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8화 〉8. 스승 (98/100)



〈 98화 〉8. 스승

"광신도들이 믿는 신은 대체 누굽니까?"



잠깐 숨을 고르곤,


"아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입니까?"

카지트는 물었다.



잠깐의 침묵.




모두가 이해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깐, 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반쯤 달려들듯 다가오는 닥터 윌슨의 박력에 카지트는  걸음 뒤로 물러섰다. 침착했던 태도는 온데간데 없이 잔뜩 흥분한 모습은 숫제 광인의 그것과 같았다. 명철한 지성으로 맑고 반짝이던 눈은 반쯤 돌아간 채 탁하게 물들었다. 눈이 돌아갔다는 말은 이런 상황에서 쓰이는 것이리라.

불타오르는 학구열에 지성을 연료삼아 던져버린 학자는 어째 광신도보다 더 광신도처럼 보였다. 그 어마어마한 탐구심과 생리적인 공포감을 부르는 외견 탓에 일행들은 한 걸음 물러났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존재? 광신도,들이 그 이름을 언급했습,니까? 설마 그들,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섬긴다는 말입니,까?"

몸을 던지듯이 달려드는 동료의 모습에 카지트는 무기로 향하려는 손을 애써 제지했다.

"이보게 닥터, 일단 진정하게나."

결국 보다못한 프로바움이 말리자, 닥터 윌슨은 그제야 제 행동을 되돌아보고 민망한  더듬이를 움찔거렸다.




"그,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너무 흥,분했던  같습,니다."




"아,아니. 괜찮아."

카지트가 사과를 받아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닥터 윌슨은 애꿏은 바닥만 응시했다. 어지간히 부끄러운 듯 하다. 그러나 꼼지락거리는 네 개의 손은 호기심을 참지못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학자인 그에게 불쾌함보단 미증유의 호기심이 앞섰다.


카지트는 심신의 안정을 위해 한 걸음  물러섰다.



"카지트, 그게 정말인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우리들을 굽어살피는 기계장치의 신. 그런데 그 정신나간 놈들이 그를 섬긴다고?"


언짢은 듯한 프로바움의 어조에 카지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 미치겠군."


프로바움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건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람. 그는 갑자기 담배가 고파왔다. 그러나 스승의 앞에서 감히 담배를 피울 수 없는 일이라, 연신 파이프 담배만 문질렀다.




"으음..."



도로스 또한 눈썹을 찌푸리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이 알고보니 광신도들이 숭배하고 있는 신이었다. 이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면서 불쾌했다.

신이라고 해서 딱히 제물을 바치거나 신탁을 내려준다거나 그런 일은 없다. 심지어 그의 말씀을 새긴 성경같은 것조차 없다. 그들이 아는 것은 그저 막연히,  이야기 속에 나오는  뿐이다. 언젠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께서 깨어나 인류를 낙원으로 인도해 줄 것이다, 라는.




그러다보니 신앙심이란 것이 생길 리가 없다. 물론 거기엔 광신도라는 반면교사도 한 몫 했겠지. 요컨대 데우스 엑스 마키나란 신은 그들에게 있어서 기도가 필요하거나 탓할 대상이 필요할  입에 오르는 존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광신도들따위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섬긴다는  그다지 기분이 좋은 사실은 아니다. 신앙심이 없다고는 해도 그들이 믿는 신을 광신도 또한 믿고 있다니!



어째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이름이 더럽혀진 것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같은 신을 믿는 다는 건 결국 그들은 광신도들과 비슷한 녀석들이란 말이 아닌가? 광신도들의 만행을 돌이켜보면 정말 단  톨의 긍정도 하기 싫었다.



아니, 정말로 광신도들 또한 그들이 믿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믿고 있을까?



도로스는 문득 끔찍하고 불결한 가설을 떠올렸다.


사실은 그들이 광신도들이 믿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믿고 있는 게 아닐까? 딱 잡아 아니라고 하기엔 광신도들의 역사가 너무나 길었다.

과연 어느쪽이 먼저일까?

도로스의 의심은 당연하게도 다른 일행들 또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다들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리라. 오히려 닥터 윌슨의 탐구심이 유별난 편이다.

자연히 도로스들의 시선은 프리드리히에게 쏠렸다. 가장 오래된 자동인형인 그라면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거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먼저 광신도에 대해 이야기해야 겠구나. 너희들은 광신도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니?"

"오랫동안 사,람들을 괴롭혀왔,다는 것과 정체불명이,라는 점. 그,리고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잠시 곰곰히 생각하던 닥터 윌슨은 새삼 생각보다 광신도에 대해 아는 것이 적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놀랐다. 광신도들의 목적이 뭔지,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몰랐다. 암묵적으로 그런 종자들과 연관되는 걸 금기로 여기는 풍속 탓인지 정말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광신도라는 이름을 단 그들이 무엇을 섬기는지 조차 최근에 와서 겨우 알아냈잖은가.



프로바움과 카지트 또한 그 사실을 깨달은 듯 시선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녀석들의 본거지가 남쪽에 있다는 점. 그리고  세력이 암암리에 사방으로 퍼졌다는 것 정도입니다."

덧붙인 카지트의 설명에 프리드리히는 눈을 크게 떴다. 마치 기대이상의 성과를 이루었다는 것처럼 그는 그윽한 눈길로 곱게 웃었다.



"벌써 거기까지 알아내다니..대단하구나."

"스승님께선..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도제의 물음에 스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단다."




"그렇다면 어째서.."



프로바움은 어째서 그들을 저지하지 않았느냐는 말을 삼켰다. 탓하는 어조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프로바움은 저 따위가 그래선 안된다는 듯 말을 멈췄으나 프리드리히는 이미  내용을 알아들었다.

스승은 어딘가 안타까운 듯, 그러나 자랑스러운 듯 복잡한 심경이 뒤섞인 한 마디를 내뱉었다. 모든 색이 섞이면 검정이 된다고 하던가. 온갖 감정의 색채로 물든 한 마디는, 모조리 뒤섞였기에 오히려 단조로운 어조가 되었다.


"우리는 자동인형이란다."




짧은  마디. 그러나 프로바움은  속뜻을 깨달았다. 아니, 잊고 있었던 것을 상기해냈다.




자동인형.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고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 그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지켜보고 기록하는 것이다. 기록자가 사건에 개입해서야 '객관적인 정보'가 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그들은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쌓을 뿐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자동인형은 북부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오로지 지식의 계승이 불가능한 4세대를 포함한 소수의 자동인형들만이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이유이다.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프로바움은 반쯤 기억의 저편에 넣어두었던 뼈아픈 사실에 입을 다물었다.


스승은 도제를 안타까운 얼굴로 잠시 쳐다보았다. 그러나 도제는 스승의 눈길을 외면했다. 흐르는 세월에 천천히 굳어진 마음의 응어리와 열등감은 스승의 앞에서 그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었다.

프리드리히는 무언가 말을 꺼내기 위해 입을 달싹였으나, 막상 그의 입에서 나온 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들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쳐들어온다면 대화를 할 시간따윈 없을테니까. 그전에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를 들려줘야 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대해선 사실 나도 정확하게는 모른단다. 지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열화되어 잃어버린 것도 있지만, 애초에 위대하신 오즈께선 최초의 자동인형에게 700년 이전의 지식을 전부 물러주시지 않으셨단다. 오로지 그 편린만을 허용해주셨지."



또다. 게름하르트에게서 들었던 '오즈'라는 이름이 프리드리히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문득 도로스들은 게름하르트와 나누었더 대화를 떠올렸다. 700년 이전 인류가 살았다는 아득한 저 위, 지상. 그러고보니 게름하르트 조차 프로바움의 스승을 '그분'이라 칭하며 높여 불렀었지. 그리고 프리드리히 역시 세계의 진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 말이 맞았다. 게름하르트의 말대로 프로바움의 스승은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하게도 그는 게름하르트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프리드리히조차도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도로스들은 점점 미궁에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대체 오즈란 존재는 어떠한 존재인가? 700년 이전의 지식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기에 지식을 계승하고 보존하는 자동인형들 조차 아주 약간의 지식 밖에 허용받지 못했는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끝이 없는 바닥을 보는 듯 했다.


프리드리히는 혼란에 빠진 도로스들을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이전의 지식은 너희들이 찾고 있는 무한동력에 있을 듯 하구나."




프리드리히는 도로스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인간, 동물형 수인, 곤충형 수인, 그리고 자동인형. 도제에게 머문 시선은 자그마한 안타까움을 띄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말해줄  있는 건 그 편린 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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