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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인과응보 (39/100)

41. 인과응보2022.01.22.

은조 집에서 나온 예지는 그 집을 나서자마자 180도 표정이 달라졌다. 잘못했다고 흐느껴 울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파트를 나와 뒤를 돌아보는 예지의 표정에 독기가 서렸다.

16551889655851.png“재수 없는 X. 서방님 덕에 사과받는 주제에 고고한 척하기는. 퉤!”

예지가 은조의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침을 퉤 뱉었다.

16551889655851.png“내가 어쩔 수 없이 네 앞에서 비굴하게 굴었지만 언젠가 두 배로 갚아줄 거야!”

홱 뒤돌아 주차장으로 또각또각 걸어갔다. 차에 타고 차 문을 탕 닫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친정엄마인 김 부회장이었다. 예지가 전화를 받자마자 어리광을 부리며 말했다.

16551889655851.png“엄마아! 예지 속상해 죽겠어. 힝.”

16551889655867.jpg[왜 그래? 딸.]

16551889655851.png“너무 짜증 나. 나보고 사과하라고 막 그러잖아. 으허엉.”

16551889655867.jpg[누가? 감히 누가 우리 딸한테 사과하라는 거야!]

16551889655851.png“저번에 실수로 동서가 계단에서 넘어졌거든. 난 붙잡아주려고 손을 뻗었는데 나보고 밀었다고 막 그러잖아.”

예지는 엄마 앞에서 영락없는 초등학생처럼 어리광부리며 말했다.

16551889655851.png“내가 안 밀었다고 그랬는데 막무가내로 막 사과하라고 그러잖아. 그래서 사과하고 왔어.”

16551889655867.jpg[누가 사과하래? 네 동서 X이?]

16551889655851.png“엉! 그X이랑 그 남편 놈이!”

예지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자신이 유리한 대로 거짓말했다.

16551889655867.jpg[미친 것들이 다 있어? 내 이것들을 그냥!]

김 부회장은 당장이라도 달려올 듯이 말했다.

16551889655867.jpg[예지야. 그리고 네 동서 년, 임신 아닌 것 같아.]

초등학생처럼 입을 삐죽이던 예지가 눈을 번쩍 떴다.

16551889655851.png“응? 뭐라고?”

16551889655867.jpg[엄마가 의료기록 조사해본다고 했잖아. 네 동서. 산부인과 진료 기록이 없어.]

예지의 눈은 커지고 입은 벌어졌다.

16551889655851.png“그게 정말이야?”

16551889655867.jpg[응. 산부인과에는 안 다녀갔다니까.]

안 그래도 여러 가지 의심스러웠는데 가짜 임신임을 확인한 셈이었다. 예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입꼬리가 찢어지더니 갑자기 눈을 매섭게 떴다.

16551889655851.png“뭐야. 진짜 임신도 아니면서 나한테 사과시킨 거야?”

고개를 홱 돌려 아파트 쪽을 째려보았다.

16551889655851.png“유산될 리도 없었잖아!”

예지는 임신이 아니니 자신이 계단에서 민 것도 아무런 영향이 없는데 비굴하게 사과한 것이 억울했다. 그 칵테일도 마찬가지다.

16551889655851.png“와, 이것들이 그러면서 나한테 사기를 쳐?”

예지는 당장 쫓아가 따질 생각으로 차 문을 열었다. 다리 한쪽을 바닥에 딛고는 멈칫했다.

16551889655851.png“가만, 지금 따지는 것보다…….”

머리를 굴리는지 예지가 큰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16551889655851.png“이걸 이용해야겠어.”

예지가 다시 차 문을 탁 닫으며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톡톡 쳤다.

16551889655851.png“사람들 앞에서 가짜 임신인 것을 폭로하는 게 낫겠지?”

예지가 사악하게 웃었다.

16551889655851.png“특히 아버님 앞에서. 아버님을 속이고 기만했다고 그 자리에 까발려지게 해야 해.”

회장님이 가짜 임신인 것을 알고 은조를 내치는 생각을 하니 짜릿했다.

16551889655851.png“지분도 다시 뺏으시겠지? 괘씸해서 쫓아내려나?”

예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교활하게 웃었다.

16551889655851.png“아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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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조는 햇살이 잘 드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을 보고 있었다. 책은 임신 준비할 때 미리 사두었던 건데 잠자리를 몇 번 가지고 나니 아기가 탄생하는 과정이 궁금해졌다. 책에 나온 태아의 사진들을 보며 은조가 아랫배를 살살 만졌다. 만약 임신이 되었다고 해도 지금은 세포에 불과한데 기분이 이상했다. 기분 탓인지 배를 만지니 뭔가 느낌이 오는 것 같기도 했다. 아직 임신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라서 테스트를 하려면 좀 기다려야 한다. 출산 과정과 신생아 육아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은조는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가족도 없이, 특히 남편의 보호나 지원도 없이 혼자서 아기를 낳았다. 흔히들 아기를 낳으면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고 하더니 은조는 아직 임신도 아닌데 벌써 엄마 생각에 코끝이 찡했다. 할머니 때문에 엄마에게 연락하는 것을 참고 있던 터라 연락한 지 꽤 되었다. 얼마 전 민후가 이제 할머니가 결혼생활에 크게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간섭하지 않는다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애매해 엄마에게 연락을 시도하지 못했다. 엄마와 연락하며 지내는 것도 결혼생활 포함인지 별도인지 은조는 헷갈렸다. 그만큼 할머니 때문에 엄마에게 연락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은조가 핸드폰 화면에 엄마의 연락처를 띄워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엄마도 할머니가 두려워 연락하지 말라고 당부했기 때문에 망설여졌다.

16551889713616.png‘그래. 부딪쳐 봐야지. 할머니가 아시게 된다고 해도 언제까지 엄마랑 연락을 끊고 살 수는 없어.’

은조는 뭐든 감수하겠다는 생각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1655188971362.png[은조야.]

오랜만에 듣는 엄마 목소리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16551889713616.png“엄마.”

1655188971362.png[은조니? 어쩐 일이야? 전화해도 괜찮아?]

송화도 할머니 때문에 전화를 못 하던 은조가 오랜만에 전화하자 걱정하며 물었다.

16551889713616.png“응. 괜찮아.”

1655188971362.png[왜, 무슨 일 있어?]

울먹거리며 목소리가 떨리자 송화가 걱정했다.

16551889713616.png“아냐. 아무 일 없어. 엄마 목소리 들으니까 좋아서 그런 거야.”

1655188971362.png[진짜 아무 일 없지?]

16551889713616.png“응. 엄마는 어떻게 지냈어?”

1655188971362.png[난 잘 지내. 너는 어떻게 지냈어?]

16551889713616.png“나도 잘 지냈어. 요즘…… 나 너무 좋아. 아주 편안해.”

말하는 은조의 입가에 미소가 배었다. 은조는 근래 들어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 엄마에게 전하고 싶었다. 잘 지내고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1655188971362.png[다행이네.]

16551889713616.png“엄마는? 가게는 어때? 요즘도 힘들어?”

1655188971362.png[아냐 안 힘들어. 이번에 건물주가 바뀌었는데 너무 좋으신 분이야. 월세를 반으로 깎아주셨어.]

송화는 새 건물주가 사위인 것도 모르고 은조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16551889713616.png“정말? 되게 좋으신 분이다.”

1655188971362.png[그뿐이 아니야. 건물주가 대기업에 다니는데 거기에 정기적으로 납품도 하게 해줬어.]

16551889713616.png“진짜 잘됐다, 엄마.”

1655188971362.png[덕분에 빚도 조금씩 갚고 있어.]

은조는 엄마의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라 여겼다.

16551889713616.png“너무 잘됐다. 건물주님이 정말 고맙네. 혹시 엄마한테 호감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은조는 건물주라면 으레 중장년이라 생각하고 말했다.

1655188971362.png[어머, 얘는? 아니야! 건물주 젊은 남자야.]

16551889713616.png“젊은 남자야?”

1655188971362.png[응.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너무 좋아. 잘생겼어.]

16551889713616.png“그래? 영앤리치앤핸썸이네?”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는 우리 민후 씨랑 비슷하네? 라고 생각했다.

1655188971362.png[아내한테도 잘하는 것 같아. 올 때마다 아내한테 준다면서 꽃을 사가거든. 너무 로맨틱하지?]

16551889713616.png“응. 그러네.”

은조는 그러고 보니 예전에 민후도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사 왔었던 것을 떠올렸다. 민후 같은 완벽한 남자는 세상에 없을 줄 알았는데 거기도 있네, 하는 생각이 스쳤다.

16551889713616.png“엄마 일이 잘 풀려서 너무 좋다.”

1655188971362.png[너도 요즘 편안하다니 엄마도 안심이다.]

16551889713616.png“아직…… 엄마 만나러 가는 건 안 되겠지?”

1655188971362.png[응. 근처에 할머니가 심어놓은 사람이 아직 있어. 너 오면 안 돼. 절대 오지 마, 알았지?]

아직도 할머니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하니 은조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1655188971362.png[이렇게 전화로 안부 들으면 돼. 엄마는 네가 편안하게 잘 지내기만 하면 돼.]

16551889713616.png“응. 엄마 또 전화할게.”

1655188971362.png[그래. 잘 지내.]

16551889713616.png“엄마.”

전화를 끊으려다가 은조가 엄마를 불렀다.

1655188971362.png[응, 왜?]

16551889713616.png‘나, 임신할지도 몰라. 아기 낳으면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도 도와준다는데 난 그런 거 못 하겠지?’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은조는 하지 못했다. 아직 임신이 된 것도 아니고 괜히 이런 말로 엄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16551889713616.png“아냐. 엄마, 건강하세요.”

1655188971362.png[응. 너도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히 잘 지내.]

전화를 끊은 후 은조는 한참이나 마음이 먹먹한 채로 창밖을 응시했다. 언제쯤 엄마를 자유롭게 만날 수 있을까? 언제쯤 엄마와 소소한 일상으로 수다 떨며 지낼 수 있을까? * 예지는 은조가 가짜 임신일 수도 있다는 정보를 얻은 후 당장 그 사실을 세상에 까발리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갑질 동영상과 관련된 고소 건이 속전속결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검찰에 조사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며칠 전에는 엄마인 김 부회장이 검찰에 출두했다. 예지는 뉴스에서 그 장면을 보고는 겁을 잔뜩 먹었다. 기자들이 대거 몰려와서 검찰청으로 들어가는 엄마를 서로 찍으려고 북새통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검찰청으로 들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저 모습이 곧 내 모습이겠구나 생각하니 두려웠다. 소환장을 받고는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을 이틀 못 자니 괴로워서 허가가 필요가 수면제도 투약했다. 가끔 불면증을 겪을 때는 아는 병원에 가서 허가 없이 수면제를 맞았다.

1655188982485.png“당신 그러다가 그것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눈치 빠른 기현이 걱정 반, 짜증 반 말했다.

16551889655851.png“잠을 못 자 죽을 것 같은데 어떡해! 이건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

1655188982485.png“검사에게 약 치는 것도 한계가 있어.”

예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 . . 다음날 예지가 검찰에 출두하는 날이 밝았다. 검찰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예지는 두려움에 손을 덜덜 떨었다. 엄마와 자신의 동영상을 시발점으로 각계각층의 갑질 행태들이 폭로 형식으로 여기저기 터져 나와 사회적 이슈가 진행 중이었다. 관심이 많으니 검찰청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것은 뻔했고 엄마처럼 뉴스에 생방송으로 나갈지도 모른다. 예지는 아침에도 먹었던 청심환을 또 하나 까서 먹었다. 검찰청 도착하기 50m 전인데도 본관 앞에 새까맣게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예지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저 사람들이 전부 자신을 주목하고 카메라를 들이댈 생각을 하니 벌써 오금이 저렸다. 예지가 탄 차를 발견한 기자들이 차가 움직이는 것을 따라오며 찍기 시작했다. 건물 앞에 차가 서고 심호흡을 한 뒤, 차에서 내렸다.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16551889655867.jpg“포토라인에 잠시 서 주세요!”

기자들이 포토라인에 서 있으라 주문했다. 예지는 사진이 안 찍히도록 머리를 푹 숙여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도록 했다. 마이크가 불쑥 나오고 질문들이 쏟아졌다.

16551889655867.jpg“운전기사 머리 핸드폰으로 때린 거 인정하시나요?”

16551889655867.jpg“갑질하신 거 인정하시나요?”

예지는 묵묵부답으로 건물로 들어가려고 걸음을 빨리 옮겼다. 하지만 기자들이 못 가게 몸으로 막았다. 그 순간 퍽, 소리와 함께 무언가 머리로 날아와 부딪혔다. 아프지는 않았는데 뭔가 기분이 찝찝했다. 설마……. 곧 머리카락을 타고 걸쭉하고 노란 물이 흘렀다. 누군가 날달걀을 던진 것이다. 달걀을 맞았다는 생각에 화가 불쑥 난 예지가 고개를 홱 쳐들었다. 프레쉬가 팍팍 더 요란하게 터졌다. 달걀이 날아온 방향으로 매섭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16551889655851.png“누구야! XX야, 나와! 내가 누군 줄 알아?”

퍽! 또 달걀이 날아와 이번엔 앞머리에 정통으로 맞았다. 끈적하고 노란 물이 이마에서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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