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8. 스승
"에메랄드 컴퍼니 하겐 지부의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프로바움의 말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프로바움은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카이저 수염을 배배 꼬았다. 파이프 담배를 매만지는 황동빛 금속 손가락엔 숨길 수 없는 불안함이 묻어나왔다. 그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는 얼굴로 잠자코 있었다.
잠깐의 침묵을 틈타 그의 주위로 모인 일행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프로바움을 응시했다.
"대체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도로스의 질문에도 프로바움은 대책없는 한숨만 흘렸다. 파이프 담배를 만지작 거리는 걸로 보아 피우고 싶은 것 같지만 스승의 면전이니 참고있는 듯 했다.
말없는 초조함은 역병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긴장을 품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도로스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으며, 닥터 윌슨은 등껍질과 날개를 작게 바르르 떨었다. 카지트는 고양이처럼 손톱을 뺐다 넣었다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프리드리히와 도로스들은 전부 프로바움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한참동안 파이프 담배를 만지작거리던 손놀림이 우뚝 멈췄다. 대략적으로 생각을 정리한 프로바움은 입을 열었다.
"쇼핑 중에 지부장이 알아서 찾아오더군요. 유적탐사대를 살해한 게 저희들이 아니라고 말해봤지만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아주 이를 갈고 있더군요. 거기다 그 옆엔 그전부터 저희들을 쫓던 추격자들이 붙어있었습니다."
"추격자들이라.."
추격자라는 대목에서 흥미를 내비친 프리드리히에게, 프로바움은 간략하게 뒷경매에서부터 시작된 추격자들의 원한을 설명했다. 뒷경매의 사건, 게름하르트의 비밀의뢰, 북부 유적지의 참극 등. 그 모든 것을 들은 프리드리히는 흠, 하고 짧은 신음인지 감탄사인지 모를 것을 토해냈다.
"힘들었겠구나."
그의 따뜻한 한 마디에 도로스들은 별다른 부정을 하지 않았다. 그리 힘들진 않았노라 겸손하게 예의를 차리기엔 너무나 고된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딴청피우는 일행은 부드러운 눈길로 지켜보던 프리드리히는 프로바움과 동행한 두 자동인형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그전까지의 자애롭고 온화한 모습이 전부 거짓인 것 마냥 무뚝뚝하고 냉정한 어조로 두 자동인형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알렉세이, 알렉사키스. 가서 주위의 경계를 강화하게."
각각 알렉세이, 알렉사키스라고 불린 자동인형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향했다. 아마 저들을 위시한 프리드리히를 따르는 자동인형들이 방어망같은 것을 구축 할 듯 싶었다.
그러나 도로스의 관심은 그런 것보다 프리드리히에게 쏠려있었다.
명령을 내릴 때의 그 차갑고 무기질적인 태도는 자동인형 특유의 그것이었다. 그제야 도로스들은 프로바움의 스승 또한 자동인형임을 상기했다. 그의 너무나도 사람다운 태도에 반쯤 망각하고 있던 사실이다. 약간의 거리감. 다른 이들에 비해 사회경험이 부족한 도로스는 새삼 낯선 것을 보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조금 태도가 달라져도 프리드리히는 프리드리히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이해하곤 자세를 바로했다.
프로바움의 스승이 다시 도로스들에게 고개를 돌렸을 땐 다시 온화한 모습이었다. 그는 싱긋 웃더니 도로스들에게 말을 건넸다.
"지부장은 가진 게 많아 두려울 게 없단다. 다만 그 추격자들은 조심하는 게 좋겠구나. 이미 잃을 게 없다고 무턱대고 달려들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스승님, 정말 괜찮은 겁니까?"
프로바움은 스승의 뜻을 의심해서 죄송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는지모르는지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는 태도는 오히려 프리드리히를 자극했다. 프리드리히는 눈썹을 꿈틀거렸으나 이내 긴 한숨과 함께 감정을 털어냈다.
"괜찮단다. 북부는 예전부터 나의 영토이기도 했으니, 이곳에서 만큼은 나를 건드릴 만큼 정신이 나간 녀석은 없단다."
프리드리히는 뭔가 떠올랐다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하! 그 추격자들이라면 이미 정신이 나간 것 같으니, 나를 건드릴 수도 있겠구나."
프리드리히는 후후, 하고 웃었으나 따라웃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도제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다. 스승은 방금 떠올린 농담이 통하지않자 조금 실망한 기색을 내비췄다.
"그건 그렇고 조금 이상하구나. 너희들은 에메랄드 컴퍼니의 사장의 의뢰를 받지 않았니? 내가 아는 사장이라면 당장이라도 하겐 지부장에게 제동을 걸었을 텐데."
확실히, 에메랄드 컴퍼니의 사장이라면 지부장이 보고를 올리지 않아도 어떤 방식으로라도 이미 파악 하고 있을 터였다. 그의 정보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까닭이다.
"그게.. 하겐 지부장도 본사의 제재를 두려워하는 까닭에 이렇게 서두르고 있는 듯 걸 보면, 아무래도 중간에 누군가가 손을 쓴 것 같습니다."
아니면, 게름하르트가 암묵적으로 일행을 제거하려고 하던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도로스마저도.
물론 가능성은 낮은 이야기다. 게름하르트의 의뢰는 무한동력을 탈환하라는 것. 탈환은 커녕 실낱같은 단서조차 겨우 잡아낸 지금, 이용가치가 떨어졌을 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사장인 게름하르트가 그런 정보를 모를 리 없다는 가정을 배제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중간에 장난질을 쳤을지도 모른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보력이라고 해도 그 주인이 정보를 받지 못하면 말짱 꽝일테니까. 그 누군가가 누구인진 정확히 모르겠으나 그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 하난 명백했다.
"어렵구나. 에메랄드 컴퍼니는 적이 많고, 내부에서도 파벌싸움이 한창인지라 범인을 확정하기 어렵단다. 그리고 이게 정말로 하겐 지부장의 독단인지, 아니면 뒷배가 있는지도 불확실하고."
막대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프리드리히조차 말을 흐렸다. 아무래도 자동인형들에겐 지식과 정보를 파악, 분석하고 결단을 내리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들의 행동원리는 어디까지나 지식의 축적과 보존이지,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자동인형 중 한 명인 그라도 자동인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그런 것을 탓하기보단 도제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에 좀 더 실망했다. 그는 안타까운 어조로 뇌까렸다.
"아쉽구나.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방해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 같구나."
프로바움은 다시 한 번 제 불민함을 사죄했다. 이런 때만은 앞 뒤 꽉 막힌 도제를 향해 스승은 다시 한 번 기나긴 한숨을 삼켰다. 어째 제 도제는 말로 해선 안될 것 같았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도제를 아끼는 제 맘을 알려나.
그러나 그러기엔 시간이 따라주지 않았다. 도제와 도제의 친구들은 한시 빨리 이곳을 떠나는 편이 안전할 테니. 프리드리히는 못내 감추지 못한 아쉬움을 흘리곤 입을 열었다.
"이미 준비는 끝났단다. 내 이름으로 다각열차 한 대를 예약해놨으니 내일 아침 그걸 타고가면 될 거란다."
사실은 이틀 후에 한 대가 있지만 어떻게든 하루를 일찍 당길 수 있을 터. 스승은 속내를 숨기며 카지트를 향해 물었다. 카지트가 무언가를 묻고 싶어했다는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다는 게 뭐니?"
카지트는 작게 아, 하고 소리를 흘렸다. 갑작스레 돌아가는 상황에 잠깐 까먹은 모양이다. 프리드리히의 질문에 그제야 기억해낸 그는 도로스들을 돌아봤다. 아직 이렇게 나서는 게 완전히 적응되지 않은 듯 한 번 깊게 숨을 들이내쉬었다. 그는 아직 떨리는 두 손을 뒤로 감추었다.
"프로바움, 그때 그랬었지?"
"뭔가?"
"광신도를 고문해서 알아낸 것들. 두 가지는 말해줬고, 마지막은 나중에 말해달라고."
프로바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에 두 가지 폭탄같은 사실만으로 머리가 가득 차서, 나머진 나중에 들려달라고 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는 눈가에 이채를 띄웠다.
"맞네. 분명 그랬었지. 그러고보면 아직 한 가지, 듣지 못했군 그래."
분명 광신도는 어디에나 있다는 것과 남부에서 왔다는 것. 카지트가 말해준 것은 그 두 가지 였다. 나머지 한 가지는 대체 뭐지? 도로스들 사이에서 궁금증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다만 잔뜩 굳은 그의 표정으로 보건대 그리 좋은 사실은 아닐 거란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
카지트는 궁금하다는 일행의 시선을 뒤로 하고 프리드리히를 마주 보았다.
"광신도들이 믿는 신은 대체 누굽니까?"
잠깐 숨을 고르곤,
"아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입니까?"
카지트는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