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5화 〉7. 단서 (75/100)



〈 75화 〉7. 단서

하루가 지났다.


본디라면 조그마한 마을 하나라도 발견해야 하건만 도로스들은 아직 파이프 속을 헤메이고 있었다. 군데군데 끊긴 파이프때문이다. 외곽으로  수록 점점  빈도를 더해가는 피해상황은 일행의 발걸음을 늦추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도로스들은 그것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증거를 잡아냈다. 붕괴된 파이프, 그 주변에선 코를 아릿하게하는 악취가 풍겼다. 돌연변이의 분변 냄새다. 또한 그곳에서 멀지않은 곳에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뼛조각들이 발견되었다. 누구의 짓인지는 명백했다.



 때마다 도로스는 온 신경을 집중하여 주위에 돌연변이들이 있는지 확인해보았으나, 그때마다 그의 감은 침묵했다. 기이한 일이다. 파이프에 구멍을 뚫을 정도인 돌연변이는 그 어느 곳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행은 게름하르트의 말대로 광신도가 무한동력을 이용해 돌연변이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않다면 돌연변이들이 파이프에 구멍을 내며 돌아다닐 이유 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일행에겐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준비한 식량은 하루 이틀을 더 헤멘다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넉넉했다. 그러나 문제는 식량이 아니었다. 체력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아마 부패한 시체들 사이에서 숨었던 것이 치명적이었으리라.



그래도 도로스나 닥터 윌슨, 프로바움은 어느 정도 버틸만 했다. 다만 문제는 카지트였다. 온종일 신경을 날카롭게 가다듬고 있던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지쳐가는 게 눈에 보였다. 몇 번이고 휴식을 권해도 카지트는 고개를 저었다. 헬쑥하게 들어간 눈. 식사량조차 현저하게 줄었다. 그나마 다른 일행이 휴식을 취할 때야 얕은 잠을 자는 게 다였다. 그러나 작은 소리에도 번뜩 일어나며 주위를 경계하는 걸 보니 제대로 쉬고 있지않은  했다.

자칫하다간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카지트가 먼저 쓰러질 판이라 도로스는 자잘한 위협은 무시하고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쓰러진 동료를 부축하며 갈 바에야 탄환을 쓰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다.



그렇게 속도를 올리고 서두르자,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파이프 너머에서 작은 마을이 그들을 맞이했다.

바리케이트 너머로 보이는 50가구도 채 되어보이지않는 규모는 마을이라기보단 촌락에 가까울 것이다. 잡동사니를 긁어모아 파이프 주위에 어설프게 설치한 바리케이트 너머에서 수인  명이 얼굴을 내밀었다.


"거기 멈춰! 누군지 정체를 밝혀라!"



세 명의 수인은 그들에게 총을 겨눴다. 조잡한 기계장치와 톱니바퀴가 달린 것을 보아하니 기압식 총인 것 같았다. 총 자체도 낡았으며 상태도 그리 관리가 잘 되어있지 않은 것 같았으나, 총은 총이다. 일행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공격의사가 없다는 표시이다.


그러나 그들이 조금  목을 빼고 도로스들을 둘러보자, 카지트들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퍼뜩 얼굴을 굳혔다. 프로바움은 작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분명 욕설일 게 틀림없었다. 카지트는 냉철한 눈으로 그들과의 거리를 쟀다.




일행이 그리 반응한 이유는 다름아닌 그들의 청결도 때문이다. 잡동사니로 만든 바리케이트 곳곳에 걸린 횃불 사이로 드러난 그들의 몰골은 꾀죄죄하고 수척했기 때문이다. 척 봐도 식량사정이 그리 좋지않은 듯 했다.

그리고 그건 위험신호였다.

마을 전체가 식량이나 무기, 탄약 등을 노리고 그들을 살인멸구 한다고 해도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마을이 그런 것은 아니다. 왕래가 많은 곳일 수록 그런 경향은 적었다. 그런 곳은 소문이 날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벽지라면 다르다. 그리고 프로바움과 카지트의 경험상 마을이 궁핍하면 궁핍 할 수록 마을 전체가 나서서 습격 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도로스는 감에 귀를 귀울였다. 그러나 그의 감은 여전히 침묵했다. 이걸 위험이 없다고 받아들여야 하나? 도로스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제멋대로인 감을 원망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정체를 밝혀라!"


"우린 용병이오. 에메랄드 컴퍼니의 의뢰를 맡고 있지."


나지막한 프로바움의 말에 상대는 동요했다. 벽지라곤 하나 그들 또한 에메랄드 컴퍼니의 위명을 들어본 적이 있는 듯 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프로바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벽지를 넘어 오지 중의 오지에서 온 도로스같은 경우가 또 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에메랄드 컴퍼니를 안다면 그 이름을 등에 업고 있는 일행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 것이다.

서로 뭔가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그들 중 한 명을 촌락 안으로 보냈다. 책임자를 데려오려는 것이다. 일행은  손을 든  초조하게 기다렸다. 아직 다른 두 보초가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으므로 섣불리 행동 할  없었다.




고작  분이지만 체감상  시간이 지난 것만 같았다. 도로스들은 저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나타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급적이면 쓸모없는 전투는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들의 대장은 일단의 무리를 끌고 바리케이트에서 나와 도로스들 앞에 섰다. 열 명 정도되는 인원을 보건대 촌락 내 전투 가능한 인원을 모조리 끌고 온 듯 했다.



"반갑수다. 자경대를 맡고 있는 뭘러요."


선두에 선 잿빛 늑대 수인이 입을 열었다. 늙수그레한 목소리를 보건대 저 잿빛 털은 세월에 빛바랜 듯 하다. 아마 본래는 다른 색이었을 것이다. 그는 다른 촌락 사람들처럼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눈빛 하나는 형형하게 빛났다.

"어째서 에메랄드 컴퍼니 분들이 여기까지 온 거요? 그 고명하신 분들이라면 하겐같은 큰 도시에서나 볼 수 있을 텐데."

그는 퉁명스레 물었다. 의아함 반 비아냥 반이 섞인 질문이다. 도로스 일행은 이것이 고비란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아직 도로스들이 정말로 에메랄드 컴퍼니 소속인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일행  누군가 입을 열기도 전에 카지트가 먼저 선수를 쳤다.




"최근 곳곳에서 파이프가 붕괴되고 있어서 조사차원에서 나왔습니다. 이분은 고고학 분야의 권위자이신 닥터 윌슨이시고 저희들은 그 호위입니다."



뭘러는 칼날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카지트의 목소리에 움찔했으나 이내 그 내용에 흥미를 갖고 일행을 훑어봤다. 파이프가 붕괴되고 있다는 대목에서 그는 뭔가를 바라는 듯 입을 달싹였으나 다시 입매를 꾹 닫았다.

그 자리의 모두는 그의 눈에 어린 의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꾀죄죄하고 냄새나는 몰골을 한 이색적인 파티는 분명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다.

"..증거는 있수?"

뮐러는 탐탁치못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이미 신분을 증명 할 방법까지 예상해놓았던 카지트는 닥터 윌슨에게 정중한 어조로 관련 서류를 보여줄 것을 권했다. 처음엔 갑자기 변한 카지트의 행동에 얼떨떨한 그였으나, 그의 영민한 머리는 돌아가는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그에 맞췄다.

닥터 윌슨은 최대한 거들먹거리는 높은 사람처럼 보이려 애쓰며 에메랄드 컴퍼니에게서 받은 의뢰증과 신분보증서 등을 꺼내 뮐러의  앞에 보여줬다. 물론 그에게 건네주진 않았다. 혹시라도 그가 증명서를 찢거나 손상을 가한다면 괜히 골치아파지기 때문이다.


뮐러는 한참을 끙끙대며 닥터 윌슨이 보여준 문서를 훑었다. 그러나 그에게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볼 수 있는 능력따윈 없었다. 애초에 저런 것을 본 적이 있어야 구분을 하던 말던 할 것이 아닌가? 도시의 사람들에게도 흔하지않은 것을 촌락에 사는 그가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작게 혀를 차곤 일행의 면면을 살폈다. 그리곤 할 수 없다는 어조로 일행을 마을로 들였다. 알아먹을  없는 에메랄드 컴퍼니의 보증서 따위를 떠나, 도로스들과 붙는다면 어느쪽이  큰 손해인지 판단했으리라. 그리고 그 결과는 명확했다.



뮐러의 신호에 자경대가 총을 내리자 도로스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어올린 손을 내렸다. 쓸데없는 싸움을 피한 것이다.



"..따라오슈. 자세한  일단 안에 들어가서 합시다."



뮐러는 쓸데없는 짓을 했다간 가만 안 두겠다는 듯 다시  번 도로스들을 노려봤으나 이내 눈가를 긁적이며 마을로 향했다.


그를 따라 촌락으로 들어간 일행은 마을의 상황이 그들의 생각보다  좋지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들이나 어른이나 할  없이 전부 헬쑥했기 때문이다. 며칠을 내리 굶은 것같은 그 모습에 그들의 식량사정이 대략이나마 짐작이 갔다. 무엇을 얻어먹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이 먹을 것을 줘야하는 상황인  같았다.

"쉬긴 그른  같군."

도로스는 프로바움이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말대로 였다. 뮐러의 뒤를 따라가며 그들은 자신들이 꽤 곤란한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느꼈다. 무언가 심상치않은 일에 말려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째서 마을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의문과 궁금증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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