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매일 밤 얼마나 이러고 싶었다고2021.12.07.
민후는 점점 흥분되어 터질 것만 같은 몸뚱이와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아내와 같이 자기 시작하면서 매일 밤 인내심을 테스트하듯이 지냈다. 어떤 날은 한계까지 도달한 적도 있었다. 억눌렀던 욕정이 키스에 폭발하듯이 터져버렸다. 온몸이 빠르게 불덩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러다가 진짜 짐승처럼 달려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닿은 입술을 잠시도 뗄 수가 없었다. 갈증에 목말라 샘을 찾는 것처럼 허겁지겁 아내의 입술을 물고 또 물었다. 남편의 격렬한 키스에 버거워 헐떡이며 키스하던 은조는 점점 몸이 위로 올라갔다. 민후는 또 애가 달아 따라 올라가 그녀의 입술을 놓치지 않았다. 침대 헤드에 머리가 닿자 민후가 입술을 떼어내고 은조를 보았다.
“헉헉.”
숨을 헐떡이며 아내가 올려다보았다.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가슴은 빠르게 오르내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든 것 같았다. 민후가 고개를 숙여 아내를 가만히 안았다. 은조의 목과 어깨 사이로 민후가 얼굴을 묻었다.
“날 욕정에 눈이 먼 짐승 같다고 생각하지 마.”
민후가 거친 숨과 함께 말했다.
“그동안 흥분시킨 당신 책임도 있어.”
은조는 호흡을 고르며 귓가 근처에서 들리는 그의 말을 들었다.
“매일 밤 얼마나 이러고 싶었다고.”
나지막한 그의 말에 은조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매일 참았었다고? 잠시 호흡을 고르던 민후가 얼굴을 들었다. 은조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가 천천히 팔을 아래로 움직였다. 그의 손이 불덩이라도 된 것처럼 뜨거웠다. 기분이 이상했다. 몸에 열기가 퍼지는데 키스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무릎이 절로 오므려지고 발가락까지 힘이 들어갔다. 은조는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과 두려움이 공존했었다. 그의 손길에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것처럼 이상한 감각이 온몸에 퍼졌다. 그러자 두려움이 조금 더 강해졌다. 이런 느낌이 정상인 걸까? 몸이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은데, 괜찮은 걸까? 두려움으로 은조는 바르르 몸이 떨렸다. 은조의 긴장과 떨림은 민후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민후가 고개를 들고 은조를 내려다보았다.
“겁나?”
은조가 떨리는 눈동자로 민후를 보며 대답했다.
“처, 처음이라서. 못해도 이해해줘요.”
은조는 할머니의 통제 속에 자라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 시절 몇 번의 데이트를 했던 남자도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남자가 은조를 피하기 시작했다. 은조는 할머니가 연애도 통제하고 간섭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신 할머니가 사귀어보라며 남자를 지정해주기도 했다. 남녀 마음이 그리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지라 은조는 그 남자에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할머니는 접근시도조차 하지 않는 은조에게 등신이라며 욕을 퍼부었었다. 그 후로도 은조는 제 마음대로 연애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남자에게 아예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다. 그러니 이런 진한 스킨십이 익숙하지 않은 건 당연했다. 민후는 아내의 떨림이 온몸으로 느껴지자 이대로 계속 이어갈 수가 없었다. 민후가 은조를 가만히 안았다.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겁나면 안 해도 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임신 가능한 D-Day는 어차피 모레이고 여기서 더 진행하면 민후는 제 욕구를 참지 못해 아내를 안은 것밖에 되지 않는다.
“예행연습이었다고 생각해.”
민후가 손으로 은조의 얼굴을 감싸고 부드럽게 미소 짓고는 말했다.
“대신 모레는 멈추지 않을 거야.”
* 은조는 출근하면서도, 근무시간에도 문득문득 어젯밤 일이 생각났다. 그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의 아이를 갖기로 합의하고, 같은 침대를 사용하고, 그를 안고 자고 키스하면서, 항상 남편과의 첫날밤에 대한 설레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부부관계에 대한 느낌이나 지식은 책에서나 봤던 것이 고작이어서 실제가 궁금하기도 했었다. 막상 키스보다 더 진도가 나가자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찔한 감각이 온몸을 덮쳐 겁이 나기도 했다. 몸이 이상하게 변할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 느낌이 나쁜 건 결코 아니었다. 그저 갈수록 이상한 감각의 크기가 커지자 겁이 났던 것 같다. 원래 그런 거라면 꾹 참고 있어야 했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3시쯤에는 항상 커피숍으로 내려가 커피 한잔을 마시며 친구 시은과 수다를 떨었다. 커피숍으로 내려가니 오늘따라 커피숍이 한산했다.
“손님이 없네? 장사 안 되니?”
“단체 손님 한바탕 쓸고 지나갔어.”
시은은 이제야 바쁜 거 지나고 한숨 쉰다고 했다.
“너 올 시간 되어서 오면 같이 마시려고 미리 커피 내렸지.”
시은이 웃으며 커피를 가져왔다. 머그잔을 들면서 은조가 시은의 표정을 보며 말했다.
“너 기분 좋아 보인다? 좋은 일 있어?”
“나? 기분 좋아 보여?”
시은이 제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며 물었다. 은조는 시은이 기분이 좋은 이유를 대충은 알 것 같았다.
“방금 관장님 왔다 가셨니?”
짝사랑하는 관장님 얼굴이라도 본 것이 틀림없다. 시은이 배시시 웃었다.
“아까 점심 드시고 오셨었어. 오늘은 나한테 뭐라고 하신 줄 알아?”
“뭐라고 하셨는데?”
“사무실에 커피머신이 있는데도 여기 커피가 맛있어서 자꾸 오게 된다고. 이거 그린라이트지? 그치?”
시은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우유 거품으로 하트라도 그려 넣어줬어?”
시은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라떼를 드시면 하트 열 개라도 만들어드리지. 그런데 아메리카노만 드셔.”
지난번에 같이 점심도 먹었는데 그때 관장님이 워낙 사무적으로만 대해서 시은이 영 다가갈 용기가 안 나는 모양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청명한 하늘을 보며 시은이 푸념했다.
“날씨 대박 좋네. 아, 나도 연애하고 싶다.”
은조도 따라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았다.
“이러다 연애 세포 다 죽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남자랑 키스해본 지가 언제냐.”
은조가 알기로도 시은의 마지막 연애는 꽤 오래전이었다.
“아주 입에 거미줄 치겠다, 거미줄 치겠어.”
시은이 과장되게 툴툴댔다. 키스 얘기가 나오니 은조는 어젯밤 일이 또 생각났다. 머릿속에 온통 D-Day 생각이던 은조가 어깨로 시은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너 있잖아.”
시은이 돌아보았다.
“혹시…….”
은조가 쉽게 얘기를 꺼내지 못하자 시은이 물었다.
“뭐, 왜?”
“사귀었던 사람이랑 그…… 경험 있어?”
“응?”
“육체적인…… 어, 어른의 대화 있잖아.”
은조는 호기심 많은 여고생이 된 기분으로 친구에게 물었다. 시은은 장난인가 싶어 쳐다보니 은조의 표정이 무척 비장했다. 진지한 얼굴로 쳐다보는 은조를 보며 사적인 질문이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
“많이는 아니고. 연애를 해봤으니 경험은 있지.”
시은은 은조가 갑자기 이런 주제를 꺼낸 것이 의아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런 얘기는 좀처럼 하지 않던 은조라서 그랬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은조가 창피한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있지, 남자랑 사랑을 나눌 때 있잖아.”
“응.”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만 있어도 돼?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 팔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남자가 이렇게 하면 나도 호응을 해줘야 하는지. 숨 소리도 내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너 설마…….”
시은이 놀라 눈이 커진 채로 물었다.
“한 번도 안 했어?”
“……응.”
은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절친이긴 해도 이런 사생활까지는 공유하지 않았기에 은조는 조금 창피했다. 이 나이 되도록 경험이 한 번도 없는 것이 자랑거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시은은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은은 은조가 강제로 한 정략결혼이긴 해도 결혼해서 살고 있으므로 남편과 부부관계를 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진짜야? 한 번도? 결혼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응. 사실 한방에서 같이 잔 지도 얼마 안 되었어.”
은조는 모든 것을 다 얘기할 수는 없었지만 최근 들어 남편과 친해졌다고 설명했다. 시은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너희 남편, 진짜 괜찮은 남자다. 같은 집에서 1년이나 살면서 선을 안 넘었다고? 그런 남자 흔하지 않을 텐데.”
시은이 민후에 대한 감탄을 내뱉다가 말했다.
“그래서 지금 진짜 첫날밤을 앞두고 있다는 그 말이잖아?”
시은이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이 언니가 성교육에 좋은 영화 몇 개 추천할게.”
그러자 은조가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영화? 그거 이상한 거 아니야? 너 그런 것도 봐?”
은조는 시은이 아주 진한 어른의 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말하는 줄 알고 인상을 썼다.
“그런 거 아니야.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에 정식 등록된 작품이라고.”
시은이 핸드폰을 열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앱을 보여주었다.
“너 여기 가입되어 있니?”
“아니.”
“내 아이디 알려줄게. 아이디 공유할 수 있는 거야.”
시은이 핸드폰으로 볼 수 있는 영화를 몇 개 추천해 주었고 몇 가지 조언도 해주었다.
“적극적으로 감정 표현을 해.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싫은 건 싫다고 표현하고.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고 요구해도 돼. 같이 즐거워지자고 하는 거잖아.”
은조는 과연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직 은조에게는 머나먼 얘기 같았다.
“알았어. 이거 보면서 미리 익혀 둘게.”
“아니면 그냥 남편한테 다 맡겨. ‘여보, 날 어떻게 하든지 좋아요, 당신 마음대로 해요. 날 가져요.’ 이렇게.”
“어휴, 그게 뭐야.”
시은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은조는 눈을 흘기며 같이 웃었다. * 은조는 하루 앞으로 다가온 D-Day에 시은이 추천해 준 영화를 볼 생각이었다. 혼자서 은밀하게 봐야 하는데 민후가 오늘따라 일찍 퇴근하고 오는 바람에 영화 볼 기회를 놓쳤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민후는 항상 서재에서 남은 업무를 하므로 그때 혼자 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서재에 들어가면 보통 2시간 이상은 보내는 편이었다. 민후가 서재에 들어가고 은조는 핸드폰을 들고 침대에 누웠다. 시은이 추천한 영화를 재생했다. 처음에는 평범한 로맨스 영화 같아서 이 영화가 그런 영화가 맞나 싶었다. 하지만 중반이 되자 러브씬이 몰아쳤다. 은조는 얼굴이 홧홧해졌다. 소리가 방 밖으로 들릴 것 같아서 볼륨도 최대한 낮추었다. 그런데도 영화 속 주인공들의 야릇한 목소리는 유독 크게 들리는 것만 같다. 은조는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속에서 야한 장면을 보는 은조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화면 속에는 신세계가 펼쳐졌다. 왜 여태 이런 세상을 모르고 살아왔는지 살아온 세월이 후회스러웠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은조는 방문이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영화에 몰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