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5화 〉8. 스승 (95/100)



〈 95화 〉8. 스승

이유모를 부끄러움이 프로바움을 덮쳤다!



그는 다른 일행들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안봐도 뻔했다. 그는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않았기에 그의 입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스승님, 저도 이제 먹을 만큼 먹었습니다..."

 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보낸 이는 스승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항의했다. 그러나 그 제자의 그 스승이라고, 프리드리히는 절대로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었다.



"먹을 만큼 먹은 도제가 그 긴 세월동안  번도 스승을 만나러오지 않았구나."



"그건.."

뼈가 담긴 말에 프로바움은 꼬리만 개처럼 입을 닫고 침묵했다. 그에 대해선 도저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였다.



"불초 제자가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자, 프리드리히는 오히려 눈을 크게 떴다. 미약한 당황이 얼굴에 잠깐 드러났다. 어쩐지 제가 생각했던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그러나 찰나에 다시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왔기에 장내의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대신 그 둘의 곁에서 사제의 대화를 구경하던 도로스는 프로바움의 눈 속에서 존경심과 미안함이 뒤섞여 있는  보았다.

위대한 스승의 이름에 누를 끼치기 싫어서 북부를 뛰쳐나온 도제. 그런 그가 반 백년 이상의 세월을 넘어 다시 돌아왔으니, 도대체  기분은 어떠할까. 그로써는 알  없었다. 도로스는 눈매를 좁히며 방독면의 턱부분을 쓰다듬었다.



프로바움이 어떤 기분일지 알 수 없었지만 도저히 말로는 표현 할 수 없을 느낌이란 건 어렴풋이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래선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까닭이다.




말은 하지않았지만 다른 일행들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들은  둘의 관계에서 어디까지나 부외자다. 그러니 그들이 프리드리히와 프로바움의 관계를 정의해선 안된다. 적어도 카지트와 닥터 윌슨은 그렇게 생각했다.



프리드리히와 프로바움. 복잡무쌍한 둘의 관계를 정하는 권리는 오로지 저 둘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프로바움이 그의 스승에게 품고있는 복잡무비한 감정을 일말이나마 보았기에,  누구도 둘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들 나름의 배려였다.



그러나 기껏 이어진 사제의 대화 또한 프로바움이 입을 다뭄으로써 끝이 났으니, 결국 어색한 침묵만이 그들 사이로 맴돌았다. 이런 어색한 침묵을 싫어하는 도로스들은 뭐 좀 해보라며 서로 쿡쿡 찔러댔다.

물론 나서는 이는 없었다.

도로스들은 마음같아선 프로바움에서 뭐라고 이야기  해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복잡한 심사와 스승의 앞이라는 압박감 때문에 대화고 뭐고 여유가 없어 보였다. 마치 뱀 앞의 생쥐처럼 옴짝달싹 못한 채 묵묵히 눈을 내리깔고 있는 모습은 마치 그들이 아는 프로바움과는 전혀 다른 사람같았다.




프로바움의 스승 또한  이상의 대화는 무용지물이란 걸 깨달았는지 한숨을 푸욱 내쉬곤 휴식을 권했다.



"아무래도 밖으로 나가는 건 아직 위험하니, 여기서 편히들 쉬려무나. 음식이라면 가져오도록 할 터이니."



거절의 말은 필요없었다. 스승의 말에 프로바움을 제외한 세 명은 여기저기 흩어져 잡동사니 사이에 몸을 묻었다. 침대에 비하면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으나, 차디찬 파이프 위에서 노숙하는 것보단  배는 나았다.

그들이 자리잡은 곳은 하나같이 프로바움과 그의 스승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스승과 도제를 위해 자리를 비켜  것이다. 절대로 어색한 둘의 관계에 휘말리고 싶지않아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그런 일행들의 배려를 눈치채곤 부드럽게 웃었다. 금속이라곤 믿기지않을 만큼 부드럽게 휘는 눈매는 잔잔하고 고왔다.

"좋은 친구들을 두었구나."

"..그렇습니다."

온화함이 담긴 말에 프로바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러나 여전히 시선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프로바움은 걷잡을  없는 혼란을 느꼈다. 그 혼란은 너무나 거대해서 그의 빛나는 지성과 관록을 녹슬게 만들었다. 마치 부모님께 혼나는 어린아이처럼 그는 무력함을 느꼈다.




존경하는 스승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 지 알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50년을 넘는 세월동안 그의 가슴  켠에서 응어리진 것은 이미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그는  이상 스승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너무나 빛나는 스승이 만들어낸 최초이자 최악의 실패작. 그렇기에 과도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그는 어지러운 속내를 애써 억누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간...잘 지내셨습니까?"


"글쎄..잘 모르겠구나."

의미를  수 없어 그는 의아한 눈으로 스승을 올려다보았다. 스승은 그런 도제의 모습에 살풋 웃는 얼굴을 지어보였다.



"도제가 말도 없이 뛰쳐나간 그 날부터 걱정이 되어서 말이다."




농담조임이 분명했지만 프로바움은 말없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일견 답답해보이는 모습이었지만 프리드리히는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다. 자동인형답지않은 불같은 성정하며 합리성과는 동떨어진 고집.  도제의 자동인형답지않은 모습이야, 프리드리히가 제일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세월 또한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음이라.

프로바움은 부채감에 짓눌려 어찌  줄을 모르고 있었다.


일언반구도 없이  멋대로 스승을 떠나 오랜 세월동안 감감 무소식이었다가, 도움이 필요하니 기어들어오는 꼴이란!




제가 생각해도 참 못난 도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주스런 그놈의 4세대잖은가!




가장 위대한 스승이 가진 지식의 일말조차 이어받지 못한 자신. 프로바움이 생각  때 자신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되었다. 이곳에 머물러봤자 완벽한 스승의 명성에 누가  뿐. 실패작을 만들었다는 오점을 남길 뿐이었다.

그는 제 처지가 분하면서도 비참했다.




스승의 그늘을 떠난 이후,   차례도 발을 들이지않았던 북부에 다시 들어온 걸로 모자라서, 스승에게 빌붙었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이 그의 의지가 아니란 점이다. 에메랄드 컴퍼니의 반강요로 떠안게된 비밀 의뢰. 모든 것이 그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점이 그를 더욱 궁지로 몰아갔다. 제 의지로 돌아와 용서를 빌어도 모자랄 판에, 같잖은 의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아와서 빌붙는 꼴이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프리드리히는 으스러질  주먹을  쥔 채 바닥만 응시하는 도제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였다.



"프로바움, 가서 쉬려무나. 조금 있다가 동행을 붙여줄테니 나가서 네 동료들이 필요한  사오렴."




프로바움은 깊숙히 고개를 숙이고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뒤에서 들려오는 스승의 나직한 한숨소리가 그 무엇보다도 크게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어깨를 늘어뜨린 모습에선 무기력함 마저 엿보였다.




한동안의 침묵. 도로스들은 숨막힐 듯한 정적 사이에서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서로 이 분위기 좀 어떻게 해보라고 눈짓했지만 프로바움이 스스로 해결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걸 셋 모두 알고 있었다.




질식할 것처럼 무거운 침묵이 건물에 들어온  자동인형에 의해 걷힐 때까지 도로스들은 좌불안석이었다. 자동인형 두 기가 군더더기 없는 걸음걸이로 들어와, 프리드리히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이 대화를 나눌 때가 되서야, 프로바움의 일행들은 깊디 깊은 안도를 내뱉었다.




프리드리히와 무언가 짧게 대화를 나누는 두 자동인형은 그야말로 자동인형의 표본이라 부를  있으리라. 한 걸음 한 걸음이 계산된,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끄럽고 절도있는움직이었지만, 어딘가 무기물 특유의 딱딱함이 묻어나왔다. 그들의 표정이나 말투 또한 일체의 감정이라곤 없는 것처럼 무기질적이고 단조로웠다.

이윽고 대화를 마친 그들은 프로바움에게다가와 그를 바깥으로 에스코트 했다.

"가시지요."


프로바움은 고개를 끄덕이곤 그들과 함께 문 밖으로 나갔다. 쿠웅, 하며 무겁게 닫히는 문. 일행들은 약간의 걱정이 들었다. 프로바움은 그리 호락호락 당할 사람이 아니었지만 지금 저런 상태라면 그리 좋은 결과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물론 프리드리히가 붙여준 두 자동인형이 있으니 별 일은 없겠지만, 동료의 상태가 저러니 자연히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 이제야  편하게 대화 할  있겠구나."

프리드리히는  손으로눈가를 쓸어내리고 나서 시선을 도로스들에게 향했다.



"프로바움,  아이는 누구를 닮아서 저렇게 고집이 센 건지, 원."


도로스들은 프리드리히를 따라 쓴웃음을 지었다. 일행의 버팀목같은 이를 아이취급하는 게 영 익숙치 않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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