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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화 〉8. 스승 (92/100)



〈 92화 〉8. 스승

서로 아웅다웅 입으로 다투며 두 자릿 수의 용병들이 떼거지로 달려들었다.


전세역전이었다.


멕도너와 말릭의 얼굴 위로 처음엔 당황으로, 그 다음은 혼란으로 물들었다. 아무리봐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다는 얼굴이다. 그들은 떼거지로 몰려오는 용병들 너머, 프로바움과 눈을 마주쳤다.

어떻게  분도 되지않은  짧은 시간에 이런 숫자를 고용한 거지?

안가르쳐 주지. 그냥 꺼져라.



무언의 대화 끝에 멕도너는 있는대로 인상을 찌푸렸다. 상대가 일반인이었다면 흉신악살과도 같은 얼굴을 보고 멈칫했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용병들은 여기저기서 굴러먹던 이들이라 그런 것 따윈 눈곱만큼도 신경쓰지 않았다. 아마 상대가 중형 돌연변이라고 해도 돈에 눈이 뒤집어진 그들은 신경쓰지 않고 덤벼들었을 것이다.

추격자들의 결단은 빨랐다.

그들은 재빨리 근처의 엄폐물로 몸을 던졌다. 주점 주위엔 다른 가계의 가판대 등의 엄폐물이 많았으므로 대놓고 몸을 드러내지않는 이상 총을 맞을 확률은 적었다. 대강 자리를 잡은 멕도너와 말릭은 총을 꺼내 쏴제끼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달려들던 수 십의 용병들은 날아오는 탄환에 당황하며 엄폐물 뒤로 숨었다.

"저 미친놈들, 누가 수배자 아니랄까봐 도시 안에서 총질이야?"




"진짜 제정신 아니구만!"

"그러니까 두 당  만이지!"

왁자지껄 떠는 용병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질렸다는 표정이 떠올라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무법지대인 파이프에서완 다르게 마을과 도시 내엔 자경대나 치안대같은 질서를 유지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강력한 제재와 끊임없는 순찰 등으로 일종의 억제제과 된 그들 덕분에 도시나 마을 내에선 그들이 정한 법이나 규율을 깨뜨리는 건 거의 금기시 되어왔다.




 법 중에서 살인과 거의 비등 할 정도로 금기시되는 게 바로 도시 내에서 무기를 휘두르거나 총을 발포하는 것이다. 무기를 소지한 이들은 대부분 용병들이고 호전전인 성격상 무기를 사용   대부분 사상자가 잇따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고 있으니 간이  용병들이라도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으리라.



"우리도 무길 써야하는 거 아냐?"



"치안대가 오면 어쩌려고?"




"무기를 먼저 빼든 건 저놈들 이니까, 그 뭐냐, 정당방위? 그게 있다고."

"저것들이 사람들한테 총을 쏴대니까 우리가 제압하려고 했다하면 되겠지 뭐."




엄폐물에 몸을 바짝 기댄 채 서로 시끄럽게 떠들던 이들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어쨌거나 무기는 저쪽에서 먼저 사용했으니, 명분은 그들에게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은 멀리있는 법보다 눈 바로 앞에 아른거리는 돈이  중요했다.

용병들까지 총을 쏴제끼기 시작하자, 거리는 이내 아수라장이 되었다. 화약과 강철의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고 비명과 총성이 뒤섞여 거리를 헤매었다.


"후우, 개판이군."

프로바움의 말에 카지트는 조용히 코 밑을 스윽 문지르곤 주위에 널부러진 술 한 병을 주워 병나발을 불었다.


그 난장판을 바라보던 카지트와 프로바움은 조용히 발을 빼기로 했다. 마음같아선 용병들에게 가세해 추격자들을 끝장내고 싶었지만,  멀리서 들리는 치안대의 부산스러움이 그들의 참전을 멈추었다.

"..수고했네. 그런데 이번엔 너무 힘을 낸 것 같구만.."



카지트는 면목없다는 얼굴로 땅바닥을 응시했다. 프로바움은 피식 웃고는 그를 끌고 하겐의 입구로 향했다. 저 멀리서 총격전의 진원지로 다가오는 치안대가 보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시선이 용병들과 추격자들에게 집중된 덕분에, 하겐의 입구는 거의 텅 비어있었다.

둘은 도로스와 닥터 윌슨이 기다리는 곳으로 거의 날듯이 달려갔다.

"..이런 일이 있었다오."



모닥불에 둘러앉아, 도시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해들은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떨떠름한 얼굴로 카지트를 바라보았다. 그가 전일보한 것은 분명 기쁜 일이었지만, 그가 일으킨 혼란의 도가니를 생각하면 조금..미묘한 기분이었다.




카지트는 하겐에서 이곳까지 길잡이를 하느라 식은땀을 흘리며 구석에 반쯤 널부러졌다. 살짝 풀린눈을 보아하니  많은 부담을 느낀 듯 했다.


그래도 도로스는 카지트에게 일말의 존경을 느꼈다. 그런 상황에서 추격자를 떨쳐낼 방법을 떠올리다니. 기가막히고 의외성 넘치는 방법이었지만 어찌되었건 그 효과만은 뛰어났다. 그 증거로 카지트와 프로바움은 어디 다친 곳 한 군데도 없이 무사히 돌아왔잖은가.

도로스는 만약 자기가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카지트만큼 재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내릴 수 있을  같지 않았다. 카지트의 임기응변은 그로썬 도저히 따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감탄하는 도로스완 다르게, 카지트는 탈진한 얼굴로 애꿏은 파이프 천장을 응시했다. 완전히 새하얗게 불태웠는지 멍한 시선. 그러나  눈빛 속엔 제 판단이 잘못되었는지 고민하는 느낌이 남아있었다. 프로바움은 시선은 도로스들에게 고정한 채, 그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아무튼, 앞으로의 일이나 이야기해봅세."


그제서야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쳐진 카지트의 모습을 보고 황급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저희가 하겐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글쎄..아마 들어는 갈 수 있겠지. 다만 치안대들이 우릴 반겨줄 것 같군. 에메랄드 컴퍼니의 정보력이라면 도시 안에서 일어난 소란쯤은 당장에 파악  수 있테지. 소란의 원인을 조사한다면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는  쯤은 간단히 알아낼 거요."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가,능하다면 하겐에 들어,가지 않는게 좋겠,지만,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을  같습니,다."


닥터는 식량과 탄약이 든 주머니를 툭툭 쳤다. 나머지 일행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그러고보면 귀뚜라미의 말마따나 식량과 탄약의 보급이 절실했다. 하겐을 그냥 지나치게 된다면 얼마 가지 못할 게 뻔히 보였다.



그렇다고 하겐으로 들어가자니, 치안대를 상대해야하고. 옴짝달싹 할  없는 딜레마였다. 잠시 고민하던 도로스는 반쯤은 농담조로 입을 열었다.


"치안대는 얼마나 강할까요. 저희가 상대할  있을까요?"

닥터 윌슨은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구릿빛 키탄질 외골격이 모닥불을 받아 엺게 반짝였다. 그러나 대답은 카지트에게서 흘러나왔다.



"상대가 안될 걸. 우리 한 명 한 명이 각각 돌연변이 백 마리  혼자 상대할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대화에 참가한 카지트의 모습을 둘은 깜짝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면 날선 분위기는 한층 누그러진 듯한 느낌이다. 그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걸 둘은 느꼈다. 닥터 윌슨 또한 그의 발언에 힘을 더했다.



"아쉽,게도 불가능합,니다. 제,식화된 장비도 장비지,만  머릿수가 문제입,니다."




뒤에서 날아오는 총알은 피하기 힘듭니다, 닥터는 덧붙였다.

"하겐 지부엔 들리지,않고 바로 에메랄드 컴퍼니 본사,로 향하는 게 나을  같,습니다만, 그러기 위해선 어,쨌거나 하겐에서 다각열차를 타,야합니다."

결국 하겐이다. 하겐에서 에메랄드 컴퍼니의 본사가 있는 뉴 런던까지 도저히 걸어갈 만한 거리는 아니다. 도보로 간다면 모르긴 몰라도  달은 걸리지 않을까. 답이 없는 상황에 도로스는 갑자기 그의 누이가 보고싶어졌다.



"하겐으로 들어가서 어떻게든 다각열차를 타면 좋을텐데.."

"그것 또,한 불가능합니,다. 다각열차라고 해,서 수배자를 태워,줄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 결국 노획하는 쪽,으로 생각해봐야하는데, 저희 중,에서 다각열차를 운,전 할 수 있는 사람은.."

닥터 윌슨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도로스는 시선을 피했고, 카지트는 묵묵부답, 프로바움 또한 생각에 잠겨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귀뚜라미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커다란 눈동자는 어째 슬퍼보였다.



"..없는  같,습니다."



일행은 잠시 말이 없었다. 모닥불만이 춤추듯 너울거리며 흔들렸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도로스는 고개를 들어 일행들의 면면을 쳐다봤다. 추욱 쳐진 닥터 윌슨과 카지트. 그리고 잔뜩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프로바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고뇌하는 그의 표정을 보건대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모두 말이 없어지자, 도로스 또한 누이와 마을사람들을 걱정했다.  지낼까? 무사하겠지? 토벌대가 갔으니 무사  거야. 그는 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검은 머리인 그와 다른 갈색섞인 금발과 푸른 눈. 유악한 인상의 여인. 같은 인간이지만 머리 색깔이나 이목구비등이 미세하게 달랐다.


당연한 일이다. 도로스와는 피가 이어지지않았으니까.




도로스는 어쩐지 그 사실이 조금 아쉽다고 느꼈다. 물론 피가 이어졌다면 그 또한 몸이 약해서 이렇게 마을 밖으로 나올 수도 없었겠지만.



도로스가 병약한 누이의 걱정에 휩싸여 있을 때, 자동인형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한 가지.."



프로바움의 나직한 말에 모두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한 가지 방법이 있네."



그의 얼굴엔 굳은 결심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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