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 엄마, 나 아기 가졌어. (47/100)

49. 엄마, 나 아기 가졌어.2022.02.19.

16551892234531.png“네? 무슨 뜻인데요? 은영이는.”

16551892234537.png“그건 다음에 얘기해줄게.”

민후가 대답을 미루자 더 궁금해진 은조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16551892234531.png“무슨 의미인데요? 얘기해주면 안 돼요?”

은조가 집요하게 묻자 민후는 그냥 둘러댔다.

16551892234537.png“그냥 생각난 이름이야. 평소에 예쁘다고 생각한 이름.”

16551892234531.png“……아. 그렇군요.”

은조의 목소리는 실망감에 젖었다. ‘은’자가 들어가서 이것도 자신과 관련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16551892234531.png‘은영이? 평소에 예쁘다고 생각한 이름이라고? 누구 아는 사람의 이름인가? 혹시 첫사랑의 이름?’

16551892234537.png“어떤 게 좋아?”

은영이란 이름에 대해 생각하는데 민후가 물었다.

16551892234531.png“음…… 열무도 귀엽고 찰떡이도 좋긴 한데, 전 리은이가 좋아요.”

은조는 자신의 이름을 넣어 만든 태명이 마음에 들었다.

16551892234537.png“난 은영이가 좋은데.”

은조는 민후의 표정을 살폈다.

16551892234531.png‘귀엽고 의미 좋은 태명 다 놔두고 왜 은영이란 여자 이름 같은 태명을 고르지?’

은조는 왠지 그 태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16551892234531.png“태명은 좀 더 생각해 봐요.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까.”

결국 은조는 태명 짓기를 미루었다. * 은조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서 아까부터 핸드폰을 들고 망설였다. 임신을 알고 나서 곧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다 보면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엄마에게 임신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었다. 다른 모녀처럼 자주 전화할 수는 없는 상황이 무척 안타까웠다. 아직도 할머니의 측근이 엄마 주변을 감시한다고 하니 전화를 거는 것도 무척 조심스러웠다. 지난번 짧게 통화하고 끊은 후로 별일이 없었으니 은조는 용기를 냈다. 전화를 걸고 신호음을 들으며 엄마가 소식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16551892234531.png“엄마, 나야.”

16551892263852.png[응. 은조야. 안 그래도 엄마가 너한테 할 얘기가 있었는데.]

16551892234531.png“나도 엄마한테 할 얘기 있어 전화했는데.”

16551892263852.png[무슨 얘기? 혹시 무슨 일 있어? 할머니가 너한테 무슨 말을 했니?]

송화가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16551892234531.png“아니. 좋은 소식이야.”

16551892263852.png[좋은 소식?]

은조는 아랫배를 천천히 손으로 쓰다듬으며 배시시 웃었다.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실까, 얼마나 기특해하실까.

16551892234531.png“엄마, 나 아기 가졌어.”

16551892263852.png[……뭐?]

16551892234531.png“임신했어, 엄마.”

16551892263852.png[정말이니?]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기쁜 음성이 들렸다.

16551892234531.png“응. 임신하니까 엄마 생각이 많이 나는 거 있지.”

16551892263852.png[몸은 괜찮아? 힘들지는 않아?]

16551892234531.png“응, 괜찮아.”

16551892263852.png[입덧 같은 것도 안 해?]

16551892234531.png“응. 아직은.”

16551892263852.png[남편이 좋아하지?]

은조는 엄마에게는 전략적인 계획 임신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남편이 임신을 기뻐하는 모습은 틀림없기에 대답했다.

16551892234531.png“응. 좋아해.”

16551892263852.png[시댁 어른들도 좋아하시고?]

16551892234531.png“그럼! 아버님이 전부터 손주를 기다리셔서 무척 기뻐하셨어.”

16551892263852.png[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아기가 사랑받아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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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조는 엄마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당신은 아기를 뱄을 때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설움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때 엄마의 상황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16551892234531.png“엄마. 그런데 할머니는 나 임신 2개월쯤으로 알고 있으니까, 혹시 만나거든 그렇게 알고 있어.”

16551892263852.png[할머니가 너 애 가진 거 아시니?]

16551892234531.png“응.”

16551892263852.png[그런데 엄마한테는 그런 말을 안 했어.]

할머니는 엄마와의 연을 다 끊어내려고 했으니 이런 소식도 전하지 않은 것 같았다.

16551892234531.png“엄마, 할머니 만났어? 찾아오셨어?”

16551892263852.png[응.]

16551892234531.png“왜? 또 무슨 안 좋은 일 있었던 거야?”

지금까지 할머니가 좋은 일로 엄마를 찾아갔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16551892263852.png[아니야.]

안 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송화는 은조에게 속속들이 다 얘기하지 않았다. 상처받고 고통받아도 속으로 삼키고 은조에게는 안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16551892234531.png“그런데 엄마, 아까 할 얘기라는 게 뭐야?”

16551892263852.png[아, 엄마 곧 가게 정리하려고.]

16551892234531.png“응? 가게를? 왜?”

16551892263852.png[정리하고 조용한 시골 가서 살려고.]

은조는 10년 넘게 해온 가게를 왜 접으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16551892234531.png“요즘 가게가 힘들어? 건물주가 월세도 낮춰주셔서 괜찮다며?”

16551892263852.png[너무 좋으신 건물주분을 만나서 엄마도 다행이다 싶었는데, 일이 좀 꼬여서 더는 할 수가 없게 되었어.]

16551892234531.png“무슨 일인데. 말해 봐.”

은조는 왠지 엄마와 거리상으로 멀어지면 점점 연락이 끊어질 것 같아서 두려웠다.

16551892263852.png[가게 하다가 여기저기 빚을 좀 내고 했는데 그게 좀 어그러져서 이참에 정리하려고.]

16551892234531.png“그게 얼만데? 내가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

16551892263852.png[아니야. 네가 도와줄 수 있는 액수가 아니야. 안 도와줘도 돼. 가게 보증금이랑 권리금도 받고 집도 팔고 하면 얼추 맞출 수 있어.]

16551892234531.png“집도 팔아야 한다고? 대체 빚을 얼마나 졌기에?”

은조는 엄마가 지금 사는 집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잘 알기에 집까지 판다는 말에 안타까웠다.

16551892263852.png[은조야. 오해하지 마. 엄마도 이제 힘들어서 가게 안 하려고. 집도 팔고 시골 가서 텃밭이나 가꾸면서 살고 싶어. 겸사겸사 이참에 정리하려는 거야.]

은조는 엄마가 저렇게 말은 하지만 돈 때문에 가게를 정리하려는 것을 눈치챘다. 아파트를 분양받고 엄마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생 이제 이사 안 다녀도 된다며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다. 자신이 걱정할까 봐 저렇게 말하는 것을 잘 안다.

16551892234531.png“나도 돈 좀 있어. 보태줄게. 알아보면 대출도 좀 받을 수 있을 거야.”

16551892263852.png[아냐, 아냐. 내가 괜한 말 했다. 엄마가 아무리 그래도 너한테 손을 벌리겠니? 말했잖아. 엄마 힘들어서 가게 안 하려는 거라고. 걱정하지 마.]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은조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빚이 얼마나 있기에 집까지 팔아야 할 정도일까? 은조는 은행 앱을 켜서 자신이 저축해둔 돈이 얼마나 되는지 보았다. 그동안 급여를 모았던 것이라 다 해봐야 5천만 원도 안 되었다.

16551892234531.png‘이거로는 안 되겠지? 대출을 받을 수 있나 알아볼까?’

은행 앱에서 자신이 대출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16551892234531.png‘집까지 판다는 것 보면 몇천만 원 정도로는 안 되겠지?’

은조는 돈을 어떻게 구해볼까 생각하다가 민후를 떠올렸다.

16551892234531.png‘남편이라면 충분히 능력이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은조는 고개를 저었다.

16551892234531.png‘아냐, 아냐. 이런 식의 도움을 요청하는 건 그에게는 너무 부담일 거야.’

이혼이 예정된 계약 결혼에 금전적인 도움을 청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은조는 민후를 떠올렸던 생각을 얼른 지웠다. * 오늘도 민후는 일찍 퇴근하고 집으로 왔다. 그의 손에 예쁜 케이크 상자를 들려 있었다. 은조가 놀람과 동시에 기쁜 얼굴을 했다.

16551892234531.png“어머, 이거 어제 TV에 나왔던 그 케이크 가게 제품이네.”

은조는 너무 신기했다. 어제 TV로 예쁜 케이크 가게를 소개하는 프로를 보면서 케이크가 너무 예뻐서 시간 되면 한번 들러봐야겠다 생각했었다. 어떻게 이걸 딱 알고 사 왔을까, 신기했다.

16551892234531.png“나, 이거 먹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16551892234537.png“먹고 싶었다니 잘됐네.”

민후는 수트 상의를 벗으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민후는 사실 오늘 저 케이크를 사기 위해 1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렸다. 어제 은조가 TV를 보면서 맛있겠다, 예쁘다는 감탄을 여러 번 하는 걸 들었다. 민후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기억해뒀다가 오늘 아침 비서에게 방송에 나왔던 그 케이크 집을 알아보라고 했다. 방송을 타서 그런지 손님이 몰려 1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16551892234531.png“와, 너무 예쁘다. 밥 먹고 디저트로 먹어야겠다.”

1시간이나 기다렸던 것은 힘들었지만 아내가 저렇게 좋아하니 힘들었던 건 한순간에 녹아버렸다. 2시간이고 4시간이고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엔 그 가게 파티시에를 초대해 아내만을 위한 케이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민후가 말했다.

16551892234537.png“참, 이번 주 금요일 창립기념일 파티에 함께 가야 해. 작년에 같이 갔던 거 생각나지?”

작년 창립기념일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민후와도 서먹한 사이였고 대외적으로 부부의 모습만 보이다가 돌아왔던 기억이 났다. 그 후로 1년이 지났고 지금은 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다. 그때보다는 진짜 부부 같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다. 1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16551892234537.png“이번에 2세 소식도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 같아. 더 많은 사람과 인사도 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은조가 무슨 문제 있냐고 하니 민후가 손끝으로 입꼬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16551892234537.png“계속 웃어야 하니 입술에 경련도 일어날 거고 오래 서 있는 것도 힘들 것 같아서.”

16551892234531.png“괜찮아요.”

16551892234537.png“힘들면 언제든 말해. 쉴 수 있게 해줄 테니까.”

16551892234531.png“네.”

은조는 임신하고 나서 부쩍 더 다정해진 민후를 빤히 쳐다보았다.

16551892234531.png‘요즘 남편이 내게 너무 잘해줘. 임신하고 나니 더 다정해졌어.’

은조는 밥 먹는 민후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16551892234531.png‘이렇게 잘해주는데 혹시 엄마 얘기를 하면 그가 선뜻 도와주지 않을까? 그에게는 생각보다 별것 아닐 수도 있을 텐데.’

잠시 이런 생각을 했지만, 은조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16551892234531.png‘아냐. 그래도 그런 부탁을 함부로 하는 건 무례한 거야. 얼마나 부담되겠어? 거절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 더 부담일 거야.’

은조는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서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젓가락질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민후는 밥을 먹으며 평소보다 표정이 어두운 아내를 유심히 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지금 보니 영 얼굴이 어두웠다. 은조가 밥을 다 먹지도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자 민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16551892234537.png“왜 그만 먹어. 속이 안 좋아?”

16551892234531.png“아니에요. 아까 간식을 먹었더니 입맛이 별로 없어서요.”

민후는 평소와 다른 아내의 모습에 걱정이 되었다. 임신하면 호르몬의 변화로 예민해지기도 한다고 했었다. 대수롭지 않은 대화에도 상처를 받기도 한다고 했는데 혹시 자신이 무슨 말실수를 한 건 아닌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16551892234537.png‘내가 오늘 무슨 말을 했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실수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아내는 서운했을 수도 있다.

16551892234537.png‘혹시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보지 않고 케이크를 사 와서 기분이 안 좋은 걸까?’

샤워하는 동안에도 민후는 계속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해서 아내가 기분이 저조한지 이 생각만 했다.

16551892234537.png‘아니면 임신 우울증이 벌써 찾아온 건가?’

비서실장이 임신 우울증 얘기를 해서 그런 것도 신경 쓰였다. * 다음날 민후는 건물 관리인으로부터 송화에 관한 새로운 보고를 받았다.

16551892444367.jpg[전무님, 최송화 씨가 부동산에 가게를 내놓았습니다.]

16551892234537.png“가게를 내놨다고요?”

16551892444367.jpg[네. 사정이 생겨서 가게를 정리해야 한다고 해서 제가 좀 알아봤는데요. 불법사채업자에 부채가 좀 있었습니다. 그게 이자가 너무 불어서 집까지 경매에 넘어갔다고 합니다.]

민후가 미간에 힘을 주며 말했다.

16551892234537.png“집이 경매로 넘어갔다고요?”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았다.

16551892234537.png“부채가 얼마나 됩니까?”

16551892444367.jpg[자세한 액수는 더 알아보겠습니다만, 저희 쪽에서 알아본 바로는 사채업자가 명신제지 윤 회장님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민후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16551892234537.png“자세히 좀 알아봐요.”

16551892444367.jpg[네.]

16551892234537.png“아, 그리고. 집 경매 날짜 확인해서 제 명의로 입찰 신청하세요. 다른 데 넘어가지 않도록 꼭 입찰받도록 하시고.”

16551892444367.jpg[예, 알겠습니다.]

민후는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빠졌다.

16551892234537.png‘불법사채업자가 윤 회장과 연관이 있다? 윤 회장이 장모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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