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0화 〉8. 스승 (90/100)



〈 90화 〉8. 스승




하겐에 도착했을 때, 카지트는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딱히 오는 길이 힘들거나 험난했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카지트 또한 길잡이이고 길잡이로써 나름 실력이 좋은 축에 속한다. 그 증거로 하겐으로 오는 길에 돌연변이의  끝도 보지 못했지 않은가.



다만 카지트가 저렇게 된 이유는 그의 능력과 무관하게도 그의 내면에 있었다. 자신의 길잡이 능력에 회의감과 불신을 느낀 카지트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이 길이 맞는 길인가? 틀렸는데 사실 옳다고 믿고 있는게 아닐까?


온갖 불안한 상상이 그의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하나의 끔찍한 결과를 머릿속에서 그렸다. 바닥에 쓰러져 손가락 하나조차 미동하지 않는 프로바움. 고철이 된 파울로의 모습 위로 겹쳐보였던 프로바움의 모습.

그의 옛동료들이 그랬듯이 그의 십년지기조차 그의 잘못으로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과 불안, 근심은 카지트의 숨통을 죄여왔다. 그렇게 하겐에 도착했을 때 그는 거의 사경을 헤메고 있었다. 프로바움이 곁에서 계속 달래주지 않았다면 하겐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멸했을 게 자명했다.



프로바움은 가볍게 푸념을 내뱉으며 카지트를 달랬다.

"쯧, 노인네보다도 빌빌거려서야 쓰나. 그래도 잘했네. 자네도 할  있지않은가?"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카지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간질 환자처럼 벌벌 떨리는 손발은 볼품 없었다. 잔뜩 열린 동공 또한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누가봐도 명백하게 정상이 아니었다. 이러다가 순찰을 도는 치안대에게 걸리면 일이 조금 귀찮게 될 수도 있었기에, 자동인형은 카지트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는  대강 정리를 했다.



"이거 원, 애보는 것도 이거보단 낫겠군 그래."




프로바움은 특별히 조제된 기름을 꼼꼼히 몸에 바르고 카지트에게 넘겨주었다. 파이프를 돌아다니다보면 자연히 몸에 역겨운 냄새가 따라붙는다. 악취를 제거해주는 기름은 파이프를 여행하는 이들에게 필수적인 물건이나, 문제는 그 가격이다. 특수한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가격은 껑충 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겐 내부의 동향을 살피는 일이 중요한 만큼, 프로바움은 돈을 아낄 생각을 버렸다.

적당히 하겐의 입구 근처에서 몸을 추스린 둘은 함께 하겐 안으로 들어갔다.


간만에 보는 활기찬 풍경. 저 높은 천장에 박힌 인공조명은 여전히 밝게 빛났으며 주위의 무수히 많은 톱니바퀴들 또한 여느 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그들을 반겼다. 북부의 대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자동인형들의 고향인 북부답게 사람들의 반절 정도는 자동인형으로 보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번화함과 북적임. 평소라면 소란스럽다고 여길 그것조차 반갑기 짝이 없었다.


잠시 그 광경을 감회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둘은 곧바로 에메랄드 컴퍼니로 향하는 대신 주위에서 정보를 모으기로 결정했다. 에메랄드 컴퍼니 하겐 지부에서 북부의 유적에서 일어난 '불미스런 일'이 그들 때문이라 여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대충 눈에 보이는 주점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 석조와 금속으로 이루어진 내부는 여느 주점들처럼 살짝 어두컴컴했다. 알싸하게 풍기는 술냄새와 시큰하게 피어오르는 땀과 썩은내가 그들을 마주했다.


프로바움은 술 한 잔을 시켜 카지트에게 들려준 후, 그를  구석에 버려두었다. 용병들의 연인인 술을 연거푸 들이키자 카지트는 그나마 생기를 되찾는 듯 했다. 프로바움은 그런 카지트의 등을 몇 번 두들겨주곤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테이블로 향했다.

그가 향하는 곳은 굴뚝처럼 끊임없이 연기를 피워올리는 테이블.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그 테이블 주위만 뿌옇게 물들어있었다. 손을 몇몇 휘휘 내저어 연기를 걷어내고 나서야, 자동인형은 둥그런 강철 테이블 주위로 옹기종기 둘러앉은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제각기 파이프를 피며 연신 연기를 내뿜고 있던 그들은 손에 쥔 카드를 뚫어져라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 주점에나 있다는 그것, 노름판이다.



자고로 남자들은 술, 여자, 노름으로 친해진다고 했다. 잠시 서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프로바움은 수중의 너트를 전부 잃은 수인 하나가 떠나가자, 잽싸게 그 자리에 앉았다. 페퍼박스는 크기가 크기인지라 의자 옆에 세워놓을 수 밖에 없었다.


품 안의 너트를 꺼내 참가 의사를 밝힌 그는, 파이프의 연기를 피워올렸다. 뭉게뭉게 퍼진 연기는 다른 이들의 파이프에서 솟아나온 연기와 영역다툼을 벌였다.




프로바움은 사내들에게서 패를 받고 확인했다. 음, 하고 낮은 목소리가 삐뚜름하게  파이프 새로 흘러나왔다. 자기 차례가 되자 쓸만한 카드 몇 장을 내려놓은 그는 넌지시 입을 열었다.



"내가 오랜만에 하겐에 온 터라, 요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겠다오. 뭔가 좋은 건수 없소?"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은 힐끔 프로바움을 훑었다. 여기저기 더러워지고 헤진 정장은 그간의 고초를 보여주듯 온갖 상처들로 얼룩져 있었다. 그리고 무기. 사내들 또한 용병이기에 프로바움의 곁에 세워놓은 페퍼박스가 여간 무기가 아니라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프로바움은 격전 끝에 막 하겐에 도착한 베테랑 용병이었다.


초보라면 잔뜩 벗겨먹었겠지만 그들보다도 급이 높아보이는 베테랑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안면을 터 둬서 나쁠 건 없었다.

"하이고, 이 양반. 때마침 잘 찾아왔네. 안그래도 요즘 이것저것 짭짤한 일들이 많지. 안그런감?"



 명이 대화의 물꼬를 트자, 둘러앉은 사람들 여기저기서 대화를 주고 받기 시작했다.

"하모 하모. 그 뭐냐, 실종된 사람들 찾아주는 게 보수가 꽤 괜찮터라고. 목록 보니까 그 숫자도 꽤 많고."



"어? 여기도 그려? 난 서부에서 왔는디, 그쪽도 그렇드만."




"것 참, 세상이 어찌 될련지 모르겠네.  놈의 실종자가 이리 많어?"

"아, 글쎄, 그러게 말이유."


프로바움은 대강 맞장구를 치며 쓸모없는 정보들을 걸러내었다. 가끔가다 정말로 괜찮다싶은 의뢰들이 나왔지만, 그는 반쯤 아쉽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대충 둘러댔다. 한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마침내 그의 관심을 사로잡는 내용이 그의 귀에 들려왔다.




"아는 사람한테서 들은 이야긴데, 에메랄드 컴퍼니에서 조사하던 유적들 중 한 곳에서 큰 일이 났다나봐."

프로바움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호오, 그거 흥미롭구만. 혹시 어느 지방인지 아는가?"

"듣기론 북부라는데. 그쪽 유적 탐색대가 아주 박살났다는 것같더라. 덕분에 하겐 지부에선 벼르고 있지. 헤헤, 그쪽 영감님도 관심 좀 있나봐?"




"뭐, 그렇지. 에메랄드 컴퍼니의 의뢰 하면 꽤 두둑하잖은가."


프로바움의 말에, 그건 그렇지! 하고 주위 사람들이 동조했다. 에메랄드 컴퍼니의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은 노름질을 잠시 멈췄다. 에메랄드 컴퍼니의 의뢰라면 받고싶어 사족을 못쓰는 녀석들이 널리고 널려있다. 이야기를 꺼낸 이는 사람들의 주목을 즐기듯 으스대며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크흐흐, 그렇지. 영감님도 돈냄새 좀 맡는가봐? 재주좋게 딱 맞춰서 여기로 오고."

"자꾸 애태우지 말고, 대체 하겐 지부에서 무슨 일을 맡겼는지 말해주게."



여기저기서 옳소! 하고 외치는 동조의 목소리가 뛰쳐나왔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에 말을 꺼낸 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능청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이쿠, 여기서 그만하면 몰매맞겠는 걸. 알았수다. 그 뭐냐, 하겐 지부에서 대대적으로 현상금을 걸었는데, 그 금액이 자그마치   너트요! 그것도 머리 하나당! 수배지에 오른 놈이 네 마리니, 총 사 십만이지!"


프로바움은 반사적으로 나오려는 신의 이름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돈이 썩어넘치는 놈들! 온갖 쌍욕이 목 언저리까지 올라왔다 내려갔다. 현상금도 현상금이지만, 그는  수배지에 올랐다는 이들이 누군지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자동인형 하나, 고양이 계통 수인 하나, 바퀴벌레 계통 수인 하나, 그리고..뭐더라? 방독면을 쓴 원숭이 계통? 아무튼, 뭐 그렇다는 것 같던데."



그럼 그렇지, 프로바움은 복잡한 심경을 숨기고 태연한 척 패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명 당 십 만, 총합 사십만. 먹이가 탐스러우니 사방에서 달려들 것이 자명했다. 프로바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툭 내뱉었다.

"그건 또 이상한 일행이구만."



"내 말이! 보통 끼리끼리 어울리더만 이 녀석들은  이상하다니까? 하긴, 그러니까 에메랄드 컴퍼니에게 시비를 건 거겠지."


십만! 사십만! 하고 주위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늙은 용병의 귀에 들렸다. 지금 하겐 지부에 찾아간다면 그들이 자신에게 십 만 너트를 줄까? 프로바움은 실없는 생각을 했다. 생각보다 하겐 지부장이 단단히 화가 난게 틀림이 없다. 지금 찾아간다면 십 만 너트는 무슨, 십 만 가지 고문같은  선물로 줄 게 뻔히 보였다.


게름하르트를 만나게 해달라는 소리도 가뿐히 무시당할 확률이 높았다. 프로바움이 소리없이 좌절에 빠져있을 때, 그나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아직 그 면상은 배포되지않았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에메랄드 컴퍼니니까 조만간 배포하겠지."

거칠게 얼굴을 문지는 자동인형은 대충 조금 더 잡담을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은 너트들을 정보비라는 이름으로 테이블에 앉은 이들에게 나눠준 후, 그는 반쯤 만취한 카지트를 데리고 조용히 주점을 나갔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얼굴이 알려지지않았으니 지금이 빠져나갈 기회였다. 그는 카지트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정보를 대략적으로 알려줬다. 카지트는 술이 확 깨는 듯 눈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빨리 돌아가자."



"그래야지. 어째 가는데마다 일이 꼬이는 것 같군 그래."



둘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도로스들에게로 돌아가야한다는 의견은 일치했다. 그 후의 일은 상의해봐 알겠지. 둘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걸었다.



그리고 출구로 향하던 중, 그들과 마주쳤다.



고릴라 계통의 수인과 고양이 계통의 수인.

멕도너와 프로바움, 말릭과 카지트.

넷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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