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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셋 셀 동안 못 나가면 뽀뽀한다 (24/100)

24. 셋 셀 동안 못 나가면 뽀뽀한다2021.11.23.

16551884490761.png“외간남자랑 먹는 게 더 맛있었나 보지?”

은조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네? 민후는 무표정한 얼굴로 차를 출발시켰다.

16551884490766.png‘외간남자? 관장님이랑 밥 먹은 거로 저렇게 얘기하는 거야?’

은조는 민후가 꼭 질투하는 것처럼 말하는 게 의아했다.

16551884490766.png“혹시 아까 점심 거절해서 화났어요?”

16551884490761.png“아니.”

민후는 앞만 보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심술이 났지만 그렇다고 쪼잔한 남편이 되기는 싫었다. 은조는 민후의 표정을 살피다가 고개를 돌렸다. 원래 무표정이 디폴트인 민후라서 그의 표정으로 기분을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16551884490766.png‘그렇지. 질투 같은 거 할 리는 없지.’

  . . . 집에 돌아와서도 민후는 시선이 자꾸만 아내에게 갔다. 왠지 모르게 조바심이 났다. 뭔가 채워지지 않은 불안함. 질투심 때문에 아내에 대한 소유욕이 더 생겼다고 할까. 아내가 절뚝이며 드레스룸으로 갔다. 민후가 따라가며 말했다.

16551884490761.png“필요하면 나한테 얘기하라니까. 내가 다 심부름해준다고.”

민후는 아내에게 뭐든 말만 하라고, 자기를 머슴처럼 부리라고 했지만, 은조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16551884490766.png“조금씩 걸을 수 있는데요, 뭘.”

민후는 그 핑계로 아내와 한 번 더 얘기하고, 한 번 더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런 민후의 마음을 몰라주고 은조는 자신이 직접 움직였다.

16551884490761.png“뭐가 필요해? 뭐 줘?”

16551884490766.png“아니에요. 제가 가지러 갈 거예요.”

은조는 그날이 다가와서 여성용품을 가지러 간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16551884490761.png“말해. 내가 해준다고.”

민후는 은조의 앞을 가로막았다. 난감한 은조가 민후 옆으로 돌아서 가려고 움직였다.

16551884490761.png“내가 갖다 준대도. 말만 하라고요. 마나님! 머슴이 다 해준다고요.”

평소 농담도 잘하지 않는 민후가 장난까지 쳤다. 은조는 난감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여성용품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겠냐고요.

16551884490766.png“나중에 다른 거 부탁할게요. 이건 제가…….”

장난기가 발동한 민후가 팔을 들어 벽을 짚었다. 은조가 벽과 민후 팔 사이에 갇혀버렸다. 다친 발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수도 없어 은조가 당황하며 올려다보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한 아내의 표정은 언제봐도 사랑스러웠다. 웃음기를 머금은 민후가 얄밉게 협박했다.

16551884490761.png“나한테 안 시킬 거면 여길 빠져나가야 해.”

에? 은조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았다. 이런 장난을 치는 남편은 처음이었다. 민후는 아내에게 이렇게 장난 거는 것도 즐거웠다.

16551884490761.png“빠져나가 봐.”

은조가 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걸 알기에 이러면 오래 붙어 있을 수 있었다. 은조가 몸을 옆으로 틀어 반대쪽으로 가려고 하자 나머지 팔도 벽에 짚었다. 은조는 민후와 벽 사이에 완전히 갇힌 모양이 되었다. 벽에 팔을 짚고 민후가 장난스럽게 내려다보았다. 그의 몸이 점점 앞으로 다가왔다. 몸이 점점 가까워졌다. 눈을 내리깔고 아내를 보며 민후가 낮게 말했다.

16551884490761.png“셋 셀 동안 못 빠져나가면 뽀뽀한다.”

16551884490766.png“……!!”

은조가 놀라서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16551884490761.png“하나.”

민후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몸을 지그시 누르며 얼굴이 다가오니 이미 빠져나가기는 틀렸다. 은조도 빠져나갈 생각은 없었다. 다가오는 그의 입술을 보며 그와 뽀뽀하고 싶었으니까.

16551884490761.png“두울.”

쿵쿵쿵쿵.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은조는 그의 입술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빠져나갈 생각 없다고 그에게 말하고 싶은 것처럼.

16551884490761.png“셋.”

곧바로 그의 입술이 은조의 입술을 덮쳤다. 입술이 닿자마자 민후의 숨결이 뜨겁게 밀려왔다. 민후는 종일 질투심으로 끓어오르던 아내에 대한 소유욕을 키스에 모조리 퍼부었다. 그의 숨결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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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날, 한창 근무 중이던 은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할머니였다. 은조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쿵 뛰었다. 할머니가 왜 전화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할머니는 얼마 전 산부인과에 예약해놓았다고 아이를 지우라고 말했다. 병원에 왜 가지 않았느냐고 추궁할 것이 분명했다. 계속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두려움이 점점 몰려왔다. 가까스로 전화를 받았다.

16551884490766.png“네. 할머니.”

16551884558774.png[전화를 왜 이렇게 늦게 받아?]

예상대로 까칠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16551884558774.png[근처 다 왔어. 잠깐 나와.]

16551884490766.png“네?”

근처까지 왔다는 말에 은조는 난감했다.

16551884490766.png“근무 중이에요.”

16551884558774.png[잠깐 나오는 그것도 못 하니? 내가 직접 올라가?]

목소리를 들어보니 심기가 영 불편해 보였다.

16551884490766.png“알았어요. 나갈게요.”

은조는 깁스한 발로 절뚝이며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입구로 들어오는 할머니의 차가 보였다. 은조가 다가가자 운전기사가 내려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차에서 얘기할 생각인가 보다 생각하며 은조는 뒷자리에 탔다. 할머니 옆에 앉자 할머니가 즐겨 사용하는 향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후각은 기억의 잔상들을 떠올리게 하곤 하는데, 할머니의 향수 냄새는 은조에게 좋은 기억이 없었다. 불안과 긴장, 공포감 같은 것들만 생각나게 했다. 학창시절 하루가 멀다고 방에 불려가 혼이 났다. 어떨 때는 종아리를 걷어 매를 맞았고, 어떨 때는 뺨도 맞았다. 할머니가 원하는 성적을 내거나 잘해도 칭찬 한마디를 듣지 못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은조는 할머니 앞에서 주눅 든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 뻔해서 은조는 어떻게 얘기할까? 생각 중이었다. 다리를 다쳐서 못 갔다는 핑계로는 부족할 것이 분명했다. 언제까지 변명만 할 수도 없고, 아이를 지우기 싫다고 얘기를 해야 한다. 은조는 한 번도 할머니의 말을 거역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이었다.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것이.

16551884558774.png“다리는 왜 그래?”

윤 회장이 물었다. 보통의 할머니처럼 걱정해서 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16551884490766.png“넘어져서 다쳤어요”

다쳤다는 말에도 윤 회장은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치건 말건 그런 건 지금 윤 회장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윤 회장이 눈을 내리깔고 은조를 보았다.

16551884558774.png“너 점점 간땡이가 부어가는구나.”

은조는 양손을 마주 잡고 할머니를 쳐다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 무서운 눈과 마주치면 아무 말도 못 할 것이 뻔했다.

16551884558774.png“내가 양 박사님 병원에 가라고 했어, 안 했어?”

16551884490766.png“…….”

은조는 맞잡은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었다.

16551884558774.png“언제부터 내 말을 우습게 들었니?”

16551884490766.png“…….”

16551884558774.png“당장 오늘 병원 가자. 들어가서 일이 있어 일찍 퇴근한다고 말하고 나와. 내가 데리고 갈 테니까.”

같이 병원 가자는 말에 은조는 용기를 냈다.

16551884490766.png“시, 싫어요.”

윤 회장의 고개가 천천히 은조에게 돌아갔다. 마치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는 듯.

16551884558774.png“뭐라고 그랬니, 지금?”

16551884490766.png“병원, 안 가요.”

윤 회장은 이게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은조를 응시했다. 이렇게 반항하는 것이 처음이니 그럴 만도 했다.

16551884490766.png“아이, 낳을 거예요. 낳고 싶어요.”

은조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없는 아기지만 아이를 낳고 싶기에 그렇게 말했다.

16551884558774.png“뭐?”

16551884490766.png“아이 낳을 거예요.”

두려움이 가득한 눈동자로 할머니를 보았다. 무서운 눈과 마주치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그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윤 회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바람 빠진 소리를 내다가 말했다.

16551884558774.png“아주 미쳤구나?”

16551884490766.png“…….”

16551884558774.png“낳아서? 낳아서 어쩔 건데?”

윤 회장이 언성을 높여 소리 질렀다.

16551884558774.png“이혼할 건데 무슨 아이야!”

떨리는 눈동자로 바라보던 은조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16551884490766.png“이혼……하기 싫어요.”

16551884558774.png“뭐?”

16551884490766.png“이혼하기 싫다고요.”

용기를 내 겨우 말을 뱉고는 두려운 눈으로 윤 회장을 보았다. 윤 회장은 이혼하기 싫다는 은조의 말을 듣고 조금 놀란 듯했다. 민후도 은조도 둘 다 이혼을 원치 않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유정이 대신 들어간 그 자리에서 은조가 행복하게 사는 꼴을 볼 수는 없었다. 윤 회장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16551884558774.png“며칠 전에 강 전무랑 통화했어. 강 전무도 계약 끝나면 이혼한다고 했어. 더 결혼생활 이어갈 생각이 없는 사람이야.”

윤 회장은 은조를 속이기 위해 없는 얘기를 지어냈다. 민후와의 통화에서 민후는 분명 계약 끝나고도 이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마음이 변했다고 했었다. 두 사람 다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윤 회장은 더 불안해진 것이다. 민후가 이혼을 원한다는 말에 은조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민후의 진심에 대해서는 은조도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아이를 낳은 후 어떻게 할지는 아직 얘기해본 적이 없었다. 은조는 아이를 낳고 그와 가정을 이루고 계속 살고 싶었지만, 그가 이혼할 생각이면 다 끝난 것이다. 은조 혼자서 이혼을 원치 않는다고 해봤자 소용없었다. 희망이 무너지고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16551884490766.png‘그는 진짜 단지 지분 욕심 때문에 아이를 원하는 거였나?’

16551884490766.png‘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고 살 생각은 애초 없었던 거구나.’

은조는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리듯 아팠다.

16551884558774.png“강 회장이 손주를 원하니 애를 낳게 되면 그 집에 애를 두고 넌 나와야 해. 너도 네 엄마처럼 그렇게 살고 싶니? 애 얼굴 한 번 못 보고 가슴에 묻어두고 살고 싶어?”

윤 회장은 은조의 친모를 들먹이며 은조의 가슴을 후벼팠다. 은조는 엄마 생각에 눈물이 고였다.

16551884558774.png“나랑 강 전무랑 한 계약서에 3년 후에 합의이혼이라고 쓰여 있어. 사업가인 강 전무가 그런 계약 조항 무시하고 애를 낳았다는 이유로 이혼 안 할 것 같아?”

윤 회장은 이 결혼은 엄연히 계약서가 존재하는 결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16551884558774.png“사업이익을 위해 필요해 결혼한 것이지, 애 낳고 살 생각이 없다 이 말이야! 알겠니? 이 맹추야!”

아이를 낳게 되더라도 그와 이혼하는 건 정해진 순서구나.

16551884558774.png“키우지도 못할 애, 뭐 하러 낳겠다는 거야?”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16551884490766.png“좋아해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는 은조의 입에서 읊조리듯 흘러나온 말이었다.

16551884558774.png“뭐?”

윤 회장이 인상을 쓰며 쳐다보았다.

16551884490766.png“민후 씨를 좋아해요. 그의 아이를 낳고 싶어요.”

울먹이는 말끝에 은조는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어이없다는 듯 윤 회장은 코웃음을 쳤다.

16551884558774.png“허! 가지가지 하는구나. 한은조.”

윤 회장이 조롱하듯이 말했다.

16551884558774.png“꿈 깨.”

흐느끼는 은조의 머리 위로 악담이 쏟아졌다.

16551884558774.png“강 전무가 너랑 몇 번 잤다고 너를 사랑하는 줄 아니? 그냥 욕정을 푼 것뿐이야! 남자는 그런 게 필요하거든.”

은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그럴 리 없다. 만약 그런 남자라면 벌써 자신과 밤을 보냈을 남자였다.

16551884490766.png“아니에요! 민후 씨는 그렇지 않아요!”

은조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16551884558774.png“네가 남자를 몰라서 그래. 영화에 나오는 순정남이 세상에 있는 줄 아니? 남자 머릿속은 다 똑같아! 여자를 보면 다 그 생각만 해!”

윤 회장이 고개를 돌리며 혼잣말했다.

16551884558774.png“사실 나도 강 전무가 그런 족속들과 똑같을 거라 생각 못 했지. 애를 가졌다는 말 듣고는 그놈이 그놈이구나, 싶더라.”

윤 회장이 손목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16551884558774.png“안 되겠다. 늦었어. 지금 당장 병원에 가. 김 기사, 출발해.”

윤 회장이 기사에게 말하자 은조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차에 시동이 걸렸다.

16551884490766.png“안 돼요. 아직 근무 중이라고요.”

병원에 가서는 안 된다. 가짜 임신이라는 것이 바로 들통난다. 그렇다면 계약이 끝나면 바로 이혼하고 할머니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16551884490766.png“아! 안 돼요! 차 세워요!”

차에 잠금장치가 채워지고 차는 속도를 내었다.

16551884490766.png“할머니! 저 회사로 돌아가야 해요. 잠깐 나온 거란 말이에요!”

은조가 애원해도 윤 회장은 팔짱을 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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