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8화 〉7. 단서 (78/100)



〈 78화 〉7. 단서

앞으로 계획에 대해 논의하기도 전에 밖에서 한창 입씨름을 하던 뮐러가 들어왔다. 그는 연신 도로스들의 눈치를 살폈는데, 조금 전에 들어왔던 너구리 수인의 부적절한 언행에 기분이 상할까 노심초자하는 모습이었다.



일행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뮐러는 어쩔 줄 몰라하며 끙끙대다가 앓는 소리를 내며 입을 열였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 놈이 워낙에 멍청한 놈이라, 높으신 분들이 계신 걸 몰라뵈었수..습니다."

"흠, 상관없네. 방금은 모르고 저지른 걸테니 눈감아 주지."

프로바움의 응대에 감사하다며 고개를 깊이 숙이는 뮐러의 모습에 도로스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한 번 에메랄드 컴퍼니의 이름값이 가지는 무게를 확인한 것이다. 그 위명이 대단하기에 뮐러는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낮춘 것일 뿐이다. 만약 에메랄드 컴퍼니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면 저런 모습을 보기는 커녕 마을 내에 들어올 수도 없었으리라.

그리고 동시에, 에메랄드 컴퍼니라는 거대한 괴물에게 쫓길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충분했다. 이런 촌구석까지 퍼져있는 위상을 생각해 볼 때, 에메랄드 컴퍼니를 적으로 돌린다면 하루도  가지 못할 게 불보듯 뻔했다. 어떻게든 그들에게  보이려는 날파리들   수 백마리가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위험을 피해 본사가 위치한 뉴 런던까지만 어떻게든 도착한다면 분명 안전은 보장될 것이다. 이미 그들과 한 배를 탄 게름하르트가  꼴을 좌시 할 리 없을 터. 무언가 손을 써서 상황을 정리 해줄 거라고 도로스들은 판단했다.


물론 당장 북부 지부와 접촉해서 게름하르트에게  상황을 알린다는 방법도 있지만, 에메랄드 컴퍼니 내부에 있을지도 모르는 첩자가 중간에 수작을 부릴지도 몰랐다. 그럴 경우엔 이도저도 못하고 꼼짝하게 잡히게 되리라.



차라리 몸을 숨기며 본사로 향하는 편이  더 확률이 높을 것이다. 하겐에 도착하자마자 뉴 런던으로 떠나는 다각열차에 몸을 싣기만 하면  테니까. 그리고 그때까지 최대한 그들의 행적을 감추기 위해서 프로바움은 약간의 꾀를 내었다.



"그나저나 우리도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네."




"그 말은..?"



"이런 안타까운 광경을 보고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나. 우리들이 돕도록 하겠네."

일행을 쳐다보는 뮐러의 시선은 숫제 기적을 일으키는 성인을 보는 듯한 눈이다. 그는 끝없이 샘솟는 기쁨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환호를 억누르는  그가  수 있는 전부였다. 끝도모르고 점점 승천하는 입꼬리와 풀어진 입매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였다.

"다만 조건이 있는데, 들어보겠소?"



"물론입죠!"

뮐러는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에 아무런 이유없는 호의는 없다고 믿는 그였기때문에 무언가 도로스들이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이미 짐작한 터다. 마을이 망해가는 와중에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마을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돌연변이 조상이 온다고 해도 협상을 맺고 싶은 마음이다.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닌 그는 바른 자세로 앉아 프로바움의 말을 경청했다.

"우리가 여기에 묵었다는 사실과 자네들을 도와줬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된다네. 알겠나?"




"그..그야 물론 어렵진 않은데.."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는게 그 이유가 궁금한  같았다. 나름 숨긴다고 숨겼으나 도로스나 닥터 윌슨 마저도 눈치 챌 정도로 티가 났다. 그러니 프로바움이나 카지트가 몰라볼  없었다. 그러나 프로바움은 내색않고 차분하게 머리속에서 막 급조한 이유를 설명했다.

"뭐,  일은 아니라네. 우리도 나름 맡은 임무가 있는데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높으신 분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말일세."




적당히 둘러댄 이유에 뮐러는 알 것 같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 말되지않는 이야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는 정확한 이유따위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오로지 그가 신경쓰는 건 그 자신과 마을에 피해가 가는 이유인지 알고 싶었을 것이 분명했다.

"알겠수..습니다. 마을 사람들 입단속 단단히 시키겠습니다."



원하던 대답에 프로바움은 만족스럽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뮐러는 여전히 그의 곁에서 서성대며 일행의 눈치를 보았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는 모양새다. 프로바움은 한쪽 눈썹을 삐뚜름하게 올리며 말하라는 듯 턱짓했다.

뮐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저기, 정확히 무얼 하실 겁니까?"


프로바움은 뮐러의 말에 천천히 도로스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와 시선을 마주치는 이들마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으므로, 그다지 건질만한 것은 없었다. 결국 대답은 교섭을 맡은 그가 임기응변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빌어먹을 녀석들, 어깨 위에 걸린 건 방독면 걸이인가? 프로바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속으로 불평불만을 읊었다. 물론 숫자 4에 대한 것도 잊지않았다.

"글쎄, 아직 생각해둔 것은 없네. 자네는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가? 우리들보다 사정을 더 잘 알고있을테니 뭔가 조언이라도 듣고 싶네만."




"으흠..지금 제일 급한 게 식량문제인데, 돌연변이만 때려잡는다면 사정이  나아질  같수...같습니다."


"그건 그렇겠구만. 돌연변이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게 제일  문제니까. 그것들을 잡으면 식량도 생기고 상인들도 오기 한결 편해지겠군."



"그렇습죠. 그..지금 당장 가시는 거ㅇ..겁니까?"

어떻게든 일행을 빨리 내보내 골칫거리들을 처리하고 싶다는 의사가 분명하게 묻어나왔다. 프로바움은 은근히 재촉하는 그의 속내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호락호락한 사내는 아니었다. 자동인형은 매우 아쉽다는  과장되게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아니. 우리도 당장 나서고 싶지만, 보다시피 좀 험한 꼴을 겪어서 말이오. 하루정도 휴식을 취하고 움직일 거라네. 그래도 걱정일랑 말게나. 거의 남지않긴 했지만 그래도 한 끼 정도 끼니를 떼울 식량은 있으니. 자네들이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소."

프로바움은 일부러 자신들의 식량사정을 언급했다. 물론 거의 남지않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항상 필요한 양보다 좀  많은 식량을 가지고 다니는 덕에, 남은 양으로 여전히 며칠은 너끈히 버틸 수 있다. 그러나 프로바움은 이들이 무엇을 원할 지 대강 눈치채고 있었다.




하루하루 굶어가는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식량 외엔 무엇이 있겠는가?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아마 아이들이나 여성들을 보내 인정에 호소 할 것이 틀림없었다. 전쟁통에 아이나 여자, 노약자를 이용한 구걸은 몇 번이나 겪어본 적이 있는터라 프로바움은 처음부터 단단히 못박았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뮐러는 아쉬눈초리로 그들을 힐끔보더니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아쉬워하는 모양새가 프로바움이 짐작했던대로 약간이라도 식량을 요구해볼 속셈이었던  하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프로바움은 도로스들을 보며 말했다.



"뭐, 대충 뭘 해야 할 진 정해진  같군. 돌연변이들을 때려잡으면 될 것 같은데 말이지.."



"그것,과 광신도가 어떤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프로바움은 닥터 윌슨을 따라서 어깨를 으쓱였다. 분명 그 둘 사이엔 모종의 관계가 있음이 분명했지만, 도저히 어떤 식으로 그것을 파헤쳐야   감이 잡이지 않는 까닭이다.



"사실 나도 그렇다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네. 카지트, 자넨 뭔가 좋은 생각 없나?"

"글쎄.."


카지트는 말을 흐렸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의 서늘한 시선은 창 밖에 머물러 있었다. 여전히 마을사람들이 행여 무슨 짓이라도 할까 경계하고 있는 듯 했다. 프로바움은 담배연기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모양이 되었는지 원. 자동인형은 씁쓰레한 속마음을 담배연기로 달랬다.

"이제 어깨에  좀 빼게. 언제까지 그렇게 날 세울 셈인가? 그러다가 네가 먼저 쓰러질 거다."


프로바움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그는 묵묵히 벽에 기대어 시선을 창 밖에 고정했다. 쉬라는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있는게 뻔히 보였다.




"일단  씻고 쉬어요. 긴장 좀 풀구요."


도로스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카지트는 마치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몇 번이고 일행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경계를 서겠다는 의지는 바위처럼 단단했다. 벽에 대고 말하는 것같아 도로스들은 혀를 내둘렀다. 결국 보다못한 프로바움이 성을 내며 뒤돌아 섰다.



"흥!   없군. 저러다 쓰러지면 제 잘못이지."

몇 번 더 카지트에게 휴식을 권유하던 도로스와 닥터 윌슨 또한 말을 들어먹지 않는 그의 태도에 지쳐 나가떨어졌다. 피로가 극에 달한 터라 더 이상 남에게 신경 쓰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결국 카지트를 제외한 일행이 숙면에 빠져드는덴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모든 일행이 잠든 것을 확인한 카지트는 그제야 피로감에 거뭇하게 변한 눈매를 만지며 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저 밖에선 마을 사람들 또한 슬슬 잘 준비를 하러 들어가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는 시간을 확인하고 밤이 깊어질 때까지 아주 잠깐의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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