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이 행복을 놓치기 싫어2022.03.19.
민후가 고개를 기울이며 은조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꽃 속에 파묻히다시피 한 그녀에게 입을 맞추자니 키스에서 진한 꽃향기가 진동했다. 그녀의 입술에서 나는 향기인지 꽃향기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민후는 무거운 꽃다발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키스하기 시작했다. 가볍게 뽀뽀만 하려고 했는데 한 번 입술이 닿고 나니 멈추기가 힘들었다. 은조 머리 뒤를 손으로 감고 강하게 입술을 밀착시켜 입을 맞추었다. 한 손은 그녀의 허리에 감아서 끌어당겼다. 다소 저돌적인 키스에 은조의 허리가 뒤로 꺾였다. 그가 허리를 잡아당기면서 얼굴을 내밀며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입술을 가르고 그의 말캉한 숨결이 파고들었다. 저돌적으로 키스를 해오는 통에 버티기가 힘들어 은조는 팔로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그의 키스는 더욱 거세어졌다. 고개를 비틀며 잠시 입술이 떨어진 찰나에 그가 속삭였다.
“당신 입술은 치명적이야. 술처럼 취할 것만 같아.”
그가 더운 숨을 거칠게 내뿜으며 다시 입술을 물었다. 강하게 키스해오는 통에 은조는 숨을 헐떡였다.
“잠시만…… 흡.”
은조의 목소리는 다시 민후의 입술에 삼켜졌다. 민후가 그녀의 입술을 도대체 놓아 주지를 않아서다. 은조 몸이 점점 뒤로 밀리자 민후가 은조를 번쩍 안아 올렸다.
“어머.”
민후는 어린아이를 들듯이 쉽게 은조를 안고 침실로 갔다. 침대에 은조를 눕히고 그대로 위에 몸을 포개었다. 제 밑에 깔린 은조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위에서 이렇게 누르면 위험한가?”
배 속에 태아가 있으니 포개어 눕는 것도 불안해 물었다. 은조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아직은.”
“아빠 때문에 아기가 힘들까 걱정돼.”
은조는 몸에 닿은 그의 신체에 서서히 변화가 오는 것이 느껴졌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는 한 번도 잠자리하지 못했다.
“민후 씨, 혹시 지금 임신 중이라서 참고 있는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이러다 몸에 사리가 쌓이겠어.”
민후는 초음파로 아기집과 태아를 본 뒤로는 아예 잠자리는 할 생각도 못 했다.
“너무나 작은 생명체인데 행여 나 때문에 잘못될까 걱정되지.”
민후가 장난스레 웃으며 덧붙였다.
“내가 침대에서는 좀 주체가 안 되어서.”
은조가 민후의 목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하면요?”
은조를 내려다보는 민후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
“네. 하고 싶어요. 민후 씨만 괜찮다면요.”
민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나야 너무 원하지.”
민후가 은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낮게 말했다.
“그동안 얼마나 안고 싶었는데.”
민후가 그녀의 목선을 타고 길게 입맞춤을 해 은조는 눈을 감았다. 그의 손이 은조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손이 잠깐 스친 것뿐인데 몸에 금세 열기가 퍼졌다.
“어쩌지? 나 살살할 자신 없는데.”
민후의 입술이 빗장뼈를 지나며 말했다.
“엄청나게 참고 있었던 터라.”
말은 저렇게 하지만 그가 배 속 아기를 배려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민후는 한 번도 은조를 배려해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은조는 그와의 키스에 몰입하느라 그가 옷을 벗겨내는 것도 몰랐다. 곧이어 두 사람이 내뿜는 열기로 침실 공기가 뜨겁게 데워졌다. 예상대로 민후는 미친 듯 달려들고 싶은 욕망을 꾹꾹 눌러 참으며 그녀를 배려했다. 깨질세라 조심하며 그녀를 안았다.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감각의 파도가 휩쓸고 지나갔다. 격정적인 시간이 지나고 은조는 민후의 품에 안긴 채 잠이 들었다. 잠자리 후에는 잠깐 정신을 잃은 듯이 잠에 빠졌다가 깨곤 했다. 민후는 은조를 안고 천천히 그녀의 등과 어깨를 쓰다듬었다. 땀이 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이마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사랑해. 은조야.”
민후는 오늘 그녀를 안으면서도 쉴새 없이 사랑 고백을 했다. 그동안 아꼈던 감정과 말들이 무장해제되듯 그에게서 쏟아졌다. 민후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그녀를 보며 낮게 말했다.
“이렇게 널 안고 있는 순간에도 너 때문에 가슴이 떨려.”
달콤한 말들이 은조의 귓가를 간질였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민후의 음성에 잠이 깼다. 눈을 감은 채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고 있는지 내 가슴을 열어 보여 주고 싶어. 넌 내 사랑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거야.”
달콤한 말들이 은조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말이 진심이 아니어도 난 괜찮아.”
정수리 위로 쏟아지는 민후의 낮은 목소리를 숨죽여 들었다.
“날 좋아하지 않아도 좋아. 떠날 생각만은 하지 말아줘. 시한부로 끝나 버릴 짧은 행복이란 걸 생각하면 괴로워.”
은조는 울컥 울음이 치솟으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은조도 끝을 알고 있어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이 행복이 불안하고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손에 쥐어진 이 행복을 놓치기 싫은 건 은조도 마찬가지였다. 은조는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겨우 참고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되고 민후는 없던 버릇이 생겼다.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고 꾸물거렸다. 은조를 품에 안고 침대에서 벗어나기를 싫어했다.
“7시 20분이에요. 이러다 지각하겠어요.”
알람이 울린 지는 벌써 20분이 지났다.
“5분만 있을게.”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항상 눈을 뜨던 민후가 늑장을 부리게 된 것이다. 그의 따뜻한 품에서 벗어나기 싫은 건 은조도 마찬가지였다. 은조도 출근 준비를 해야 하지만 종일 이렇게 안겨 있고 싶었다.
“그럼 딱 5분만 더 있어요.”
은조도 그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5분은 너무 짧아. 10분.”
5분을 허락하니 그가 또 욕심을 냈다. 은조도 10분이고 30분이고 이렇게 안고 싶지만, 직장인이다 보니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안 돼요. 진짜 지각이에요.”
아쉬운 듯 민후가 은조를 더 꼭 품에 안았다.
“5분 동안이라도 꼭 안고 있어야지.”
그가 팔에 힘을 줘 은조를 압박했지만, 은조는 이렇게 꽉 안겨 있는 느낌이 좋았다. 그의 가슴에 얼굴이 짓눌릴 정도로 꽉 안긴 기분이 좋았다. 절대로 떨어지기 싫은 마음을 충족시켜주는 기분이었다. * 예지는 오전부터 특급 호텔 스파숍에 왔다. 여기서 윤 회장을 만나기로 해서다. 지난번 만났을 때 윤 회장도 이 호텔 스파숍 회원권이 있다고 해서 함께 마사지를 받자고 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은밀한 대화를 주고받기가 좋았다. 가운을 입은 모습으로 서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사돈어른.”
“네. 안녕하세요. 사돈.”
“나이에 비해 피부가 엄청 좋으세요. 40대 같으세요.”
예지는 앞으로 윤 회장이 자신에게 도움을 줄 것 같아 비위를 맞추며 알랑거렸다.
“40대는 무슨.”
윤 회장이 거울을 보며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빈말인 걸 알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쪽으로 누우세요.”
마사지사가 안내했다. 베드에 뚫린 구멍에 얼굴을 넣고 나란히 엎드려 누웠다.
“핫스톤으로 15분간 릴렉스해 드리겠습니다.”
마사지사가 따뜻하게 달군 돌을 등에 올렸다. 척추를 따라 따뜻한 돌을 하나씩 올리고 누워 있으면 노곤하게 잠이 오고는 했다. 15분 후에 돌아오겠다고 하고 마사지사들은 룸을 나갔다. 단둘이 남은 룸에는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흘렀다. 뚫린 구멍에 얼굴을 넣은 채로 예지가 말했다.
“지난번에 약을 보낸다고 하셨잖아요. 보내셨어요?”
“벌써 보냈죠.”
윤 회장이 엎드린 채로 말했다.
“태아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했어요.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나도 장담은 못 하겠는데 약을 열심히 먹어줘야 할 텐데.”
“열심히 먹으면 저절로 애가 떨어질까요?”
“효과가 있다면 티 안 나게 유산이 될 거예요.”
예지가 고개를 들고 흥미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약 잘 먹나 안 먹나 한번 체크해볼게요. 집에 한번 다녀와야겠어요.”
“그래요. 이게 잘되어야 우리가 직접 나서는 일이 없겠지.”
클래식이 흐르는 고상하고 우아한 공간에 섬뜩한 대화는 이어졌다.
“손에 더러운 것 안 묻혀도 되고.”
“그럼요.”
예지가 흡족한 듯 씩 웃었다. 혼자 할 때보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곧 손에 잡힐 것 같았다. * 저녁 식사를 끝내고 양치하고 나오니 도우미가 은조에게 물었다.
“사모님 이건 무슨 약이에요?”
도우미가 한약 상자를 들고 물었다.
“아, 그거요.”
할머니가 임신부에 좋다고 준 약이다.
‘임신부에 좋다는 거로 지어달라고 했으니 빼먹지 말고 매일 챙겨 먹어.’
할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임신부한테 좋은 약이래요. 할머니가 지어주신 거.”
“아, 그래요? 좋은 약을 왜 안 드세요? 잠시만요. 제가 하나 드릴게요.”
“아뇨. 지금 말고 나중에…….”
은조는 지금 별로 먹고 싶지가 않아서 거절했다. 은조의 말을 못 들었는지 도우미가 파우치 하나를 꺼내 귀퉁이를 잘랐다. 컵에 따른 후에 은조에게 내밀었다.
“드세요. 이런 건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효과가 좋아요.”
은조는 원래 한약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왠지 이 한약이 내키지 않았다. 컵을 받아들고는 냄새를 맡아보았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한약 냄새인데 이 약은 더 냄새가 고약했다. 인상을 쓰니 도우미가 말했다.
“몸에 좋은 건 원래 쓴 거예요. 한 번에 쭉 들이키세요.”
‘양치까지 다 했는데…….’
은조는 지금 한약을 먹기가 싫었다. 양치까지 다 해서 먹기 귀찮기도 했고 왠지 먹기 싫어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지금 안 먹을래요.”
“어머나, 아까워!”
한약이 싱크대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보며 도우미는 무척 안타까워했다.
“비싼 건데 왜 버려요? 할머니가 지어주신 거라면서요. 정성이 들어간 건데.”
싱크대를 물로 정리하며 도우미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정성이 들어갔을 거라는 말에 은조가 뒤를 돌아 도우미에게 말했다.
“여사님. 저 할머니 별로 안 좋아해요. 정성이 들어갔을 거로 생각하지도 않고요. 이 약 안 먹을 거니까 이건 그냥 버려주세요.”
“예?”
도우미가 놀라서 커다래진 눈으로 한약 상자를 보았다.
“버리라고요? 저걸 다요?”
“네. 안 먹을 거예요.”
냉정한 말투로 대답하고는 은조는 방으로 들어갔다. 임신 관련 책에도 한약보다 영양소 있는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더 좋다고 나와 있었다. 한약 같은 거 먹지 않아도 건강한 아기 낳을 수 있으니 먹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싫어하는 할머니가 준 약이라 더 먹기 싫은 것이 컸다. 잠시 뒤 도우미가 방문을 노크하고 문을 열었다.
“저, 사모님.”
화장대에 앉아 있던 은조가 돌아보았다.
“저 한약이요.”
“네.”
“버리실 거면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저라도 먹게요. 너무 아까워서요.”
“가져가셔도 되긴 하는데요. 임신부한테 좋은 약인데 드셔도 상관없으시겠어요?”
“임신부한테 좋은 약이면 몸에 좋은 게 듬뿍 들어간 거죠. 센 성분도 없을 거고요.”
“네. 그렇게 하셔도 돼요.”
은조가 허락하자 도우미가 활짝 웃었다.
“고마워요.”
좋아하며 돌아서는 도우미를 보며 은조는 생각했다.
‘그래. 버리는 것보다 누구라도 먹으면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