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두 번째 밤2021.12.21.
퇴근 후 집으로 가니 민후가 먼저 퇴근해 집에 와 있었다.
“일찍 왔네요.”
“응. 내일 출장이라 좀 일찍 퇴근했어.”
“네.”
침실로 가면서 보니 그는 이미 출장 가방도 싸 놓았다. 그와 며칠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 실감 났다. 매우 아쉬웠다. 옷을 갈아입고 도우미가 차려준 저녁을 함께 먹었다.
“여사님, 우리가 정리할 테니 일찍 퇴근하세요.”
저녁을 먹을 때 민후가 도우미를 퇴근시켰다. 은조가 시선을 들어 민후를 보았다. 부부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그가 항상 도우미를 일찍 퇴근시켰기에 은조는 이게 신호 같았다. 내일 출장이니 그래도 오늘 밤은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그가 전략상으로 자신과 잔다는 사실을 알지만, 은조는 그래도 기대되고 가슴이 떨렸다. 어제 자신을 안았던 남편이 너무나 다정했기에 그에게는 진심이 없더라도 또 그와 자고 싶었다. 그를 더 좋아하게 되어서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어제처럼 그의 품에 안겨 빈틈없이 살이 맞닿은 그 느낌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그가 선사했던 생경했던 그 감각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내일 몇 시 비행기로 가나요?”
은조가 밥을 먹으며 스케줄을 물었다.
“아침 8시 20분 비행기야. 새벽에 나가야 해.”
“그러면 오늘은 좀 일찍 잘까요?”
그가 잠을 제대로 자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오늘은 일찍 자자고 말했다. 어제는 아마도 두세 시가 넘어서 잠을 잤던 것 같았다. 은조의 말에 민후가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다. 아내가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이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그래.”
민후가 대답하자 은조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었다. 고개 숙인 은조의 귓불이 붉어져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은조가 그릇들을 식기세척기에 넣으며 힐끔 민후를 보았다. 그는 먹었던 반찬통들을 냉장고에 정리해 넣고 있었다. 오늘은 일찍 자자고 했으니 곧 다가올 시간 때문에 은조는 가슴이 두근댔다. 민후가 거실에 있는 욕실로 향하며 말했다.
“씻고 나올게.”
민후와 시선이 마주치고 은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리는 은조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나 준비할 테니 너도 준비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어제는 처음이어서 너무 긴장되어 못하는 술도 마셨는데 오늘은 술은 안 마셔도 될 것 같았다. 은조도 침실에 딸린 욕실에 들어가 씻었다. 뿌연 수증기가 욕실에 가득 찼다. 수증기로 뿌연 거울을 손으로 닦아낸 뒤 자신의 몸을 보았다. 곧 남편에게 보일 생각을 하니 부끄러웠다. 어제 몸을 다 보이고도 막상 오늘 또 닥치니 다시 리셋된 것처럼 긴장되고 떨렸다. 머리를 대충 말리고 지난번에 입었던 슬립을 걸쳤다. 대놓고 준비한 듯한 모습이라 민망하기는 했지만, 부부생활에 마음을 다하고 싶은 제 마음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밖으로 나가니 침실에는 간접 조명만 켜져 어두웠다. 민후가 보이지 않아 의아해하면서 쳐다보는데 옆에서 그가 불쑥 튀어나왔다.
“다 씻었어?”
깜짝이야! 흠칫 놀라며 그를 보았다. 그는 약간 거칠게 호흡하며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모습이었다.
“여기서 뭐 해요?”
민후는 조금 쑥스러워하면서 대답했다.
“잠깐 푸쉬업 좀 했어.”
푸쉬업? 야밤에 무슨 운동을? 방금 샤워하고 나와서 왜 푸쉬업을 하지? 생각하며 그를 보는데 그의 가슴 근육이 평소보다 더 빵빵했다. 살아서 꿈틀대는 것처럼 근육이 움직였다. 그의 팔뚝에는 힘줄이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근육 펌핑하려고 푸쉬업한 거야? 그가 잠자리를 위해서 푸쉬업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은조는 왠지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설마 나한테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한 건가? 근육 펌핑 안 해도 멋있는데. 은조는 평소보다 단단한 가슴 근육과 선명한 복근을 보았다. 손으로 만지고 싶은 충동이 일만큼 멋졌다. 민후가 가까이 다가왔다. 눈앞에 조각상 같은 그의 몸에서 시선을 떼기가 힘들었다. 민후가 손끝으로 은조의 턱을 잡고 살짝 올렸다. 마주친 시선은 곧장 서로의 입술로 향했다. 민후가 얼굴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입술을 맞추었다. 입술을 촉, 촉 베어 물다가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입술을 찾아들었다. 입술을 가르고 서로의 숨결이 파고들었다. 은조도 어제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에게 키스했다. 기다렸던 시간이어서 그런지, 며칠 동안은 그와 떨어져 있어야 해서 그런지 그와의 키스가 더 달콤했다. 떠나기 전에 그의 입술을, 이 감각을 몸이 기억하도록 새기고 싶었다. 은조의 이런 애가 달은 마음은 행동으로도 나타났다. 팔을 둘러 민후의 목을 끌어안았다. 적극적인 모습에 민후가 은조의 허리를 더 당겨 안았다. 이 밤이 아쉬운 건 민후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동안 떨어져 지내야 하기에 이 밤이 지나는 것이 1분 1초가 아까웠다. 빈틈없이 맞물린 입술 사이로 은조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민후는 은조의 허리를 끌어안고 침대 쪽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키스는 멈추지 않았다. 은조는 어느새 침대에 쓰러지듯이 눕혀졌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부채처럼 펼쳐졌다. 그녀가 제 몸 위에 앉은 민후의 몸을 보았다. 그의 선명한 복근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져봐도 돼요?”
은조로서는 엄청 용기를 내어 한 말이었다. 어제의 은조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던 질문이었다.
“얼마든지.”
민후가 대답하며 은조의 손을 잡아서 제 배 위에 올렸다. 손을 펼쳐 굴곡진 근육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얼마나 운동을 해야지 이런 복근을 계속 유지하는 걸까? 운동기구가 있는 방에서 그는 꾸준히 운동하며 관리했다. 남편이 운동을 한다는 것만 알았지 마주할 일이 없었는데 새삼 지난 시간이 아까웠다. 손끝으로 단단한 그의 근육들을 쿡쿡 찔러도 보았다.
“단단하다.”
은조의 행동에 민후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상체를 숙여 은조의 몸 위로 겹쳐 누웠다. 손으로 은조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다시 입술을 겹쳤다. 아까보다 그의 입술은 더 뜨거운 열기를 품었다. 입술이 부딪치는 소리가 적막한 침실에 흩어졌다. 민후도 오늘은 과감했다. 오늘 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까웠다. 그의 손이 은조의 슬립 끝자락에 파고들었다. 그의 손이 예민한 피부를 쓰다듬자 은조의 숨소리가 더욱 짙어졌다. 열기를 품은 그의 뜨거운 숨결이 부드럽고 예민한 그녀의 피부를 쓸었다. 은조는 어제보다 더욱 강렬한 감각들에 몸을 떨었다. 민후가 그녀를 더 깊이 끌어안았다.
“너무 따뜻해. 이대로 계속 있고 싶어.”
빈틈없이 맞물린 두 사람의 몸은 뜨거운 열기로 휩싸였다. 민후의 손가락이 은조의 손가락 사이사이 파고들어 꽉 쥐었다.
“네가 너무 좋아.”
그가 중얼거리듯이 뱉은 말이 은조의 귓가에 흩어졌다. 은조는 눈앞이 하얘지는 감각의 파도가 덮쳐와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못했다.
. . . 물소리가 끊기고 욕실 문이 열렸다. 씻고 나온 은조의 실루엣이 보였다. 잠옷을 입고 있었지만 욕실에서 나온 조명 덕분에 잠옷 속 그녀의 몸이 적나라하게 비쳤다. 민후는 침대 헤드에 머리를 기대고 아내의 모습을 응시했다. 육감적인 아내의 모습에 민후의 본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은조가 침대 위로 올라오며 말했다.
“안 씻어요?”
민후가 이불을 끌어당겨 눕는 은조를 향해 옆으로 누웠다.
“다 끝내고 씻으려고.”
은조가 고개를 돌려 민후를 보았다. 응? 끝난 거 아니었나? 의아하게 쳐다보는데 민후가 은조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얼굴을 기울여 은조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었다. 은조도 가만히 그의 입맞춤에 응했다. 입술을 떼어내고 은조의 눈을 마주 보며 민후가 낮게 말했다.
“한 번만 한다고 얘기한 적 없어.”
그러고는 다시 민후의 입술이 겹쳤다. 입술을 가르고 숨결이 파고들었다. 숨결과 함께 은조의 신음도 낮게 섞였다. 그가 공항에 가기 전에 잠을 잘 수 있도록 일찍 자자고 했건만, 민후는 일찍 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은조도 거부할 생각 없이 키스에 열중했다. 입술이 닿자마자 순식간에 몸이 데워지는 느낌이다. 첫날밤보다 더 빠르게 온몸의 세포들이 키스에 반응했다. 민후의 입술이 그녀의 턱으로, 목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은조는 고개를 젖히고 더운 숨을 연신 뱉었다. 그의 손은 그녀의 잠옷 리본을 풀어내고 있었다. 몸이 점점 뜨거워지자 은조가 달뜬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또 할 거예요?”
민후는 그녀의 부드럽고 예민한 피부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응. 내일 못하는 거 미리 한다고 생각해.”
은조의 잠옷이 그의 손에 의해 벗겨졌다. 민후의 입맞춤은 길게 이어졌다. 이 밤이 흐르는 것이 아까워서 그는 다시 아내의 품에 파고들었다. 몇 시간 후면 아내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애가 달은 몸이 아내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 . . 새벽 4시. 샤워를 끝낸 민후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침대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내는 두 번째 밤을 보낸 후 어제처럼 깊이 잠들었다. 엎드려서 잠든 아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길고 짙은 속눈썹을 가진 아내. 좋아하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이렇게 벅차오르는 것이 정상일까. 민후는 숨죽여 길게 호흡을 내뱉으며 아내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해주었다. 혼자서 마음을 키워오던 때보다 아내를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잠을 자고 살을 맞대는 요즘 민후는 행복감에 젖어 지낸다. 세상이 아내 하나로 달라 보인다고 할까. 민후는 혼자 마음을 점점 키워가는 자신이 불안했지만, 아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민후는 시간을 확인하고 조용히 침실을 나왔다. 지금 잠을 자기는 모호해서 서재에서 중국에서 할 미팅 자료를 보고 출발할 생각이었다. 1시간여 후, 셔츠를 입은 민후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넥타이를 매며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민후는 발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장롱을 열어 아내의 애착 인형을 꺼냈다. 자신이 옆에 없으니 안고 잘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인형을 아내 옆에 살며시 놓아두었다. 가기 전에 아내에게 뽀뽀하고 싶은데 행여나 아내를 깨울까 염려스러웠다. 뽀뽀는 포기하고 숨죽여 작게 말했다.
“다녀올게.”
여전히 평온하게 잠든 아내를 보며 미소 짓고는 집을 나왔다. * 은조는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의 빈 옆자리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어떡해. 자느라 가는 것도 못 봤어.”
자신이 언제 어떻게 잠들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그와 다시 밤을 보낸 것은 기억나는데 끝이 기억나지 않았다. 아득해진 정신에 기절이라도 한 걸까. 속옷조차 입지 않고 잤던 것을 인지하고는 창피해 은조는 이불을 당겨 얼굴을 묻었다.
“미쳤어. 민후 씨가 얼마나 속으로 웃었을까?”
고개를 든 은조가 시계를 확인했다.
“8시 20분 비행기라고 했지?”
아직 출발하기 전이다. 은조는 핸드폰을 찾았다. 며칠 못 볼 텐데 마지막으로 얼굴을 못 보고 보낸 게 너무나 아쉬웠다. 그것도 미련하게 자느라 그랬다는 사실에 자신이 한심했다. 민후에게 전화를 거는 은조는 초조한 얼굴이었다.
[응. 일어났어?]
한없이 다정한 남편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