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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오늘은 안 참을 거라고 했지 (27/100)

27. 오늘은 안 참을 거라고 했지2021.12.04.

민후는 윤 회장에게 아내에게 간섭과 강요를 하지 말아 달라 요구했고 윤 회장은 이에 돈을 요구했다. 요구한 10억까지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금액을 명신제지에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이혼에 관해서는 윤 회장도 물러나지 않았다. 계약대로 기간이 지나면 이혼하라고 했다. 민후는 이혼하게 되더라도 아내가 윤 회장으로부터 독립하게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그녀가 할머니로부터 독립하는 것에 한 걸음 나아가는 거로 생각하기에 성과는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셔츠 소매의 커프스를 채우던 민후는 파우더룸에서 화장하는 아내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민후는 어제의 사건을 겪고 아내에 대한 감정이 더 깊어졌다는 걸 느꼈다. 연락이 안 되는 두어 시간 동안 온몸에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극도로 불안감을 느낀 것도 처음이었다. 화장을 끝내고 아내가 목걸이를 채우려는 모습을 보고 다가갔다.

16551885237471.png“내가 도와줄게.”

16551885237477.png“고마워요.”

은조가 긴 머리를 한쪽 옆으로 넘겨주었다. 그녀의 가늘고 긴 목에 목걸이를 채우며 민후가 말했다.

16551885237471.png“윤 회장님, 이제 당신한테 간섭 안 할 거야. 어떤 강요도 안 하기로 했어. 물론 아이 문제도.”

은조가 거울을 통해 민후를 보며 놀란 눈을 했다.

16551885237477.png“정말이에요?”

16551885237471.png“나랑 약속했어. 오늘 회사 가서 서면으로 확실히 해둘 생각이고.”

민후는 그 뒤에는 돈거래가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16551885237477.png“할머니가 정말 그랬다고요?”

은조는 못 미더운 눈치였다. 할머니가 그렇게 쉽게 자신을 포기할 거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16551885237471.png“아이 낳는 문제도 부부인 우리가 결정하기로 했고 더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약속했어.”

은조가 상체를 돌려 뒤에 선 민후를 올려다보았다. 민후를 바라보는 은조의 얼굴에 어떤 간절함과 희망이 언뜻 비쳤다. 민후와 자신 사이에서 할머니가 빠지면 자신이 그렇게도 원하던 진짜 부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16551885237477.png“그럼, 그 계약서는요? 결혼한 계약서도 무효가 되는 거예요?”

기간이 지나면 이혼하기로 한 계약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16551885237471.png“아니. 계약은 유지야.”

윤 회장은 원래 계약대로 이혼하기를 바랐다. 그것만은 민후가 원하는 대로 윤 회장이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은조 얼굴에 실망감이 비쳤다.

16551885237477.png‘그가 계약을 무효로 할 리가 없지. 그는 기간이 지나면 이혼하기를 원한다고 할머니가 그랬어.’

은조는 얼마 전 할머니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실망한 기색을 애써 감추었다.

16551885237477.png‘그는 지분 때문에 아이가 필요하니까 할머니의 간섭을 막은 거구나. 결혼에 대한 계약은 유지되는 거고.’

은조는 자신의 바람대로 될 수는 없지만, 그와 사는 동안은 할머니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살 수 있으니 그것대로 좋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살 기회가 이제는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와의 결혼생활에 충실해지고 싶었다. 민후가 은조의 발목을 보며 물었다.

16551885237471.png“깁스 언제 풀지?”

16551885237477.png“내일 병원에 가서 풀 거예요.”

16551885237471.png“깁스 풀면 우리가 계획했던 거 노력해보자. 임신 기간과 출산이 너무 차이나면 곤란하니까.”

은조가 거울을 통해 민후를 보았다. 거울에 비친 민후의 표정은 무척 다정해 보였다. 방금 했던 말이 그가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겠다는 뜻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다정한 얼굴과 말투에 은조는 설레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지분 욕심으로 아이가 필요한 것이지만 은조는 달랐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그 자체로 은조 인생에서 선물이 될 것 같았다. 그도 마음이 급해졌을 것이다. 은조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곤란한 시기였다. 은조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16551885237477.png“지금 생리 중이라 아기를 가질 수 없어요.”

이런 얘기를 남편에게 하는 건 민망했다.

16551885237477.png“생리가 끝나고 다음 배란기를 기다려야 해요.”

시선을 내리고 말을 끝낸 은조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민후는 여자의 몸이 임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세심하게 체크하지 못했다.

16551885237471.png“그게 언제인데?”

은조가 화장대 위에 있던 탁상 달력을 들어서 날짜를 세어보더니 손가락으로 짚었다.

16551885237477.png“이날부터 이날까지가 임신가능기간이에요.”

약 일주일 뒤부터 9일간이었다. 민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16551885237471.png“그래. 그 기간에 맞추기로 해.”

은조는 얼굴이 확 붉어졌다. 화장했지만 그걸로는 가려지지 않을 정도였다.

16551885237471.png“그때는 매일 해보자.”

그렇게 말하고 민후가 나갔다.

16551885237471.png‘그때는 매일 해보자.’

생각만 해도 가슴이 쿵쿵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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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551885297696.png“여기야?”

예지가 운전 기사에게 물었다. 예지가 탄 차가 다세대주택이 즐비한 어느 골목 앞에 섰다. 차에서 내린 예지가 다세대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2층의 집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젊은 여자가 문을 열었다.

16551885297701.png“누구세요?”

16551885297696.png“이선주 씨?”

16551885297701.png“그런데요. 누구세요?”

예지는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면 될까 생각하다가 말했다.

16551885297696.png“글쎄, 어떻게 얘기하면 될까?”

예지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16551885297696.png“간단하게 강민후 전무 형수님이라고 할게요.”

선주가 놀란 얼굴로 겁을 먹은 듯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강 전무님 형수님이라고?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이 불만이어서 찾아왔나? 선주는 예지가 민후와 집안사람이라 자신에게 악감정을 품고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16551885297701.png“저, 절 왜 찾아오신 거죠? 강 전무님 근처에 얼씬도 안 했어요!”

예지가 손을 뻗어 선주의 손등에 얹고 말했다.

16551885297696.png“아, 오해하지 말아요. 난 선주 씨를 도우려고 온 거예요.”

16551885297701.png“……네?”

16551885297696.png“우리 서방님 좋아하시죠?”

선주는 여전히 예지를 못 미더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16551885297696.png“제가 도울 수 있어요.”

  * 발목 깁스도 풀었고 날짜는 하루하루 지났다. 은조는 침실에 있던 달력에 민후가 동그라미를 쳐놓은 것을 어느 날 발견했다. 자신이 얘기한 임신가능기간이었다. 그는 달력에 표시까지 해두고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은조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볼 때마다 마치 D-Day 같아서 긴장감으로 몸이 경직되었다. 하루하루 날짜가 지날 때마다 민후도, 은조도 그것 때문에 서로를 더 의식하게 되었다. D-Day가 이틀 남은 밤. 민후가 누워 있는 침대에 은조도 누웠다. 이제 안고 자던 인형은 치운 지 좀 되었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남편을 껴안고 눈을 떴다. 은조가 눕자 민후가 팔을 뻗으며 말했다.

16551885237471.png“어차피 나중에 안고 잘 건데 처음부터 안아.”

똑바로 누워 자다가도 아침엔 항상 남편을 안고 있었던 터라 은조도 할 말이 없었다.

16551885237477.png“불편했죠? 오늘은 얌전히 잘게요.”

16551885237471.png“안 불편하다니까. 몇 번을 말해.”

민후가 은조의 머리 아래로 팔을 넣어 팔베개를 해주었다.

16551885237477.png“제가 잠결에 자꾸 만져서 잠을 못 잔다고 했잖아요. 고치려고 손에 뭔가를 쥐고 자기도 했는데 잘 안 고쳐지네요.”

은조는 인형 코를 만지고 자던 버릇을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밤마다 민후를 괴롭게 했다. 민후는 새벽마다 몰래 일어나 찬물로 샤워하거나 새벽 운동을 나가기도 했다.

16551885237471.png“오늘은 괜찮아. 만지고 싶으면 만져.”

민후의 말에 은조가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16551885237471.png“오늘은 나도 그냥 참지는 않으려고.”

은조가 눈만 깜빡이며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민후가 고개를 돌려 은조를 보았다.

16551885237471.png“흥분시키면 안 참을 거야.”

민후의 얼굴엔 장난기도 슬쩍 비쳤다. 은조는 그가 농담으로 하는 말인지 진짜인지 헷갈려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다. 민후는 새벽마다 아내의 손이 제 가슴 위로 올라올 때마다 점점 한계를 느꼈다. 참기가 힘들어 아내를 안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세상모르게 자는 아내를 보면 참아내야만 했다. 욕구 때문에 자는 사람을 깨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참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날이 다가오는데 예행연습이라도 하면 좋지 않나. 민후가 말했다.

16551885237471.png“날 못 자게 하면 나도 똑같이 못 자게 할 테니 각오해.”

선전포고하듯이 말하고 민후는 눈을 감았다. 은조는 제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어쩐지 오늘은 손버릇이 나오면 큰일 날 것만 같다. . . . 오늘도 어김없이 은조가 민후의 몸을 껴안았다. 젤리 코를 찾는 못된 손도 어김없었다. 은조의 손이 민후의 몸을 더듬더듬 타고 올라갔다. 잠에서 깬 민후가 오늘도 역시나, 하는 얼굴로 픽 웃었다. 새벽이라 그런지 아내의 손길에 순식간에 몸이 달아올랐다. 서서히 몸속의 피가 뜨겁게 데워지는 느낌이다. 민후는 후우,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내를 보았다. 평온하게 잠든 얼굴이 얄미웠다. 매일 잠도 못 자게 이렇게 깨우면서 혼자서 꿀잠 자고 있다. 오늘은 혼자서 꿀잠 자게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16551885237471.png“지금 손 떼지 않으면 나 폭발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했지만 자는 사람이 들을 리는 없었다. 민후가 몸을 더듬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잡고 있으니 아내가 잠에서 깨 눈을 떴다. 부스스 눈을 뜬 은조가 민후를 보았다. 눈에 졸음이 가득한 채로 무슨 상황인지 눈을 끔뻑였다.

16551885237471.png“못 자게 하면 나도 못 자게 할 거라고 했지.”

은조가 정신을 차리더니 말했다.

16551885237477.png“아, 제가 또 그랬어요? 미안해요.”

자신이 또 잠결에 남편의 신체를 만졌나보다 생각하며 사과했다. 손을 빼내려고 하는데 민후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16551885237471.png“오늘은 안 참을 거라고 했잖아.”

민후의 말에 은조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 하나 없었다. 민후가 상체를 들어 은조를 내려다보는 자세를 했다. 은조는 조금 놀라 커다래진 눈으로 그를 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염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은조는 어젯밤에 그가 했던 말이 장난이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가 오늘은 진지하게 부부관계를 제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6551885237471.png“많이 졸리는가? 깨워서 혹시 짜증 났어?”

일렁이는 눈빛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16551885237477.png“아뇨.”

16551885237471.png“…….”

민후가 말없이 은조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과 눈빛만으로 그가 뭘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이 은조의 입술과 눈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16551885237471.png“이제 참을 필요 없는 거 맞지?”

은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렇게 참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민후는 갑작스럽게 다가가면 아내가 부담스러울까 배려해서 참았지만, 은조는 사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민후의 눈빛이 정염으로 더욱 일렁이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이 다가오자 은조는 눈을 감고 턱을 조금 들었다. 감은 은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입술이 닿았다.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입술만 물었다 놓았다 하는 베이비키스가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입술이 닿았을 때는 민후가 은조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뜨거운 숨결이 밀려들어 아찔한 감각이 입술에서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은조는 저도 모르게 소리도 냈다. 그러고는 스스로 놀라 어깨를 흠칫 떨었다. 민후의 상체가 은조의 몸을 비스듬히 덮었다. 온몸에 퍼지는 야릇한 감각에 손을 어찌할 줄 모르던 은조는 민후의 두꺼운 팔을 잡았다. 그와 맞닿은 심장은 세차게 쿵쿵 뛰었다. 뜨거운 숨결이 쉴 틈 없이 밀려들어 호흡조차 힘들었다. 민후의 팔을 잡은 은조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점점 격렬하게 파고드는 거친 키스에 은조는 따라가기도 벅찼다. 키스가 고작 세 번째이긴 하지만 이렇게 거칠게 몰아붙이는 민후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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