠도 우리 아기 만나러 가는 건데 시간 내야지.”

민후가 다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16551895179025.png“얼마나 컸을까, 벌써 기대돼.”

초음파로 만나는 아기 모습은 언제나 설렜다, 예약시간이 빠듯해 민후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끼이익. 그때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차가 급제동했다. 몸이 갑자기 앞으로 기우는 와중에 민후는 팔을 뻗어 은조를 보호했다. 안전 벨트를 하고 있어 별일은 없었지만 모두 놀란 얼굴이었다. 민후가 화가 난 얼굴로 기사를 향해 소리쳤다.

16551895179025.png“운전 이렇게밖에 못 합니까! 임신부 타고 있어요!”

은조는 민후가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16551895294458.jpg“죄송합니다. 자전거 탄 학생이 갑자기 무단횡단으로 지나가서…….”

귀에 이어폰을 꽂은 학생이 탄 자전거는 유유히 사라지고 있었다. 기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급제동을 한 것 같았다.

16551895179025.png“놀랐지? 괜찮아?”

민후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은조를 살폈다.

16551895179018.png“전 괜찮아요. 조금 놀란 것뿐이에요.”

16551895179025.png“놀라는 게 위험한 일이잖아. 정말 괜찮은 거야?”

16551895179018.png“네. 괜찮아요.”

은조는 민후를 안심시키려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16551895179025.png“병원 가서 정밀 검사해보자.”

은조는 민후가 자신을 걱정하느라 기사에게 화를 낸 것이 마음에 걸렸다. 민후의 귀에 대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16551895179018.png“기사님도 어쩔 수 없었는데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민후가 운전석 기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16551895179025.png“김 기사, 아까 화내서 미안합니다.”

16551895294458.jpg“아닙니다, 전무님. 제가 미처 못 봤습니다. 사모님 탔을 때는 더 조심하겠습니다.”

  * 윤 회장은 오늘도 꿈속에서 죽은 손녀딸이 나타났다. 꿈에서의 손녀의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 않아 윤 회장은 불안했다. 그런데 얼마 전 비서가 했던 말이 자꾸만 걸렸다.

16551895294458.jpg‘회장님, 상속과 증여문제에 관해 조금씩 준비를 해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16551895354083.png‘무슨 준비?’

16551895294458.jpg‘아무 준비 없이 있다가는 상속세로 재산의 절반을 나라에 줘야 하니까요.’

증여세나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많은 기업이 편법을 이용하고 있었다. 비서는 손녀딸에게 상속할 준비를 미리 해두자는 의도로 말했다. 윤 회장은 자신이 죽으면 유일한 혈육인 은조가 재산을 모두 상속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16551895294458.jpg‘뺏어갔대. 자기 것을 다 뺏어갔대. 그래서 슬프대.’

무당이 했던 말이 윤 회장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죽은 손녀딸이 꿈에 나타나 자기 것을 다 뺏어갔다고 슬퍼하던 것이 단지 결혼 문제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정이가 받아야 했을 상속까지 은조가 다 뺏어가게 되는 것이다. 윤 회장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16551895354083.png“내가 어리석었어. 나의 욕심 때문에 우리 유정이를 두 번 죽이는 꼴이 됐어.”

윤 회장이 고개를 들며 중얼거렸다.

16551895354083.png“애초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어. 유정이의 빈자리는 빈자리로 남겨둬야 했어.”

윤 회장이 죽은 손녀딸의 액자를 들어서 보았다. 손으로 사진 속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16551895354083.png“할머니가 미안해. 네 것 절대 안 뺏기게 해줄게.”

사진을 보는 윤 회장의 눈빛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16551895354083.png“네가 받을 상속, 절대 그 애가 받지 못하도록 해줄게.”

그러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상속받을 상속자를 없애는 방법밖에. 윤 회장이 비장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어 예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16551895383356.png[여보세요.]

16551895354083.png“생각 좀 해봤어요?”

윤 회장은 예지가 좀 적극적으로 나서서 뭔가를 해주길 바랐는데 뭉그적대니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16551895383356.png[너무 위험한 사안이라 신중하게 하려고요.]

16551895354083.png“약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실패했는데 확실한 방법을 써야 할 것 같아요.”

16551895383356.png[좋은 방법이 있어요?]

16551895354083.png“일단 사돈은 걔를 물가로 데려가요. 그러면 내가 사고로 위장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죠.”

  * 윤 회장과 통화를 끝내고 예지는 은조를 물가로 데려갈 방법을 고민했다.

16551895383356.png“얘를 어떻게 물가로 데려가?”

사고로 위장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겠다는 윤 회장의 말을 떠올렸다.

16551895383356.png“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예지는 뉴스나 보도 프로에서 보았던 익사 사고의 장면들을 떠올리고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던 예지는 두렵고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무당이 물가로 가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은조가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기저에 깔려 있었다. 예지가 비장한 표정으로 혼잣말했다.

16551895383356.png“나는 일단 걔를 데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으니까. 나머지는 회장님이 알아서 하겠지.”

예지가 은조에게 전화를 걸었다.

16551895179018.png[여보세요.]

예지가 굳었던 표정을 금세 바꾸며 상냥하게 말했다.

16551895383356.png“동서, 나야. 지금 통화 괜찮아?”

16551895179018.png[근무 중이야. 짧게 용건만 말해.]

싹퉁바가지가 여전히 반말을 찍찍해댔다.

16551895383356.png“그래. 우리 화해의 의미로 여행갈까? 너 태교 여행 어때? 경비는 내가 다 낼게.”

16551895179018.png[태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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