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6화 〉8. 스승 (96/100)



〈 96화 〉8. 스승

프로바움이 자동인형들을 따라 나서자, 졸지에 건물 안엔 도로스들과 프리드리히 밖에 남지 않았다. 또다른 의미의 어색한 침묵. 프로바움이 쩔쩔 맬 정도의 위인을 앞에 두고 도로스들은 얼어붙었다. 아무래도 대단하신 분을 눈 앞에 두고 경거망동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평한 프리드리히의 혼잣말에 그들은 한층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프로바움, 저 아이는 누구를 닮아서 저렇게 고집이 센 건지, 원."



도로스들은 프리드리히를 따라 쓴웃음을 지었다. 일행의 버팀목같은 이를 아이취급하는 게 영 익숙치 않은 까닭이다. 그래도 팔불출같은 발언 덕에 그에 대한 경계심이 한층 낮아진 것 같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프리드리히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도로스들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하구나. 손님을 반겨줬어야 했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도제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신경을 거기에만 쏟았구나."



"아, 그, 아닙니다."




"후후, 그래. 고맙구나. 그럼 다시  번 자기 소개를 하마. 난 프리드리히라고 한단다. 조금 오래 산 자동인형이지."

조금 오래?

도로스들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현존하는 자동인형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이들 중 하나가 조금 오래라니. 그들은 이걸 농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프리드리히는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도로스들을 응시했다.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 마음에 걸렸지만 도로스들은 모르는 척 제 소개를 했다. 어쩐지 프리드리히는 조금 실망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도로스들의 소개를 들은 프리드리히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카지트보다 큰 몸을 그들에게 구부렸다. 그의 몸을 덮고 있는 검은색 천 사이로 언뜻 그의 금속 몸체가 보였다. 그의 몸은 프로바움의 매끄러운 그것과 다르게 톱니바퀴와 기계가 외부로 드러나 있었다. 군데군데가 낡고 녹슨 기계장치들. 마치 세월의 흐름을 몸 안에 가두어 둔 것 같다. 자세히 귀를 귀울이면 달칵 거리며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소음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기함도 잠시, 프리드리히가 입을 열자 좌중은 모두 그의 입에 집중했다.

"그것 참, 신기한 일행이구나. 보통은 비슷한 종들끼리 뭉쳐다니는데."



하긴 그리 흔하지 않은 구성이긴 했다. 프리드리히의 말마따나 대부분은 비슷한 녀석들 끼리 모여다니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잠시 신기하다는 듯 일행을 둘러본 그는 갑작스레 얼굴을 굳혔다.




조금 가벼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쌓아올린 세월에서 나오는 기백과 관록은 무겁게 좌중을 짓눌렀다. 갑작스럽게 변한 분위기에 반응한 건 카지트 뿐이었다. 수많은 사선 속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무기에 가져다대었다.




날카롭게 치켜뜬 눈이 프리드리히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아직 적대적인 기색이 없어 무기를 뽑아들진 않았지만, 약간의 적의라도 보인다면 바로 무기를 뽑아들 작정이었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 또한 조심스럽게 프리드리히의 눈치를 보면서 뒤늦게 몸을 긴장시켰다.



꿀꺽, 하고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서로 말없이 상대방을 지긋이 응시했다.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 그완 반대로 긴장은 서서히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가 입을 열자,  모든 것이 엉망진창 뒤섞였다.



"그래, 우리 프로바움과 얼마나 오래 지냈니? 그 아인 좀 어떠니?"

"..하아?"


잔뜩 긴장하며 몸에 힘을 주던 도로스는 벌러덩 뒤로 자빠졌다. 갑자기 힘이 빠진 까닭이다. 온 몸에 탈력감이 엄습했다. 그는 방금 제대로 들은 건지 확인하기 위해 다른 일행들을 쳐다보았지만, 그들의 표정 또한 그와 비슷했다.


닥터 윌슨은 인지부조화의 뜻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으며, 카지트에 이르러선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여실히 드러내며 프리드리히와 천장, 그리고 바닥을 번갈아가며 응시했다. 혼란에 빠진 셋을 바라보며 프리드리히는 장난이 성공한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매끄러운 웃음에, 셋은 비로소 프리드리히의 성격을 대략적이나마 파악했다. 아무래도 눈 앞의 프로바움의 스승이라는 자는 장난을 꽤 좋아하는  싶었다.


그러고보면 방금전에도 이상한 농담을  것 같았지. 도로스는 허탈하다는  방독면 위를 긁었다. 이건  새로운 부류의 사람인지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조금 난감했다.


"후후후, 꽤나 재미있는 반응이로구나. 주위의 아이들은 좀처럼 웃지않아서 말이지."


도로스들은 미묘한 얼굴을 했다. 프로바움을 에스코트하기 위해 들어왔던 두 명의 자동인형들. 그 무뚝뚝하고 기계적인 표정 위로 미소가 그려지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 자동인형들이 잘도 웃겠다, 라고 셋은 동시에 생각했다.




프리드리히는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곤 큼큼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돌렸다.


"아무튼, 프로바움 그 아이는  지냈니?"



프로바움의 스승으로써 그의 도제에게 관심이 많은  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소식도 모른채 반백년 이상을 떨어져지냈으니 궁금 할 만도 했다.

"다른 자동인형들에게서 소식을 들어오긴 했지만, 그래도 바로 옆에서 지낸 사람들 만큼 정확하진 않더구나."



그렇게 말하며 프리드리히는 품 안에서 종이 다발을 주섬주섬 꺼냈다. 도로스들은 한데 모여 프리드리히의 거대한 손 위에 놓인 작은 종이쪼가리를 들여다 보았다.

음, 하고 도로스는 짧은 침음성을 냈다.



그것은 단순한 종이쪼가리가 아니었다. 프로바움의 모습이 박혀있는 그것은 흔히 사진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것이 수 십장은 족히 있었다. 각 사진 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의 프로바움이 찍혀있었는데, 아무래도 찍은 시간대가 제각기 다른 듯 했다.


아무래도 도제에 대한 스승의 사랑은 의외로 깊은  했다.




"프로바움은 알고 있나요?"




"아마 모르고 있을 듯 싶구나."



프리드리히는 어깨를 살짝 늘어뜨렸다.  자신을 스승님의 오점이라 여기며 비하하는 도제는, 스승이 저를 이렇게 아낀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 했다. 그 고집불통인 성격으로 보건대 말해줘도 헛소리로 치부하고 귓등으로 흘릴게 뻔했다.



"도제,를 상당히 아,끼시는 것 같습,니다."

"당연하잖니. 하나 뿐인 도제인 걸. 스승으로써 도제의 성장을 지켜보는  당연한 일이란다."


그는 후후, 하고 자애롭게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로스는 음,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자동인형에 대해 그리 상세하게 알지 못하는 그였지만, 어쩐지 프로바움의 스승은 다른 자동인형들과 다른 듯 했다. 그러나 도로스는 3세대 자동인형은 원래 저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프로바움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로 대화의 물꼬를 튼 셋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연신 떠들었다. 주로 프로바움과 제일 오래지낸 카지트와 프로바움의 어린 모습을 알고 있는 프리드리히가 이야기를 하고, 나머지는 듣는 역할이었다.


"영감..그러니까, 프로바움은 만난  한 십  전 쯤입니다. 다 죽어가던 저를 그 영가..프로바움이 구해줬죠."




평소 하던대로 프로바움을 영감이라 부르려던 카지트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그 영감의 영감이 눈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앞에 나서는  멋쩍은 카지트는 조금 어려워 했지만, 일행들과 프리드리히의 적절한 호응에 힘입어 입을 열었다. 말을  때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자신감은 천천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고 있다는 반증이리라.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점점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는 일행의 모습에 훈훈한 웃음을 지으며 귀를 귀울였다. 프로바움의 다양한 과거엔 전부터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조금씩 불이 붙기 시작한 카지트의 입담까지 더하니 그야말로 이보다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전쟁이 한창 일 적, 프로바움이 참다못해 고문관같았던 소대장을 후려갈겼을 땐 정말 끝났다고 생각했었죠. 다행히 때린 부위가 좋았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못한 터라, 저와 다른 녀석들이 열심히 뒷수습에 나섰었습니다."


카지트는 예전의 아찔했던 기억을 떠올리곤 고개를 내저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어휴 하는 한숨소리가 절로 나왔다.

"정말이지..그런 멍청한 놈이 소대장이라서 다행이지. 사실 소대장이 기절해있던  때가 제일 실적이 좋았죠. 혹시 그놈이 계속 깨어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하기 싫네요. 기절시킨  좋긴 했는데.. 진짜 저 영가..프로바움. 욱하는 성질만 좀 죽였으면 하는데.."

한탄하는 내뱉는 카지트의 모습에 프리드리히는 후후, 하고 부드럽게 웃었다. 말을 그렇게 해도 등을 맡길 수 있다는 신뢰가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 사이가 좋아보이는 구나."



"음, 프로바움과는... 악우惡友라고 할 수 있겠네요."




카지트는 어딘가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간 쌓아왔던 프로바움과의 관계를 입 밖으로 정의하자니 어딘가 부끄러운 것이다. 카지트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아직 이런 분위기엔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수백 년 동안 지식과 기록을 쌓아온 눈 앞의 현자라면 그들의 의뢰와 관련된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역시 있었다.

"아, 그러고보니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카지트는 표정을 바로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으나, 때가 좋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프로바움이 돌아온 것이다.



그를 환영하려던 일행은 프로바움의 얼굴을 보고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얼굴은 무섭도록 굳어있었다. 도로스들을 한 번 훑은 시선은 마지막으로 그의 스승에게서 멈추었다. 그는 꾸벅 고개를 숙이곤 입을 열었다.




"에메랄드 컴퍼니 하겐 지부의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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