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 키스할 거예요? (9/100)

9. 키스할 거예요?2021.10.02.

숨 막히는 정적에 은조는 라디오라도 틀려고 라디오 버튼을 눌렀다.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 음악이라도 있으면 좀 낫겠……지라고 생각할 찰나. <키스미 달링, 키스미, 키스미 투나잇.> 왜 하필 오늘 밤 키스해달라는 가사의 팝이 나오는지. 노래로 인해 어색하고 민망한 공기는 더욱 짙어졌다. 그렇다고 라디오를 끄기도 뭐해서 은조는 노래가 얼른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은조가 비스듬히 고개를 틀어 그를 보았다. 어색한 건 민후도 마찬가지라 시선을 은조 쪽으로 돌리다가 눈이 딱 마주쳤다. 둘 다 흠칫 놀라 얼른 시선을 돌렸다. 서로를 의식하는 긴장감은 노래가 끝나고도 계속되었다. * 집에 와서도 은조는 긴장감이 가시지 않았다. 민후가 오늘은 키스까지 해보자고 키스 예고를 해서 긴장이 안 될 수 없었다. 남편을 좋아한다고 자각한 후라 그와 키스한다는 생각에 설레서 미칠 것 같았다. 욕실에서 씻으면서 은조는 온통 그 생각이었다.

16551880853377.jpg‘언제 키스를 하게 될까? 침대에 누우면?’

16551880853377.jpg‘아, 어떻게 해야 하지? 그가 다가오면 눈을 감으면 되나?’

그런 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해야지 이렇게 미리 오늘 하겠다고 예고하니 더 이상했다. 샤워를 끝낸 은조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잠옷 차림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욕실을 나가니 침실에 민후가 있었다. 방금까지 그와의 키스 생각을 했던 탓에 은조는 민후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16551880853377.jpg“헉.”

외간 남자를 맞닥뜨린 것처럼 잠옷 앞섶을 여몄다. 은조가 놀라자 민후도 따라 놀란 얼굴을 했다.

16551880853396.jpg“왜 그렇게 놀라?”

16551880853377.jpg“제가요? 안 놀랐는데요?”

안 놀랐다고 하면서도 은조의 눈이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두 볼은 방금 샤워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복숭아처럼 발그레했다. 민후가 얼굴이 붉어진 은조를 가만히 보다가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민후가 훅 다가오자 은조는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16551880853377.jpg‘뭐, 뭐야. 지, 지금 키스하려는 거야?’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은조가 민후를 올려다보았다.

16551880853377.jpg“왜, 왜요?”

16551880853396.jpg“아까 했던 말.”

민후가 한 걸음 더 다가오자 은조는 등에 벽이 닿아 더는 도망갈 수 없었다.

16551880853377.jpg‘아까 했던 말? 키스하겠다고 한 거? 지금 하려나 봐.’

그를 올려다보는 은조의 시선이 그의 입술을 향했다.

16551880853377.jpg‘어, 어떡하지?’

심장이 미칠 듯이 쿵쿵 뛰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남편의 귀에까지 들릴 것만 같았다.

16551880853377.jpg‘눈을 감으면 되나?’

은조의 시선은 민후의 적당히 두툼한 입술을 향했다. 은조가 눈꺼풀을 내리며 턱을 조금 들었다.  

16551880867492.jpg

  * 집에 오자마자 아내는 곧장 침실로 들어갔다. 민후는 말없이 들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오는 내내 차 안에서는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아내가 튼 라디오에서 키스 주제의 노래가 나오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민후는 침을 삼키는 행동조차도 어색하고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 오늘 키스까지 해보자는 말은 다소 충동적이었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난 후 빨리 아이 만들기에 돌입해야겠다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했던 것 같다. 그 말을 한 후 아내는 눈에 띄게 긴장한 모습이었다. 싫다, 좋다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은 좋다는 건지 싫은 건지 민후로서는 분간하기 힘들었다. 싫다고 하면 억지로 할 생각은 없다. 침실로 들어가니 욕실에서 아내가 샤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괜한 말을 했나, 너무 서둘렀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잠자리를 가능한 한 빨리 가져야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서두르면 아내가 부담될 것이다. 민후는 부담되면 오늘 안 할 거니 아까 한 말은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아내가 욕실에서 나오면 이 얘기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욕실 문이 달칵, 열리고 아내가 머리에 수건을 두른 모습으로 나왔다. 그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방금 샤워해서 그런지 두 볼은 발그레하게 익어 더 예뻤다. 이런 모습을 마주한 건 처음이라 민후의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16551880853396.jpg‘예쁘다.’

속으로 감탄하는데 아내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16551880853377.jpg“왜, 왜요?”

민후는 다짐한 대로 아까 한 얘기 신경 쓰지 말라고 얘기하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16551880853396.jpg“아까 했던 말.”

그런데 빤히 쳐다보던 그녀가 눈을 스르르 감는 것이 아닌가. 턱을 살며시 들고 눈을 감는 모습은 분명 키스하자는 제스쳐다. 민후는 당황한 얼굴로 아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샤워한 뽀얀 얼굴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붉은 입술은 꼭 탱글탱글한 과일 같았다. 당장 고개를 숙이고 과일 같은 입술을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까 식사한 후 아직 양치하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결국 민후는 차마 입술을 갖다 대지 못했다. 아내에게 첫 키스의 기억을 온갖 음식 냄새로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자마자 바로 양치부터 할 걸 생각했다. 민후가 당황하며 머뭇거리는데 아내가 눈을 살며시 떴다. 은조는 왜 키스하지 않는지 의아한 얼굴로 민후를 보았다.

16551880853396.jpg“미안. 아직 양치를 안 했어.”

은조의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16551880853377.jpg‘으아아아. 방금 키스하려고 다가온 거 아니었어?’

16551880853377.jpg‘나 혼자 앞서 가서 눈을 감았던 거야?’

은조는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있기가 힘들었다.

16551880853377.jpg“그럼 왜, 왜 다가왔어요?”

16551880853396.jpg“아, 그건…….”

민후가 멋쩍은 듯이 뒷목을 쓸면서 말했다.

16551880853396.jpg“당신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아까 한 말 신경 쓰지 말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아내의 방금 행동은 누가 봐도 키스하는 것에 동의한 것이어서 그 말은 안 해도 될 상황이 되었다.

16551880853396.jpg“나도 좀 씻고, 이따가…… 해.”

은조는 부끄러워서 도저히 그의 앞에 서 있기가 민망했다. 민후의 가슴을 밀쳐내고 벽과 민후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은조는 곧장 드레스룸으로 가서 문을 닫았다. 달아오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16551880853377.jpg‘아, 창피해! 창피해! 나 혼자 왜 눈을 감고 난리야!’

16551880853377.jpg‘마치 키스를 기다렸던 사람처럼 바로 눈을 감다니!’

다시 생각해도 너무 부끄러웠다.

16551880853377.jpg‘어흑! 이제 어떡해! 이따가 또 어떻게 하라고!’

은조는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 예지는 두 번째 시험관아기 시술 준비를 위해 병원에 가는 중이었다. 남편 기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16551880882362.jpg“응, 여보. 병원으로 4시까지 오면 돼.”

16551880882366.jpg[당신, 그 얘기 들었어?]

16551880882362.jpg“무슨 얘기?”

16551880882366.jpg[아버지가 민후 자식에게 지주사 지분 10%를 줬대.]

기현의 목소리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6551880882366.jpg[아오, 열 받아! 나한테는 최소한 상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안 그래, 여보?]

16551880882362.jpg“아직 애도 안 낳았는데 벌써 줬다고요?”

16551880882366.jpg[애 낳으면 나머지 20%도 준다고 했대!]

16551880882362.jpg“아버님 진짜 너무하시네요.”

예지도 지분이 일부 민후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에 표정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16551880882362.jpg“일단 병원으로 와요. 와서 얘기해요.”

경영권이 서방님에게 넘어가는 것이 현실화되어 가고 있어 예지는 불안했다.

16551880882362.jpg“아직 애를 낳은 것도 아닌데 지분을 넘기다니 아버님도 진짜 너무 성급하시네.”

  . . . 예지 부부는 오늘 두 번째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할 예정이었다. 첫 번째 시도에서 안타깝게도 착상이 되지 않아 실패했다. 부부는 은조의 임신 소식을 듣고는 더 초조해져 두 번째 시도를 앞당겨서 하게 되었다.

16551880896873.jpg“지난번 호르몬 주사 맞고 별다른 증상은 없었어요?”

의사가 물었다.

16551880882362.jpg“네. 몸이 뻐근하기는 했는데 괜찮았어요.”

16551880896873.jpg“그럼, 난자 채취 시술, 들어갈게요.”

예지는 긴장한 얼굴이었다. 지난번에도 난자 채취할 때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그렇다.

16551880896873.jpg“남편분도 정자채취실로 가시면 됩니다.”

의사의 말에 기현은 인상을 쓰고 일어났다. 정자를 채취하는 과정이 참으로 굴욕적이었기 때문이다. 부부는 각자 따로 난자와 정자를 채취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먼저 나와서 기다리던 기현이 예지가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났다.

16551880882366.jpg“여보, 괜찮아? 힘들었지?”

예지는 들어갈 때보다 얼굴이 핼쑥해져 나왔다. 가장 힘든 과정이 난자 채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예지는 기현 앞에서 일부러 다 죽어가는 얼굴로 말했다.

16551880882362.jpg“힘들어도 견뎌야지.”

당신이 경영권을 쥐기 위해서는. . . . 병원을 나와서 기현과 예지는 집으로 향했다. 조수석에 앉은 예지가 말했다.

16551880882362.jpg“여보 이번엔 왠지 잘될 것 같아.”

예지가 들뜬 표정으로 기현에게 말했다.

16551880882362.jpg“이번에 느낌이 좋아.”

지난번과는 왠지 느낌이 달랐다.

16551880882362.jpg“만약에, 여보.”

예지가 운전하는 기현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16551880882362.jpg“우리도 아기를 가지게 되면 아버님이 지분 어떻게 하실까? 둘 다 같은 해에 손주를 낳게 되는 거잖아. 그럼 누구한테 주는 거야? 반반씩 똑같이?”

16551880882366.jpg“저쪽이 먼저 애를 낳을 거 아니야. 우리가 바로 성공한대도 한 달 이상은 차이가 나잖아.”

16551880882362.jpg“그건 모르는 일이지. 초기에 유산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예지가 말하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16551880882362.jpg“우리가 성공하고 저쪽이 유산되면 딱 좋은데.”

예지 말에 기현이 힐끔 쳐다보았다.

16551880882366.jpg“아예 고사를 지내지 그러냐? 유산되라고.”

예지는 입을 삐죽이며 창밖을 쳐다보았다. 둘 다 말이 없었다.

16551880882362.jpg‘우리가 성공하고 저쪽이 유산되면 딱 좋은데.’

기현은 방금 예지가 한 말이 귀에 자꾸 맴돌았다. 예지 또한 마찬가지로 위험한 가정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유산……. 저쪽이 유산만 된다면……. 제발 유산되게 해달라고 기도라도 해? 예지는 이런 끔찍한 생각을 하면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 민망했던 키스 사건 이후 은조는 침대에 눕는 것이 더욱 긴장되었다. 혼자 앞서 가며 눈을 감았던 민망했던 순간이 자꾸 생각났다. 생각할수록 10년은 이불킥할 흑역사다. 이러다 남편을 몰래 좋아하고 있는 걸 그가 눈치라도 챌 것 같았다.

16551880853396.jpg‘나도 좀 씻고, 이따가…… 해.’

이렇게 말했던 남편은 지금 씻으러 들어갔다.

16551880853377.jpg‘으아아아! 왜 그런 말을 해서는 사람을 더 긴장하게 할까?’

아까 키스하는 줄 알고 남편의 입술을 쳐다보았을 때부터 은조는 남편과의 첫키스에 대한 은근한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댔다. 은조가 떨리는 심장을 모른 체하며 침대에 누웠다. 잠시 후 민후도 침실로 들어왔다. 남편과 한 침대를 사용한 지 이제 이틀째. 첫 동침이었던 어제보다 더 긴장되었다. 남편이 옷을 벗는 소리가 들리고 침대에 눕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은조는 늘 안고 자던 인형 베개를 안고 바깥쪽을 향해 몸을 돌려 누웠다. 도저히 남편 쪽으로 몸을 돌려 누울 수가 없었다. 긴장한 자신의 속마음을 들킬 것만 같아서. 침대에 누운 민후가 말했다.

16551880853396.jpg“평소에 그쪽 말고 이쪽으로 돌아누워 잔다면서?”

바로 어제 남편 쪽으로 돌아누워 자는 버릇이 있다고 얘기했던 것을 기억했는지, 그가 말했다.

16551880853396.jpg“이쪽으로 좀 돌아눕지 그래.”

은조는 아까 일 때문에 남편 얼굴을 보는 것이 민망해 돌아누울 수가 없었다.

16551880853396.jpg“그래야 키스를 할 것 같은데.”

뭐? 긴장감에 은조의 어깨가 더욱 경직되었다.

16551880853396.jpg“이렇게 누워 있으면 키스를 할 수가 없잖아.”

민후가 상체를 일으켜 은조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민후가 고개를 기울여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눈을 꾹 감고 있지만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잠든 편안한 얼굴이 아니라 미간에는 힘이 팍 들어가 있었다. 안 자면서 자는 척하는 아내 얼굴이 귀여워 보여 피식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16551880853396.jpg“안 자는 거 알고 있어. 돌아누워 봐.”

민후가 은조의 어깨를 잡고 돌렸다. 그녀의 상체가 돌려져 천장을 바라보고 똑바로 눕게 되었다. 은조가 눈을 뜨고 민후를 쳐다보았다. 민후는 온화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16551880853377.jpg“키스……할 거예요?”

16551880853396.jpg“응.”

16551880925306.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