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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넘어진 거야? 민 거야? (20/100)

20. 넘어진 거야? 민 거야?20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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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지는 기현이 사 온 꼬막을 받아 주방에서 꼬막 비빔밥을 만들었다. 안 그래도 꼴 보기 싫은 손아래 동서에게 해다 바칠 음식을 하니 짜증이 나서 미칠 것 같았다.

16551883338668.jpg“이게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 건데, 뻔뻔하게 나한테 해달라는 소리를 할 수가 있지? 미쳤네, 아주.”

예지는 갖은 욕을 해대면서 음식을 만들었다. 고개를 돌려 거실 쪽을 힐끔 보니 은조는 회장님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저만 식사 준비를 하고 은조는 앉아서 놀고 있는 꼴이 너무 보기 싫었다. 미운 사람 먹을 음식을 하면서 정성스럽게 할 리가 없었다.

16551883338668.jpg‘좋아, 어디 한번 당해봐.’

예지는 은조가 먹을 음식에 침을 뱉기로 했다. 입을 오물거리며 한껏 침을 모으고 모았다.

16551883338668.jpg“퉤!”

침을 뱉은 그릇에 채소를 더 올려서 가렸다. 예지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당겨 비릿하게 웃었다.

16551883338668.jpg“식사 준비가 다 됐어요.”

16551883338686.jpg“아버님, 식사하러 가시죠.”

16551883338689.jpg“응. 그래. 가서 먹자.”

은조는 회장님을 모시고 식당 쪽으로 갔다. 항상 주방 쪽에서 식사 준비를 하다가 다 차려놓은 밥상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식탁에 푸짐하게 상이 차려져 있었다. 도우미가 원래 준비한 음식에 예지가 만든 꼬막 비빔밥까지 추가되었다. 예지가 은조 앞에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16551883338668.jpg“동서가 먹고 싶다던 꼬막 비빔밥 내가 힘들게 준비했어. 맛있게 먹어.”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16551883338686.jpg“고마워요, 형님. 잘 먹을게요.”

은조는 숟가락을 들어서 비빔밥을 비볐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먹는지 안 먹는지 예지가 빤히 지켜보고 있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은조는 여기에 뭔가 안 좋은 것이 들어갔다는 확신이 느껴졌다. 지난번 무알코올 칵테일에도 일부러 술을 넣지 않았었나. 은조는 숟가락 가득 비빔밥을 떠서 입 가까이 가져갔다. 연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16551883338686.jpg“우욱.”

은조는 뭐가 들어갔을지 모르는 비빔밥을 먹지 않기 위해 입덧 연기를 했다. 손으로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하니 모두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16551883338689.jpg“저런, 새아가 입덧하는구나.”

강 회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은조는 비빔밥 그릇을 밀어내며 예지에게 말했다.

16551883338686.jpg“형님, 미안해요. 갑자기 냄새가……. ”

은조가 손가락으로 코를 쥐었다.

16551883338686.jpg“못 먹겠어요. 정말 죄송해요.”

16551883338668.jpg“뭐?”

예지는 기껏 힘들게 만들어줬더니 헛구역질을 해대며 못 먹겠다는 말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먹고 싶다고 해서 기껏 만들어줬더니 못 먹겠다니! 그릇을 가져가 냄새를 맡으며 짜증을 냈다.

16551883338668.jpg“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16551883338689.jpg“큰 아가. 입덧하면 후각이 예민해져서 그렇다. 우리는 못 맡아도 임신부에게는 역한 냄새가 날 수 있다.”

강 회장은 은조의 편에 서서 말했다. 강 회장이 저렇게 싸고도니 예지는 더 짜증이 났다. 동서가 임신했다고 먹고 싶다는 것을 해줘라 마라, 시키질 않나. 기껏 해서 갖다 바쳤더니 헛구역질이나 해대고. 그걸 또 회장님은 싸고돌고. 예지는 화가 치밀어 미칠 것 같았다. 은조가 꼴도 보기 싫었다. 밥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이 집을 나가고 싶었다. 강 회장은 은조가 밀어낸 그릇을 민후에게 주며 말했다.

16551883338689.jpg“새아가가 못 먹겠다니 네가 대신 먹어라. 그거 입도 안 댄 거다.”

민후도 은조가 왜 저것을 먹지 않으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먹기 찝찝했을 것이다.

16551883338668.jpg“저는 해조류 알레르기가 있어서…….”

민후가 그릇을 기현에게 밀었다.

16551883353166.jpg“이건 형이 드세요. 형 해산물 좋아하지 않습니까?”

기현도 기분이 상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제수씨를 위해 자기가 나가서 직접 꼬막을 사 오고 제 아내가 힘들게 만든 음식을 안 먹겠다고 하니 화가 났다.

1655188335317.jpg“매너들이 참 없네. 이리 줘, 내가 먹을 테니.”

아내가 만든 것이니 자기가 먹겠다고 기현이 그릇을 가져갔다. 그때 예지가 저 그릇에 침을 뱉은 것을 떠올렸다.

16551883338668.jpg“여보! 잠깐, 먹지 마.”

기현이 쳐다보자 예지는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저기에 침을 뱉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무척 난감했다.

1655188335317.jpg“왜?”

기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16551883338668.jpg“아…… 그게.”

은조는 예지가 기현에게 저 음식을 못 먹게 하는 것을 보고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16551883338686.jpg‘역시, 뭔가 들어간 게 분명해.’

다들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자 예지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16551883338668.jpg“아냐. 먹어. 여보.”

어쩔 수 없이 예지가 대답했다. 기현은 아내의 아밀레이스가 잔뜩 들어간 비빔밥을 맛있게 먹었다. 한창 식사 중에 강 회장이 기현 부부에게 물었다.

16551883338689.jpg“아 참, 너희들 시험관 아기인가 뭐시기인가 그거 또 한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되었어?”

이번에도 실패해서 낙담하고 있었는데. 부부는 서로 눈치 보며 시선을 내렸다. 두 사람의 표정이 결과를 말해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16551883338689.jpg“잘 안 됐어?”

1655188335317.jpg“……예.”

기현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16551883338689.jpg“너무 낙담하지 말아라. 아직 젊으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생기겠지.”

강 회장이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식사를 이어갔다. 기현과 예지는 민후 은조 부부에게 뒤처진다는 사실이 더 견딜 수가 없었다. 강 회장이 저렇게 손주를 바라지만 않았다면 아이는 안 낳고 살아도 상관없었다. 기현과 예지는 강 회장이 은조가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편애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다.

16551883338689.jpg“이건 괜찮으냐? 먹을 만하냐? 새아가?”

16551883338686.jpg“네, 이건 맛있어요.”

16551883338689.jpg“그래. 많이 먹어라. 이것도 먹어라.”

아까 입덧하던 모습을 본 후라 강 회장은 자신의 몫까지 나누어 주었다. 은조만 챙기는 강 회장을 보는 예지는 은조에 대한 미움이 더욱 커졌다. 식사 내내 독한 눈을 뜨고 은조를 노려보았다. 식사가 끝나면 후식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늘 가졌다.

16551883338689.jpg“참, 이번에 선물 받은 좋은 술이 있는데 그거 한번 맛볼 테냐?”

강 회장이 기현과 민후에게 물었다.

16551883353166.jpg“아, 저는 됐습니다.”

1655188335317.jpg“좋아요, 아버지. 어떤 술인데요?”

민후는 오늘 밤 중대한 계획이 있어 술을 자제하려고 했지만 기현은 좋다고 했다. 강 회장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16551883338689.jpg“큰 아가, 와인 창고에 가서 선물 받은 술 좀 가져다주겠니?”

강 회장이 예지를 부르며 심부름을 시켰다.

16551883338686.jpg“아, 형님 지금 지하 저장고에 내려가 계시는데 제가 가져올게요, 아버님.”

예지가 마침 없어서 은조가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16551883338689.jpg“새아가는 그냥 있어라. 다른 사람 시켜.”

16551883338686.jpg“아니에요, 아버님.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요.”

강 회장이 임신했다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은조는 가시방석이었다. 거짓인 걸 알면 얼마나 실망하실까 하는 죄책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불편했다. 은조는 지하에 있는 와인 창고로 갔다. 지하에는 각종 식자재를 저장해놓은 저장고와 와인 창고가 함께 있었다. 적당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도록 설계해놓은 곳이었다. 입구에서 계단을 올라오는 예지와 마주쳤다. 사용하고 남은 식자재를 다시 가져다 놓고 오는 길인 듯했다. 은조와 마주치자 예지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16551883338686.jpg“아버님이 선물 받은 술 좀 가져오라고 해서요.”

은조는 와인 창고에 가는 길이라고 말하고 예지를 지나쳐 가려고 했다.

16551883338668.jpg“야!”

예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등에 꽂혔다. 은조가 돌아보자 예지가 무섭게 인상을 쓰고 쳐다보고 있었다.

16551883338668.jpg“너 아까 일부러 그랬지?”

예지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비빔밥을 먹고 싶다며 해달라고 했던 것도 사실 일부러 골탕 먹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동안 예지에게 당해왔던 일도 너무 많았고 지난번 칵테일 사건이 생각나서 복수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6551883338668.jpg“일부러 입덧하는 척하면서 구역질한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일부러 비빔밥을 안 먹었던 것도 예지가 눈치채고 있었다.

16551883338686.jpg“거기에 다른 이상한 게 들어갔는지 냄새가 너무 역했어요.”

16551883338668.jpg“이상한 게 들어가긴 뭐가 들어가!”

예지가 안 그래도 큰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16551883338686.jpg“뭐 넣었잖아요. 그러니까 아주버님이 드신다고 할 때 놀라서 먹지 말라고 한 거 아니에요?”

16551883338668.jpg“뭐?”

16551883338686.jpg“혹시 침이라도 뱉었어요?”

16551883338668.jpg“…….”

예지가 당황한 듯 말이 없다가 턱을 들고 대답했다.

16551883338668.jpg“그래. 침 뱉었다. 어쩔래?”

은조는 예지를 노려보다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16551883338686.jpg“어차피 아주버님이 드셨으니 상관없죠.”

은조가 돌아서자 약이 바짝 오른 예지가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16551883338668.jpg“이 나쁜 년!”

예지가 은조의 등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짝!

16551883338686.jpg“어어!”

지하로 계단을 내려가던 은조가 중심을 잃고 비틀댔다. 그 순간 예지는 은조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팔을 뻗어 중심을 잃은 은조를 한 번 더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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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조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 쿠당탕! 예지는 순간적인 자신의 행동에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계단을 굴러 바닥에 쿵 처박힌 은조가 인상을 쓰며 신음을 냈다.

16551883338686.jpg“아아.”

발목이 삐끗했는지 은조가 손을 발 쪽으로 가져갔다. 예지는 이 와중에도 은조가 유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끔찍한 생각을 했다.

16551883338668.jpg‘발을 다친 건가? 유산했으면 배가 아플 텐데.’

하혈하지는 않았는지 쓰러진 은조를 살폈다.

16551883338668.jpg“괘, 괜찮아?”

예지가 걱정하는 척 물었다. 은조가 눈을 뜨고 위에서 저를 쳐다보는 예지를 째려보았다. 뜨끔한 예지가 버벅대며 변명을 해댔다.

16551883338668.jpg“자, 잡아주려고 한 거야. 힘 조절이 안 됐을 뿐이야.”

은조는 분명 예지가 뒤에서 밀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은조가 예지를 노려보자 예지는 뻔뻔하게 소리쳤다.

16551883338668.jpg“뭐야, 왜 째려봐?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화가 난 은조가 소리쳤다.

16551883338686.jpg“뭘 쳐다보고 있어요? 못 일어나겠어요! 민후 씨 좀 불러줘요!”

예지가 뒤돌아 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16551883338668.jpg“서방님! 와인 창고로 좀 가보세요. 동서가 발을 삐끗해서 넘어졌어요.”

예지는 자신이 밀어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는 말은 쏙 빼고 넘어졌다고 순화해서 말했다. 민후가 놀라서 벌떡 일어나 곧장 지하 와인 창고로 갔다.

16551883338689.jpg“뭐? 새아가가 넘어졌다고?”

강 회장이 크게 걱정하며 말했다.

16551883338689.jpg“아니, 어쩌다가 넘어졌어? 임신한 사람이 어쩌다가…….”

강 회장은 자신이 술을 가져오라고 하는 바람에 은조가 그리되었다고 생각하며 자책했다.

16551883338689.jpg“내가 술 가져오란 말만 안 했어도……. 내 탓이다.”

예지는 끝까지 은조만 걱정하는 강 회장이 야속했다.

16551883338668.jpg“아버님 탓이 아니에요. 동서가 주의력이 없어 그런 거죠. 계단 내려가면서 발밑을 잘 살펴야지.”

강 회장이 더욱 놀라며 물었다.

16551883338689.jpg“뭐? 계단에서 넘어졌어?”

강 회장은 은조가 걱정되어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강 회장도 일어나 지하 와인 창고로 향했다. 기현과 예지 둘만 남게 되자 두 사람만의 묘한 시선이 오갔다. 눈빛만 봐도 서로 무슨 생각인지 다 아는 부부였다.

1655188335317.jpg‘계단에서 넘어진 거야? 당신이 민 거야?’

16551883338668.jpg‘그게 뭐가 중요해? 이 일로 유산이 될지, 안 될지 그게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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