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7. 단서
돌연변이의 머리가 날았다.
사자와 말을 뒤섞은 것같은 기이한 얼굴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채 바닥으로 철푸덕 떨어졌다. 뒤늦게 더러운 피가 흘렀다. 카지트는 횡으로 휘두른 프란시스카를 회수했다. 깔끔한 일격. 군더더기없는 일격은 그야말로 일격필살이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아밍소드와 패도적이고 강맹한 프란시스카의 조합 앞에 돌연변이들은 맥도 못추고 너절하게 쓰러졌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눈 앞에서 달려드는 돌연변이에게 있지 않았다. 그는 달려드는 돌연변이들을 기계적으로 몰살시키고 있었지만 정신은 다른 한 구석에 못박혀있었다.
비단 카지트 뿐만이 아니다. 다른 일행들 또한 비슷한 상황이다. 각자 열심히 돌연변이들을 처치하고 있지만 힐끔거리는 시선들은 모두 한 곳에 쏠려있었다. 하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누군가가 옆에서 흉폭하기 짝이없는 살기를 줄기줄기 내뿜으며 한 마리 한 마리 정성을 들여 묵사발을 내고 있다면, 오히려 신경쓰지 않는 쪽이 이상할 것이다.
도로스들이 정신이 팔려있는 곳, 그곳엔 프로바움이 있었다.
그는 잔뜩 일그러뜨린 얼굴로 성을 내고 있었다. 꾹 맞물린 입매는 바이스로 굳게 다물린 것처럼 열리지 않았지만 금속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까지 일그러지고 접힌 얼굴과 마치 불타는 것처럼 넘실거리는 눈동자는 그가 단단히 화가 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것도 도로스들이 단 한 번도 본 적없을 정도로 많이.
페퍼박스는 꺼내지않은 채 두 강철주먹에 각각 리볼빙챔버가 달린 너클더스트와 아파치 너클을 끼고 묵묵히 눈 앞의 돌연변이들을 후려쳤다. 화약을 쓰지도 않았건만 휘두르는 족족 돌연변이들의 신체 한 부분이 터져나갔다. 그야말로 패도적인 주먹질이다. 폭력의 화신. 다행인 사실은 그 화풀이의 대상이 도로스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는 이마저 오금이 저릴 정도로 격분한 주먹질. 휘두르는 주먹을 따라 퍼지는 파공음과 후려갈길 때 생기는 파육음은 마치 지진처럼 파이프를 저릿하게 울렸다. 돌연변이를 다진고기로 만드는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찔끔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혹여 꿈에도 나올까 무서운 저 주먹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혼자서 남은 돌연변이들을 박살을 내놓고서야 프로바움은 간신히 진정했다. 그러나 흉험한 기세는 사그라들었다고 해도 여전히 씩씩거리며 위압적으로 흔들리는 등을 보면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는 듯 했다. 뮐러와 그를 따라온 몇몇의 자경대원들은 이미 프로바움이 벌인 참상에 하얗게 질려서 멀찍이 떨어져있었다.
그들을 제외한 도로스들은 프로바움이 그럴 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아는 것과 본능은 다른 법이다. 특히 반쯤 분노해 날뛰는 그의 모습을 본다면 더욱.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격분한 모습 또한 처음 보는 것이라,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둘은 힐끔거리며 그의 눈치를 봤다. 오로지 카지트만이 묵묵하게 아밍소드로 죽어나자빠진 돌연변이들의 시체를 뒤적이며 뭔가 수상한 게 없는지 확인하고 있을 따름이다.
한참을 말없이 쓰레기와 오물로 뒤덮인 파이프 바닥을 응시하던 프로바움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제가 벌인 학살극에 겸연쩍어하며 멋쩍게 말했다.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항상 후회는 늦는 법이다.
"..미안하다. 칠칠치못한 꼴을 보였군."
도로스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고개를 젓는 것 뿐이었다. 방금 전의 상황을 보고도 태연하게 말을 걸 수 있는 건 아마 소수일 것이다. 모두가 조용히 긴장하며 그를 응시하는 가운데 프로바움은 애써 냉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뮐러에게 말했다.
"이쯤하면 돌아가도 되지 않겠소? 이 정도 돌연변이 무리야 충분히 상대 할 수 있고, 다른 돌연변이 무리의 시선을 끌지도 않았으니. 시험 삼아해본 것 치곤 충분할 거라 생각하네만."
"아,아니..그게, 주,중간에 다른 돌연변이들이 스,습격하긴 했습니다."
갑자기 그의 시선을 받은 뮐러는 깜짝 놀라며 더듬더듬 말했다. 중간중간 계속 눈치를 보는게 시원찮았지만 프로바움은 그러려니 했다. 그는 그게 정말이냐는 듯 닥터 윌슨을 쳐다봤다. 귀뚜라미 또한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뮐러의 말이 사실이라고 긍정했다.
얼마나 정신이 나가있었던 건지 다른 돌연변이 무리가 접근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그는 제 추태에 부끄러웠지만 다져진 연륜으로 애써 무덤덤한 척 했다. 어쨌든 돌아가자는 그의 뜻에 모두 불만없이 따랐다. 뮐러들은 프로바움이 언제 또다시 날뛸까 두려워하며 한시 빨리 헤어지고 싶은 듯 했고, 도로스들 또한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고 싶어한 까닭이다.
"영감, 파울로? 그 자동인형과 아는 사이였나?"
돌아가는 길에 카지트는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프로바움과 십 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그이니 어지간히 궁금한 듯 했다. 드물게 먼저 말을 건네는 카지트에게 프로바움은 잠시 눈을 크게 떴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처음만난 사이라네."
"그런데 어째서.."
파울로는 프로바움을 깔보는 것 같았고 프로바움은 어째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묻고싶었지만, 도로스는 말을 흐렸다. 괜히 그의 화를 다시 북돋아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보이지않는 사각에서 사정없이 그를 찌르는 닥터 윌슨의 손날 또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거기엔 나름의 사정이 있다오. ..그건..나중에 말해주지."
프로바움의 무심한 시선이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오는 뮐러들을 스쳤다. 그의 개인사인 것 같으니 외부인인 뮐러들에게 들려줄 필요는 없었다. 도로스는 바로 알아들었다.
기껏 골칫거리이던 돌연변이들을 물리치고 식량으로 삼을 시체들까지 가지고 왔으니 마을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사냥을 나갔던 이들은 그리 밝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강력한 프로바움의 힘을 마주한 뮐러들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듯한 프로바움의 사정을 목격한 도로스들. 두 무리는 예의상 고생했다는 말 몇 마디를 뒤로 하고 헤어졌다.
물론 도로스들이 갈 곳은 그들에게 주어진 숙소 이외엔 없었다.
방 안에 돌아와 커튼까지 치고나서야 카지트를 제외한 세 명은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정확하게 말해선 도로스와 닥터 윌슨이 프로바움의 주위에 둘러앉았다. 카지트는 다시 벽에 기대어 서서 커튼 틈 사이로 바깥을 응시하다가, 이따금 일행들에게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문을 닫고 커튼까지 치고, 거기에 모자라 카지트가 경계를 서니 외부에서 누군가 그들을 훔쳐볼래야 훔쳐볼 수 없다. 도로스는 답답한 방독면을 벗고 자유롭게 쿱쿱한 남정내들의 냄새를 음미했다. 역시 좋진 않았다.
프로바움은 여전히 이것을 말해주어야 하나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친한 일행이라고 해도 자신의 치부를 알려주는 것이니, 달갑지 않을만 했다. 그러나 천천히 허공을 배회하던 시선이 벽에 기대어 밖을 경계하고 있는 카지트에게 닿았을 때, 그는 말하기로 결심했다.
카지트 또한 그가 모르는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고. 프로바움 그 자신도 한 때 그러지 않았던가. 겹겹이 굽이치는 세월의 풍파를 헤쳐나온 노인은 그런 젊은이가 안타까웠다. 적어도 그가 무엇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지 안다면 도와주진 못해도 작은 조언이라도 해줄텐데.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 봐서 카지트가 나서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중에라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하자.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자신이 품고있던 것을 밝히는 게 옳았다. 긴 침묵 끝에, 그는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지금만큼 파이프 담배가 당길 때는 드물다고 생각하면서.
"그래..궁금한 것은 파울로와 나의 관계..말인가?"
닥터 윌슨과 도로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그리 분노했는지 궁금했다. 카지트 또한 바깥을 바라보는 척하며 그에게 귀를 열였다.
"그와 난..한 때 서로 사랑하던 사이였다네."
"예? 잘못,들었습니,다?"
닥터 윌슨은 마치 정장을 입고 지팡이를 짚은 채 점잖스럽게 거리를 걷는 돌연변이를 마주한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마 그 돌연변이는 중절모를 조금 까딱이며 "좋은 하루 되셨습니까?" 따위를 지껄였을 게 틀림없었다.
도로스는 성대하게 마시던 물을 뿜었다. 얼떨결에 물을 뒤집어쓴 카지트는 도로스에게 눈을 부라렸으나 그의 관심은 오로지 프로바움의 충격발언에 쏠려있었다.
"물론 농담이라네. 좀 복잡한 이야기에 앞서서 농담 좀 해본거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말게나. 파울로인지 뭔지 하는 그놈이랑은 완전히 초면이라네."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아...무,물론 그럴거라 생각,했습니다."
닥터 윌슨은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면서도 어찌어찌 대답했다. 프로바움은 갖가지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는 일행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파이프 연기를 깊게 몸 가득히 빨아들였다. 반쯤 장난삼아 하던 그 행동은 어느새 없어서는 안될 것이 되어버렸다.
프로바움은 이런 작은 것에서부터 다른 자동인형들과의 차이를 느꼈다.
"파울로와 나의 관계라기보단 타 지역의 자동인형들과 북부의 자동인형들의 관계라고 하는 편이 낫겠지."
그는 다시 한 모금 파이프를 입에 머금었다. 후우, 내뿜는 숨결엔 그의 속에서 썩어왔던 감정이 녹아있었다. 도로스는 방독면 없이 마주한 파이프 연기에 작게 콜록거렸다.
"알다시피, 다른 지역의 자동인형들은 북부 지역의 자동인형들과 많이 다르다네."
"그건 얼핏 느,끼고 있는 사실입,니다."
닥터 윌슨은 그리 대답했지만 도로스는 사실 그런 차이점은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마을엔 자동인형이 없었고 마을 밖으로 제대로 대화해본 건 프로바움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경청했다.
"북부의 자동인,형들은 좀 더 무뚝,뚝하달까, 감정보,단 좀 더 합리,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자네 말이 맞네. 사실 그게 자동인형들이 갖춰야할 원래 성질이지. 합리성. 연구를 하고 기록을 쌓는데 감정이 들어가서야 되겠나. 감정이 희미하고 이성과 논리가 우선되는게 자동인형들의 특징이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의 모습에서 그는 데쟈뷰를 느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의 향연은 분명 어디선가 겪어본 적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만큼은 도로스도 질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지에서 자란 도로스에겐 어려운 단어가 많다는 걸 깨달은 프로바움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미안하군. 아무래도 나한테 민감한 주제다보니 생각이 제대로 정리가 안되는 구만. 큼, 조금 두서가 없어도 그냥 들어주게."
자동인형은 천천히 도로스도 이해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은 단어들을 택했다.
"자네들은 자동인형들이 어떻게 번식한다고 생각하나?"
"어..그..상대방한테 톱니바퀴를 끼워주나요?"
프로바움은 도로스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 듯 클클대며 웃었다. 그러나 정답은 아니었다.
"꽤 흥미로운 생각이지만 틀렸네. 닥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음, 생각,해본 적 없는 정말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피와 살이 아니,라 금속으로 이,루어졌으니 생물체의 번,식 방법으론 무리,일테고.."
닥터 윌슨은 새로운 연구거리를 찾은 듯 이런저런 다양한 가설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프로바움에겐 말도안되는 가설들이었으며, 대체 저 작은 머리 어디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끝도없이 나왔으므로 그는 재빨리 그의 말을 잘랐다.
"뭐, 그만하면 되었네. 다들 모르는 것 같으니. 애초에 이런 걸 궁금해 하는 사람도 손꼽을 정도 아니겠나?"
"사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자동인형들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선 이걸 먼저 설명해야하니까 말일세."
프로바움은 천천히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두서가 없이 중구난방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이 이상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 기억들에 맺힌 응어리는 타르보다도 끈적였고 너무 깊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장고에 빠진 그는 천천히 입을 다시 열었다.
"자동인형들에겐 자네들처럼 부모와 자식의 개념이 없다오. 대신 우리들에게 존재하는 건 스승과 도제의 개념이지."
그는 스승과 도제라는 말을 꺼내고 나서 제가 익숙하지 않은 듯, 입 안에서 두 단어를 굴려보았다. 스승과 도제. 프로바움은 스스로가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지 몰랐으나, 감은 눈을 만지는 척하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한 자동인형이 충분한 경험을 쌓았다고 판단했을 때, 그 때 자신만의 재료들을 모아 손수 도제를 만들어 낸다오. 그 과정과 걸리는 시간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지."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것과 비슷하네요. 그런데 자동인형들도 아이를 낳고 싶어하나요?"
"글쎄..없다고는 못하겠군."
도로스의 질문에 그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피식 웃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필요에 의해서 낳는다네. 자동인형들은 제 몸의 부품을 새 것으로 갈아치울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동력기관만큼은 갈아치울 수 없지. 자네들의 심장과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군. 그 동력기관은 재료나 배열방식 등등 다양한 조건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게 멈추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개인마다 다르지."
"그럼, 그게 멈추면 죽는 건가요?"
프로바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기 때문에 도제를 만들 때 다른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인다네. 만드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동력기관에 소모한다고 볼 수도 있겠군.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자동인형들도 죽지. 그러니 도제를 만드는 것이야. 최초의 자동인형이 만들어진 이유이자 모든 자동인형들의 근본은 지식의 습득과 보존, 그리고 계승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