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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뼈를 아작냈을 겁니다 (49/100)

51. 뼈를 아작냈을 겁니다2022.02.26.

기조연설을 하고 내려오자 기자들이 민후를 둘러쌌다. 민후는 기자들에게 한동안 붙잡혀 있었다. 겨우 빠져나온 민후는 손을 내밀며 다가오는 손님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하면서도 눈으로는 아내를 찾았다.

16551892771845.png‘아까 분명히 저쪽에 서 있었는데.’

아내가 보이지 않자 민후는 조금 불안해졌다. 행사장에 윤 회장이 와 있기 때문이었다.

16551892771853.jpg“강 전무님, 아까 연설 잘 들었…….”

16551892771845.png“죄송합니다. 지금 좀 급한 일이 생겨서. 나중에 대화 나누겠습니다.”

민후는 다가오는 사람들을 거절하고 본격적으로 은조를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 보아도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16551892771845.png“아버지. 제 아내 못 봤습니까?”

마침 강 회장을 만나 물었다.

16551892771853.jpg“새아가? 아까 윤 회장이랑 저쪽으로 나가던데.”

16551892771845.png“예? 언제요?”

윤 회장이랑 나갔다는 말에 민후의 얼굴에 불안감이 더욱 짙어졌다.

16551892771853.jpg“한 10분 되었나?”

강 회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민후가 황급히 걸어갔다. 윤 회장과 함께 나갔다는 출입구로 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복도에 간간이 오가는 호텔 직원들이 민후에게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16551892771845.png“혹시 젊은 여자와 나이 많은 여자분이 함께 나가는 거 보셨습니까?”

직원을 붙잡고 묻자 직원이 뒤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16551892771853.jpg“저쪽에 여자 두 분 계신 것 같은데요.”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 민후가 뛰어갔다. 사람들 왕래가 없는 곳으로 가자 말소리가 들렸다.

16551892771934.png“이, 이게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민후가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윤 회장이 은조의 뺨을 후려치는 모습이었다. 뺨을 맞은 은조의 얼굴이 홱 돌아가며 비틀거렸다. 그러고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순간 민후의 눈에 분노의 불길이 일었다.

16551892771845.png“지금 뭐 하는 겁니까!”

분개한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쿠아앙!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이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달려가는 민후의 몸에서 분노가 뿜어져 나왔다. 쓰러져 있는 은조를 얼른 부축해 일으켰다.

16551892771845.png“당신, 괜찮아?”

은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뽀얗던 뺨 한쪽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민후가 윤 회장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눈에 분노와 살기를 담고서 윤 회장을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눈이 거의 뒤집혔다고 해도 무방했다. 민후가 윤 회장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아 올렸다.

16551892771845.png“뭐 하는 짓입니까! 지금 임신한 거 모릅니까?”

윤 회장은 난생처음 멱살을 잡혀봤는지 당황한 얼굴이었다.

16551892771934.png“이거 놔! 지금 뭐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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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후는 윤 회장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사납게 말했다.

16551892771845.png“연장자에 대한 예우로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겁니다. 안 그랬으면 뼈를 아작냈을 겁니다.”

민후는 윤 회장을 노려보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16551892771845.png“왜 때려요, 왜!”

민후가 울분을 담아 소리쳤다.

16551892771845.png‘만지기도 아까운 사람을 왜!’

멱살을 쥔 손에 분노의 핏줄이 불거졌다.

16551892771934.png“맞을 짓을 했어. 어른인 나에게 함부로 지껄였다고.”

민후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16551892771845.png“맞을 짓이라니! 어떤 경우도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훈육 받을 나이도 아닌데 아내에게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제 아내, 당신 마음대로 해도 되는 사람 아닙니다.”

민후가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16551892771934.png“자네, 이거 놓고 얘기해. 여기 기자들도 와 있는 거 아닌가? 사진이라도 찍히면 어쩌려고 그래?”

민후가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16551892771845.png“찍으라고 하세요. 왜 내가 회장님 멱살을 잡고 있는지 궁금해할 테고 회장님이 임신 중인 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였다고 얘기하면 되니까.”

윤 회장이 움찔하며 얼굴이 굳었다.

16551892771845.png“어느 누구도 자기 아내가 맞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팽팽하게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붙었다. 그때 누군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16551892771853.jpg“전무님.”

민후의 비서실장이었다. 그가 민후와 윤 회장의 상황을 보고는 놀라서 주춤거렸으나 급한 용무인 듯 말했다.

16551892771853.jpg“전무님, 지금 본행사 곧 시작합니다. 가셔야 합니다.”

민후가 오늘 창립기념 행사의 주인이다 보니 참여할 행사가 많았다. 민후는 윤 회장의 멱살을 놓고 은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16551892771845.png“문 실장, 아내 좀 부탁합니다. 내가 잘 보이는 곳에서 쉴 수 있게 해주세요. 끝나고 바로 병원에 가야겠습니다.”

민후가 비서실장에게 은조를 부탁했다. 윤 회장으로부터 반드시 보호해야만 했다. 눈에 안 보이면 불안하기에 잘 보이는 곳에서 쉬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민후는 행사에 참여했고 은조는 가까운 곳에 앉아서 민후를 지켜보았다. 주요 행사만 끝내고 민후는 은조를 파티에서 데리고 나왔다.

16551892840608.png“괜찮아요. 병원에 안 가도 돼요.”

16551892771845.png“임신한 몸으로 맞았는데 그래도 검사받았으면 좋겠어.”

민후는 아내가 얼마나 정신적인 충격이 클까 걱정되어 병원부터 데리고 갔다. 민후는 은조의 부은 뺨을 보자 화가 치밀어 미칠 것 같았다. 만지기도 아까워 조심스럽게 감싸던 얼굴에 빨갛게 손자국이 난 것을 보니 분노가 일었다. 화를 누르느라 운전대를 잡은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서둘러 도착한 병원에서는 다행히 태아에게 별다른 이상 증상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16551892771845.png“다행이다. 피부과도 가 보자.”

산부인과에서 나오자 민후가 말했다.

16551892840608.png“네? 피부과는 왜요?”

16551892771845.png“빨갛게 부었어.”

민후는 하얗고 여린 피부에 흠집이라도 났을까 봐 조바심이 났다.

16551892840608.png“이건 시간 지나면 가라앉아요.”

은조가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많이 맞아봐서 잘안다는 인상을 풍기는 것 같아 창피했다. 그래도 피부과에 가자는 민후를 겨우 말려서 집으로 가기로 했다.

16551892771845.png“그럼 집에 가서 쉬자.”

민후는 은조에게 겉옷을 입혀주고 가방도 대신 들었다.

16551892840608.png“가방 안 무거워요.”

16551892771845.png“그래도 줘. 내가 들게.”

민후는 아내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꼼짝없이 누워 있었으면 했다. 집으로 돌아간 민후는 은조를 침대에 눕히고 차가운 찜질팩을 가져왔다.

16551892771845.png“이거 얼굴에 대고 있어. 부은 거 금방 가라앉을 거야.”

16551892840608.png“민후 씨, 나 환자 아니에요.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요”

은조는 과도하게 환자 취급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평생 이런 과보호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더 어색했다.

16551892771845.png“그래도 하고 있어.”

민후가 찜질팩을 얼굴에 대주며 가만히 은조의 눈을 바라보았다. 은조도 민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은조는 아까 성이 나서 달려오던 민후의 모습을 떠올렸다. 분노에 휩싸인 채로 달려와 할머니의 멱살을 잡았던 모습이 아직 생생했다. 할머니에게 맞는 모습을 보인 것이 처음에는 창피했다. 어릴 때부터 때때로 맞았기에 은조에게는 익숙하다면 익숙한 일인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치욕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이 싫었다. 그런데 그가 자신보다 더 분노한 얼굴로 할머니에게 대들며 맞섰다. 여차하면 할머니를 팰 것 같기도 했다. 할머니의 멱살을 잡고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꽉 쥐고 참는 모습을 보았다. 은조는 민후가 자신 때문에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낸 것인지 궁금했다. 민후의 모습은 진짜 사랑하는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16551892840608.png‘그에게 설마 그런 마음이 있는 걸까?’

민후가 얼음찜질팩을 얼굴에서 떼어 내고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살폈다.

16551892771845.png“조금 가라앉은 것 같은데? 아프지는 않아?”

16551892840608.png“안 아파요.”

은조가 대답하자 민후는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16551892771845.png“이런 일 자주 있었어?”

민후는 윤 회장에게 뺨을 맞고도 별 반응이 없었던 은조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화를 내거나 억울해하거나 황당해하는 반응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주 당했던 것처럼. 은조는 쉽게 대답을 못 하다가 입을 열었다.

16551892840608.png“고등학생 때는 자주 맞았고 성인이 되어서는 가끔이요.”

민후의 미간이 좁혀들어갔다. 마음이 쓰리고 아파서 미칠 것 같았다.

16551892771845.png‘대체 이 작고 여린 여자를 왜…….’

청소년일 때 더 자주 맞았다고 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16551892840608.png“특히 엄마를 몰래 만나고 오면 많이 맞았어요.”

민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민후가 상체를 숙여 은조를 팔로 감싸 안았다. 힘들었을 시간을 어린 나이에 홀로 감당해왔을 아내가 가여웠다. 민후가 아내를 품에 안고 낮게 말했다.

16551892771845.png“그때 지켜줄 어른이 곁에 없었던 거 미안해.”

은조는 갑자기 울컥해 코끝이 찡해졌다. 그렇게 커 와서 당연하다 여겼던 때도 있었다. 내가 큰 잘못을 해서 혼나는구나 생각했었다.

16551892771845.png“이제 내가 지켜줄 거야. 늦게 알게 되어서 미안해.”

누구에게도 이렇게 위로받았던 경험이 없었던 은조는 자신도 모르게 울컥 서러움이 터졌다. 은조가 소리 없이 흐느꼈다.

16551892840608.png“흐흑…… 흑.”

아내의 흐느끼는 소리에 민후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우는 아내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더 마음이 아팠다. . . . 한참 흐느껴 울던 은조는 잠이 들었다. 우는 아내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주고 등을 토닥이던 민후는 잠든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비장해 보였다. 잠든 아내가 깨지 않게 조용히 일어났다.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침실을 나와 겉옷을 챙겨입었다. 현관문도 조심스럽게 열고닫았다. 비장한 얼굴로 차에 올라탄 민후가 향한 곳은 윤 회장의 집이었다. * 윤 회장은 며칠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 죽은 손녀가 자꾸 나타났다. 반가워서 다가가면 손녀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서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며칠 연달아 이런 꿈을 꾸니 신경이 쓰여 무당을 찾아갔다. 딸랑이를 흔들어대던 무당이 딸랑이를 뚝 멈추었다. 그러고는 별안간 부채를 쫙 펼치더니 말했다.

16551892771853.jpg“슬프다. 너무 분하고 슬퍼서 할머니를 찾아온다.”

윤 회장이 바짝 당겨 앉으며 물었다.

16551892771934.png“무슨 일이에요? 왜 슬프다는 거예요?”

16551892771853.jpg“뺏어갔대. 자기 것을 다 뺏어갔대. 그래서 슬프대.”

윤 회장은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쫙 끼쳤다.

16551892771934.png‘은조 때문이다.’

은조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게 다 우리 유정이가 누려야 할 것들인데,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유정이가 자신의 것을 은조가 뺏어갔다며 저렇게 분해 하고 슬퍼할 줄이야.

16551892771934.png‘분명 은조가 유정이 것을 뺏어서 그런 거야.’

16551892771934.png“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16551892771853.jpg“뭘 어떡해? 뺏은 거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지.”

윤 회장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16551892771934.png‘은조를 빨리 이혼시켜야 해.’

윤 회장은 사업 욕심 때문에 유정 대신 은조를 결혼시킨 것을 후회했다.

16551892771934.png‘결혼시키지 말았어야 했어. 그렇게 좋은 집안에 은조를 시집보내는 게 아니었어.’

같은 사업목적이라도 은조는 다르게 이용했어야 했다. 윤 회장은 복채를 두둑하게 주고 나왔다. * 그날 무당의 얘기를 듣고 윤 회장은 오늘 은조에게 이혼 얘기를 더 강하게 했다. 그런데 그것이 함부로 지껄이며 대들어 윤 회장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민후만 아니었으면 더 따끔하게 혼을 내는 건데 그렇게 못해서 못마땅했다. 늦은 밤. 핸드폰 벨 소리가 길게 울렸다. 겨우 잠들었던 윤 회장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잠에서 깼다.

16551892771934.png‘11시가 넘었는데 이 시간에 누구야?’

회사에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걸까 싶어 핸드폰을 들었다. 놀랍게도 발신인이 민후였다.

16551892771934.png‘강 전무가?’

윤 회장은 오늘 민후에게 멱살을 잡힌 치욕스러운 순간이 떠올라 눈살을 찌푸렸다. 전화를 받으며 심기가 불편함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16551892771934.png“자네, 지금 몇 시인데 전화인가?”

16551892771845.png[회장님댁으로 가고 있습니다. 잠깐 얘기 좀 하시죠.]

민후의 목소리도 심상치가 않았다.

16551892771934.png“너무 늦었네. 날 밝으면 얘기하세.”

16551892771845.png[죄송하지만 제가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회장님의 멱을 따 버리고 싶거든요.]

민후의 목소리가 섬뜩하리만치 낮게 울렸다.

16551892771934.png“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윤 회장이 받아쳤지만, 속으로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16551892771934.png“술 취했어? 헛소리하지 말고 날 밝거든 찾아와.”

16551892771845.png[거의 도착했습니다. 문 열어주지 않으면 담을 넘어서라도 들어갈 겁니다.]

16551892771934.png“자네 지금 미쳤나? 왜 이러는 거야!”

16551892771845.png[저 건드리지 마십시오. 아내가 받았던 학대와 폭력, 그대로 회장님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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