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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아내가 좋아할 겁니다 (40/100)

42. 아내가 좋아할 겁니다2022.01.25.

TV 뉴스 화면을 응시하는 민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예지가 검찰청에 들어가는 모습이 뉴스에 생중계되었기 때문이다. 달걀 테러까지 받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아마도 저 장면은 인터넷에서 짤로 많이 돌아다닐 것이 분명했다. 달걀 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예지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잡힌 모습을 보는 민후가 픽 하고 웃었다.

16551889922852.png“이게 인과응보라는 겁니다, 형수.”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끄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옷걸이에 걸어둔 수트 상의를 들고 인터폰에 대고 말했다.

16551889922852.png“차 대기시켜요. 경기도 광주 현장에 시찰 가겠습니다.”

비서실장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비서실장이 물었다.

16551889922869.jpg“아까 뉴스 보셨습니까?”

두고두고 회자할 장면이 나온 것을 두고 묻는 것이었다.

16551889922852.png“예. 봤어요.”

민후는 덤덤한 표정과 말투로 대답했다. 비서실장은 그 장면이 생각나는지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으며 말했다.

16551889922869.jpg“역대급이지 않습니까? 쿡. 아, 그리고.”

비서실장이 뭔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16551889922869.jpg“오늘 이선주 씨도 검찰에서 조사받는답니다. 이번에는 실형을 피하기는 힘들 겁니다.”

민후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비를 가로질러 걸어가던 민후가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비서실장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고 민후의 시선이 고정된 곳을 보았다. 안내데스크 쪽에 송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자에는 꽃이 가득 들어 있었다. 민후가 빠른 걸음으로 송화에게 다가갔다.

16551889922852.png“최 사장님.”

송화가 민후를 보자 반색하며 인사했다.

16551889922894.png“어머. 안녕하세요.”

민후가 꽃이 가득 담긴 상자를 보고는 물었다.

16551889922852.png“여기는 어쩐 일로? 혹시 직접 배송 오신 겁니까?”

민후는 얼마 전 생일을 맞은 직원에게 발송되는 꽃 배달 서비스를 송화에게 맡겼었다. 사위인 걸 티 내지 않으면서 송화를 도우려고 일부러 만든 제도였다.

16551889922894.png“네. 제가 직접 왔어요.”

16551889922852.png“가게는 어떡하고요? 배송 서비스하는 업체에 맡기시지 그러셨습니까?”

16551889922894.png“퀵 서비스가 너무 비싸기도 하고요. 배송 기사들이 한 번에 많은 물건을 배송하려고 욕심을 내다보니 꽃을 함부로 다뤄서 꽃이 뭉개지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꽃이 최상의 상태로 직원들에게 배송되어야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잖아요.”

민후는 최상의 물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직접 배송을 왔다는 송화의 말에 책임감 있는 협력사라고 생각했다. 민후의 사적인 연줄로 계약한 업체이긴 하나 이만하면 어떤 업체보다 훌륭했다.

16551889922852.png“그래도 가게를 비우시면 손해이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직접 오지 마시고, 저희 쪽에서 기사를 보내겠습니다.”

민후가 고개를 돌려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16551889922852.png“우리가 계약해 쓰는 배송업체 있죠? 여기 사장님이 전화하시면 가게로 보내주세요.”

16551889922894.png“아유, 안 그러셔도 돼요. 너무 신세를 져서…….”

송화가 손을 내저었다. 이렇게 큰 회사에 정기적인 납품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저런 혜택까지 받으려니 부담이 되기도 했다.

16551889922852.png“우리가 계약한 곳은 다른 배송업체처럼 물건을 함부로 다루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배송비도 우리 쪽에서 부담하는 거니 기사님이 오시면 꽃만 보내시면 됩니다. 힘들게 여기까지 오지 마세요.”

민후가 송화에게 말하니 송화는 고마움과 난처함이 섞인 얼굴로 민후를 보았다.

16551889922894.png“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16551889922852.png“그럼 저는 일정이 있어서, 다음에 뵙겠습니다.”

민후는 송화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비서실장을 비롯한 안내데스크의 직원들까지 놀란 표정이었다. 꽃을 납품하는 협력업체 사장님한테 임원이 저렇게까지 공손하게 대하는 모습이 일반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16551889922894.png“저기. 전무님.”

민후가 돌아서려고 할 때 송화가 불렀다. 돌아보자 송화가 상자에서 꽃다발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16551889922894.png“혹시나 해서 여분으로 몇 개 더 가져왔어요. 이거 사모님 드리세요.”

꽃다발을 보던 민후가 시선을 들어 송화를 보고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16551889922852.png“아내가 좋아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민후가 웃으며 꽃다발을 받았다. 민후가 정문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타니 비서실장이 물었다.

16551889922869.jpg“전무님. 저번부터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조수석에 앉은 비서실장이 몸을 반 이상 틀어 민후에게 물었다.

16551889922869.jpg“저 사장님이 누구신데 전무님이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잘해주냐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16551889922852.png“중요한 분이죠.”

그건 눈으로 보았으니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비서실장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16551889922852.png“때가 되면 아시게 될 겁니다.”

16551889922869.jpg“……아, 예.”

더는 말해주지 않겠다는 대답에 비서실장은 몸을 똑바로 했다. 민후는 옆자리에 놓아둔 꽃다발을 내려다보았다. 아이보리, 연핑크, 연보라, 여러 가지 색들의 조합이 꼭 아내를 보는 것 같았다. 아내가 즐겨 입는 옷이나 소품들에 저런 색이 많았던 것 같다. 꽃다발로 인해 차 안에 꽃향기가 퍼졌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꽃다발을 받고 좋아하는 아내의 얼굴이 빨리 보고 싶었다. . . . 현장 시찰을 끝내고 민후는 곧바로 퇴근했다. 아내를 만나 꽃 선물을 빨리 전해주고 싶었다. 꽃을 줄 때마다 아내는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었었다.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을 볼 생각에 들떠서 아내 회사 앞까지 가버렸다.

16551889922852.png[데리러 왔어. 지금 주차장이야.]

데리러 왔다고 하니 아내는 무척 반가워했다. 퇴근 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던 터라 민후는 운전석에 앉아 정문만 바라보며 기다렸다. 아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문만 바라보는 모습은 꼭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대형견 같았다.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즐겁고 행복했다. 퇴근한 아내가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웃는 얼굴로 쪼르르 달려오는 아내를 보는 민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은조가 조수석에 타 벨트를 당겨 매며 말했다.

16551889982381.png“오늘 웬일로 여기까지 왔어요? 온다는 얘기 없었잖아요.”

16551889922852.png“갑자기 오고 싶어서.”

그러고는 팔을 뻗어 뒷좌석에 둔 꽃다발을 건넸다.

16551889982381.png“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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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조가 손을 모아 입을 가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감동했다는 눈빛과 표정으로 꽃과 민후를 번갈아 보았다. 민후도 입가에 절로 미소가 퍼지고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좋아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는 아쉬워 함께 외식하기로 했다. 오늘은 민후가 평소 손님 접대를 위해 즐겨간다는 정갈한 한식집이었다. 전 좌석이 개별 룸으로 구성되어 좌석이 많지 않은 곳이라 사전예약이 필수였다. VIP인 민후가 전화하니 특별히 당일 예약해 주겠다고 했다. 한식집 입구로 들어서자 은조가 놀라며 말했다.

16551889982381.png“와, 빌딩 숲 사이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입구에서는 안 보였는데 들어서니 아담한 정원이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정원에는 작은 연못도 있었는데 연못에 잉어도 헤엄쳐 다녔다.

16551889982381.png“연못 좀 봐. 너무 예쁘다.”

연못 앞에 걸음을 멈추고 은조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는 은조 뒤에서 민후가 말했다.

16551889922852.png“이 비싼 강남땅에 테이블을 더 안 만들고 정원을 만든 거 보면 여기 사장님은 사업을 해서는 안 될 분이야. 나라면 이 비싼 땅에 빌딩을 올렸을 텐데.”

은조가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16551889982381.png“이런 사장님 덕에 저 같은 사람이 힐링하고 가잖아요. 대신 전 여기 음식값에 바가지를 써도 행복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민후가 식당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16551889922852.png“바가지 쓰게 될 거야. 1인분에 30만 원이나 하니까.”

은조가 입을 쩍 벌리고 쳐다보다가 민후를 따라 들어갔다. 정갈한 내부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었다. 스피커에서 가야금 소리와 물소리가 들리고 코스로 하나씩 음식이 서비스되었다. 모두 깔끔하고 먹음직스러웠다.

16551889922869.jpg“주류는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16551889922852.png“괜찮습니다.”

운전해야 하기도 하고 은조도 임신을 준비 중이니 술은 주문하지 않았다.

16551889922869.jpg“그럼 편안한 시간 되십시오. 필요한 게 있으면 호출 버튼을 눌러주십시오.”

직원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뒷걸음으로 물러난 뒤 조용히 미닫이문을 닫았다.

16551889982381.png“여긴 외국 손님들 모시고 오기 좋겠어요.”

16551889922852.png“응. 외국에서 오신 귀빈들은 주로 이곳에서 음식을 대접해.”

하나씩 음식을 맛보며 식사를 하다가 민후가 말했다.

16551889922852.png“묻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은조가 음식을 씹으며 민후를 쳐다보았다. 뭐든 물어보라는 눈빛이었다.

16551889922852.png“어머니 얘기, 듣고 싶은데.”

민후는 오늘 회사 로비에서 송화를 만나고 아내에게 사위임을 숨긴 채 어머니와 교류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어머니 얘기를 꺼내자 아내의 얼굴이 조금 긴장한 듯 굳어졌다.

16551889922852.png“불편하면 안 해도 돼.”

16551889982381.png“아니에요. 안 불편해요.”

은조는 아무에게도 엄마의 존재에 관해 얘기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은조의 삶에서 엄마의 존재를 지우려고 애썼다. 은조가 혼외자라는 사실을 가능한 숨기고 싶어 했다. 처음 할머니를 따라 저택에 갈 때만 해도 엄마를 못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점점 할머니의 압박을 받으면서 은조도 서서히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깊이 묻어두어야 했다. 그래서 은조는 누구에게도 엄마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얘기하고 싶었다. 민후는 이제 은조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16551889982381.png“엄마랑 중학교 때까지 같이 살았어요. 할머니가 갑자기 나타나기 전까지요. 엄마는 되게 소녀 같은 데가 있으면서도 엄청 강했어요. 할머니에게 나를 안 뺏기려고 싸울 때는 엄청 무서운 얼굴을 했었거든요.”

민후는 그녀의 말을 경청하듯이 듣다가 물었다.

16551889922852.png“가끔 만나긴 해?”

은조가 고개를 저었다.

16551889982381.png“할머니가 엄마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세요. 고등학교 때 몰래 엄마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할머니한테 들켜서 엄청나게 크게 혼났어요.”

은조는 그때 할머니에게 뺨까지 맞았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남편 앞에서 그런 치욕스러운 과거까지는 밝히고 싶지 않았다.

16551889982381.png“못 본 지 6년쯤 된 것 같아요. 6년 전에 할머니 몰래 가게 찾아가 만났는데 그때 할머니한테 또 들켜서 엄마가 엄청 힘들었어요. 가게로 깡패 같은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가게를 엉망으로 해놓았대요.”

16551889922852.png“설마 윤 회장이 한 짓인가?”

16551889982381.png“네. 할머니가 엄마를 만나게 되면 엄마가 장사는 영영 못 하게 할 테니 그리 알라고 무섭게 말해서 그 후로는 무서워서 못 찾아갔어요. 엄마도 찾아오지 말라고 해요. 할머니 아시면 큰일 난다고.”

민후는 자신이 건물을 사서 가게에 들렀을 때 윤 회장이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었는지 이해가 갔다.

16551889982381.png“그런데 전화통화는 할머니 몰래 아주 가끔 하기는 해요.”

은조가 상체를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것도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둘밖에 없는 공간인데도 비밀 얘기하듯이 말하는 아내가 귀여웠다. 저렇게 가끔 애교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민후는 가슴이 설렜다.

16551889982381.png“저 결혼하기 전에 엄마한테 전화했는데요. 그때 엄마가 우셨어요. 기특하다고, 우리 딸이 다 커서 결혼도 한다고. 결혼식에 못 가서 너무 슬프다고.”

말끝에 은조의 목소리가 울먹였다.

16551889982381.png“딸 결혼식 못 본 게 엄마도 한이 되겠지만, 사실 저도 엄마가 없는 결혼식이 착잡했어요.”

울컥했는지 그녀의 코끝도 빨개졌다.

16551889922852.png“미안해. 괜히 물었나 봐.”

울지 않으려고 눈을 깜빡이며 은조가 고개를 저었다.

16551889982381.png“아니에요. 민후 씨한테는 엄마 얘기 해주고 싶어요.”

민후는 아내가 어머니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고 결심했다.

16551889922852.png“내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줄게. 앞으로 어머니랑…….”

똑똑. 그때 미닫이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을 하다만 민후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직원이 문을 조금 열었다.

16551889922869.jpg“고객님. 지금 다른 VIP께서 고객님이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인사하러 오셨으면 한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16551889922852.png“인사를 하러 오라고?”

민후가 미간을 조금 좁혔다. 대체 누군데 자신한테 오라 가라 하는 건가?

16551889922852.png“누굽니까?”

묻는 민후의 말투에 언짢음이 배였다.

16551889922869.jpg“명신제지 윤 회장님이십니다.”

민후가 인상을 쓰며 은조를 보았다.

16551889982381.png‘할머니가 지금 여기에 계시다고?’

은조가 놀란 표정을 지음과 동시에 몸이 살짝 경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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