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키스하고 싶었어2022.01.18.
민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민후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에서는 아내에게 키스도 할 수 있고 아내를 안을 수도 있다. 숙제처럼 치르는 아기를 가지기 위한 명분이지만 아내와 잠자리도 가질 수 있다. 민후는 가슴이 떨렸다. 무엇보다 키스가 너무 하고 싶었다. 박물관 앞에서 아내를 마주친 순간, 그 순간부터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아내가 붉고 도톰한 입술을 움직여 말을 하는데 입술만 보였다. 그 입술을 입에 물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내가 미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발정 난 짐승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며 집이 가까워졌다. 민후는 드라마 장면처럼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내를 번쩍 안고 침실로 향하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아내가 너무 놀라겠지? 굶주린 짐승처럼 행동하면 아내는 겁을 내고 자신을 혐오할지도 모른다. 밀폐된 엘리베이터 안이라 그런지 아내를 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띵, 엘리베이터 도착 음이 들렸다. 집에 왔다. 둘만의 공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곳. 현관에 들어서자 센서 등이 두 사람 정수리를 비추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이 거대한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민후는 은조가 구두를 벗는 모습을 뒤에서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민후는 치열하게 갈등 중이었다. 그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자 자신이 진로를 방해했나 싶어서 은조가 옆으로 조금 비켜주었다. 민후의 숨이 점점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민후의 행동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은조가 그를 쳐다보았다.
“왜요?”
그 순간 민후가 그녀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은조는 놀란 얼굴로 그를 보았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은조도 당황했다.
“키스……하고 싶었어.”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은조는 구두를 벗다 말고 입술이 물린 채 당황한 듯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이내 눈을 감고 입술을 벌려 그의 숨결을 느꼈다. 구두 하나는 벗은 탓에 그녀의 발 한쪽은 차가운 바닥을 디디고 있었다. 높이 차이로 발 한쪽은 까치발을 해야 했다. 키스가 고팠던 민후의 숨결이 은조의 입술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민후가 몸을 더 기울여 은조를 벽에 기대게 하고 더 깊이 숨결을 넣었다. 갑작스러웠지만 은조는 키스가 달콤했다. 그가 매우 그리웠기에. 은조의 심장은 두근두근 뛰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을 것만 같았는데 벽에 기대 있어 다행이었다. 그의 몸이 자신을 결박하듯 서서히 짓누르는 느낌도 좋았다.
가만히 벽에 기대어 서서 키스를 이어가니 센서 등이 꺼졌다. 어둠이 두 사람을 포위했다. 촉, 촉 입술과 숨결이 부딪히는 소리만 가득했다. 민후가 은조의 아랫입술을 길게 물어내며 천천히 입술을 떼어냈다. 은조는 감았던 눈을 스르르 떴다.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도 욕망으로 가득 찬 그의 눈동자가 빛이 났다. 약간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는지 센서 등이 다시 켜졌다. 사위가 환해지니 갑자기 이성이 후다닥 되돌아왔다. 집 현관에서 뭐 하고 있나, 뭐가 그리 급했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은조는 서둘러 벗던 구두를 마저 벗었다.
“짐 풀고 씻어요.”
약간 허둥지둥하며 은조가 서둘러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에 들어온 은조는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살폈다. 귀까지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키스로 립스틱도 번졌다. 티슈를 뽑아 입술을 지워내며 은조는 생각에 빠졌다.
‘방금 키스는 뭐였지?’
집에 들어서자마자 달려들 듯이 키스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나 서로를 갈망하는 진짜 연인이나 부부처럼. 지금까지 키스는 서로에게 친밀해지기 위한 단계를 거치거나 잠자리를 할 때 했다.
‘키스……하고 싶었어.’
키스하고 싶다고 말하며 그가 키스했다. 순수하게 키스가 하고 싶었던 거였나? 잠자리를 가지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진짜 키스가 하고 싶었다고? 그도 나처럼 키스할 때 느낌이 좋은 걸까? 꼭 잠자리를 위해서가 아니라도. 혹시 그도 나처럼 사적인 감정이 있는 걸까? 은조는 생각할수록 점점 달아오르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 . . 짐을 풀면서 민후는 아내를 위해 샀던 향수 선물을 발견했다.
‘참, 이거 샀었지.’
민후가 선물을 들고 침실로 갔다. 은조는 파우더룸에서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민후가 다가가 화장대 위에 선물상자를 올렸다. 손가락을 펼쳐 클렌징오일을 얼굴에 문지르던 은조가 선물을 보았다.
“뭐예요?”
“오는 길에 공항에서 샀는데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네.”
자신을 위해 산 선물이라는 걸 알아챈 은조가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나고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선물이에요?”
보석처럼 빛나는 눈을 가진 아내가 무척 예뻤다.
“향수네요.”
은조가 손목에 한 번 칙, 뿌려 향기를 맡았다.
“음, 향 좋아요.”
“마음에 들어?”
은조가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에 무척 들어요. 고마워요.”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민후도 웃었다. 민후는 씻으러 들어가고 은조는 향수를 다시 손에 들었다.
‘나 주려고 선물까지 산 거야?’
행복해서 자꾸 미소가 배어났다. 결혼하고 몇 번의 출장이 있었지만 한 번도 오면서 선물을 사줬던 기억은 없었다. 남처럼 지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건데 이 작은 변화가 은조를 가슴 뛰게 했다. 아까 그 키스도 그랬고 진짜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 같아서 가슴이 벅찼다. 은조는 유려한 곡선의 향수병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날 생각하며 고르고 골랐을까? 아니면 그냥 직원이 추천해주는 것으로 대충 샀을까?’
아무래도 좋았다. 떨어져 지내는 시간에 자신을 생각한 순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 . . 은조가 욕실에서 씻고 나오니 민후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윗옷을 벗은 모습으로 침대에 있는 그를 보니 은조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아직 노력하는 기간이 남았고 오늘 밤도 그와 잠을 자야 한다. 쿵쿵쿵.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면서도 침대에 있는 그를 의식했다. 그는 침대 헤드에 머리를 기대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은조가 침대로 다가가니 민후가 말했다.
“인형은 장롱에 다시 넣었어.”
“……아. 네.”
그가 없는 허전함을 인형을 안고 자면서 달랬었는데 그가 다시 넣었단다. 오늘은 인형이 필요 없다는 얘기다. 인형 말고 다시 남편을 안고 잔다는 생각에 은조는 가슴이 더욱 뛰었다. 은조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우려고 하니 민후가 팔을 뻗었다. 팔베개를 해주겠다는 의미라 은조는 그의 팔을 베고 누웠다. 몸에 닿는 그의 체온이 반가워서 몸이 떨렸다. 잠시 둘 다 천장만 바라보고 말이 없었다. 두 사람 다 같은 생각으로 가슴이 뛰고 있었다.
“우리 아직 노력해야 하는 기간 남았지?”
민후가 먼저 입을 뗐다.
“……네.”
조용히 대답하자 민후가 몸을 은조에게로 돌렸다. 부스럭대는 침구 소리만 가득한 적막한 밤이었다. 민후가 은조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은조도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작은 조명에 의지한 채라 그의 얼굴 윤곽의 음영이 더욱 뚜렷했다. 남자다운 굵은 선이 더욱 도드라졌다. 민후가 커다란 손으로 은조의 얼굴을 감쌌다.
“괜찮지?”
지금 해도 되냐고 동의를 구하는 건지 그가 물었다. 은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이 비스듬히 다가왔다. 익숙한 그의 호흡이 코끝을 지나 인중으로 번졌다. 곧 따뜻한 입술이 닿았다. 은조는 절로 눈꺼풀이 감겼다. 따뜻한 그의 숨결이 입술에서 입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기분 좋은 감각이 온몸으로 퍼졌다.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입술에서 시작한 감각이 발끝까지 번져나갔다. 현관에서의 키스는 다소 다급하고 거칠었던 반면 지금은 무척 부드러웠다. 눈을 감고 서로의 입술에 집중했다. 키스가 짙어지고 점점 몸에 열이 올랐다. 민후의 몸은 어느새 은조 위에 올라탔다. 못 보던 사이 키스가 더 늘었나, 그의 입술이 더 부드럽고 달콤했다. 은조는 키스만으로 몸이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음.”
저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민후의 손이 은조의 잠옷 속을 파고들었다. 불덩이같이 뜨거운 손이 옆구리를 쓸어올리고 배를 쓰다듬었다. 무릎에 힘이 들어가 다리가 절로 오므려졌다. 그러나 민후의 무릎이 그사이를 파고들었다. 잠옷 속을 파고든 손이 욕망이 가득 실린 채로 부드러운 살갗을 쓰다듬었다.
“흐읏.”
적막한 침실의 공기가 점점 뜨겁게 데워졌다. * 근무시간 뜻밖의 전화가 왔다. 예지였다. 은조는 어제 민후가 했던 얘기를 떠올렸다. 예지가 자신에게 사과하기로 약속했다는 말이었다.
“여보세요.”
예지가 꾸민 충격적인 음모를 들은 후 은조도 전처럼 예지를 대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에 그간 쌓았던 벽이 더 견고해졌다.
[동서. 나야.]
예지의 목소리도 평소 같지 않게 얌전했다.
“네.”
[좀 만났으면 하는데 오늘 퇴근하고 시간 돼?]
“네.”
[그럼 퇴근 시간 맞춰서 집으로 갈게.]
이런 예지의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사나운 기운을 잃어버린 발톱 빠진 살쾡이 같았다. . . . 집으로 찾아온 예지는 기가 팍 죽은 모습이었다. 평소 기본적으로 은조를 깔보던 자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늘 턱을 들고 눈을 내리깔고 쳐다보던 예지는 오늘은 주로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 픽 조소가 흘렀다. 은조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굳은 표정으로 예지를 보았다. 예지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한참을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씀하세요. 찾아온 용건이 있을 거 아니에요.”
은조가 먼저 입을 열자 그제야 예지가 말했다.
“서방님한테 얘기 들었지?”
“네. 대충이요.”
예지가 심호흡하는지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예지의 입에서 나오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단어가 나왔다. 은조는 가만히 예지의 말을 들었다.
“그때 내가…… 계단에서 그랬던 거…… 잘못했어.”
예지는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미안해.”
“계단에서 뭐요? 정확하게 얘기해요.”
은조도 사과는 확실히 받아야겠기에 냉정한 말투로 말했다. 예지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계단에서 미……밀었던 거.”
“왜 밀었어요?”
예지가 힐끗 시선을 들어 은조를 보고는 다시 시선을 내렸다.
“먼저 임신한 게 질투 났어. 서방님이 차기 경영권을 쥐게 될까 봐 조바심이 나서 그랬어.”
예상하고 있었지만, 본인 입으로 직접 들으니 가관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유산시킬 목적이었어요?”
“아니야!”
예지가 고개를 쳐들며 변명했다.
“꼭 그런 생각으로 밀었던 건 아니야. 그냥 나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어.”
“아이가 잘못되기를 바라셨던 거 맞잖아요. 전에 칵테일에 알코올 넣었던 것도 그래서 그랬던 거 아니에요?”
예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 들통난 마당에 언제까지 발뺌할 수는 없었다.
“흐흑. 미안해. 흑. 미안해. 동서.”
예지는 고개를 푹 숙이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니, 우는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