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0화 〉8. 스승 (100/100)



〈 100화 〉8. 스승

조금씩 커지는 소란은 바로 저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고성과 혼란으로 점칠된 바깥은 건물 안에서도 들을  있을 정도로 난장판인 것 같았다. 바깥의 상황은 보지않아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을 경비하는 자동인형들과 그들을 제치고 들어오려는 누군가. 아마  집단 사이의 다툼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전까지의 소란이 꿈이었던 것 마냥 일정한 한계를 넘은 소란은 삽시간에 죽은 듯한 정적으로 도배되었다. 피어오르는 의문. 그러나 누구하나 입을 여는 사람없이 도로스들은 프리드리히의 눈치를 봤다.

굳게 일자로 다문 입과 차가운 금속처럼 굳어버린 눈매. 어딜 봐도 그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은 듯 했다. 하긴 정면으로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가 있으니 달갑지 않을 것이다.



또각 또각.



삽시간에 주위를 먹어치운 서늘한 침묵 속에서 정체불명의 발소리가  너머에서 들려왔다. 천천히 일정한 리듬을 그리며 다가오는 기척은 이윽고  앞에서 멈췄다.




약간의 침묵. 똑똑, 하고 노크하는 소리가 뒤를 잇따랐다.

프리드리히는 노기를 다스리며  손으로 문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이 문과 그의 손가락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의 가벼운 손짓에 육중하고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천장에 박힌 인공조명의 빛이 문 사이로 천천히 영역을 넓혔다. 그 역광을 뒤집어쓴 인물은 천천히 건문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제일 눈에 띄는 건 동물 계통의 수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매끄럽고 광택이 감도는 닥터 윌슨의 외골격과는 다른, 우둘투둘하고 탁한 갈색. 커다란  눈과 세로로 쪼개진 곤충 특유의 입.




도로스들은  앞의 이 인물을 알고 있다.

북부의 권력자이자 그들을 배제하려는 자!




"하겐..지부장..!"



프로바움의 억눌린 신음사이로 눈 앞의 인물의 정체가 새어나왔다. 메뚜기 계통의 수인, 하겐 지부장이라 불린 이는 일그러진 웃음을 지었다. 그 커다란  눈엔 원망과 분노만이 가득했다. 그는 도로스들을 찢어죽일 듯 쏘아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에메랄드 컴퍼니 하겐 지부장."



얼굴을 있는 대로 일그러뜨리며 한참을 도로스들을 노려보던 그는 프리드리히의 말에 태도를 바로하고 그를 대면했다.



"안녕/하십니까, 존경/받는 분이시/여. 이렇게 뵙/게 되서 유감입니/다."



그의 어조엔 조롱과 빈정거림이 가득 담겨있었다.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할 이는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감히 위대한 스승을 향해 불경한 짓거릴 저지르는 놈을 향해 프로바움은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카지트가 재빨리 그를 붙잡으며 만류하지 않았다면, 프로바움은 이미 한바탕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무기를 뽑았을 것이다. 겉보기엔 중후하고 차분한 멋을 풍기는 노신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다혈질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카지트기에 프로바움이 무턱대고 일을 저지르기 전에 멈출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갈색 메뚜기 대신 카지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그는 한기마저 어린 스승의 목소리에 겨우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카지트에게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존경 받/는 분께선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북부의 유/적을 발굴하던 탐색대/가 전멸했습니/다."




프리드리히는 계속 해보라는 의미를 담아 고개를 까닥였다. 하겐 지부장은 귀기마저 어린 음습한 미소를 지었다.




"존경 받/는 분만큼은 아/니지만 저희 에/메랄드 컴퍼니 하겐 지부 또/한 정보력이라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저흰  탐색대를 전멸시/킨 흉악한 범죄자들/이  하겐에 숨어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경고해/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분/개한 친구들이 흉악/범을 잡으러 일어났/지만 혹시나 해서 말입니/다. 그런 흉/악한 범죄자들이라/면 존경 받는 분이라/고 해도 서슴없이 노릴 수도 있/지않겠습니까?"

네 팔로 위아래 팔짱을 낀 메뚜기는 낄낄거리며 역겨운 웃음을 지었다. 경고니 어쩌니 운운했지만, 속뜻은 명백한 위협이다. 도로스들을 잡기 위해서 무력시위라도 불사 할 것이라고. 그리고 모든 피해는 도로스들의 탓으로 돌릴 것이다. 그야말로 더럽기 짝이 없는 방식이다.




기분이 나빠진 카지트는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방법은 더러워도 효율측면에선 뛰어난 전략이다. 이미 예전에 몇 차례나 저런 전략을 경험해본 그는 그 효과만큼은 누구보다도  알고 있었다. 역시 지부장이라는 자리는 노름이나 도박으로 딴 모양은 아닌  하다. 하긴, 저쪽은 그 에메랄드 컴퍼니의 지부장이니.




마음같아선 저 답답해보이는 대가리에 바람 좀 쐬어 주고싶었지만, 정말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방금 전의 소란으로 보아 밖엔 녀석이 끌고온 전력이 있을텐데,  앞에서 그런 짓을 했다간 정말로 끝장일 것이다.

메뚜기의 말에 프리드리히는 코웃음 쳤다.



"흥, 웃기지 마라. 나를 따르는 이들은 그리 약하지 않다. 그건 자네가 걱정 할 일이 아니지. 그리고 그쪽이야 말로 내 손님 앞에서 대체 무슨 무례란 말인가?"


프리드리히의 타박에 갈색 메뚜기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이 정도 반응은 예상했다는 듯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으나, 뒤이어 날아든 말에 다시 표정을 구겼다.




"그러고보니 자네, 혹시 에메랄드 컴퍼니의 사장께선 이 일을 알고 계시는가?"




에메랄드 컴퍼니의 사장이 거론되자 메뚜기는 조금 움츠려 들었다. 약간 겁먹은 눈치였다. 그러나 도로스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깨닫자 짜증어린 어조로 그는 큰소리쳤다. 아무래도 증오스런 대상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했다.




"그/분께선 공무로 바쁘신지/라,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그런가? 갑자기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구나. 너무 일에만 빠져있으면 몸이 상하는 법이니 말이지."

"...아쉽게도 그분/께선 요즘 몸이 그리 좋지않/으시지요. 에메랄드 컴퍼니에서 그분/을  날도 그리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씹어먹을 듯 중얼거리는 말 속엔 숨길 수 없는 자만과 우월함이 나타나있었다. 프리드리히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그들의 추측대로 하겐 지부장의 뒤엔 누군가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게름하르트를 적대하는 누군가가.



아무래도 파벌싸움으로 추정되었다. 그렇다면 누구의 입김이 닿았는지 얼추 짐작이 갔다. 그러나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프리드리히는 조금 더 정보를 캐내기 위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이런,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돼/죠. 암요."

메뚜기는 빈정거렸다. 그는 다시 여유를 되찾은 듯 오만하고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위대한 프로바움의 스승은 그의 태도에서  가지 정보를 얻어냈다.  태도를 보건대 그의 뒤엔 게름하르트에 버금가는 누군가가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대상의 정체에 대해선 확신이 섰다.



그리고 그는 하겐 지부장이 이미 모든 공격준비를 끝내놓았다는 걸 깨달았다. 공격 바로 직전의 공격선포. 물론 겉만 봐선 그를 걱정해서 그가 준비한 방어병력마저 물리치고 온 걸로 보이겠지만, 정말로 그럴 리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만약 프리드리히가 죽는다고 해도 그를 걱정해서 한 달음에 달려가 경고까지 해준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메뚜기는 으쓱거렸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군요. 전 어디/까지나 존경받는 분을 걱/정해서 온 겁니다. 그 빌/어먹을 흉악범들/이 행여나 해를 끼/쳐선 안되니까요."


"만약..잡으면 어떻게 할 건가?"

"그 빌어먹을 흉악범들을 잡으면 본보기를 보여줄 겁니다. 그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때문에 제 앞길은 완전히 막혀버렸으니까요. 크흐, 내가  자리에 어떻게 올라왔는데."

마지막은 거의 중얼거림에 가까워 들리지 않았으나, 그 속에 담긴 원한만큼은 사무칠 정도로 알 수 있었다. 하겐 지부장은 무슨 짓을 저질러서라도 도로스들을 잡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도로스들의 말로는 처참하겠지.


할 말을 마친 지부장은 도로스들을 한 차례 쏘아보고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또각거리는 구두소리는 천천히 멀어져갔지만, 말을 꺼내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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