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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웃기는 남자가 되는 법 (46/100)

48. 웃기는 남자가 되는 법2022.02.15.

16551891463178.png“뭐? 야근?”

민후는 도저히 넘길 수가 없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16551891463178.png“임신한 사람에게 야근이라니!”

순간 이성을 잠시 잃고 당장 가서 따질 생각으로 일어났다.

16551891463178.png“야근 지시한 사람이 누구야? 그 관장이야? 내가 가서 좀 만나야겠어.”

16551891463201.png[네?]

은조가 의아하게 물었다.

16551891463201.png[온다고요? 왜요?]

16551891463178.png“임신했다는 말, 상사한테 안 했어?”

16551891463201.png[아직 안 하기는 했는데.]

16551891463178.png“얘기해야지. 몸 쓰는 일에는 예외 시켜달라고 해.”

16551891463201.png[몸 많이 안 써요. 전 꺼내서 담는 일만 해요. 무거운 건 다른 직원들이 들고요.]

무거운 것을 안 든다고 하니 민후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16551891463178.png“정말이야? 힘들지 않아?”

16551891463201.png[안 힘들어요. 진짜 오려고 했어요? 농담이었죠?]

16551891463178.png“아냐. 그 관장이란 사람 만나서 얘기 좀 하려고 했지. 전부터 계속 맘에 안 들었는데.”

무거운 물건 들지 않는다고 민후의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야근해야 한다는 건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16551891463178.png“오래 걸려? 내가 가서 도와주면 안 되는 거야?”

16551891463201.png[외부인은 절대 들어오면 안 되죠. 국보급 유물도 있는데.]

민후도 알고 있다. 자신이 억지스럽다는 것을. 아내의 직장 일에 간섭하는 것 자체가 말도 되지 않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순간 욱해서 판단력이 흐려졌다.

16551891463178.png“그렇지. 내가 좀 오버했네.”

민후는 머쓱해 뒷목을 쓸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순간 이성을 잃고 흥분했던 것 같다. 평소 어떤 상황에서도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았던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의아했다.

16551891463178.png“너무 무리하지 마. 그리고 임신했다는 얘기 상사에게 해. 그래야 배려해주지.”

16551891463201.png[네. 알았어요. 끝나고 전화할게요.]

바빠서 야근까지 해야 하는 아내를 더 붙잡을 수는 없어 민후도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아내 몸에 무리가 갈까, 걱정과 조바심이 쉬이 가시지는 않았다. 꼭 물가에 아기를 내어놓은 부모의 마음 같았다. 민후는 은조가 임신하고 두뇌의 절반은 아내, 임신, 아기 이런 단어들로 가득했다. 처리해야 할 업무가 쌓였지만 민후는 임신 전반에 관한 정보를 검색했다. 주 수에 따른 태아의 변화, 임신부의 변화 등을 찾아보았다.

16551891463178.png“임신한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할 일?”

그중 남편이 해야 할 일도 있었다. 민후는 그 내용을 진지한 얼굴로 소리 내 읽었다.

16551891463178.png“임신하면 식욕이 왕성해진다. 먹고 싶은 게 있냐고 자주 물어보고 최대한 구해준다.”

매일 퇴근하면서 먹을 것을 사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16551891463178.png“호르몬 변화가 많아서 평소 대수롭지 않은 대화도 쉽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16551891463178.png“말도 조심해야겠네.”

아내가 짜증을 내거나 우울해해도 너그럽게 이해해야 한다.

16551891522293.jpg“뭐 하는 겁니까?”

그때 비서실장이 머리를 쑥 내미는 바람에 민후가 흠칫 놀랐다.

16551891463178.png“놀라라. 언제 들어왔습니까? 인기척도 없이.”

16551891522293.jpg“노크하고 들어왔는데요. 그런데 뭘 그렇게 열심히 보시는 겁니까?”

민후는 조금 쑥스러워 화면을 가리고 싶었지만 비서실장이 이미 본 것 같았다. 비서실장이 상체를 들며 말했다.

16551891522293.jpg“아, 사모님 때문에요? 혹시 사모님도 임신 우울증 같은 거 있습니까?”

16551891463178.png“임신 우울증이요? 그런 것도 생깁니까?”

16551891522293.jpg“예. 제 아내가 임신 우울증이 와서 좀 고생을 했었죠. 울기도 많이 울고, 짜증도 내고. 저도 왜 그런지 몰랐었는데 나중에 알고는 좀 더 잘해줄 걸 저도 후회했습니다.”

민후는 임신이 우울증을 동반할 정도로 변화를 가져오는구나 싶었다.

16551891463178.png“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민후는 최대한 아내의 변화를 캐치하고 대처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6551891522293.jpg“제일 좋은 건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 같습니다.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햇빛도 받으면서 콧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야죠.”

민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16551891522293.jpg“아내에게 웃을 일을 많이 만들어주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유머 있는 남자가 유리한데. 전무님이나 저나 그쪽으로는 둘 다 젬병이어서.”

비서실장이 혀를 차듯이 말을 이었다.

16551891522293.jpg“전무님이 저보다 더 유머가 없죠. 그건 인정하시죠?”

비서실장이 고개를 기울이며 민후를 보았다.

16551891522293.jpg“사모님 웃겨드린 적 한 번도 없죠? 집에서는 농담 같은 거 하십니까?”

민후가 비서실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생각해 보니 한 번도 농담해서 아내를 웃겨본 일은 없는 것 같았다. 아내뿐 아니라 민후 인생에서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16551891463178.png“없습니다.”

16551891522293.jpg“아내가 그러는데, 여자들은 유머 있는 남자를 좋아한답니다. 배꼽이 빠지도록 웃겨주는 남자면 부부싸움 할 일도 별로 없지 않을까요?”

민후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과연 자신이 아내에게 매력적인 남자였었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아내가 웃겨서 박장대소하는 모습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한 번쯤 아내를 웃겨서 데굴데굴 구르게 해보고 싶었다. 웃겨 죽겠다는 아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싶었다.

16551891463178.png“유머는 어떻게 공부하면 됩니까?”

민후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16551891522293.jpg“저도 좀 알아봤는데, 그게 우선은 기본 센스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센스가 부족하더라도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16551891463178.png“누가요?”

16551891522293.jpg“제가 본 책에서.”

16551891463178.png“어떤 책입니까?”

16551891522293.jpg“웃기는 남자 되는 법’이라고 인기 개그맨이 쓴 책인데요. 꽤 쓸 만한…….”

민후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실장에게 내밀었다.

16551891463178.png“그 책 당장 사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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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조는 야근한다는 말에 민후가 갑자기 돌변하는 모습이 왠지 가슴이 설렜다. 걱정하는 모습이 진심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 걱정돼요? 야근하는 거 그렇게 싫었어요? 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대답이 나올지 두려워 차마 묻지 못했다. 그가 걱정하는 건 순조로운 임신과 출산일 것이다. 아내를 걱정하는 남편의 감정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임신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하기에 그랬다는 대답이 나올까 봐 묻지 못했다. 그래도 그가 돌변하며 걱정하던 순간은 진짜 부부처럼 느껴져서 기분 좋았다. 다행히 야근이 많이 늦어지지는 않았다. 민후가 퇴근 후 직접 데리러 왔다. 그는 여전히 다정하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직접 차 문도 열어주고 벨트도 직접 매주었다.

16551891463178.png“힘들었지? 몸은 괜찮아?”

16551891463201.png“괜찮아요. 별로 안 힘들었어요.”

16551891463178.png“안 힘들긴. 임신하면 호르몬 변화로 피로감도 배로 빨리 느낀다던데. 저녁은 먹었고?”

16551891463201.png“네, 저녁 먹고 일했어요.”

16551891463178.png“다른 거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임신하면 갑자기 당기는 게 있다던데. 그런 거 없어?”

걱정과 함께 폭풍 질문을 하는 민후를 보며 은조는 웃었다.

16551891463201.png“아직은 미친 듯이 먹고 싶은 건 없어요.”

16551891463178.png“그래? 생각나면 언제든 얘기해.”

16551891463201.png“네. 빨리 집에 가요. 집에 가고 싶어요.”

은조는 집에서 민후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좋았다. 둘이서 뭘 하든지, 따로 각자 할 일을 한 대도 집 안에서 둘이 있는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

16551891463178.png“그래.”

민후가 차를 천천히 출발시켰다. 오늘도 민후는 은조를 가장 안전한 뒷좌석에 앉혔다. 은조는 민후와 더 가까이 앉아서 가고 싶었다.

16551891463201.png“저 언제까지 뒤에 앉아야 해요? 같이 앞에 앉고 싶은데.”

16551891463178.png“안 돼. 조수석이 가장 위험하대. 사고가 났을 때 에어백 때문에 임신부한테는 더 위험할 수가 있대. 뒷좌석에서 벨트 매고 있는 게 가장 안전해.”

민후의 단호한 말에 은조는 수긍했다. 민후가 운전하면서 룸미러로 은조를 힐끔힐끔 보았다. 임신한 몸으로 야근까지 해서 힘들 텐데 조금이라도 피로가 풀리도록 해주고 싶었다.

16551891463178.png“심심해?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해줄까?”

민후는 오늘 ‘웃기는 남자가 되는 법’이란 책에서 본 유머를 시도해볼 생각이었다.

16551891463201.png“……네?”

은조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민후는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라도 하듯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16551891463178.png“이게 뭔지 맞혀 봐. 어릴 때는 울지 못하다가 어른이 되어서 우는 게 뭔지 알아?”

은조는 처음 보는 남편의 모습에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저건 초딩들이나 하는 난센스퀴즈였다. 저런 우스개 농담을 하는 사람이 민후가 맞는지 의아했다. 혹시 사람이 바뀐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16551891463201.png“…….”

민후의 낯선 모습에 은조가 대답을 못 하고 있자 민후가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

16551891463178.png“개구리.”

정답을 알려주는 그의 표정이 무척 흥미에 차 있었다.

16551891463201.png“……아.”

은조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16551891463178.png“하나 더 해줄까?”

민후는 신나서 퀴즈를 하나 더 냈다.

16551891463178.png“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자는?”

은조는 이런 난센스퀴즈를 재미있다며 내는 민후의 낯선 모습이 웃겼다.

16551891463201.png“뭔데요?”

16551891463178.png“자원봉, 사자.”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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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조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저 진지한 사람이 초딩들이나 할 법한 유치한 농담을 하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16551891463201.png“아하하.”

은조가 앞자리 시트를 치며 웃자 민후는 매우 흡족했다.

16551891463178.png‘역시 효과가 있군.’

아내가 저렇게 크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무척 행복했다.

16551891463178.png‘유머를 더 공부해서 매일 한 번씩은 웃겨줘야겠어.’

웃음이란 것은 신기했다. 그 유치한 농담으로 인해 한 번 웃었더니 즐거워지고 자꾸만 웃음이 더 났다. 집으로 오는 내내 민후와 은조는 별 시답잖은 대화를 하며 계속 웃었다. 서로 얼굴만 봐도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은조는 이렇게 민후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고 떠들고 가는 이 순간이 행복했다.

16551891463178.png“참, 태명은 생각했어? 오늘 태명 결정하기로 했잖아.”

16551891463201.png“아뇨. 오늘 갑자기 일이 터져 야근까지 하는 바람에 못 지었어요. 민후 씨는요? 지었어요?”

민후는 오늘 태명 짓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다.

16551891463178.png“어떤 태명들이 있나 찾아봤더니 행복이, 기쁨이, 꼬물이, 복덩이, 축복이. 이런 행복과 기쁨을 담은 태명이랑 튼튼이, 찰떡이, 열무 같은 건강과 무사를 바라는 태명들이 있더라고.”

16551891463201.png“찰떡이랑 열무는 무슨 뜻이에요?”

16551891463178.png“찰떡처럼 엄마 배 속에 착상이 잘되라는 뜻이고 열무는 열 달 동안 무사히 있다가 만나자는 의미래.”

은조가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16551891463201.png“의미도 좋고 이름도 귀여워요. 찰떡이랑 열무.”

16551891463178.png“또 부부의 이름을 따서 짓기도 한다는데.”

민후가 룸미러로 은조를 힐끔 보고는 말했다.

16551891463178.png“리은이 어때? 아니면 은영이.”

16551891463201.png“리은이요? 무슨 뜻이에요?”

16551891463178.png“리틀은조라는 뜻이야. 당신 배 속에 당신 닮은 작은 생명이라는 의미.”

은조는 민후가 아기의 태명에 자신을 대입해 지은 것에 놀랐다.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중요하게 여긴 느낌이어서 가슴이 설렜다. 은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16551891463201.png“은영이는요? 그건 무슨 뜻이에요?”

평범한 여자아이 이름 같은데 이것도 ‘은’자가 들어가서 자신과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16551891463178.png“…….”

민후가 거기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은조는 민후의 대답을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은영은 ‘은조와 영원히.’라는 의미였다. 은조와 헤어지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민후의 염원이 담긴 태명이었다.

16551891463201.png“네? 무슨 뜻인데요? 은영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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