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2화 〉7. 단서 (82/100)



〈 82화 〉7. 단서

모두가 잠든 새벽.



카지트는 어김없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고양이과의 동물들이 그렇듯 유연한 관절과 근육을 스트레칭으로 간단히 풀고, 그는 일행들을 깨우지 않도록 주의하며 숙소를 나섰다. 그의 발걸음엔 망설임이 없다. 이미 어디로 가야하는지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실제로 그가 가고자하던 장소에 도착했을 때 걸린 시간은 전날보다  이상 적게 걸렸다. 카지트는 촌락을 에워싼 동공의 천장에 박힌 톱니바퀴를 슬쩍 바라봤다. 희미하다못해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같은 조명의 밝기로 봐서 아침이 오기까진 아직 한참이나 남은 듯 하다.


그는 목표로 했던 집에 귀를 귀울였다. 예민하고 섬세한 그의 청각은  너머로 들려오는 대화소리를 잡아내었다. 목소리는 셋. 모두 익숙한 음성이다.

"그 자들은 위험합니다! 제 아무리 에메랄드 컴퍼니 소속이라고 해도  자들의 실력은 너무 위험합니다. 혹여  자들이 마을에 위협을 가한다면.."


"말하는 내용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시점에서 그들의 무력은 필수적입니다. 그들없이 저희만으론 돌연변이들을 상대 할 수 없겠지요. 고작해야 점점 아사해가던 며칠 전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볼 때, 돌연변이의 위협에서 벗어난 다음이라면 몰라도 지금 당장은  용병들이 필요합니다."


촌락을 이끄는 셋.


그들은 여전히 도로스들의 처우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최초엔 도로스들을 옹호하던 뮐러 또한 격분한 프로바움의 모습을 본 이후로 너구리와 파울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돌연변이들을 무찌르기 위해선 도로스들의 힘이 필요하긴 하나, 격분한 프로바움의 잔혹성을 목격한 그에게 도로스들을 수용하는  꺼려지는 것이다.

물론 뮐러까지 저를 지지하는 것같자 신이 난 너구리 수인이었지만, 그가 뭐라고 주장하든 파울로의 결정은 늘 똑같았다. 애초에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그는 도로스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열받은 프로바움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자세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논리는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마을에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그들이 온 덕분에 돌연변이도 어떻게든 물리칠 수 있고, 더불어 식량도 확보 할 수 있게 되었잖습니까? 지금 내쫓는다면 다시 위험에 처할 뿐입니다."




 뒤로는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였다. 어떻게든 도로스들을 쫓아내려는 너구리 수인과 그들의 유용성을 언급하는 파울로. 그리고  사이에서 갈등하는 뮐러. 한참을 그렇게 다투던 이들은 결국 토론을 포기했다. 도저히 서로 타협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후일을 기약하며 밖으로 나왔다.



카지트가 보기에 파울로의 대응은 타당하다. 뮐러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달복달  뿐이다. 도로스들의 무력은 마을에 충분한 도움이 된다. 지난 사냥들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무력은 자경대가 감당  수 있는 정도는 넘어섰다. 만약 도로스들이 배신한다면..




카지트는 뮐러의 생각을 대략이나마 읽고 코웃음쳤다. 그의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의심당하는 입장에서 순순히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웃어넘길 정도로 호인은 아니었다. 카지트는 서늘한 시선으로 뮐러를 짧게 노려본 후, 너구리 수인을 응시했다.

첫 날부터 이유없이 도로스들을 쫓아내기 위해 애쓰던 자. 마치 무언가 켕기는 게 있는 듯한 행동이다. 그리고 카지트의 경험상 이런 자들의 뒤엔 정말로 구린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길잡이로써 갈고닦은 감이 그에게 너구리 수인이 광신도와 무언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알리고 있었다. 아마 지금까지 그랬왔듯 감을 믿고 두들긴다면 알아서 제 정체를 술술 불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카지트는 제 자신의 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 그의 감이 잘못되었다면?


너구리 수인이 정말로 광신도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곤란함은 일행의 몫이 된다. 고작 넷이서 마을 모두를 상대  수는 없는 법이다. 숫자의 폭력만큼 무서운 것은 없으니까. 혹은 싸움을 피한다고 해도 서로간의 입장이 역전되는 건 불가피하겠지.


카지트가 주춤한 사이에 너구리는 잰 걸음으로 발을 옮겼다. 고개 숙였으나 그 얼굴이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카지트는 그가 남긴 말을 들었다.



"빌어먹을 자식들...덜떨어지는 용병놈들을 빨리 내쫓으라고. 젠장, 뭔가 하지않으면.."



너구리는 초조한 듯한 손길로 품 안에 손을 집어넣어 뭔가를 매만지는 동작을 했다. 그러나  품 안에 무언가가 있는지 카지트는 볼 수 없었다. 오로지 너구리 수인이 무언가 일을 저지를 것이란 느낌 뿐. 그의 언행에서 불온한 무언가를 느낀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감을 따라야하는지 그는 망설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너구리는 카지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세 번의 사냥.



첫 번째 사냥이 성공하자 그 이후로도 도르스들은 뮐러, 자경대와 함께 세  더 사냥을 나갔다. 돌연변이를 찾는 건 쉬웠다. 도로스의 직감이 위험하다고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면 발에 채이는 게 돌연변이였으니까.

그러나 모든 면에서 첫 번째 사냥과는 달랐다.

마치 도로스들의 전략을 훤히 궤뚫고 있다는 것처럼 돌연변이들은 자잘하게 소수로 이뤄진 무리를 나누는 대신 거대한 무리를 짓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 했다. 마치 도로스들의 전략을 파악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분명 돌연변이들의 큰 무리는 위협적이다. 그 숫자가 사냥을 나선 이들의 거의 다섯 배 정도나 되고, 거기에 더불어 피냄새와 소음에 이끌린 다른 무리들까지  한다면 과장해서 혼자서  마리를 맡아야 할 정도다.


중간에 난입한 다른 무리 덕에 연이어  번이나 격전을 치뤄야했던 일행과 뮐러들의 모습은 초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제대로  장비와 실력을 겸비한 도로스들은 자잘한 상처를 제외하면 멀쩡했지만, 낡고 조잡한 장비에 끼니조차 배불리 먹지 못했던 뮐러들의 피해가 상당했던 까닭이다.




뮐러를 따라왔던 자경대 다섯 중 둘이 죽고 셋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 셋 중 둘은 돌아가서 며칠 휴식을 취한다면 다시 복귀 할 수 있을 수준이었지만, 남은 하나는 왼팔을 잃었다. 사실상 전력에서 제외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가용전력이 다섯에서 둘로 줄어버렸으니 뮐러들의 분위기는 거의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 그 분위기가 얼마나 비장하고 우울한지 카지트마저 날선 기색을 한결 누그러뜨릴 정도였다.



뮐러들이 제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 할 동안 프로바움은 도로스들을 따로 모아 뮐러들에게 들리지않게 조용히 말했다. 지금같은 상황에 이런 이야기를 나눠야한다는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이런 상황이기에 더욱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마을 내부에 첩자가 있는 것 같군."

서두없는 본론이었지만 닥터 윌슨은 프로바움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귀신같이 알아채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단시간,에 저희 계,획에 맞춰 진형을 바꾼다,는  그것 외에 없을 겁니,다."

이번만큼은 도로스라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식이 부족한 것이지 멍청한 건 아니었으니까.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니 카지트는 제가 밤새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자신이 그동안 밤새 잠을 자지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는 것을 밝혀야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러나 동료들의 걱정을 사는 것까진 어쩔  없었다.




"카지트! 그럼 밤새 안자고 돌아다닌 거에요? 어쩐지 피곤해보이더라!"

"..조금 자긴 했으니 괜찮아."

"지금 몰골이 어떤지 좀 보여주고 싶네요. 완전 해골이 되기 직전이라구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차가운 카지트의 목소리에 도로스는 살짝 움찔했지만 질수 없다는 듯 카지트를 마주봤다. 방독면으로 감싸였기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진 모르겠으나, 카지트는 그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뚜렷하게  수 있었다. 그것이 고맙기도하면서 미안하기도 했다.



혹시 그동안 자신이 길을 잘못 이끈 덕분에 고생만 실컷한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 감정을 숨기고 최대한 냉정한 태도로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범인이 누구인 것 같아?"



"자네 말을 들어보니 가장 의심되는   너구리 수인인  같군. 쓸데없이 귀찮게 굴어서 되도록 관심을 주고 있지 않았네만, 조금 이상하긴 하군."


프로바움은 능숙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 또한 카지트를 걱정하는 마음은 다른 일행들과 같았으나 이런 상황에서 최대한 빠르게 앞으로의 방침을 정하는 게 급선무다.



일행은 머리를 모아 어떻게 너구리 수인이 돌연변이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증거를 얻을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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