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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내가 반말하니까 기분 나빠? (56/100)

58. 내가 반말하니까 기분 나빠?2022.03.22.

강 회장의 호출로 예지는 삼성동 본가로 갔다. 은조의 임신테스트기 사건 이후로 강 회장 얼굴을 볼 낯이 없었다.

16551894775392.jpg“아, 안녕하셨어요? 아버님.”

강 회장 앞에서 예지의 모습은 지난날과 아주 달랐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뒷짐 지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강 회장이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16551894775399.jpg“큰 며느리야.”

16551894775392.jpg“……네.”

16551894775399.jpg“넌 새아가가 왜 그리도 미운 것이냐?”

예지는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16551894775399.jpg“지난번에 새아가 계단에서 넘어진 사고가 네가 그랬다는 게 정말이냐?”

예지는 그날 흥분한 나머지 본인 입으로 그 사실을 다 말해버렸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했는데 기현이 알려주어 알게 되었다.

16551894775392.jpg“아버님, 그때는 말이 헛나왔어요. 제가 민 게 아니고 사고였는데 동서는 제가 밀었다고 믿고 있거든요. 그래서 말이 잘못…….”

16551894775399.jpg“내 앞에서도 거짓말을 할 거냐!”

강 회장이 벼락같이 호통을 쳤다. 큰 소리에 놀란 예지가 어깨를 움츠리며 강 회장을 보았다. 저렇게 크게 노하신 모습을 처음 보았다.

16551894775399.jpg“전부터 새아가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거 나도 느꼈다.”

웬만해서는 화내는 일이 없었던 시아버지의 호통에 예지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16551894775399.jpg“임신한 사람을 계단에서 밀다니,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16551894775392.jpg“아니에요, 안 밀었어요, 아버님. 저 너무 억울해요. 제발 아버님만은 제 말을 믿어주세요.”

예지는 울먹이며 거짓말했다. 본 사람도, CCTV도 없는 곳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끝까지 발뺌하면 그만인 것이다.

16551894775392.jpg“동서가 제가 밀었다고 하도 그래서 그때 말이 그렇게 나온 거예요. 임신도 아니었으면서 제가 밀었다고 하니 더 억울해서 그랬다고요.”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하는 연기가 일품이었다. 표정이 정말 억울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16551894775392.jpg“동서가 생사람을 잡는 거예요. 아버님, 어떻게 일부러 밀겠어요? 그것도 임신한 사람을. 흐흑.”

강 회장은 예지가 억울하다고 강하게 호소하자 긴가민가했다. 난감한 듯 강 회장이 헛기침했다. 작은 며느리가 생사람을 잡는 것이든 뭐든 두 며느리의 관계가 좋지 않은 건 확실했다. 지난번 임신을 증명하라고 우기던 큰 며느리의 행동도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16551894775399.jpg“나는 집안이 시끄러워지는 거 원치 않는다. 집에 사람을 들일 때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 그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우환이 끊이지 않고 불화의 원인이 되는 사람도 있다.”

강 회장은 조용하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16551894775399.jpg“내가 사람이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해다오.”

예지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울상이 되었다.

16551894775399.jpg“그날 새아가에게 한 행동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지분 때문에 임신에 그리 예민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구나.”

자신을 믿고 예뻐하던 시아버지에게 실망감을 준 것에 대해 마음이 무거웠다. 야무지고 똑 부러진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던 시아버지였다.

16551894775399.jpg‘큰아가, 네가 기현이보다 낫다.’

아들보다 야무진 며느리를 얻어 마음이 놓인다고 했었다.

16551894775399.jpg‘기현이가 갈팡질팡하면 네가 옆에서 조언을 잘해줘라.’

아들보다 더 믿음을 주던 며느리에서 이번에 완벽하게 이미지가 추락했다. 시기심에 중상모략이나 하는 허접한 인간으로. 예지가 입술을 짓이기며 흐느꼈다.

16551894775392.jpg“아버님 잘못했어요. 흑흑.”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건 마음이 아팠다.

16551894775399.jpg“큰며느리로서 모범을 보여 주기 바란다. 그래 줄 수 있겠느냐?”

강 회장의 말에 예지가 고개를 들었다.

16551894775399.jpg“새아가한테 가서 사과해라.”

눈물이 맺힌 눈으로 바라보던 예지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16551894775399.jpg“용서를 빌어.”

노기를 띠던 강 회장의 음성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16551894775399.jpg“부모로서 자식 간에 싸움 나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 화해하려면 큰 며느리가 새아가한테 가서 용서를 구하는 방법밖에 없다.”

강 회장 말에 예지는 눈물이 쏙 들어갔다.

16551894775392.jpg‘용서를 빌라고? 내가?’

16551894775399.jpg“언제까지 서로 얼굴 안 보고 살 것도 아니고. 내 앞에서 거짓으로 웃으면서 연기를 할 셈이냐?”

강 회장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 달에 몇 번 가족 식사하는 자리를 기다리며 살게 되었다. 아내가 일찍 죽고 두 아들이 결혼하고 분가한 뒤 부쩍 외로움을 느꼈다. 식구들이 모여 즐겁게 식사 한번 하는 그 시간이 이제 삶의 낙이 되었다. 손자 손녀들 재롱을 보며 웃음꽃이 피는 그런 화목한 시간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형제간에 불화로 가족 식사 시간이 더는 즐겁지 않고 불편한 자리가 될까 봐 안타까웠다.

16551894775399.jpg“새아가가 쉽게 용서를 해줄지는 모르겠다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 봐. 새아가의 용서를 받아와야 나도 앞으로 네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구나.”

  * 예지는 은조에게 용서를 받아야 자신도 용서해주겠다는 강 회장 말에 은조 집에 찾아갔다. 문은 열어주었지만, 예지를 대하는 은조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16551894802532.jpg“여긴 어쩐 일이야?”

보자마자 반말로 얘기했다. 반말을 듣는 순간 예지는 순간 욱해서 눈을 부릅떴다.

16551894775392.jpg‘이게 싸가지 없이…….’

16551894802532.jpg“왜, 내가 반말하니까 기분 나빠? 기억하지? 네가 틀렸으면 손윗동서 대접 안 하겠다고 했던 말. 동갑인데 내가 존댓말 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예지는 부릅뜬 눈으로 한마디 하려던 것을 겨우겨우 참았다.

16551894775392.jpg‘아버님에게 신임을 다시 얻으려면 어쩔 수 없어. 참자, 참자.’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잡고 은조를 향해서는 생글 웃었다.

16551894775392.jpg“갑자기 반말을 들으니 적응이 안 되어서.”

은조는 기가 팍 죽은 모습의 예지를 보니 픽 웃음이 나려고 했다. 예전의 예지라면 이렇게 반말을 했다면 눈알을 부라렸을 텐데.

16551894802532.jpg“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잖아.”

쌀쌀맞게 말하는 은조를 보며 예지는 부아가 치밀었지만 참고 상냥하게 말했다.

16551894775392.jpg“내가 잘못한 게 있으니 용서를 구하려고 왔지.”

예지가 다가와 은조의 손을 잡았다. 은조는 예지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예지의 검은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오늘은 용서 컨셉에 걸맞게 서클렌즈도 안 꼈다.

16551894775392.jpg“미안해. 내가 그날 경솔했어. 임신테스트기까지 내밀면서 증명해보라고 한 거 미안해.”

은조는 시선을 돌렸다. 예지의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임신을 의심하는 예지의 촉이 맞았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가짜 임신이 들통날뻔했었다.

16551894775392.jpg“날 용서해줘. 앞으로 내가 잘할게.”

은조는 예지의 손을 뿌리쳤다.

16551894802532.jpg“이 손 놔!”

손을 뿌리치자 예지는 흠칫 놀라 은조를 쳐다보았다.

16551894802532.jpg“지난번에도 나한테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그러지 않았어?”

예지가 다시 손을 덥석 잡고는 말했다.

16551894775392.jpg“나 너한테 용서받아야 해. 아버님이 너한테 가서 용서 빌라고 했어. 네가 용서해줘야 가족이 화목해지는 게 아니겠냐고 그러셨어. 자식 간에 싸움 나는 거 싫으시대.”

은조가 예지를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보았다.

16551894802532.jpg‘결국, 이번 용서도 아버님이 시켜서 온 거구나.’

진심이 아닌 등 떠밀려 온 예지와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16551894775392.jpg“우리가 서로 사이가 안 좋으면 앞으로 가족 모임에서 어떻게 얼굴 보겠느냐고 그러셨어.”

16551894802532.jpg‘앞으로 몇 번이나 본다고.’

어차피 이혼이 예정되어 있는 은조는 그런 이유로 예지와 가족으로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16551894802532.jpg“가족 식사 모임에 우리가 언제 다정했던 적 있었어? 너랑 사이 안 좋아도 가족 모임 할 수 있어. 그런 핑계 대지 마.”

16551894775392.jpg“나 미워하는 거 이해해. 나라도 화났을 것 같아. 내가 그날 머리가 좀 어떻게 되었었나 봐.”

예지는 전에 볼 수 없던 저자세로 은조에게 매달렸다.

16551894802532.jpg“속에 없는 말 그만해. 진정성이 하나도 안 느껴져.”

은조가 끝까지 냉정하게 말하자 예지가 처연하게 표정을 바꾸었다.

16551894775392.jpg“내가 싫어서 용서 못 하는 건 이해해. 하지만 이번은 아버님을 생각해서라도 나 용서해주면 안 돼?”

예지는 강 회장을 이용해 은조에게 호소했다.

16551894775392.jpg“아버님은 일주일에 한 번 가족 모이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시대. 그런데 네가 날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님 좋아하시는 그 모임도 이제 안 하시겠대. 서로 불편해서 어떻게 얼굴 마주 보고 밥을 먹겠냐 그러셨어.”

은조는 강 회장 얘기에 마음이 흔들렸다. 강 회장이 가족 모임 시간을 즐거워하고 기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6551894775392.jpg“그러니까 아버님 생각해서라도 나 용서해 줘.”

예지는 간절하게 손을 모아 말했다. 이제 가족 모임이 예전 같은 분위기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서로에게 불신이 가득한데 어떻게 마주 보고 편안하게 밥을 먹겠나.

16551894802532.jpg‘아버님이 많이 아쉬워하시긴 하겠다.’

가족 모임 시간을 은근히 기다리던 강 회장을 생각하니 은조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16551894775392.jpg“용서해 줘, 응? 동서한테 용서받지 못하면 나보고 삼성동으로 발길도 하지 말래.”

예지는 강 회장 얘기에 은조가 동요하는 것을 간파하고는 더 그쪽으로 몰았다. 은조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16551894802532.jpg“너 하는 거 봐서.”

순간 예지의 입술이 비틀렸다.

16551894775392.jpg‘재수 없는 년. 내가 이렇게까지 비는데도 고자세야?’

    독하게 부릅뜬 눈으로 은조를 보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생글 웃었다. 예지가 주방 쪽으로 가는 은조를 따라가며 물었다.

16551894775392.jpg“근데 너 몸은 좀 어때? 입덧은 안 해?”

16551894802532.jpg“…….”

은조는 대꾸하지 않았다. 예지가 주방 주변을 살폈다. 윤 회장이 줬다는 그 한약이 눈에 보이지 않아 물었다.

16551894775392.jpg“한약은 잘 먹고 있어?”

은조가 의아한 얼굴로 예지를 보았다.

16551894802532.jpg‘한약 얘기를 쟤가 왜 하지?’

16551894802532.jpg“무슨 한약?”

예지가 순간 당황했다. 윤 회장이 한약 준 것을 자신이 알고 있으면 의심받을 것이 분명했다.

16551894775392.jpg“어어…… 임신하면 한약 같은 거 지어서 먹고 그러잖아. 그래서 물어본 거지.”

예지는 둘러대며 위기를 모면했다.

16551894775392.jpg“한약 안 먹어? 내가 지어줄까? 잘 아는 한의원 있는데.”

예지가 더 적극적으로 말했다.

16551894775392.jpg“내가 한약 지어줄게. 너한테 미안한 것도 있고.”

이참에 윤 회장이 지은 것과 똑같은 한약을 한 박스 더 주면 좋을 것 같았다. 많이 먹으면 효과가 더 좋겠지.

16551894802532.jpg“됐어. 나 한약 싫어해서 안 먹어.”

16551894775392.jpg“응? 안 먹어? 지금 한약 하나도 안 먹어?”

16551894802532.jpg“응. 한약 냄새가 너무 싫어. 이상해서 버렸어.”

16551894775392.jpg“버렸다고?”

예지는 윤 회장이 준 한약을 버렸다는 말에 입술이 비틀렸다.

16551894775392.jpg“그렇다고 아깝게 그걸 버려? 한약 냄새가 다 그렇지, 뭐. 몸에 좋은 약이 쓰다잖아.”

은조는 도우미랑 똑같은 말을 하는 예지를 보며 말했다.

16551894802532.jpg“내가 먹기 싫다니까 다른 사람이 먹는다고 가져갔어.”

16551894775392.jpg“다른 사람이 가져가? 누가?”

예지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평범한 한약이 아니니 그랬다. 은조는 한약 얘기에 과하게 관심을 보이는 예지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16551894802532.jpg“누가 가져가든 왜? 그게 왜 궁금한데?”

16551894775392.jpg“어? 아, 임신부가 먹는 약인데…… 아무나 먹어서는 안 되잖아.”

16551894802532.jpg“임신부에 좋은 약이니 좋은 것들이 들었겠지. 설마 안 좋은 거라도 들었겠어?”

예지는 뜨끔해서 눈이 커다래졌다.

16551894775392.jpg“어? 그. 그, 그렇지.”

예지는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16551894775392.jpg‘아, 아깝네. 티 안 나게 유산할 수 있다는 약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16551894775392.jpg“쯧.”

예지는 짜증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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