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4화 〉7. 단서 (74/100)



〈 74화 〉7. 단서

도로스는 일행의 선두에서 길을 이끈다는 것이 생각 외로 힘든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느꼈다. 혼자였다면 망설임없이 감을 따라 나아갔겠지만, 다른 일행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위치에 있으니 망설임이 생겨나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진행속도가 더디어지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거기엔 카지트 또한  몫 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는 폐기물과 알  없는 쓰레기로 점칠된 파이프의 금속바닥을 발로 걷어찼다. 애꿏은 봉변을 당한 파이프는 둔탁한 금속성 비명을 내질렀다. 도로스는 카지트의 모습을 힐끗거리며 훔쳐봤다. 그곳엔 그들이 알지 못하는 그가 서 있었다.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그의 분위기 때문에 도로스들은 좀처럼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물론 카지트는 날아든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해주었지만 아무래도 그의 날선 분위기에 압도되는 것이다. 거기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원인이 죽어버린 카라마조프와 관련되어 있다는 걸 알기에, 다른 이들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일행의 분위기 메이커가 저러고 있으니 자연히 서로 간의 대화 또한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거북한 침묵. 물론 카지트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하루 종일 신경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면 금방 지쳐버리는 것이 당연지사니까. 다만 그의 기억 속에선 아직도 부릅 뜬 카라마조프의 눈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벌어진 시체의 입에선 끊임없이 그를 저주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조프 뿐만이 아니다. 그의 입을 빌어 죽어버린 다른 레인저들의 목소리 역시 새어나왔던 것이다. 사체의 얼굴이 일행들과 겹처 보일 때도 있었다.

이게 무슨 증상인지 모를 그가 아니었다. 외상  스트레스 장애, 흔히 PTSD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용병업계에선 열병처럼 다들  번은 앓는 그것. 카지트는 아직까지 앓아본 적은 없지만  대략적인 증상에 관해선 알고 있었다. 그리고 효과적인 치료법은 시간 밖에 없다는 것 또한.


일행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과 끊임없이 그를 충동질하는 저열한 환각 사이에서 그는 입을 다무는 것을 선택했다. 제가 겪고 있는 것을 다른 이들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다. 짐이 되기는 싫었다.


점점 가라앉는 분위기 속에서 도로스는 어떠한 책임감을 느꼈다. 추욱 쳐지는 분위기가 싫기도 했고 점점 서먹해지는  같은 사이가 달갑지 않았다. 카지트가 그랬듯 지금 일행을 이끄는 입장으로써 어떻게든 이런 꿀꿀한 상황을 타파하고 싶었다. 카지트만큼 말재간이 없지만 그래도 뭐라도 하는 편이 낫다 싶었다.


그는 짐짓 밝은 목소리로 프로바움에게 말을 걸었다.



"아 맞다. 프로바움, 그러고보니까 프로바움은 하겐에서 봤던 자동인형들이랑 좀 다른 것 같던데요? 역시 용병이라서 그런가."

그리  소리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파이프 속에서 이리저리 울리는 반향에 도로스는 찔끔하며 목을 움츠렸다. 그는 힐끔 프로바움의 눈치를 봤다.




프로바움은 일순간 눈썹을 움찔하며 거북하고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쌓아두었던 것을 담배 연기에 내어보낸 후 씁쓸한 얼굴을 했다.



"그래..내가 좀 특별하긴 하지. 너무 특별해서 탈이야."

반쯤 자조하는 것 같은 음성에 도로스는 아차 했다. 하필이면 대화 주제를 골라도 지뢰를 고른 것이다. 그는 닥터 윌슨에게 눈짓으로 구조요청을 보냈다. 그러나 닥터 윌슨이 뭐라 수습해주기도 전에 프로바움이 먼저 입을 열였다.



"도로스, 자네는 나와 다른 자동인형들이 어떻게 다르다고 느꼈나?"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프로바움을 마주했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선 어떠한 단서도 얻을 수 없었다. 둘은 어째서 그가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 몰랐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그가 어떠한 기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도로스는 북부의 대도시, 하겐에서 보았던 자동인형들을 떠올렸다. 제대로 대화 할 시간이나 기회가 없어 그저 스쳐지나가듯 본 것이 다지만, 대부분의 자동인형들에게선 비슷비슷한 인상을 느꼈다. 도로스는 그가 느꼈던 인상을 그대로 전달했다.

"음..다들 좀 무뚝뚝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 좀 차가운 느낌? 이야기 해 본 적은 없지만 왠지 재미없을  같구요. 그리고...음, 다들 비슷비슷한 느낌이었던  같기도 해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자동인형들의 학술,적 지식은 뛰어나,나 대화능력이나 감정적인 교류,면에서 그리 빼어,나지 않다고 종,종 듣습니다."




닥터 윌슨 또한 도로스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긍정했다. 그리고 둘은 프로바움이 그들과는 이질적일 정도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행 중 유일한 자동인형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쓴웃음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녹아있었다.

"부정 할 수는 없겠군 그래. 자동인형이란 원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녀석들이니 그러는 게 당연하겠지. 그러니까 방금 전에 말했잖는가, 내가 좀 특이하다고."

둘은 어렴풋하게 프로바움이 다른 자동인형에게 품고 있는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자기자신에 대한 자조와 소외감. 그들에 대한 부러움과 질시. 그런 것들이 그의 쓴웃음에 녹아있었다. 그리고 도로스는 그가  둘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일반적인 자동인형과 동떨어진 그였기에, 그들과 비슷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프로바움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둘은 내색은 안하지만 살짝 풀죽은  같은 그의 모습에 서로 마주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어떻게든 분위기 좀 띄워보겠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닥터 윌슨은 도로스를 도와 어떻게든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도로스는 반색하며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추격,자들이 따라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괜찮을 거에요. 일단 우리가 밖으로 도망쳤다는  모를테니까요. 적어도 며칠을 벌겠죠."


도로스들은 이미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적 발굴대가 초토화된 이상 그들은 다시 하겐으로 돌아가 에메랄드 컴퍼니 하겐 지부에게 이를 전해야한다. 그러나 추격자들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혹은 멕도너들이 실패 할 경우를 고려해서 이미 다른 추적자들이 파견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뒷경매에 연루된 대부분은 치안대에게 억류되어있을 테니 그 잔당들은 실질적으로 소수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수의 추격자들이 계획 할 수 있는 책략엔 무엇이 있을까?


그 중 제일 확률이 높은 방법이라면 유적과 하겐을 잇는 가장 짧은 파이프를 지키고 서는 것이다. 하겐지부의 에메랄드 컴퍼니에게 발굴대의 생사와 추격자의 존재를 알려야 할 테니,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가장 빠르게 하겐에 도착 할 수 있는 통로를 고를 것이다.



그러니 추격자들의 입장에선 그 파이프를 지키고 선다면 도로스들을 놓칠 일은 없을 터.




그러나 일행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하겐에 최단시간으로 도달 할  있는 파이프를 우회하는 것이다. 물론 적들이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들이라면 그 역의 역 등  세 수 앞을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걸음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제안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선택은 도로스의 몫이다. 그의 감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올바른 길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스들은 바로 하겐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 주위의 촌락이나 마을 등을 경유해서 우회하기로 결정했다. 식량 문제를 고려한다면 중간에 마을을 들려야하는 까닭이다.

분명 시간은 조금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멕도너들이 유적에서 하루이틀 내지는 사흘을 허비  것을 생각하면 나쁘진 않았다.




이것저것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며 분위기를 돋구자 조금씩 도로스들은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조용히 파이프를 뻑뻑 피우고 있던 프로바움 또한 끼어들자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물론 카지트는 홀로 차갑게 날을 세우고 있었지만 그래도 간간히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그는 조금 피로한 것 같아보였으나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오랜만의 즐거운 시간이다. 비록 파이프의 금속 바닥엔 형체를 잃은 폐기물들과 누구의 것인지 모를 뼛조각들이 간간히 보였지만, 그것들은 도로스들의 시간을 방해하지 못했다. 카지트는 담소를 나누는 일행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여전히 칼날처럼 날카롭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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